50년 여름 54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 조선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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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54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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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8-05 09:42 조회6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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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4 회)

19 장

7월 18일 아침, 대전비행장에 내린 채병덕은 마중나온 초라한 모습의 띤에게서 6월 28일의 패전을 전후한 자기를 보았다.

비행기 다라쁘에서 내려서는 워커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띤은 무어라 중얼거렸으나 발음이 똑똑치 않았고 흐리멍텅한 눈길은 차고 딱딱스런 워커의 눈길앞에 갈팡질팡하였다. 군정장관(띤은 한때 서울에서 군정장관을 했다.)시절의 그 여유어린 몸짓과 기풍은 찾아볼래야 볼수 없었다.

워커는 띤과 그의 참모장교 몇만을 데리고 비행장옆 막사로 들어갔다. 대전작전에서 띤사단장의 《한국인》고문격으로 사업할 특명을 지닌 채병덕은 이 변덕스러운 푸대접에 적잖게 기분이 잡쳤으나 미군헌병들로 에워싸인 막사옆 풀밭에 대전시가도를 펼쳐놓고 앉아 지도작업을 하였다. 뜨거운 해볕아래 무려 한시간동안이나 콤파스와 부호자를 놀릴 때 작전토론을 끝마치고 나온 워커는 벽돌장처럼 달아오른 얼굴에 땀이 비오듯 하는 중에서도 끄떡않고 지형판독에 열중하는 채병덕을 보고 저으기 감동하는 상이였다. 그는 채병덕에게는 알리지 않을 심산이였던듯 한 《비밀》을 알려주는것으로 그 감동의 일부를 표현했다.

《제네랄 채, 이틀을 견지하면 됩니다. 이틀후면 1기병사단이 대전작전의 크라이막스를 장식하는 포문을 열것입니다.》

워커를 쫓아 막사로 들어갈 때만도 우거지상이 되여 흐려있던 띤은 활짝 개인 얼굴로 채병덕에게 악수까지 청하며 말했다.

《우리는 의의깊은 력사적지점에서 벗으로 되게 되였습니다.》

워커가 비행기에 올라 떠나가자 띤은 채병덕에 대해 더욱 너그럽고 선량한 사람으로 되여 친히 자기 차에 태웠다. 띤의 지휘소는 사방에 콩크리트방탄벽을 한 요새화된 건물안에 있었다. 창문마다 기관총대좌가 설치되여있었고 파리와 모기의 침습을 막기 위해 뿌린 향수내가 지독스레 코를 찔렀다. 띤의 방문앞에 이르렀을 때 부관인듯 한 금발머리의 애젊은 장교가 수심어린 빛으로 보고했다.

《사단장각하, 아이큘론스중좌님이 자총을 했습니다. 히스테리발작이 끝난 뒤였습니다.》

띤은 걸음을 멈추고 채병덕을 피끗 살피고는 사나운 눈길로 금발머리를 쏘아보았다.

《그건 잘한것이야.》

그리고는 십자를 그으려는듯 손을 올리다 말고 문을 활 떠밀어 성급히 걸어들어갔다. 띤은 철모를 벗어 모자걸개에 건 후 따라들어서는 미국인장교들을 다 보내고 한동안 침울한 눈길로 창문쪽을 내다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장교는 훌륭한 군인이였소. 대대가 전멸된것으로 고민하던 끝에 자기 병사들을 따라간셈이요.》

띤은 작전탁우에 접어놓은 지도를 천천히 펼쳤다. 누런 반지가 번쩍거리는 투실투실한 손가락에서 새까맣게 때가 끼인 뾰족한 손톱이 눈을 끌었다.

(세수도 못하고 지내는구나.)

그 손톱과 띤의 머리에 듬성듬성 섞인 흰 머리칼이 채병덕의 꼿꼿한 마음을 얼마간 눙그러뜨렸다.

《당신 자살을 생각해봤소?》

띤은 뚱딴지같은 물음으로 채병덕을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웃는것 같기도 하고 쏴보는것 같기도 한 종잡을수 없는 서양인의 노란 눈알을 바라보던 채병덕은 점점 얼굴이 붉어져갔다. 서울함락직후 절망과 울분속에 표류하던 자기의 심리를 직시한 질문같았다. 채병덕이 대답을 못하자 띤은 싱그레 웃었다.

《당신은 일본군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우리 미국인들은 당신네 일본군대의 할복자살법을 무지스럽다고 비웃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난 거기에 군인으로서 경의를 표하오. 전패한 군인은 죽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랑만주의며 동시에 군대의 기강을 세우는 훌륭한 질서지. 그런데 우리 미국사회는 아직 이것을 리해 못하고있소. 막다른 골목에서는 포로되여서라도 살라고 하는것이 미국의 선전이요. 물론 이것은 군대를 싫어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미국젊은이들을 싸움판에 내보내기 위해 필요한 선전이긴 하지만 나는 반대요. 나는 어제 우리 사단장병들에게 퇴각과 포로란 있을수 없다는것을 정식 명령으로 떨궜소. 기자나부랭이들이나 국회의 리론가들이 이 면을 시비한다 해도 나는 이 초지를 꺾지 않을것이요.》

《각하, 저 역시 초전실패후 군인의 도로써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살아서 적을 타승해야 할 임무가 있었습니다.》

《아니, 나는 당신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요. 이 대전을 두고 나의 결심을 말하자는것이요. 왜냐하면 이 대전을 사수하느냐 못하느냐에는 나의 사단의 명예뿐아니라 대아메리카의 명예가 달려있기때문인것이요.》

《각하에게는 명예만 있지만 저에게는 나의 생활의 전부, 나의 과거와 고향 친척과 친우들 전부가 있습니다. 빨갱이들한테 이제 다시 쫓기는 날에는 멸망만이 있습니다. 사상과 생활전부를 위해 나는 이 싸움에 자신의 전체를 바치지 않을수 없습니다.》

채병덕이 서투른 영어로 이까지 말하고났을 때 띤은 저으기 감심한 낯빛이였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처지요.》

그리고는 싱그레 웃으며 조선말로 말하였다,

《우리 함께 아리랑고개를 아리랑 아리랑 넘어갑시다.》

다른 두손으로 지도의 주름살을 펴며 영어로 계속하였다.

《이것은 대전방어도입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을 듣고저 합니다.》

띤은 매우 허심한 태도로 청했다. 채병덕은 삼각방어진으로 구축된 진지형성에서 이렇다할 흠집을 발견할수 없었다. 지도상의 표기대로 보면 대전은 철통같은 수비속에 들어있는셈이였다. 모든 길목이 땅크와 장갑차, 지뢰원으로 차단되여있고 인민군 보병이 진격해올수 있는 구역마다 집중적인 포사격을 해댈수 있게 조밀한 포화력망이 꾸려져있었다. 채병덕은 띤으로 하여금 입을 딱 벌릴수 있는 신통한 의견을 주고싶었으나 틈이 없었다. 부득불 도꾜의 맥아더앞에서 뽐내본 범벅된 전투경험을 말할수밖에 없었다.

《인민군의 전술은 다종다양합니다. 그들은 김일성이 만들어낸 게릴라전법을 응용하므로 전투가 진행될 때까지 그 기도와 행동을 예측할수 없습니다. 예상외의 지점에서 예상외의 습격과 교란작전으로 방어진을 뚫고모든 지휘와 작전을 마비시키고 들이칩니다. 서울함락의 교훈으로 볼 때 여기서도 땅크와 보병기습대의 게릴라적침투를 막는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어데가 그 위험지점으로 될수 있다고 생각하오?》

띤은 저으기 초조한 기색으로 지도의 여기저기틀 더듬어 살폈다.

《기본은 대전정면이겠지요. 그러나 주의를 돌릴것은 여기 우리 l군단과의 린접점입니다.》

《세개 사단의 방어를 그 인민군 52사가 돌파할수 있다고 생각하오?》

《물론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묘합니다.》

띤은 음울한 눈길로 채병덕의 손가락이 가닿는 벌판을 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곳으로 진출한 인민군 사단장이 <산악게릴라전>의 용장이라는 사람이지?》

《그렇습니다. 각하.》

《그가 어떤 수를 쓸수 있소?》

《게릴라적인 침투로 조용히 잠적해들어올수 있습니다.》

《당신네 세개 사단이나 되는 국군이 그것을 못막아낸단 말이요?》

《막아낼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의 대비책은 서야 할것입니다.》

《다음은 어디라고 생각하오?》

채병덕은 딱히 짚을만 한 지점이 없었다. 그의 손가락은 미군전투부대가 투입되지 않은 공간인 대전후면의 금산-영동간 계선을 짚었다.

《이 후방계선에도 일정한 방어진을 조성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띤은 불만스레 미간을 찌프리며 어이없다는 눈길로 채병덕을 보다가 《노, 노.》를 련발하였다. 채병덕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자 띤은 벌떡 일어서며 성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나를 겁쟁이로 만들려고 하는것이 아니요? 인민군이 항공륙전대가 없는 이상 날개가 달리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 지점에 나타날수 있단 말이요?》

《각하, 그들의 용병술은…》

《그만하시오.》

띤은 책상을 두드리고 방안을 성급히 왔다갔다하다가 방구석에 부풀어있는 방수포를 홱 잡아벗겼다. 무반동포 비슷한 형태의 포가 놓여있었다. 띤은 장탄대를 절컥 잡아당겼다가 도로 놓고는 한결 풀린 어조로 말하였다.

《이 무기는 어떤 땅크도 격파할수 있는 최신형바주카포요.》

채병덕이 그대로 서있자 띤은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다가 지도앞에 다가와 손바닥으로 피반령쪽을 덮쳤다. 그리고는 채병덕을 보고 살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여기의 인민군은 이틀후면 우리 25사단의 포위타격에 섬멸될것이요.》

《네?!》

채병덕은 1기사의 출동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보다 더 놀랐다. 띤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먹을 움켜쥐며 채병덕의 코등을 스칠듯하며 흔들어댔다.

《그렇소. 25사가 피반령을 동쪽으로부터 지원하고 1기사가 그에 맞춰 가위작전을 펼치면 이 대전에서 인민군은 주력전체가 소멸된단 말이요. 알겠소…?》

《각하.》

채병덕은 환희에 목소리가 떨렸다. 행운의 녀신이 그에게 축복의 미소를 보내주는상싶었다. 띤은 싱그레 웃는듯 하다가 병아리를 덮치는 독수리의 눈이 되여 채병덕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작전의 비밀을 아는 한국인은 오직 제네랄 채뿐이요.》

《각하, 믿음에 죽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채병덕은 띤과 함께 있는 이 대전이 자기 운명에서 대역전을 마련할 기회임을 알았다. 그는 대전방어가 적을 저지시키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인민군주력을 소멸하는 섬멸전으로 되리라는것을 알았다. 맥아더의 륜곽적설계를 심화시킨 워커참모부의 대전작전은 미24사와 1기사, 25사로 인민군을 역포위하여 섬멸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띤의 미24사가 인민군 53사와 54사의 공격을 견제하는 그 시간을 리용하여 포항의 1기사를 대전 동남쪽으로 진입시키고 영천의 미25사를 우회기동시켜 괴뢰1군단과 합세하여 인민군 52사를 압축소멸한 후 동북쪽으로부터 53사와 54사 반달형으로 포위하여 섬멸한다는 이 구상은 작전전술적면에서 그 실현가능성이 충분한것으로 인정되였다.

《워커사령관은 이 작전이 한니발의 깐느작전보다 못지 않는것으로 될것이라고 했소. 그런데 이 승패여부는 전적으로 시간에 달려있소. l기사의 도착전에 피반령이 돌파당하면 이 거창한 작전은 한갖 신기루로 나타났다 사라지는것으로 끝날것이요. 미스터 채의 견해는 어떻소? 당신네 김홍일군단이 우리 미군부대의 도착전까지 고수해낼것 같소?》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그 군단고문관은 웨포사관학교시절의 나의 후배요. 나의 인사도 전하오. 물론 나의 련락장교도 보내겠소만. 이번 작전만 성공되면 나는 맥원수에게 직접 당신의 군사적능력과 열성에 대해 보고하겠소.》

《각하, 고맙습니다.》

채병덕은 전패의 쓰디쓴 고배를 마셔본 띤이 적잖게 자기에게 의지하려 한다고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는 또다시 보라색으로 채색된 명예회복과 출세의 화려한 지평선이 바라보였다. 띤은 그를 바래여 부관실에까지 따라나왔다. 부관실에는 여러명의 좌급장교들이 대기하고있었다. 왼손에 붕대를 처맨 중좌를 발견한 띤은 대번에 얼굴이 험악하게 이지러지였다.

《당신은 뭣때문에 여기 와있소?》

《각하, <B>지구의 전기철조망가설지역은 주민지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알면 비밀루설이 될수 있고 또…》

《대략 얼마나 있소?》

《가옥만도 100여채입니다.》

《그때문에 왔소?》

《그렇습니다. 각하.》

띤은 가엾다는듯이 그 중좌를 바라보았다. 뚜벅뚜벅 다가간 그는 중좌의 손에 처맨 붕대를 가볍게 다쳐보고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파상풍주사는 맞았소?》

《맞았습니다. 각하.》

《그렇다면 좋고… 내 이제 당신한테 장갑보병중대를 보내주겠소.》

《네?! 그건… 무슨…》

《한시간내로 가설하오. 그리고 그 비밀을 아는 <한국>인은 없어야 하오.》

《알겠습니다. 각하.》

《전쟁이니까.》

띤은 싸늘히 굳어진 얼굴에 웃음을 띠우다가 그때까지 번히 서있는 채병덕을 보고 어깨를 툭 쳤다.

《전쟁에는 바라지 않는 희생도 있는 법이요.》

띤은 엄숙한 눈길로 채병덕의 속까지 꿰뚫듯 바라보았다. 채병덕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두개 부락을 초토화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고도 눈섭하나 까딱 않는 띤의 담보에 위압이 되였던것이다. 밖에 나와 차에 오를 때에야 그는 띤이 《한국인》의 목숨따위는 개벼룩만치도 여기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장갑차의 포격과 기관총사격에 쓰러져 나딩구는 늙은이와 부녀자들의 피흘리는 모습을 환영으로 그려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띤의 생각은 옳다. 큰것을 위한 작은것의 희생이다. 모든 위대와 명성은 그런 피의 무덤우에 솟아 빛나는것이 아닌가. 대아메리카도 인디안의 백골우에 건축된것이다. 인간도 같다. 나의 명리와 나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 어떤것도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반공성전의 승리를 위한것이 아닌가!

채병덕은 호위와 감시를 위해 붙은 미군대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피반령계선의 1선진지에까지 나갔다. 그는 인민군 박격포탄이 쉬임없이 날아오는 참호를 돌아보고 사병들과 장교들에게 이틀간만 견지하라고 고무하였다. 빈틈없이 굴설된 참호와 포진지를 돌아본 채병덕은 한개 사단이 아니라 그 몇곱의 병력으로도 이 계선 돌파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가 보은에 있는 김홍일사령부로 가보려고 할 때 어디서 침을 맞았는지 만나려던 김홍일이도 전방진지로 나왔다. 평시에 서로 너는 만주괴뢰군의 늙다리요, 너는 한갖 탄약따위나 주무른 병기장교요 하는식으로 쓴외보듯 했던 채병덕과 김홍일은 다가오는 거창한 작전을 앞두고 서로의 간극을 뛰여넘은채 굳게 악수도 하고 진지하게 토론도 하였다. 채병덕은 김홍일로부터 래일아침부터 전면적인 공격에 진입하겠다는 반가운 답변을 가지고 띤에게 돌아왔다. 띤은 부관에서 채병덕을 맞았다.

상아손잡이로 된 지시봉을 든 띤은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더욱 자신만만하고 여유어린 표정이였다. 그는 채병덕의 보고가 몹시 궁금한듯 선자리에서 대답을 요구하였다. 피반령계선에서의 인민군돌파가 불가능하며 김홍일이 공격을 결심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띤은 입가에 둥그런 주름살을 그리며 웃었다.

《감사하오. 당신은 이젠 가서 쉬시오. 그리고 래일부터 당신은 <한국군>부대들의 전투진지를 순회하면서 인민군게릴라의 시내침투를 막기 위한 대응책을 세우시오.》

띤은 조선말과 영어를 엇섞어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채병덕은 누런 가죽을 덧대인 문이 열렸다 닫기는 순간 띤의 작전탁앞에 여러명의 미군장교들이 서있는것을 보았다. 부관실벽 옷걸개에는 여러개의 철갑모와 코트가 걸려있었다.

(나를 제외시키는구나.)

채병덕은 띤이 자기를 작전수뇌부의 머리로가 아니라 하나의 수색장교역에 불과한 처지에 떨궈버렸음을 깨달았다.

《한국》장성의 도움을 받는다는 세론이 꺼려서인가, 아니면 전승후의 공로를 나누기 싫어서인가. 띤, 당신은 용렬하다.

그는 어금이를 꽉 악문채 띤이 사라진 문을 노려보다가 껌을 질겅질겅 씹고있는 부관의 조롱기어린 눈길을 느끼자 홱 돌아서 나왔다.

밤의 시가는 골목골목을 순회하는 땅크와 장갑차의 소음으로 떠들썩했고 귀설은 외국말과 휘파람소리로 악마구리 끓듯 했다.

채병덕이 탄 차는 분주히 오가는 트럭들사이를 조심스럽게 빠지며 숙소인 도시 남쪽변두리의 영빈관쪽으로 달렸다. 이따금 완전무장을 갖춘 순찰대가 차를 멈추기도 하였으나 워커중장의 수표가 있는 그의 증명서를 보고는 군말없이 통과시켜주었다.

그런데 영빈관에 이른 채병덕은 뜻밖의 광경에 부딪쳤다. 아침에만도 경찰 두명이 지켜서있던 영빈관이 미국헌병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처에서 전지불이 껌벅이면서 움직이는 모든 형체를 그 불빛으로 샅샅이 훑었다.

정원등이 희미한 빛을 던지는 정문에서는 키가 전보대같은 헌병과 그의 배허벅에나 와닿을 흰두루마기차림의 로인이 마주서 닭싸움하듯 붙었다 떨어졌다 하였다. 헌병은 팔을 휘저으며 맹렬히 돌진해오는 두루마기의 공격에 분명 싫증을 느낀듯 곤봉으로 그 늙은이의 배허벅을 쿡쿡 찌르며 《노, 노.》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곤봉에 가슴을 떠박질리운 두루마기는 두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기광스럽게 고아댔다.

《야, 이녀석들아, 눈깔이 멀었느냐. 이 내가 이래뵈두 <대한민국>의 <장관>이다.》

헌병은 그 소리는 듣는척도 않고 마주오는 채병덕의 차를 무섭게 쏘아보며 곤봉을 뻗쳐 길을 막았다. 채병덕은 그 헌병보다 자동차불빛에 들어선 두루마기가 어제 대구에서 《유엔기계양식》에 참가하고 《위문단》인지 《갈보》들인지 한차 싣고 대전으로 떠나온 리윤병임을 알고 저으기 놀랐다. 그는 육중한 몸을 차문에 부딛치며 맹렬한 기세로 밖에 뛰여내렸다. 헌병은 불쑥 뛰여나온 장대한 몸집의 군복을 보자 동족의 장성으로 여겼는지 《차렷》을 했다.

《여보게 채총장!》

울음이 버물린 소리와 함께 맥빠진 손이 채병덕의 팔소매를 움켜잡았다. 뾰족한 수염턱을 달달 떨며 리윤병이 눈물이 질척한 눈으로 채병덕이를 바라보았다.

《령감님이 어찌된 일입니까?》

《글쎄 내가 망녕인지 저 사람들이 망녕인지, 자네가 말 좀 해주게. 아, 글쎄 저 두억시니같은 량반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이 가방만 쥐여주고는 말할새도 없이 내쫓는것이 아니겠나. 아니 내차라도 줘야겠는데… 무슨 굴뚝쇠들인지 예수를 믿는 나라사람들같지 않다니.》

채병덕은 흙이 게발린 리윤병의 바지무릎을 보고 처량한 심회를 걷잡을수 없었다. 그는 증명서를 꺼내들고 이때까지의 대화를 흥미있게 지켜보던 헌병에게 다가갔다. 이미 채병덕이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군》장성에 불과하다는것을 알아차린 헌병은 방금전에 보인 공손성을 갚음하기 위해서인지 두다리를 쩍 벌리고 선채 눈을 들들 굴리며 아래우를 훑어보고는 증명서를 되는대로 받아 펼쳤다. 전지불까지 비춰 증명서를 확인하고난 그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모르는듯 망설이다가 호각을 불었다. 그러자 위병장교인듯 한 역시 키꼴이나 한 중위가 뛰쳐나왔다. 그는 헌병보초에게서 증명서를 받아보고는 정중한 자세로 채병덕에게 돌려주며 뒤따르라고 손짓하였다.

《여보게.》

리윤병이 한손으로 두루마기자락을 걷잡아쥐고 뛰여오는것을 그 헌병이 밀쳐버렸다. 채병덕은 차마 이것을 그대로 볼수 없었다.

《중위!》

채병덕은 그 광경을 못본척 하고 빠른 걸음을 놓는 미군장교를 불러세웠다.

《저 사람은 <정부>의 고관이요.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 저 사람의 승용차까지 징발하고있다니… 이런 무례한 법이 어디 있소?》

중위는 알았다는 식으로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는 《갑시다.》 하고 걸음을 옮겼다. 채병덕은 부질부질 끓어오르는 분격을 간신히 참으며 뒤따라갔다. 그런데 미군중위는 현관문에 이르자 채병덕이를 멈춰세웠다.

《기다리시오.》

《여기가 내 숙소요.》

채병덕이 따라들어가려 하자 문전보초가 총대로 막아나섰다.

《이건 뭣이야!》

채병덕은 몸을 떨며 소리쳤다. 그때 중위가 나타나 례의 그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두개의 트렁크를 쳐들었다.

《어느것이 당신것입니까?》

젊은 중위는 채병덕의 군사칭호같은것은 인정않는투로 물었다. 채병덕은 얼굴이 퍼렇게 질린채 중위를 쏘아보다가 터져나오는 노성을 간신히 누르고 점잖게 물었다.

《중위, 경고하건대 나는 워커중장의 명령으로 띤사령부에 와있는 <국군>소장이요, 알겠소?》

《알고있습니다.》

중위는 트렁크명세란을 보고는 《이것이지요?》 하며 밤색 트렁크를 내밀었다. 채병덕이 눈을 딱 부릅뜨고 움쩍않자 중위는 량해를 구하는투로 말했다.

《나는 띤사단장의 명령을 집행하는중입니다. 이 건물에 <한국인>은 한명도 없이 하라는 지시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채병덕은 눈앞이 뿌잇하게 흐려왔다. 주먹이 와들와들 떨렸다.

갑자기 째지는 녀자의 비명소리가 울리며 긴 꼬리치마를 입은 녀인이 달려나왔다. 저고리 팔소매 한짝이 떨어져나갔다. 그 녀인은 짙은 분내를 풍기며 채병덕에게 매달렸다.

《살려주세요.》

너무 뜻밖의 일에 채병덕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뻥해있는데 투닥거리는 군화소리와 함께 불머리의 미군장교 하나가 문을 걷어차며 뛰쳐나왔다. 그 불머리는 채병덕과 위병장교를 보고는 주춤했다가 껄껄 웃으며 녀자의 손목을 잡아채였다.

《살려주세요.》

녀인은 끌려가며 또다시 소리쳤다. 진하게 화장을 한 얼굴이 이지러진채 원망스럽게 채병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순간 채병덕은 녀인의 애원어린 눈길이 아니라 그 녀인을 끌고가는 미군대위의 팔을 보고있었다. 팔에는 말대가리가 새겨져있었다.

《1기사의 선발대요?》

채병덕은 중위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채병덕은 아무 말없이 중위의 손에서 자기의 트렁크를 받아들고 돌아섰다. 중위는 그의 점잖은 행동에 분명히 감동된듯《<한국>량반의 차를 가져가시오.》라고 친절을 베풀었다. 미군병사 하나가 리윤병의 차를 몰아 정문밖에 내다세웠다.

《여보게, 저 사람들은 왜 이다지 거친가. 아무리 군대라도 이런 법 있는가? 내 데려온 녀배우들서껀은 한명도 놔주지 않고 나만 내쫓지 않았나.》

승용차를 받고나서도 리윤병은 불만이 풀리지 않아 채명덕에게 하소연하였다. 얼굴색이 거멓게 죽어 나온 채병덕은 리윤병을 독살스레 쳐다보았다.

《령감님, 공산주의가 더 싫소, 저 량반들이 더 싫소?》

《아, 그야 빨갱이들이지, 내 그때문에 잃은 땅과 불쌍한 북의 교인들을 생각하면…》

《그럼 군말 말고 가십시오. 저들은 빨갱이들과 결사전을 할 군대입니다. 나나 령감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 그야 옳은 소리지. 헌데 군졸들이라 교양이 없구만.》

채병덕은 그 말을 들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다. 참아야 한다. 이 모든것은 사사로운것이다. 문제는 승리에 있다.)

《정부》의 장관과 륙군장성을 내쫓고 영빈관에 들어앉은자들은 미1기병사단의 참모장교단 1진으로서 띤사단과의 협동작전을 토론하며 동시에 중대장들에게까지 발급할 대전지도를 복사하기 위해 먼저 도착한것이였다. 채병덕이 음울한 심사를 비장한 초지속에 묻어버리고 시가남쪽의 괴뢰군수색대를 찾아가고 리윤병이 자기 며느리와 사돈령감이 틀고앉은 장촌동의 친척집으로 차를 달릴 때 포항앞바다에는 미1기사의 마지막 보병대렬을 실은 수송선이 도착했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유령같은 급유차가 굴러다니며 항만과 도로에 빼곡이 널린 거뭇거뭇한 바위같은 장갑차와 땅크들에 최종연유공급을 끝냈다. 그리고 자동차들마다에 여섯줄씩 앉은 보병들이 배멀미로 하여 채 하지 못한 저녁식사를 치르며 전투명령을 받았으며 2차대전시기 《붉은 사냥군》이라고 불리운 6개의 바퀴로 달리는 장갑차와 불도젤삽을 단 60t급 패톤땅크와 40t급의 셔만땅크로 된 척후대가 지도작업을 마치고 출발시동을 하였다. 도로상의 장애물은 그것이 설사 사람이건 달구지건 가차없이 제껴버리라는 명령을 받은 조종사들은 렵기적흥미와 광적인 열기에 차 차를 몰아댔다. 척후대가 떠나 5분후 게이사단장의 흥분된 목소리가 련대장으로부터 소대장들에 이르기까지 휴대하고 있는 무선송신기의 진동판을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나의 친애하는 전투병들!

미주의 땅을 진감시키던 용맹한 기병사단의 전통을 떨칠 때가 다가왔다. 24사의 형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다.》

포항시가 생겨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수백대의 자동차와 땅크, 장갑차들이 일시에 발동을 건것이였다. 검은 하늘에 검은 연기를 토하며 사단전투종대가 움직였다.

전투급식으로 배당된 위스키로 얼근해진 검둥이, 흰둥이 운전수들은 만용을 뽐내며 가스답판을 세차게 누르며 전속으로 차를 몰아댔다.

회오리바람처럼 굽인돌이를 돌았고 어지간한 고개는 변속도 없이 날아넘었다.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차가 들추고 굽이길에서 차가 옆으로 쏠릴 때 바람처럼 날아떨어지는 병사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넘어진 차나 날아떨어진 병사를 위해 차를 멈추지 않았다.

《명령없이 차를 세우는 경우는 재판없이 총살이다. 최대속도로!》

명령은 엄격하고 단호하였다.

척후대가 내달리며 깔아버린 괴뢰군부상병들의 시체와 부서진 달구지들을 흙속에 짓뭉개며 이 거대한 행렬은 질풍같은 속도로 대전으로 대전으로 달렸다.

공중에는 무선전파가 맹렬히 날아다녔다. 그 전파들속에는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특수정찰과 62사 잠복정찰이 날리는 무선전파도 있었다.

《…포항으로부터 미군 기계화대무력이 서쪽으로 이동하고있음…》

전선사령부무선대는 조치원으로 이동준비를 갖추던 중에 이 전파를 받았고 그 사실은 즉시 김일성동지께 보고되였다.

《이젠 누가 더 빨리 대전후면에 도착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54사 18련대의 기동을 념두에 두고 하는 김책의 말에 대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태연자약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옳습니다. 이것은 생사를 두고 하는 경기와 같습니다. 기계기술과 정신력의 경기입니다. 나는 그 동무들을 믿습니다.》

굳센 믿음이였다. 18련대와의 일체 통신련락은 엄금되여있었다. 비밀엄수와 관련하여 일체 전파도 오고갈수 없게 되였다. 그리고 그들의 행처도 아직은 알수 없었다. 김책이며 강건을 비롯한 작전일군들은 지도상에 그어진 18련대의 로정을 지켜보며 조바심치는 마음을 믿음 하나를 가지고 눌러야 할따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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