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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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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1-06 18:05 조회3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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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농산 제5작업반


11


로정만이가 리당비서에게 관리위원장동무의 가족을 데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냈다.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를 생각하고있던 차성재는 몹시 반가와하며 관리위원장 본인은 농장사업에 갓 착수해서 분망하여 이사할 생각을 못하고있을뿐아니라 몸을 뺄 형편도 안되니 농장에서 도와주자고, 누구 한사람에게 과업을 주어 차를 가지고 가서 이사짐을 싣고오게 하자고 대답을 주었다.

저녁에 하루총화가 끝난 후 관리위원장방에 남은 로정만은 정중하게 말했다.

《리당비서동무와 토론이 있었는데 가족을 데려와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로정만의 얼굴에서 온화한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속심을 겉에 잘 표현하지 않는 성미 그대로였다.

사실 지금 그는 허명숙에게 기대했던 좋은 감정이 흐려지고있는 상태였다. 그는 명숙이가 열성도 좋고 일욕심도 있고 조직사업도 녀성답게 치밀하지만 잠정리실정에 비추어보아 열성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벌써부터 걱정되였다. 허명숙이와 합심하여 계획을 수행해야 하겠는데 명숙의 주관이 강하다고 보는 정만은 그와 마음과 손발을 맞추어내기가 힘들것 같은 위구심이 생겼다.

하지만 사업은 사업이고 인간생활은 인간생활이다. 허명숙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 낯선 고장에 와서 작업반에서 작업반으로 분주히 달려다니는 모양이 측은했다. 로정만은 왜 농장에서 그의 가족을 데려올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였는가, 관리위원장이 녀성인데 그의 개인생활에 지내 무관심했다는 자책을 느꼈었다.

《고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아이들 아버지한테서 이사준비가 다 되였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 주저하던 중이였습니다.》

명숙이가 밝은 얼굴로 이와 같이 대답했다.

《그런 기별이 왔으면 우리한테 벌써 알렸어야지요.》 로정만이 년장자답게 말했다. 《그래서 비서동무와 이렇게 토론했습니다. 로동지도원 준식동무가 화물차와 뻐스를 가지고 가서 가족들과 이사짐을 실어오도록 말입니다.》

이 농장에는 뻐스가 한대 있었는데 수령님께서 농장원들이 들에 일나가고 들어올 때 리용하도록 배려해주신것이였다. 넓은 들가운데 섬처럼 솟은 언덕에 잠정리가 집결되여있어서 멀리에 펼쳐져있는 논판까지 일나가고 들어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도 들었다. 이러한 사정을 아신 수령님께서 뻐스를 타고다니도록 해주신것이다. 요새는 휘발유가 긴장하여 모내기와 김매기, 가을걷이철에만 뻐스를 리용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있기에 명숙은 화물차와 뻐스를 리용하는것을 반대했다. 기차로 오도록 하자는것이였다.

《아니지요. 기차로 오면 짐을 날라다 싣고부리우고 또 역에서 여기까지 자동차로 날라오고, 매우 복잡하지요. 이사짐이 파손될수도 있습니다. 잠정리의 존엄과도 관계됩니다. 휘발유 몇키로 아까와서 관리위원장의 가족들을 고생시키겠습니까. 위원장동무는 이 일에 상관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처리합니다.》

명숙은 더 우기지 못했다.

가족이 온다.… 이날 밤 명숙은 가족들과 만나게 될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여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남편 신호석은 편지에다 어머니를 그리는 아이들의 애타는 심정과 안해와의 상봉을 기다리는 자기의 마음을 써보냈다. 같이 있을적에는 몰랐는데 달포가 지나도록 헤여져있었으니 명숙이자신도 남편과 아이들이 그리웠고 같이 사는 친정어머니가 보고싶었다. 관리위원장사업을 하느라 아이들과 가정일을 돌볼새 없었고 남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틈도 없어 늘 미안스러워했던 명숙이였다. 이제 가족이 오면 남편을 더 따뜻이 대해주고 안해로서의 지성을 다하리라, 어머니를 더 잘 공대하고 아이들의 생활에도 더 관심을 돌리리라.…

하긴 연백벌에서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결심을 다짐한것이 몇번인지 모른다. 보안사업때문에 수척해진 남편을 보며 가슴인들 얼마나 아파했던가.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명숙이가 잠정리로 오는 날 승용차안에서 도당책임비서 석영진이가 이전 군당위원장의 소개로 신호석과 결혼했는가고 물었는데 사실 명숙은 전부터 그를 알고있었다. 군에서 신호석이 라순돌의 살해사건을 해명하기 위해서 파견되여왔던것이다.

첫인상에 신호석은 남자답게 생기고 무게가 느껴졌다. 나이도 명숙이보다 네살이나 우였다. 그래서 명숙은 그를 어렵게 대했고 존경했었다. 호석은 라순돌을 살해한, 섬과 련계를 가지고있던 반동놈을 잡아내고야말았다. 명숙은 그에게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이제는 일이 끝났으니 군으로 올라가야 하겠지? 하는 섭섭함을 금치 못했었다.

숨어있는 반동놈을 잡아내는 기간에 명숙은 신호석을 잘 알게 되였고 깊이 신뢰하게 되였다. 후에 알았지만 그 기간 보안원으로서 호석은 관리위원장 명숙의 신변안전에 각별한 관심을 돌렸다.

어느날 명숙은 논김매기가 늦어지는 6작업반에 가서 대책을 세워준 다음 늦게야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믐밤이여서 달이 없는데다가 밤하늘이 높은 구름으로 흐려있어서 별빛조차 볼수 없는 칠흑같은 캄캄한 밤이였다. 이런 어둠을 두고 흔히 눈알을 빼가도 모를 정도라고 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달구지길을 따라걸으며 명숙은 6반에서 늦게 떠난것을 후회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걸음을 계속해야 할것이다. 라순돌의 권고대로 군중속에 들어가며 그들의 생활에 첫째가는 관심을 돌려야 했다. 그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길은 다른데 있지 않다. 협동농장관리운영사업을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대로 확고히 사회주의원칙을 틀어쥐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농사를 잘 지어 농장원들의 분배몫을 늘이는것이다. 라순돌이 말한것처럼 원칙앞에서는 순돌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제일가는 인간성이고 인정미이다. 명숙은 그 모범을 라순돌이에게서 보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려는 결심을 굳히였다. 그래서 오늘도 6작업반에 내려가 늦도록 있었다.

라순돌을 생각하자 목이 메여왔다. 그에 대한 추억은 너무 가슴아픈것이여서 될수록 피하려 하지만 때없이 불쑥불쑥 치미는것이였다.

명숙은 어둠속 그 어디선가 원쑤가 눈을 밝히고있는것 같았다. 무서움에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러나 라순돌이의 원쑤를 갚겠다고 맹세한 처녀였다. 라순돌의 원쑤를 갚겠다고 맹세를 다진 자기가 원쑤놈을 무서워하면 되겠는가? 그는 틀어쥔 주먹을 가슴에 대고 씽―씽― 걸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물레야 돌아라

가락아 돌아라

물레나 가락은

살살 도는데

윙 윙 찍구둥

이 물레질은

이리저리해서

어느 누구를 해입힐가

시어머니가 있으니

시어머니 해입힐가

윙 윙 찍구둥


명숙은 대대로 내려오는 향토의 민요들을 아는대로 불렀고 학교시절에 배우고 예술소조경연에 가지고나갔던 전시가요도 불렀다.


식량바리 등에 싣고

얼룩소야 어서 가자

쩔렁쩔렁 방울소리에

잠자던 새도 반기는구나

이랴 이 소야 어서 가자

얼룩소야 어서 가자


원쑤놈의 시한탄에

귀한 내 딸 잃었단다

이내 원쑤 갚아주는

인민군대를 찾아가자


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 대한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명숙은 아까부터 누군가 뒤에서 자기를 따라오는듯 한 감촉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륙감으로 느껴졌다. 호석보안원이 늘 어디선가 살펴보는듯 한 그 느낌은 아닌지. 그렇다면 왜 그가 몰래 뒤따르겠는가. 명숙은 멈추어서서 어둠속에 든 지나온 행길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어둠속에 녹아든 가로수의 컴컴한 모습이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문일가?

머리카락이 쭈빗 곤두서며 심장이 세차게 박동쳤다. 귀신이나 도깨비에 대한 동심적인 공포감이 겹치여 더했다.

(아무것도 아니겠지.)

다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그러나 집에 다달을 때까지 누군가 따라오는듯 한 느낌과 그로 인한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 하고 명숙은 마당에 들어서며 서둘러 어머니를 찾았다.

기다리고있은듯 문이 곧 열리며 어머니가 내다보았다.

《왜 이렇게 늦었냐?》하던 어머니는 방안에서 쏟아져나오는 불빛에 멀리 비추인 사람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사라져가는 키가 큰 남자의 뒤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누구와 같이 왔냐?》

《아닌데?》

명숙이가 뒤돌아보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꼭 신호석보안원같구나.》

《그래요?!》

그제야 명숙은 호석이 자기의 신변을 념려하여 뒤따라왔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안도의 숨이 나가는것과 함께 호석보안원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후더워났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늦은 밤에 그러한 미행을 여러번 당한것 같다. 신호석이 라순돌의 사건과 같은 참사가 빚어질가봐 남모르게 수고하는것이리라.

후에 명숙은 호석에게 6작업반에 갔다오던 밤길에 자기를 뒤따랐는가고 물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들켰으니.》

호석은 멋적게 웃었다.

《무서워 혼났어요. 꼭 누가 뒤따르는감이 들었으니까요. 차라리 드러내놓고 같이 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노래를 부르는데 방해될가봐 그랬습니다.》

《엄마, 창피해!》

《노래를 잘 부르던데요.》

《놀리지 마세요. 난 목청이 곱지 못해요.》

《아니요. 감정이 풍부했고 정열적이고 힘이 있었지요.》

명숙은 활짝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뭘 그랬겠어요. 앞으로는 밤길을 같이 걷게 되면 함께 노래랑 부릅시다.》

《승인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깊은 밤에 승인없이 처녀와 동행할수 없었지요. 그리구 어쩐지 내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것이 본인에게 알려지는것이 쑥스러웠지요.》

《고마워요, 보안원동무. 그런 수고를 더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말이 나오기때문에 은페된 행동을 하는겁니다.》

《너무 무리하는것 같애요.》

호석을 쳐다보는 처녀의 눈에 정이 넘쳤다. 무척 깊어보이고 다심한 정이 넘치는 그 눈을 호석은 넉없이 바라보았다. 처녀의 둥근 검은 눈은 매혹적이였다.

맡은 임무를 성과적으로 결속한 신호석이 명숙이와 헤여져 군으로 올라간지 2년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군당에서 소집한 회의에 참가한 명숙이는 군당위원장으로부터 회의뒤끝에 좀 남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군당위원장은 수령님으로부터 공부도 하고 일도 잘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받고 이악스럽게 농사를 짓고있는 처녀관리위원장 명숙이의 사업과 생활에 대해 늘 관심을 돌리고있었다.

《내 사무실에 가기요.》

군당위원장은 따로 남은 명숙을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처녀관리위원장, 이거 실례되는 말이긴 한데, 올해 몇살이요?》 하고 대뜸 물었다. 26살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허, 이러다간 시집을 못가겠소. 관리위원장사업도 중요하지만 시집도 가야지.》하며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알았소, 가보오.》하였다.

그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군당위원장이 다시 찾았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선 명숙은 그곳에 앉아있는 신호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석은 빙긋이 웃었다.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니, 서로 아는 사이요?》

희한해하며 군당위원장이 물었다.

호석이가 서로 알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했다.

《아, 그랬구만. 허허…》 그는 매우 재미나하였다. 《이거 일이 잘될것 같다.》하며 그는 두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흡족해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군당위원장은 명숙의 대상자를 물색하던중 역시 사업에 묻혀 장가갈 생각을 못하고있는 30살난 군보안원 신호석을 골라냈다. 서로 맞을것 같았고 또 신호석을 무슨 구실을 대여 불러다가 만나보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오늘 두사람을 사무실에 불러 인사를 시키고 특별과업을 하나 주어 하루동안 같이 있으면서 수행하는 과정에 친숙해지도록 하려 하였다. 그다음에 따로따로 만나 상대방이 어떤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타진해보고 정식 맞붙여주려 했다. 그런데 서로 잘 아는 사이고 반동놈을 잡아내는 과정을 통해 리해가 깊어졌다고 한다.

《아주 좋소.》 군당위원장은 두사람을 가까워지게 하는 특별과업을 주는것도 또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타진하는 중간공정도 다 필요없게 되였다고 좋아하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기본문제에 들어가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동무들을 불러서 맞대면시킨것은 두사람이 중대한 문제를 결정짓고 락착을 보아야 할 일이 생겼기때문이요. 길게 말하지 않겠소. 나는 동무들이 부부간이 될것을 희망하오. 아니, 명령하오.》

《어마나!》 하고 명숙이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호석이도 얼굴이 붉어지며 눈길을 떨구었다.

《두사람 다 인물이 잘나고 사업에 충실하고 나이두 들었겠다, 이 이상 리상적인 배필이 어디 있겠소, 엉? 허허허…》 그는 방안이 떠나가게 웃어댔다. 《자, 결정됐소! 어때, 반대없지? 아무리 명령이래두 접수여부는 물어야 하니까.》

신호석이 사내는 사내였다.

《군당위원장동지, 저는 반대없습니다. 만일 명숙동무가 싫다고 한대도 저는 쟁취하고야말겠습니다.》

《아이참!…》

명숙은 머리를 더욱 깊이 숙이였다.

《군대에서 단련된 제대군인출신이 다르구만! 좋소, 찬성하오. 명숙동무, 할 말이 있소?》

《저는 모릅니다.》

《처녀들이 모른다고 하는건 찬성한다는 뜻이요. 명숙이의 얼굴에 찬성의 밝은 표정이 그대로 어려있소.》하며 그는 다시 껄껄 웃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결혼을 했는데 군당위원장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지금은 늙어서 집에 들어가 집짐승들을 치고있다.…

명숙은 지나간 일을 추억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으나 곧 시무룩해졌다.

그들의 가정생활은 그닥 즐겁지 못했다. 호석은 리에 아주 옮겨와 데릴사위노릇을 했는데 부부가 다 일에 몰리우다보니 아기자기한 가정생활의 맛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남편도 직업상특성으로 늦어들어오군 했지만 안해는 더했다. 어느날 먼저 들어온 호석이 안해를 기다리기에 지쳐서 그가 들어서기 바쁘게 화를 터뜨렸다.

《아, 그렇게 일하니 사람이 견디겠소. 일찍 들어와 편안하게 잠자는 날도 있어야지.》

그래도 명숙은 웃는 얼굴이였다. 아들이 태여나자 부부의 정은 더 깊어졌다.

《2대 1이군요.》 남자가 둘이고 녀자가 하나라는 뜻의 롱을 하며 명숙은 웃었다.

《아니, 2대 3이요.》 호석은 가시어머니와 처제를 가리켰다. 《아직 력량관계에서 균형이 잡히지 못했소. 그러니 아들 하나를 더 낳아야 해.》

호석이 명숙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 있으며 또 그앞에서 두손을 들지 않을수 있으랴.

한번은 출장갔다 늦게 집에 들어섰다. 안해를 보름만에 만나보게 되는 호석의 가슴은 울렁이였다. 게다가 보배덩이 아들까지 있지 않는가. 그는 안해와 아들, 겸하여 가시어머니에게 줄 기념품을 준비하여가지고왔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모두 잠들어 개만 낑낑거리며 반길뿐 불꺼진 집안은 괴괴하였다. 문을 두드렸다. 호석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잠내나는 안해의 정다운 얼굴을 기다렸다. 그러나 문을 열어준것은 장모였다. 늘 앓고있는 주름진 얼굴이다. 호석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래방이였다. 장모가 처제와 같이 거처하는 방이다.

《모두 잠들었다우, 깨울가?》

《놔두십시오.》

《저녁식사를 해야겠지?》

《먹구왔습니다. 명옥인 어데 갔습니까?》

그는 례의상 이렇게 먼저 처가집사람들을 물었다. 장모는 명옥(처제)이가 축산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호석은 우선 아들애를 당장 보려고 웃방으로 들어가고싶었지만 장모앞이라 점잖게 처신해야 했다. 부엌에 나가 세면을 하고 발을 씻은 다음에야 웃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니 안해는 정신없이 자고있었으며 아들은 그옆에서 따로 포단을 덮고 쌔근쌔근 자고있었다.

호석은 아들의 얼굴을 오래동안 들여다보았다. 애기들의 자는 모습은 더욱 귀여운것 같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싫지 않다. 그는 일어서서 옷을 벗고 안해의 머리맡에 앉아 드러내놓고있는 둥근 어깨를 건드렸다.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그의 몸으로 전해졌다. 그는 어깨를 흔들었다. 점점 세게 흔들었다.

명숙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남편을 알아보고 방싯 웃으며 《왔어요?》 하고 잠내나는 소리로 물었다.

《응, 몹시 피곤한가보군.》

명숙은 호석의 손을 쥐였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해야지요.》하며 일어나려 했다. 호석은 어깨를 눌러 눕혔다. 그러자 안해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호석은 벽에 걸린 명숙의 허름한 솜옷을 보았다. 그 솜옷을 입고 눈오나 비오나 바람이 부나 넓은 농장벌을 걸어다니는 명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호석은 눈물이 나서 더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담배를 찾았다. 담배와 성냥을 쥐였으나 아이때문에 방안에서 피우지 못하고 솜옷을 걸치고 토방으로 나갔다. 맑게 개인 초봄의 밤하늘에 쪼각달이 떠있고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있었다. 호석은 담배를 피우며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명숙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도와줄수 있겠소? 좀 뭘 하라고 시키기도 하고 요구도 하고 짜증도 내보오. 늘 웃기만 하며 괴로움과 힘겨움을 혼자 안고 묵새기고있으니!)

그는 안해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심장이 터질듯 하였다.…

호석은 그후로 안해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며 늘 좋은 낯으로 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결심대로 되지 않았다. 마치 영원히 풀수 없는 모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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