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딸 6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7월 16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대지의 딸 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12-31 09:13 조회305회 댓글0건

본문

20211226105043_dbe9fb380a435b79b32ecd7692e28320_v9j3.jpg

제 1 장

17년이 지나 새 고장에서


5


로정만의 딸 경애는 밤중으로 집에 갔다와야 할 일이 있어서 잠정리를 향해 합숙을 나섰다. 겨울에는 해가 짧고 날씨가 차서 일찌감치 하루일을 마친다. 해가 넘어가자 사위는 어둑어둑해지고 날씨는 더 차졌다.

처녀는 흰 양털목도리로 머리와 목을 뜨뜻하게 감쌌으며 파란 솜덧옷을 입고 까만 바지를 입었다. 얼굴은 아버지를 닮아서 훤했는데 이상하게도 몸집이 작았다. 하지만 어깨가 동그스름하고 허리가 잘룩해서 예쁜 얼굴에 잘 어울려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농장원들은 이 몸매 작고 곱게 생긴 처녀를 사랑했고 궂은일은 못하게 하며 아끼였다. 그럴수록 처녀는 힘든 일을 솔선 맡아하려 했고 재빠른 일솜씨와 갸름한 얼굴에서 떠날줄 모르는 상냥한 미소로 농장원들의 마음을 후더웁게 해주었다. 목소리도 맑아서 마치 꾀꼬리가 노래하는듯 하였다.

차거운 저녁바람을 맞받아 머리를 저으기 숙이고 걸어가던 경애는 뒤에서 나는 뜨락또르발동소리를 들었다. 퉁탕거리는 그 발동소리가 점점 가까와지였고 등뒤에서 비치는 전조등의 불빛이 더 밝아지였다. 경애는 한옆으로 물러나며 손으로 불빛을 가리우고 뜨락또르를 바라보았다. 뜻밖에도 잠정리 뜨락또르였다. 운전수는 잘 가려볼수 없었다.

마침 잘 만났다.

경애는 손을 쳐들었다.

《좀 타고 갑시다.》

옆을 지나치려던 뜨락또르가 멈추어서며 기름냄새와 먼지를 확 풍기였다.

운전수가 머리를 내밀었다.

《아, 우리 기사장동지의 따님이시구만.》

순간 경애는 얼굴이 화끈해지고 가슴이 떨리였다. 목소리만 듣고도 잠정농장 기계화반에 있는 철수라는것을 알수 있는데 경애는 그를 만나기만 하면 어째서인지 마음이 평온치 못했다.

그들은 같이 잠정마을 청룡의 몸뚱이에서 태여났고 같이 학교를 다녔다. 키가 큰 철수는 몸매 자그마한 경애를 늘 내려다보면서 《얘, 넌 왜 그렇게 자그마하니? 꼭 해주백화점에 있는 인형같구나.》하고 놀려주군 했다. 조옥희영웅의 동상이 있는 해주에 수학려행을 갔다가 백화점구경을 하면서 본 인형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그러면 경애는 《넌 꼭 전주대같다.》 하고 응수하며 혀를 내밀군 했다.

한번은 철수가 경애와 맞다들자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일요일에 고기잡이 같이 갈가?》

경애는 의심쩍게 쳐다보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싫다.》

《왜? 저 늪에 가면 붕어서껀 메기서껀 많아.》

그 늪이란 청룡이 꼬리를 담그고있다는 곳인데 늪이 깊고 물밑의 경사가 급해서 아이들이 미역을 감거나 고기잡이를 하다가 빠지군 하여 어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구역이였다. 경애는 이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대답은 왕청같이 했다.

《늪에 데리구 가서 빠뜨려서 옷이 다 젖게 할려구 그러는줄 내가 모를가.》

철수는 얼굴을 하늘로 쳐들고 하하 웃고는 지나쳐버리였다. 철수도 경애도 만나면 말이 이상하게 꼬이는 투로 오고갔지만 실지는 서로 싫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철수는 군대에 나갔고 경애는 농업대학에 붙었다. 철수가 입대하여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날 역홈에 다른 처녀애들과 같이 경애도 꽃다발을 들고 바래워주러 나왔다. 경애는 땀이 흘러 발그레해진 얼굴로 철수를 찾아다니다가 다른 처녀애들속에서 히쭉히쭉 웃고있는 그를 발견하자 대번에 온몸의 피가 솟구쳐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경애는 한쪽에서 철수가 처녀애들과 헤여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며 기다렸다. 마침내 철수는 자기네 입대생들쪽으로 향했다.

《철수동무, 나 좀 봐요!》

새파랗게 성이 난 경애가 소리쳤다. 철수는 경애를 알아보고 긴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경애두 나왔구만.》

철수가 반가와했다.

《흥! 못 본척 했지!》

《못 본척 하다니?》

《그럼 뭐야? 왜 나를 찾아보지 않았어? 내가 그래 군대나가는 남동무들을 바래워주러 나오지 않을 숙맥으로 알았어? 나를 응당 찾아봤어야지. 다른 애들하구 이야기하는데 정신이 빠져서 나같은것은!》

경애는 눈물이 글썽해서 손에 들고온 꽃다발을 든채 돌아섰다.

《경애, 그런게 아니야!》

철수는 급해하며 눈물을 씻으며 군중속을 헤쳐가는 경애를 따라갔다.

《경애, 내 잘못했어. 군대나가는데 모두 이렇게 나와 전송하니 막 떠서 미처…》

경애는 그제야 멈추어서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눈물흘린것이 부끄러워서 얼굴은 들지 못했다.

《조국보위초소에 나가는 동무를 섭섭하게 해서 안됐어. 철수동무, 잘 복무하고 오세요.》

경애는 그때에야 생각나서 자기가 들고있는 꽃다발을 철수에게 안겨주었다. 그들의 심장은 세차게 뛰였고 마주보는 눈길은 뜨거웠다.

경애가 해주농업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원으로 농촌에 나가 활동하다가 고향에 와보니 철수가 제대되여 뜨락또르운전수를 하고있었다. 체격이 좋은 철수는 땅크병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경애가 철수를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겠는데 주저하게 되는것이였다. 읍정거장에 입대생들을 전송하러 나갔을 때에 처녀애들속에서 웃고 떠들어대던 철수를 보며 시샘이 나서 앵돌아졌다가 이내 옹친것이 풀리고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무엇이라 찍어 말할수 없는 심정의 강렬하고 짜릿한 충동을 느꼈댔는데 그후 그 일과 철수를 생각할적마다 얼굴이 뜨거워났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다니고 3대혁명소조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사귀고 많은 사건들에 부닥치고 처녀로 성숙하면서 중학교시절에 있었던 그 야릇한 심정을 돌이켜보며 철부지처럼 논것 같아 부끄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스스럼없이 철수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웃고 떠들며 과거를 추억하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철수를 만나 인사를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며칠간을 두고 주저하며 배치를 기다리고있는데 뜻밖에도 곽철수가 찾아왔다. 경애는 당황해하며 어색하게 맞이하는데 워낙 쾌활한 철수는 지나간 일은 다 잊은듯 유쾌하게 웃으면서 여간 반가와하지 않았다.

《야, 꼬마경애가 완전히 달라졌는걸!》하며 철수는 싱글거리였다.

《하긴 농업기사니까.》

《아이참! 철수동무는 여전하군요.》

《여전하지, 여전히 전주대지. 하하…》

《호호호…》

철수의 무랍없는 쾌활한 성미에 말려들어 경애도 어느덧 중학교시절의 동무로서 그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래 농산기사가 됐으니 키는 작아도 지식의 키는 굉장히 높아졌겠지.》 하고 철수는 경애를 부러워했다. 《배치를 받았어?》

《왜 그런지 시간이 걸리는군요.》

《좋은데 배치하느라 그러겠지. 아버지가 한다하는 기사장이 아니요.》

《글쎄…》

그런데 철수의 예언과는 달리 경애는 고향 잠정리가 아닌 이웃리에 농장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아버지 로정만이는 《내가 우에 제기한것이니 다른 의견을 내지 말아라. 농장원을 한 1년 하고 그다음에 작업반기술원을 하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너한테 달렸다.》 하고 엄하게 말했다.

《제가 같은 농장에 있으면 아버지가 딱한 경우에 부닥칠가봐 다른 농장에 보내나요?》

경애가 앞질러 물었다.

《그 정도로 리해해둬라.》

로정만이는 무슨 깊은 생각이 있는지 더 다른 말이 없었다. 하여 경애는 이웃농장 태평리의 농장원이 되였다. 다른 농장에 가서 합숙생활을 하며 일하니 생활에서는 좀 불편했으나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동무들도 늘 만나는것보다 드문드문 만나니 우정이 더 깊어지는것 같았다. 특히 철수와 자주 만나지 않으니 그가 더 보고싶어지는것이 좋았다.…

철수는 뜨락또르운전칸에서 머리를 내여민채 《왜 그러구 서있소? 어서 타라구.》 하며 손까지 내밀었다.

경애는 처음으로 억센 철수의 손에 이끌리여 뜨락또르에 올랐는데 그 순간 온몸이 짜릿해났다.

철수는 신이 나했다.

경애가 타자 뜨락또르가 덜컹 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둘은 차가 흔들거리는데 따라 같이 흔들리였다. 철수가 속도를 냈던것이다.

철수가 경애를 돌아보며 물었다.

《집에 가오?》

《예, 볼일이 있어서요.》

《뭐 그렇게 불편하게 다른 농장에 가있을게 있소? 잠정리에서 일하면 안되오?》

철수는 운전대도 돌릴래, 처녀를 돌아보기도 할래, 말도 할래, 몹시 분주스러웠으나 고운 경애를 옆구리에 태운것이 자못 즐거워 기름묻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글쎄 나도 잠정리에서 일하면 좋겠는데 배치를 태평에 했군요. 아버지가 그렇게 요구한것 같아요.》

퉁탕거리는 거친 발동소리속에서 경애의 맑은 목소리가 유별나게 울리였다.

《본인은 싫어했는데도?》

철수가 지꿎게 파고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의사를 따르는데 습관되여있어요. 그것이 도의가 아닐가요?》

《맹목적인 순종은 봉건이지요.》

경애는 호호 웃었다.

《왜 웃소. 허파에 바람이 찬것처럼?》

《너무 엄숙하고 요란한 표현을 써서!》

철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경애는 실지 고향마을이 아닌 다른 농장에 가서 일해보니까 나쁘지 않은것 같다는 자기의 견해를 말했다.

《글쎄 본인이 좋다면야. 우리 농장에 새소식이 있소.》

철수가 말머리를 돌렸다.

《뭔데요?》

《관리위원장이 부임되여 왔는데 젊은 녀성이요. 나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키가 늘씬하구 녀성간부답다구 하더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오.》

경애의 까만 눈이 반짝이였다. 잠정농장일로서는 중요한 소식이였고 농장기사장의 딸로서 아버지가 하는 일에 무관심할수 없는 경애로서도 그저 스쳐보낼수 없는 소식이였다.

《그러니까 능력있는 관리위원장을 파견했다는거겠지요?》 경애가 말했다. 《아버지가 기뻐하겠어요.》

《아마 그럴테지.》

뜨락또르는 한동안 어둠속을 들썽거리며 달리였다. 경애는 운전수를 곁눈질해 보았다. 철수는 얼굴빛이 철색이고 곱슬머리였다. 그 곱슬머리가 한줌되게 모자밑으로 삐여져나와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철수가 쾌활하고 허심하고 뒤가 없으며 운전기술이 높다고 평가하였지.

《하나 물을가요?》

경애가 상긋이 웃으며 말을 붙이였다.

《아, 어서!》

《군대에서 땅크를 몰다가 뜨락또르를 타니까 어때요?》

《이건 아이들 장난감이요.》

경애는 호호 웃었다. 그러고보니 뜨락또르는 그의 손에서 아이들 장난감처럼 조종되는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하나 물읍시다.》

《어서 물으세요.》

《경애동무는 태평농장에 뿌리를 내리자는게요?》

《어떤 의미에선가요?》

《대학을 나온 기사니까 인차 기술원이나 작업반장이 될건 뻔하구 그다음에는 우리 농장에 새로 온 녀성관리위원장처럼 되겠지.》

《아이, 내가 어떻게 관리위원장까지 쳐다보겠어요. 공부를 했으니까 기술원쯤 되겠지요. 나는 그거면 만족해요.》

《하― 리상과 포부가 지내 낮구만. 리상을 높이 가져야 하지 않을가?》

《철수동무의 리상은 높은가요?》

《나야 운전순데… 그렇지만 장차 대학공부를 하려고 하오.》

이것은 진심의 목소리였다. 그는 경애를 다시 만난 후에 새롭게 느껴지는바가 있었던것이다.

《그걸 1단계 목표로 하자요.》

경애가 제기했다.

《아, 그거면 되오. 자, 다 왔소.》

경애는 아수해하며 뜨락또르에서 뛰여내려 철수에게 잘 타고왔다는 인사를 했다.

철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슨 짐인지 실은 련결차를 단 뜨락또르를 앞으로 전진시키였다.

(성미가 아이때 그대루야.)

멀어져가는 뜨락또르를 눈으로 바래우며 경애는 방긋이 웃었다.

잠정마을의 농가들에서 불빛들이 흘러나오고있었다. 리소재지마을이여서 연구실이며 문화회관이며 관리위원회며 하는 덩지 큰 건물들과 2층짜리 문화주택들이 우뚝우뚝 서있었다.

날이 추워서인지 마을은 조용했다. 맑게 개인 검푸른 밤하늘에서 별들이 추운듯 떨며 반짝이고있는것처럼 보였다.

언제 보아도 정이 가는 고향의 모습이였다.

경애는 변모되는 고향과 함께 성장했다.

어린시절, 특히 소학교, 중학교시절에 강가에서 뛰여다니며 미역을 감고 잠자리를 잡느라 풀숲을 꿰지르고 등성이꼭대기에 있는 과수원에 사내애들과 같이 숨어들기도 했던 추억들이 엉켜있는 고향마을은 경애가 대학을 다니느라 몇년 나가있는 사이에도 마음속에 항시 간직되여있었다. 이웃농장에서 일하면서도 집에만 오면 어린애처럼 천진란만해지는 경애였다. 경애가 태여났던 고향의 그 집이 더잘 꾸려지고 울타리를 둘러쳤지만 마당에 서있는 대추나무만은 변함이 없었다. 변한것이 있다면 더 크고 가지들이 더 많이 뻗은것이였다. 그 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알수 없으나 경애가 태여났을적에 이미 싱싱하게 자라고있었고 경애와 함께 컸으며 그를 언제나 반기며 잎들을 흔들어대군 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반기며 애처로운 마음이 앞섰는지 얼굴을 쓸어주고 손을 만져보며 부산을 피웠다.

《난데없이 까치가 울어서 오늘 네가 올것만 같더니 정말 왔구나. 이 손이 거칠어진걸 봐라. 오늘 무슨 일을 했니?》

체소하고 늘 앓는 몸이지만 정열적이고 촉기가 빠른 어머니는 거의 파랗게 된 눈으로 딸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두엄을 실어냈어요.》

《이 추운 날에 쯔쯔쯔… 방안에서 하는 일이 있을텐데.》

《엄마두 참, 피가 끓는 청년인데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하는 일이나 하고있겠어요?》

《너는 몸이 약해.》

《난 단단해요.》

《장담말아라. 어서 들어가 옷을 갈아입어라. 배가 고프지? 너 먼저 밥을 먹겠니?》

《아버지가 들어오신 다음에 같이 먹지요.》

《네 아버지가 언제 들어오겠니?》

《관리위원장이 새로 왔다지요?》

《왔다더라. 그래서 아마도 아버지가 더 늦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상했던것보다 로정만이는 빨리 들어왔다. 그는 안해처럼 겉으로 수다스럽게 자기의 감정을 쏟아놓지 않는 성미였지만 속으로는 안해보다 더 외동딸을 사랑했다. 딸의 인사에 《음, 왔니?》 하고 간단히 대답했지만 눈빛은 부드러워지고 속이 후끈해났다. 그는 딸이 곱게 생긴데다 차분하고 인사성밝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품을 타고난것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아들은 군대 갔다와서 대학을 나오고 평양에서 대외부문에서 일하고있다. 멀리 떨어져있는데다 자주 외국에 출장을 다녀 한해에 한두번정도 부모들을 만나보러 내려오니 정까지 멀어져갔다. 그래 데리고있는 딸애한테 애정을 다 기울이고있다. 경애를 시집보내도 사위를 맞아들여 같이 살고싶었다. 정말이지 그는 딸을 품에서 놓아보내고싶지 않았다. 그러자면 경애는 이 농촌에 정착해야 한다. 그런데 안해가 그것을 결사반대하고있다.

로정만은 딸의 장래와 그리고 그것과 결부되지 않을수 없는 자기들 부부의 장래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이미 타산하고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안해에게조차 그것을 입밖에 내여 말하지 않았다.

로정만은 집에 들어와서는 안해한테 꼼짝 못했다. 잘 생기고 사업적권위가 있고 점잖으며 사람들앞에서 대단히 위신있게 처신하는 엄격한 그가 자그마하고 늘 앓아가지고있는 안해한테 쥐여산다는것은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이웃농장에 배치받은 딸의 장래문제를 놓고도 그는 안해로부터 계속 성화를 받고있었다.

안해가 그에게 왜 경애를 남들처럼 의학대학이나 사범대학에 보내지 않았는가고 그것부터 잘못하였다고 공세를 들이대고있는데 사실 그는 농장기사장으로서 당시의 정황에서는 농업대학에 보내는것이 옳았다고 간주하고있었다.

로정만은 딸이 나타난것을 보고 안해가 또 딸문제를 가지고 앙탈을 부리지 않겠는지 은근히 겁이 났다. 새 관리위원장의 집을 한창 꾸릴 때 안해는 《제 딸의 장래문제를 가지고 좀 열성을 내면 안돼요? 새로 오는 관리위원장이 젊은 녀자라는데, 흥!》 하고 강짜를 부리기까지 했다. 이런 강짜는 그저 스쳐보내며 웃어넘기면 되는것이여서 로정만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셋이 저녁밥을 먹으려고 두리반상에 둘러앉았다.

《경애도 왔는데 술을 좀 내놓지.》

로정만은 안해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안해로부터 술마시는것을 통제받고있었다. 안해는 집에서 술병을 잘 꺼내지 않았을뿐아니라 남편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것도 몹시 싫어하였다. 그 리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기사장인 남편이 술을 마시고 실수할가봐 걱정하는것이였고 술을 자주 마시다가 건강을 보존하지 못할가봐 두려워하는것이였다. 그가 남편을 꼼짝 못하게 가정적으로 통제하는것은 실은 그를 아끼고 사랑하기때문이였다. 그것이 나이가 들면서 도수가 넘어 걱정이 잔소리로, 잔소리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번져갔다. 로정만은 안해가 푸념을 늘어놓을 때마다 울적해지고 진저리가 났으나 안해의 본심을 알고있기때문에 잠자코 있는것이였다.

안해가 잠간 생각하더니 술병을 가져왔다. 경애가 술잔에 술을 부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술을 달게 마시는것을 보고 상긋이 웃으며 물었다.

《새로 온 관리위원장과 비서동지랑 같이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것 같구만요, 아버지?》

《점심에 같이 했다.》

아버지의 대답이였다.

《이야기를 해보았겠지요?》

《낮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좀… 첫날이여서 그런지 어려워하는것 같더라.》

《아버지는 사람을 대상할 때 부드럽지 못해요. 그러니까 어려워하지요.》

어머니가 끼여들었다.

《야, 간부가 좀 엄해야지. 네 아버지가 엄하니까 사람들이 어려워하면서도 따른다.》

이럴 때 보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단히 존중하는것 같다. 하긴 어머니가 집에서 아버지를 틀어쥐고 통제한다 해도 어쨌든 안해이며 그것도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에 의존하는 안해인것이다.

《관리위원장이 어때요?》

경애가 물었다.

《글쎄 사람이란 같이 일하며 지내봐야 알수 있는데 나는 기대가 간다.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구 씨원씨원하더라.》

로정만은 이렇게 대답했는데 사실 그는 허명숙이 관리위원장으로서 마음에 들고 기대가 갔는데 래년도 국가알곡생산계획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궁금했다. 도당책임비서가 올해에는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새 관리위원장도 왔으니 합심해서 알곡생산을 더 늘여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판에 군에서 떨군 올해계획이 현실성이 없다고 의견을 냈던 로정만이도 다른 소리를 할수 없었는데 방금 도착한 허명숙이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짐작은 갔다. 그렇더라도 로정만은 올해계획을 놓고 허명숙관리위원장과 진지하게 토론해보고 군에 다시 제기해보려 했다. 그는 계획을 낮추어 받으려는 끈질긴 속심을 버리지 않고있었다.

로정만이가 올해계획이 지내 높으니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불시에 더 강경하게 주장하게 된데는 리유가 있었다. 새 관리위원장이 왔으니 올해는 군경영위원회로 올라가기가 틀렸다. 래년으로 미룰수밖에 없으며 실지 미루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실정에서 올해에 잠정리가 계획을 실행 못하면 군에서는 로정만이를 한해 더 기사장으로 일하여 기어이 새 관리위원장이 완전히 자립성을 갖추게 될 때까지 소환해가려 하지 않을것이다.… 아니다. 올해에 어떻게 하든 계획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자니까 계획지표를 안전하게 낮추 받아야 하는것이다.

이것은 그의 속깊이에 감추어진 타산이였다. 다시말하여 그의 몸은 아직 잠정리에 있지만 정신은 벌써 읍에 가있었다. 여기에는 그가 속에 깊이 간직하고있는 다른 계획적인 타산도 함께 작용하고있었다. 그것은 딸 경애문제였다. 딸의 장래에 관심이 없다는 안해의 앙탈질에 침묵으로 대하는 리유가 있었다. 군에 소환되면 자연히 딸을 달고 올라가 군읍기관에 넣으려는것이 그의 감추어진 속심이였다. 딸을 쉽게 데리고 가자면 딸이 다른 농장에 가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경애를 태평리에 보냈다. 이런 깊은 속심을 모르고 늘 앵앵대는 안해가 딱했으나 끝까지 입을 다물고있어야 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