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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47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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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29 08:47 조회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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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47 회)

17 장

미륙군사에서 《지까마우가의 바위》로 불리우던 19련대는 7월 15일 밤 자기의 영예와 명성을 일조에 말아먹는 비참한 패전의 목조르기를 당했다. 미군사학교의 전술강좌에서 방어의 모범으로 칭송되던 이 련대의 파멸은 이미 13일에 마련되였으나 띤자신이나 련대장 멜로이대좌는 공주의 34련대가 인민군54사에 격파되는 그 시각까지 그런 비극적결말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34련대의 패퇴에 어지간히 당황하기도 한 띤이였지만 오랜 군인의 경력을 가진 그는 결코 락심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대위시절이 흘러간 련대란것으로 더욱 총애하는 이 《바위련대》에 대해서만은 굳은 믿음을 가졌다. 련대장 멜로이는 물론 련대병사들의 기세도 그러하였다. 34련대의 실패에 《대아메리카의 신성이 모독되였다》고 격분한 장병들은 아시아의 군대에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리라고 투지를 가다듬었다. 포병대와 땅크가 배속된 19련대의 화력은 인민군53사의 모든 화력에 비해서도 훨씬 우세하였다. 띤과 멜로이대좌는 14일에 있은 인민군의 묘하면서도 신속무쌍한 도하전술에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띤은 인민군53사의 주간도하를 막기 위하여 새벽부터 비행대를 호출하여 금강우안을 폭탄과 기총탄으로 봉쇄하였다. 그리고 모든 포와 땅크들을 강안가까이 진출시켜 움직이는 일체 목표를 소멸하게 하였다. 그러나 비행대의 맹폭속에서도 옛말에 나오는 불사신마냥 포를 끌고나온 인민군포병대와의 반포투쟁에서 19련대의 화력진지들이 여지없이 격파되였다. 다행히도 강과 기슭을 폭탄과 포탄으로 종일 불태운 덕에 인민군은 주간도하를 강행하지 않았다. 띤과 멜로이는 비록 손실은 컸으나 이것을 자기들의 성공으로 보았다.

황혼녘, 띤이 커피와 햄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치르고 오끼나와의 5공군 부사령관과 야간비행대 파견문제를 전화로 이야기할 때 인민군53사의 도하가 시작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멜로이대좌와 전화를 바꾸자 멜로이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각하… 종잡을수 없는 진출입니다. 하나가 아니라 무려 세개방향입니다. 정면과 좌우량익에서 파도식으로 밀려듭니다. 병력은 련대인지 사단인지 가늠할수 없습니다. 증원이 요구됩니다. 증원이-》

그로부터 반시간후에 멜로이대좌와의 전화는 끊어졌다. 띤은 새벽까지 전화통에 마주앉아 모든 련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괴로운 밤을 보내였다. 새벽에 한쪽다리를 부상당한 멜로이가 련대의 절반을 잃은채 띤사령부로 찾아왔다. 멜로이는 《각하!》 이 한마디 말을 뇌이고는 기절하여 쓰러졌다. 19련대는 평촌리와 발산리에서 각개 포위되여 괴멸되고말았던것이다.

전선사령관 김책은 53사 7련대의 마지막 구분대가 강물에 들어서는것을 보며 도하장을 떠났다. 대안의 태평리쪽에서는 적의 마지막지탱점을 때리는 아군의 함성과 총성이 요란스레 울렸다. 그는 의자등받이에 기댄채 다리를 쭉 폈다. 련 사흘을 꼬박 밝히다싶이한 그는 다음번의 작전을 위해서도 자야 한다고 생각한것이였다. 그러나 앉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굳잠이 들것 같던 애당초의 피곤과는 관계없이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꾹 감았으나 하루낮 하루저녁 꼬박 지켜본 도하전투의 매 장면들이 지꿎게 살아올랐으며 웅웅하는 고막속에는 열띤 부르짖음과 포성이 울려왔다.

53사도 54사의 경우처럼 아침부터 도하를 시도하였다. 직사포들이 적의 면전에서 대안의 백사장으로 《포복전진》하였다. 적은 모든 화점과 포진지들을 드러내고 맹렬한 조애사격을 퍼부어댔다. 로출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적아간의 반포투쟁은 용감성과 의지의 격투였다. 적은 비행대까지 동원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실패했다. 아군 포수들은 백사장을 붉은 피로 물들이면서 적의 화점과 포진지들을 하나하나 격파해버렸다. 그 성과를 리용해 어두울무렵 53사의 두개련대가 강물에 뛰여들었을 때 적의 화력은 거의 봉쇄되여있었다.

째듯한 해빛, 번쩍이는 섬광, 모래기둥, 휘몰아치는 폭연… 옷들을 벗어붙이고 포탄을 장진하는 포수의 이지러진 얼굴… 선히 밟혀오는 모습을 방불히 보며 김책은 다시금 전투의 가장 치렬한 순간에 체험한 아슬아슬한 긴장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몸을 뒤척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잠속에서도 여전히 타래쳐오르는 포연과 전사들의 타는듯한 눈과 얼굴을 보았다. 다음 놀라웁게도 최현을 보았다. 대안을 향해 불을 뿜던 직사포가 입을 다물자 포판뒤에서 량손에 수류탄을 쥐고 일어난 군인은 최현이였다. 40년도인가 소부대공작을 마치고 돌아온 최현이 위장수염을 그대로 기른채 장군님을 모시고 사진찍었을 때의 그 모습이였다. 입수염의 오리오리가 일어서고 볼과 이마에 피가 흘렀다. 그는 맞은편 대안의 적의 포진지와 화점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그를 향해 수많은 적의 총구가 어릿거리는것이 보였다.

《최현동무, 어델 가오? 위험하오. 서시오!》

김책이 소리쳤으나 최현은 그때마다 무거운 눈길로 돌아보고는 그대로 적진을 향해 엄숙히 걸어갔다. 그러자 그를 겨누고있던 포구와 총구들에서 무수한 불찌가 번쩍였다. 최현은 불길속에 말려 사라졌다.

《최현동무!》

김책은 가슴이 터져나가는듯하여 손을 허우적이다가 깨니 꿈이였다. 김책은 이마를 쓸었다. 축축한 땀이 내돋았다. 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생동한 현실처럼 여겨졌고 깊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는 이미 53사의 도하주력이 강물에 뛰여들고 (이젠 먹었구나.) 하고 안도의 기쁨을 느끼던 순간부터 52사문제를 생각하였다.

53사와 54사의 금강도하가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던 엊그제만도 김책에게서 52사문제는 지금처럼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53사와 54사가 대전의 대문손잡이를 잡게 된 이 시각 52사의 위치와 역할을 새삼스럽게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차가 한강다리를 지나 서울시내에 들어설 때까지 그는 52사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심을 얻지 못했다. 다만 한가지 명백한것은 대전포위작전의 시간과 규모는 52사의 행동여부에 많이 달렸다는것이였다.

차가 계동쪽의 키낮은 집들사이를 빠져나가는데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렸다. 김책은 총소리가 나는쪽으로 차를 몰게 했다. 뒤골목 못미쳐서 군인들이 길을 차단하고있었다. 그 길옆에 우뚝하게 솟은 기와집을 둘러싸고 전지불들이 껌벅거렸다. 김책의 부관이 달려갔다와서 대여섯명의 패잔병이 한 민가에 도적질을 하려 뛰여들었다가 순찰하던 군인들에게 발견당하고 한명의 사상자를 남긴채 도주했음을 보고했다.

《별거 아니구 이런걸 훔치려 뛰여들었답니다.》

부관은 손에 들고온 그림족자를 보였다.

김책은 전지불로 글자를 비쳐보았다. 투명지를 덧씌운 화판에 어렴풋하게 새겨진 화가의 이름을 본 그는 저으기 놀랐다.

《이게 신사임당의 그림이 아닌가. 어느 집이요?》

《저 집입니다.》

부관은 전지불이 벙끗거리며 돌아가는 기와집 한채를 가리켰다.

《상한 사람들은 없다오?》

《빈집이랍니다. 집주인은 6. 28때 남으로 도망쳤답니다. 성송암이라고 이름있는 학자랍니다.》

《성송암?!…》

언젠가 김일성동지의 집무실에서 이 비슷한 이름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 떠올랐으나 도주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잡쳐 더 더듬지 않았다.

《그런데 죽은자의 몸에서 이런 요란스런 증명서가 나왔습니다.》

부관이 무궁화각인이 찍힌 가죽빠스포르트를 꺼내 내밀었다. 김책은 잠시 그것을 뒤적여보다가 부관에게 도로 주었다.

《이 증명서는 정찰국동무들에게 넘겨주오.》

증명서의 소지자는 리승만경호대 장교 백정식이였다. 차가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 거적때기로 가려놓은 패잔병의 시체가 언뜻 눈에 띄였으나 김책은 중앙청에 가닿기전에 이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중앙청에 이른 김책은 먼저 작전직일관실에 들렸다. 그를 맞은 작전부국장은 반시간전까지 강건총참모장도 함께 기다렸음을 알렸다.

《52사문제때문이였습니다. 전투보고서가 올라왔는데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작전부국장은 52사앞에 조성된 정황과 그들이 치르고있는 가렬처절한 전투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강건의 지도밑에 열린 작전협의회에서도 52사문제를 가지고 진지한 토론을 벌렸으나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그동안에 무슨 좋은 변화라도 있지 않았을가 하고 일루의 기대를 품었던 김책은 무거운 걸음으로 2층의 자기 방에 올라왔다. 한발 앞서 올라와있던 부관이 문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강건참모장동지가 방에서 쉽니다. 전선사령관동지가 도착하시는 즉시 깨워달라는 쪽지를 써놓고 잠들었습니다. 깨우겠습니다.》

《둬두오.》

방안은 불이 환히 켜진채로였다. 강건은 구석에 있는 침대에서가 아니라 작전탁앞 쏘파에서 불편스레 다리를 꼬부린채 자고있었다. 볼편은 우무러들고 턱은 더 뾰족해지였다. 먹즙을 친듯 곧고 진한 눈섭만이 패기로운 강건의 원래모습을 나타내고있었다.

김책은 시계를 보고 (3시반이였다.) 소리없이 전등스위치를 눌러껐다. 삽시에 방안이 캄캄해지였다. 김책은 책상앞의 의자에 가앉았다. 지금 상태에서 잠을 자기는 애당초 글렀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52사의 처지와 전망에 대하여 조금도 락관을 못가지던 작전부국장의 불안스러운 표정을 그려보며 라이타를 꺼내 불을 켰다. 왁살스럽게 크고 투박스러운 라이타는 (해방직후 청진제강소 로동자에게서 기념으로 받은것이였다.) 왕붓같은 불초리를 솟구쳤다. 김책이 담배불을 붙여 둬모금 빨았을 때였다. 강건이 자던사람 같지 않게 일어섰다.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김책은 그가 라이타를 켜는 서슬에 깨여났음을 알고 민망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신경이 예민해서야 몸이 견디겠소.… 지금 오는 길이요. 이야긴 이따 하기로 하고 좀 쉬기요. 작전부국장동무한테서 대충 들었소.》

김책은 다리를 길게 뻗치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그러나 강건은 앉지 않았다.

《사령관동지.》

강건은 근심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 사령관동지를 두번씩이나 찾으셨습니다.》

《알고있소.》

김책은 53사지휘부에까지 자기의 소재를 문의해왔댔음을 상기하며 필시 중요한 다른 문제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전선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소?》

《52사가 처한 형편에 대하여 물으셨습니다. 저희가 신통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음을 보고드리자 장군님께서는 알겠다고… 정말 어려운 장벽에 부딪쳤다고 하시며 최춘국의 62사가 어데까지 나갔는가를 물으시고 그들의 속도를 보다 높이게 하라고 하시였습니다. 최현동무하고 상시적인 련계를 취하라는 지시를 주시고 전화를 끊으시였습니다.》

《최현동무와는 언제 련계를 맺어봤소?》

《저녁 열시경입니다.》

《그 동문 무엇이라고 하오?》

《걸찍하게 말하더군요. 깍두기판이라고 도처에 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배포는 놀랍습니다. 걱정말라는것이지요. 이제 중대, 대대급으로 적진에 구멍을 뚫은 다음 벼락같이 나간다는것이지요.》

《허허 참, 그래 그 52사때문에 장군님께서까지 속을 태우신다는것을 말해줬소?》

《그런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모르는게 낫지. 그 성미에 알았다간 견디겠소? 그 동무네 보고서를 보기오.》

강건은 빼람에서 보고서를 꺼내였다. 보고서는 매 글줄마다에 밑줄이 그어져있었다. 강건의 솜씨였다. 김책은 자동차경적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바깥 철문쪽으로 군용찦차 한대가 들어서는것을 무심히 보던 그는 결심어린 태도로 입을 열었다.

《강건동무, 53사의 제2제대인 9련대를 52사에 돌려야겠소. 피반령극복전투에 지원시키자는것이요.》

9련대는 대전을 동북방으로 압축하게 된 부대였다. 김책은 금강도하장에 나가 53사의 승리적전투진행을 보지 못했으면 이런 결심을 채택하지 못했을것이였다.

《53사는 9련대 참가없이도 도하를 해내지 않았소. 그들은 두개 련대의 공격으로도 적을 압축할수 있다고 보오. 그들이 작전계획계선에 다 간 상태에서 52사가 피반령을 넘지 못하면 대전포위를 못하는것으로 되지 않소.》

《그런데 문제는 9련대 하나로 피반령이 해결될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털고 앉아 무작정 최현동무한테만 강다짐 할순 없지 않소. 현재 도하할수 없는 자동차들과 로획품차들까지 동원시키면 한시간내로 피반령에 뽑을수 있소. 대전동북방이 미타하면 그런식으로 돌려세우면 되는것이고-》

강건은 그의 초조한 기색을 보다가 벽에 걸린 작전지도에 다가가 9련대의 기발표식을 뽑아들고 피반령에 옮겨놓았다. 대전동북방 압축이 잘 안되는 경우 한두시간이면 이 련대를 돌려세울수 있다는 김책의 마지막 말이 그를 움직여놓았던것이다.

김책은 강건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문기척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느때없이 바삐 열리는 문가에 김책의 부관이 나타났다. 그뒤에 선 사람을 보았을 때 김책은 흠칫하며 두눈을 크게 떴다.

김책은 자기가 며칠밤을 새운탓에 무슨 환각상태에 이르지 않았는가 생각하였다. 자기의 부관옆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책임부관이 서있지 않는가.

《전선사령관동지, 안녕하십니까?》

《아니, 이게 강부관이 아니요?》

《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

김책은 온몸이 돌처럼 굳어져 한동안 강부관을 물끄러미 보기만 하였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숨까지 다 멎어버리는것 같았다.

《여기에?! 여기가 어디라고…》

말이 목구멍에 걸려 채 나가지 않았다. 방금전 계동쪽에서 목격한 패잔병과의 소전투가 상기되였다. 그의 얼굴은 희게도 검게도 변했다.

《동문!》

김책은 터져나오는 웨침을 가까스로 삼키고 무엇에 떠밀친 사람처럼 뛰다싶이 걸어나갔다.

《장군님께서는 작전직일관실에 들리셨습니다.》

김책은 강부관의 말을 먼 꿈결처럼 들으며 화당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채 문을 떠밀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계단을 올라 복도로 걸어오고계셨다. 평범한 군복차림이시였다. 모자를 왼손에 말아쥐고 얼굴에는 함뿍 웃음을 담으셨다. 김책은 몸을 떨었다.

《장군님!》

《김책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어깨를 껴안으셨다. 김책은 짜릿한 기쁨속에 가슴이 억해졌다.

그이의 눅눅히 습기찬 군복에서는 향긋한 풀내와 휘발유냄새가 엇섞여 풍겼다. 김책은 자신을 다잡고 한걸음 물러섰다. 첫눈에 띄인것이 흙탕에 버무려진 장군님의 장화였다. 바지가랭이에는 풀잎들이 달라붙어있었다.

《새신랑차림이 아니니 너무 보지 마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였다. 김책의 얼굴은 대번에 흐려지고 눈시울이 불깃해졌다.

《장군님, 여길!…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책은 입술을 떨었다.

《동무를 비판하자고 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치시였다.

《전선사령관이 <사단장>으로 내려가니 이 최고사령관이 동무자리에 와있어야 할것 아닙니까.》

김책은 가슴이 찡- 저려들었다.

(나때문에, 나때문에 오셨구나. 내가 걱정돼서.)

김책은 고개를 쳐들수 없었다.

《자 주인이 이러고있으면 어쩝니까. 방구경을 시켜야지요.》

김책의 손목을 꼭 잡으신 그이께서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시였다. 방안홀에 들어서시여 작전탁의 지도며 벽에 걸린 따발총, (우리 나라 첫 제품이 나왔을 때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김책에게 선물하신 총이였다.) 비옷과 배낭을 살피시는 그이의 눈길에는 따뜻한 미소가 피여흐르셨다.

《저건 무슨 그림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철함우에 세워둔 그림을 보고 물으시였다.

《신사임당의 그림입니다.》

《신사임당?!… 진품입니까?》

《그런것 같습니다.》

김책은 무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랜 세월의 풍우에 씻긴듯 색이 바랜 그림을 한동안 여겨보시였다. 달밤의 산수를 그린 그림에서는 섬세하고도 은근한 화법과 함께 아늑한 정취가 안겨왔다.

《동무들이 이런 그림을 볼 여유를 가지고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이께서는 밝은 웃음을 짓고 김책을 돌아보시였다. 김책은 낯이 뜨거워졌다.

《저… 그런게 아니라 저 그림은 방금 도적놈들한테서 빼앗아온것입니다.》

김책은 계동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그 집에 경비대책을 세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투명지를 덧씌운 그림족자를 매만져보며 물으시였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분명 성송암의 집이라고 했지요?》

《네, 홍명희선생이 일전에 말하던 그 학자같습니다.》

《그가 저런 그림까지 남기고 떠났다는것이 참 슬픈 일입니다. 그 로인은 골동품과 유물수집가라는데 저 유명한 녀류화가 그림까지 두고간것으로 봐서 아직 다른것도 더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줍시다. 허허, 그 로인이 끝내 떠났군.》

김일성동지께서는 저으기 서운한 안색이시였다. 김책은 그이께서 옷걸이걸개에 모자를 벗어 거는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자신에 대한 종잡을수 없는 불만에 시달렸다. 응당 성송암의 집에 대하여 더 알아보아야 했으며 경비대책도 사전에 세웠어야 할것이였다. 그리고 성송암의 도주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렸어야 했다. 이 모든 실수는 자기가 평소의 침착성과 여유를 잃어버렸기때문에 빚어진것이고 바로 이런데서부터 김일성동지께서 이 서울까지 나오셨으리라는 직감이 그를 괴롭혔다.

《도하전투가 굉장했다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두운 얼굴색의 김책을 눈여겨보시며 탁 트인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김책은 더 참을수 없었다.

《장군님, 제가 그만 금강에만 치우쳐있었습니다. 그건… 신심이 두텁지 못한탓입니다. 그러나 그때문에 여기까지 오신것은- 찬성할수 없습니다.》

《김책동무, 그러지 마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색하시고 김책을 보다가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동무처럼 생각한다면 나 역시 믿음이 부족해 온것으로 되는데 까놓고말해서 동무들이 보고싶었고 또 서울구경도 하고싶었소. 하긴 대전문제가 나를 잡아끈것만은 사실이지만… 자, 그러지 말고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좀 웃어들보기요.》

김책은 입술을 꽉 다물고 완강한 자세로 서있었다. 자꾸만 울음이 북받쳐올라왔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얼굴로부터 강건의 손에 쥐여있는 9련대표식기를 보시고 가림막이 열린채 있는 작전지도에 눈길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그 작전지도앞에 이르러 뒤짐을 진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서시였다.

《동무들이 지금까지 자지들 않고있는데 그래 무슨 문제를 토론했습니까?》

《52사문제때문입니다.》

강건이 솔직히 말씀드렸다.

《52사?… 그 피반령이 문제긴 문젭니다. 그래 어떤 전진을 보았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았으나 눈빛이 퍼그나 심중해지시였다.

《신통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있습니다. 막부득한 수로 53사 9련대를 52사전투지역에 인입시킬가 생각하고있습니다.》

《김만익동무련대 말이지요?》

《네.》

《언제 채택한 결심입니까?》

《오늘 도하장에서 얻은 생각입니다.》

《도하장에서?!》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척 대견하신 빛이였다.

《그런데 그에 대해 최현동무는 뭐라고 합니까?》

《아직 명령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최현동무는 사단단독으로 돌파할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상태에서는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없단말이지요?》

《네. 그들이 괴뢰 6사와 수도사단과 맞서 진천으로부터 청주계선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앞에 막아나선것은 세개사단이고 그들이 가야 될 옥천까지의 사이는 지형도 더 험한데다가 적은 완전한 종심방어를 꾸려놓고있습니다.》

《그런데도 최현동무는 간다고 한단말이지요…》

《그 동문 결사적인 첨입전투를 준비하고있습니다. 한개의 습격조는 자기가 직접 인솔하려고 한답니다.》

《그것이 사실이요?》

《네, 전화에서도 그걸 느꼈고 련락군관의 보고에서도 확인되였습니다.》

강건이 김책을 대신해서 보고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을 흐리셨다. 그이께서는 훤히 밝아오는 창문가를 바라보시였다.

《그는 꼭 그렇게 하고야말거요. 아마 몇명의 결사조를 무어서라도 끌고 나가겠지. 죽어서라도 명령된 지점에 가있을것이요. 그는 원래 그렇게 찍어진 사람이요.》

사랑과 그리움에 타는 그 말씀에 김책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최현동무가 보고싶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문가로 다가서시여 문을 활 열어제치시였다.

훤히 들린 하늘아래 우유빛 안개가 자욱히 서려있었다.

김책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5분전 다섯시였다.

《장군님 9련대 파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꼭 보내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심리를 한눈에 꿰뚫듯 예지에 빛나는 눈길로 돌아보시였다.

김책은 김일성동지께서 9련대 파견에 별로 의의를 부여하지 않고있음을 알았다.

《장군님, 현재대로 두면 52사는 역포위의 위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물론 한개 련대의 지원으로 다 해결되는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수가 없다면… 역시 그 수가 나은거지요. 그렇게 합시다.》

이때 문기척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며 김책의 부관이 취사원을 앞세우고 들어섰다. 강건이 들어오지 말라고 손을 저었으나 때는 늦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돌아보시였던것이다. 다반에 통졸임과 깡통맥주를 안고 들어온 몸집이 강건이와 김책을 합쳐놓은만큼 우람한 취사원은 《장군님!》 하고 굽석 절을 하는데 너무 기뻐 덤벼치는통에 통맥주가 하나 주단우에 굴러떨어졌다.

김책은 엄한 눈길로 강건을 보았고 강건은 얼굴이 빨개져 김일성동지의 눈치를 살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쩔바를 몰라하는 취사원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받으셨다.

《마침 잘됐소. 그러지 않아도 출출하다 했는데 굉장하구만.》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취사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장군님, 여긴 없는것이 없습니다.》

장군님을 여기서 만나뵈옵고 치하까지 받아 훌 뜬 취사원은 원탁우에 통졸임을 놓으며 염량좋게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취사원을 보시다가 강부관을 부르시였다.

《거… 우리거 가져오우.》

좀있어 강부관은 커다란 벼짚망태기를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는 노랗게 잘 익은 참외가 가득 담겨있었다.

《장군님, 그 먼데서 참외까지… 참왼 여기도 많습니다.》

취사원은 너무 황송하여 손까지 씩씩 비비며 《아야, 향기가 보통 아닙니다.》 하고 벙글거렸다.

《동무네 차린것보단 못하겠지만 우리 만경대할아버지가 가꾼거요. 김책동무, 오시오. 강건동무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제일 잘 익은 참외를 고르시려는듯 벼짚망태기아구리를 벌리고 내려다보시였다.

취사원은 얼어붙은듯 굳어있었고 김책은 《올 과일이 어떻습니까?》 하고 태연한 빛을 띄였고 강건은 젖어든 눈길로 김일성동지를 넋없이 우러러보았다.

《태풍때문에 좀 해를 보긴 했지만 과일도 그렇고 곡식작황도 괜찮다고 하오. 바쁜 구실로 나가보지는 못했소만… 》

이렇게 허두를 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치위원회와 내각회의에서 토론된 문제들로부터 김책과 강건의 가족들 안부까지 말씀하신후 화제를 전선문제에 돌리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상우에 널린 참외씨를 하나하나 모아놓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김책에게는 그 모아놓은 참외씨들이 피반령방어계선처럼 보였다. 멀리서 닭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왔다.

《장군님, 좀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중한 새벽을 눈붙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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