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여름 43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 조선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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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43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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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25 17:06 조회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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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43 회)

16 장

괴뢰 6사를 격파하고 안성을 거쳐 진천에 돌입한 최현장령의 52사는 문암산, 소을산 계선에서 예상치 않은 적의 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새로 편성된 괴뢰 수도사단이 막아나섰던것이다.

7월 5일 적은 륙본명령 2호로써 괴뢰 1군단 조직을 선포하고 거기에 수도사단, l보사, 2보사, 5보사, 7보사 다섯개 사단을 세개 사단으로 재편성하여 밀어넣었다. 괴뢰수도사단은 일본군과 만주군출신들, 《서북청년단》과 《족청》깡패들, 북조선에서 땅과 공장을 빼앗기고 도주한자들로 구성된 1군단의 기동사단으로서 괴뢰군의 원로로 자처하는 김석원이 지휘하였다. 김석원은 송악산, 은파산 침공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때까지 예비역으로 물러나있었다. 그는 군부내에서 자기의 경쟁적수였던 채병덕이 패전의 모든 책임을 지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나는 때에 사단장의 군직을 접수한것으로 매우 비장한 각오와 기분을 체험하고있었다.

더구나 맞다든 상대가 자기의 운명에 두번씩이나 심한 파곡선을 그어준 최현장령임을 알고 이를 갈았다. 1937년도에는 간삼봉에서, 1949년에는 송악산과 은파산에서 최현과의 싸움에서 매번 만신창을 당하고 패전지장이 되였던것이다.

일선대대의 전호에까지 나타난 그는 행리속에 간직한 일본도를 뽑아들고 전투지휘에 나섰다. 그의 이런 희비극적인 만용을 만류하는 미군고문관앞에서 김석원은 열이 나 말했다.

《사이껭(최현)은 나의 구적이요. 이번까지 패전하면 나는 살아돌아가지 않을테요!》

문암산방어진이 허물어지자 그는 1련대를 데리고 직접 탈환전투에 나섰다. 후퇴하는자는 장교이건 사병이건 무조건 총살하였다. 7월 10일 하루동안에만도 세명이나 쏴죽이면서 11차례의 반돌격을 벌렸다. 한번은 문암산의 봉화대에까지 접근하기도 하였다. 미고문관들은 이 아시아인의 조폭하고 완강한 기질에 혀를 둘렀으며 맥아더는 괴뢰수도사단의 《맹전》에 대하여 격려의 무전문까지 날려보냈다. 이 전쟁이 일어나 미군은 물론 괴뢰군들에게 있어서 하루낮 하루밤을 전투로 밝히면서 반돌격까지 한례는 없었던때문이였다.

그러나 이 《무사도식》반돌격은 사단유생력량의 삼분지 일을 까마귀의 제밥으로 만드는것으로 끝나고말았다. 최현장령이 은밀히 기동시킨 한개 련대의 우회기습으로 김석원의 사단은 여지없이 붕괴되였다.

패주하는 괴뢰수도사단을 다쫓아 추격전을 들이댄 최현장령의 52사는 청주북쪽의 미호천계선에서 또다시 방어를 꾀하는 괴뢰군 한개 련대를 단숨에 무찌르고 7월 13일 충청북도 도소재지인 청주를 해방하였다. 그런데 사단은 차후공격을 위한 출발진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교외남쪽으로 진출하던 로정에서 이제껏 당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포사격에 맞다들었다.

그때 최현은 사단지휘부로 정한 도청건물의 안방에서 참모장이 작성한 전투보고서를 읽고있었다.

첫 폭발의 진동에 열어놓았던 창문이 요란스레 닫기며 유리창이 박산이 나 널마루에 쏟아져내렸다.

《6련대쪽입니다.》

사단참모장이 낯색이 확 변하여 소리쳤다. 마치 그의 말을 증명이나 하는듯 6련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련대의 선두공격구분대들이 대구경곡사포화력권에 들었다는것이였다. 최현이 그 사격권에서 벗어나라는 지시를 내리고 송수화기를 놓자마자 따르릉 하고 또다시 전화기가 울어댔다. 4련대에서 오는것이였다.

《30번 보고합니다. 련대공격전방에 두개 대대가 새로 나타났습니다. 적의 참호계선까지는 인발지뢰와 반땅크지뢰원으로 되여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강력한 포병대대들과 두개 련대의 적과 대치한셈입니다.》

정찰에 없던 새로운 정황에 최현은 아래입술에 이발을 박은채 17련대를 찾았다. 17련대 형편도 방금 전화한 4련대나 다름없었다. 거기엔 한개 공격대대의 전방에만도 열다섯개의 토목화점이 막아나섰다고 했다. 그런데다가 한개 중대가 나가는 말구령협곡같은데로는 두개 대대의 력량으로 반돌격까지 해온다는것였다.

《11번동지, 사단포나 싸마호트(자동포)의 지원없이는 공격이 거의 불가능할것 같습니다.》

《이보 련대장, 동무넨 왜 그모양이요? 6련대나 4련대는 동무네보다 곱절 어려운데도 끄덕않고있소. 그러지 말고 참을인자 세개를 새기오. 세개를! 알았소. 그러면 듣소. 이제부터 전면공격을 당장 중단하고 차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대별 구간에서 전투정찰을 하시오.》

전화를 끊고난 최현은 다시 전투보고서를 펼쳤으나 별반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6련대전방에서 울리는 포소리는 계속 높아만갔다. 최현의 머리에는 불길한 예감이 시퍼런 빛줄기처럼 지나갔다. 좀전에 받은 피반령계선에 나간 사단정찰조로부터 보내온 보고가 사실이라는데 주의가 미쳤다. 그는 옷주머니에 구겨넣었던 그 무선수신지를 꺼내 펼쳤다.

《사단장동지 앞.

피반령은 괴뢰1군단의 수도사단을 중심으로 좌익은 1보사 13련대 우익은 2보사, l사 11련대와 12련대는 보은계선에 예비대로 있음. 적은 종장방어체계형성… 미25사의 장비기재로 된 대구경곡사포 두개 대대가 좌표 15, 20 독립바위릉선에 배치…》

최현은 책상가녁에 놓아두었던 모자를 푹 눌러쓰며 일어섰다.

《참모장동무, 피반령정찰조와 무선결속을 하여 그 곡사폰지 뭔지 하는걸 깔수 없는가 알아보시오.》

《어데 가시렵니까?》

《6련대에 나가보겠소.》

《보고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건 좀 두고보기요. 우리의 결심이 명백히 서지 못하지 않았소. 우선 6련대의 공격만을 익혀보오.》

최현은 예견했던 정황중에서 최악의 경우가 도래했음을 알았다. 7월 11일부 전선사령관의 명령에서 최현사단은 늦어도 4∼5일안으로 보은계선에 진출하여 대전동남쪽을 포위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적은 벌써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한개 군단의 장벽으로 앞을 막은것이다.

(침착하자. 다시금 잘 생각해보자.)

최현은 자칫 잘못하면 사단이 이 막강한 화력앞에서 전멸당할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찌는듯 무더운 날씨였다. 최현은 아직 수색전투가 한창인 도시의 중심부를 질러 교외남쪽으로 차를 몰게 했다. 늘 흐리던 하늘이 활짝 개이고 해빛이 쨋쨋이 내리비쳤다. 교외의 들판에서는 그 해빛보다 더 눈부신 섬광이 일며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켰다. 그 불기둥은 단번에 수십개씩 하늘로 뻗치다가는 무너져내리며 짙은 연기와 흙비를 뿌리였다.

《이젠 더 못가겠습니다.》

운전수가 제동변을 잡아당겼다. 마치 그의 결심이 옳다는것을 증명이나 하듯 공기를 째며 날아오던 파편 하나가 앞에 선 가로수의 밋밋한 가지 한대를 뭉청 잘라냈다.

더위에 처진 가로수의 떡잎이 길옆 도랑물에 잠겨드는것을 바라보던 최현은 가슴에 건 쌍안경줄을 바로잡으며 포탄이 작렬하는 벌판에 눈길을 돌렸다.

포탄은 벌판끝에 어슴푸레 보이는 산너머 멀리서 날아오고있었다. 최현은 벌판을 따라 나란히 질러간 달구지길을 보고 그리로 차를 몰라고 했다. 부관과 운전수가 위험하다고 하자 최현은 성을 내였다.

《몰라면 몰아.》

차는 포탄의 폭발로 운무가 낀듯 뽀얀 벌판을 따라 달렸다. 둔덕과 웅뎅이들에 포사격을 피해 음페한 군인들이 놀라운 눈길로 최현을 바라보았다. 비온 뒤끝이라 온통 물투성인데다가 삐죽삐죽 돌들이 대가리를 쳐든 길이여서 차는 몹시 들추었다. 최현은 자주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그 벌판의 골머리에 거뭇하게 보이는 산에서 한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뒤가 피반령인것이였다.

최현은 적들이 미리부터 준비한 포진지에서 이미 계산해놓은 제원으로 면적사격을 하고있음을 판단했다. 적의 포지휘감시소는 벌판끝에 있는 산에 있을것이였다. 그리고 적의 포병대지휘관이 벌판에 서린 화염과 포연때문에 자기가 탄 차를 보지 못하고있으므로 포사격을 유도하지 못한다는것도 알았다.

최현이 무심천언덕아래의 6련대지휘부에 갔을 때 포사격이 멎었다. 천막도 없이 큰바위옆에 모포를 깔고앉은 흡사 굴뚝소제를 하다나온것 같이 새까맣게 된 련대장은 최현이 차를 세우고 걸어올 때까지 전화통을 마주하고 뭐라 분주스럽게 설명하다가 《다 무사했소?》 하는 소리에 놀라며 일어섰다. 바지 한귀퉁이가 찢어져 허연 내의가 드러나보였다. 그는 찢어진 바지를 감아쥐며 그 황급한 동작속에서도 송수화기에 대고 《여기 오셨습니다.》 하고는 보고를 하였다.

《앉소. 앉아서 말하오. 누구요?》

최현은 싸늘한 바위밑에 기대앉으며 전화통을 가리켰다. 련대장은 어두운 얼굴로 사단참모장에게 정황보고를 했음을 말했다.

《희생자가 있소?》

《네, 열세명이… 》

최현은 몽몽한 연기와 먼지의 장벽이 일떠서있는 벌판을 바라보다가 아무말없이 모자전에 꽂아둔 실과 바늘을 뽑아들었다.

《찢겨진 바지를 깁기요. 련대장이 꼴이 뭐요.》

그는 망설이는 련대장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결심을 말하오.》

최현은 아무런 바쁜 일도 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바늘을 꿰며 물었다.

6련대장은 련대가 개활지대로 포복전진을 하는데 불시에 포탄이 날아왔다는것, 이때껏 겪어보지 못한 대구경포탄이므로 기미가 이상해 급히 련대를 철수시켰다는것을 띠염띠염 말했다.

《그래 이젠 어떻게 하겠소?》

《뚫러볼만한곳을 찾아 정찰을 파견했는데 신통한곳이 없습니다.》

《신통한데야 어데 있겠소? 그래도 이앞이 제일 허술할게요. 포를 유독 동무네쪽에만 쏜다는것은 적들이 이앞에 방어를 제대로 못꾸렸다는것을 의미하지?》

《섯!》 하는 웨침이 울렸다.

최현은 열댓메터 떨어져 서있는 보초병앞에 2명의 전사가 군복 앞자락에 뭔가 싸들어안고 서있는것을 보았다.

역시 련대장처럼 옷과 얼굴이 까맣고 입술만 깨끗할 정도로 붉은 두 전사는 사단장을 알아보고 뻣뻣이 굳어졌다.

《뭐요?》

《저… 우리 중대장동지가 련대부에 참외를 가져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참외는 무슨 참외요?》

련대장이 큰소리치는것을 보고 최현은 싱긋 웃으며 전사들에게 손짓하였다.

《가져오우.》

전사들은 최현과 련대장을 힐끔힐끔 보며 다가와서는 풀밭에 무릎을 꿇고 쏟아놓았다. 각 하나를 단 군인이 최현의 웃음띤 눈길을 보자 용기를 내며 말하였다.

《참 맛있습니다.》

하면서도 무슨 추궁이 내리지나 않을가 하는듯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최현은 아무것도 입에 댈 기분이 없었으나 숫저운 전사들때문에 하나 들었다.

《어데서 난거요?》

《정찰을 나갔다가 땄습니다.》

《그곳이 어데요?》

최현의 눈빛이 긴장되였다.

《저-기입니다.》

각 하나를 단 군인이 되돌아서 가리키는곳은 널직한 골짜기였다. 몽몽한 연기에 덮이여 잘 알아볼수 없으나 최현은 거기가 수도사단과 1사의 린접점임을 알았다.

최현은 가슴이 널뛰듯해졌다.

《그래 참외밭에 적이 없던가?》

두 군인이 얼떠름한 기색으로 마주보았다. 각 하나를 단 군인은 사단장의 범연치 않은 기색에 주저주저하다가 말했다.

《없는것 같습니다. 저흰 저 왼쪽켠의 고지로 나가 위력정찰을 했습니다. 적의 사격이 너무 심해 골짜기로 내리뛰다가 이 참외밭에 잠시 엎드려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거긴 적이 없는것이 아닌가?》

《네, 그런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저흰 너무 당황해서-》

《그래도 참왼 따지 않았는가?》

최현이 웃자 군인들도 따라웃었다.

《사단장동지, 저희가 다시 나가보겠습니다. 우린 고지에만 신경을 썼댔습니다.》

《골짜기라?!…》

최현은 참외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다가 주머니를 급히 뒤졌다. 그리고 담배갑을 꺼내였다.

《하여튼 고맙소. 수고스레 가져온 참외를 그대로 먹을수 없지. 이거나 가져다 피우오. 그리고…》

최현은 입이 쩍 벌어져 벙글거리는 상등병의 손에 억지다싶이 담배를 쥐여주고 《동무네 중대장한테 가서 말하오. 사단장권한으로 동무들에게 감사를 준다고-》

《네…?》

전사는 차렷하고 섰으나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어쩔바를 모르다가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고 웨쳤다. 최현은 짐짓 눈섭을 찌프렸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걸 들고다니는건 찬성이 아니야. 동무네가 나에게 뭘 이깨워줬기때문에 주는 감사야.》

최현은 기뻐서 달려가는 전사들을 보다가 련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겠소? 저놈의 골짜기가 우릴 도울것 같애. 저길 뚫러야겠소.》

《적들이 잠복을 깔아두고 모른척하지 않았을가요?》

《허, 똥줄이 빠져 도망치던녀석들이 그럴 계제가 있소. 두가지요. 하나는 사단린접점이기때문에 미처 주의가 돌아가지 않아 배치를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고지사이에 난 골짜기라는것으로 등한시했을것이요. 일반적으로 저런 골짜기로 들어가는것은 전멸을 의미하니까. 하여튼 이즉시 다시 정찰을 해보오.》

《알겠습니다.》

《만약 거기가 구멍이라면… 일은 먹고 떨어지오.》

최현은 통쾌하게 껄껄 웃었다. 그리고 참외를 무르팍에 쳐 두쪽으로 나누어 련대장에게 내여밀었다.

《먹기요.》

되돌아올 때 최현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물론 최현은 6련대가 성공된다 해도 결정적인것이 못되며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는것으로만 끝날것이며 일단 1참호나 2참호를 점령한후에는 또다시 전진이 좌절될수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전혀 나갈수 없는 형편에서 단 몇메터라도 전진할 방안이 나온것으로 기쁨을 느꼈던것이다.

커다란 느티나무아래서 최현은 불시에 차를 멈춰세우라고 했다.

분명 울음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차에서 뛰여내린 그는 부서진 돌멩이쪼박들과 풀잎들이 널린 달구지길을 따라 걷다가 흠칫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복심동무! 복심동무!》

모자도 없이 온몸에 검댕이를 뒤집어쓴 녀성군인이 풀밭에 누운 한 군인을 정신없이 소리쳐 부르고있었다. 그옆에서는 다리에 붕대를 동인 장대한 체격의 하사관이 그 우악진 손으로 잔디풀을 꽉 그러쥔채 어깨를 떨고있었다.

최현이 가까이 가자 《복심동무!》를 부르던 녀자가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잔디풀을 잡아뜯던 하사관은 사단장을 알아보고 일어서려다 말고 《사단장동지!》 하고는 입귀를 이지러뜨렸다.

최현은 풀밭에 누워있는 녀인을 내려다보았다. 왼켠가슴을 가로질러 동인 붕대에 동전잎만한 피자국이 새겨졌는데 녀인의 눈은 꼭 감겨있었다. 그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던 최현은 깜짝 놀랐다.

《이 동무 이름이 뭐라구?》

《리복심입니다.》

갸냘핀 몸매의 처녀는 슬픔에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최현은 자기 눈앞에 의식을 잃은채 누워있는 녀자가 다름아닌 20여일전 평양 전차안에서 만난 녀자임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요?》

최현은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복심이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을 가늠하려 했으나 전혀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따금 눈시울이 움직이는것으로 봐 아직 숨이 멎지 않음을 알수 있었다.

《사단장동지, 저때문입니다.》

하사관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쳐들고 힘겹게 말했다.

《이 동문 저를 살리느라고… 부상당한 저를 끌어내다가 포탄이 떨어지자 몸으로 저를 덮었습니다.》

최현은 말없이 일어서 련락병과 부관에게 이들을 차에 실어 후송하라고 하였다. 그는 차를 타고가면서 서럽게 우는 성련화라고 부르는 간호원을 통해 이들이 아침도 안먹고 종일 뛰여다니면서 열아홉명의 부상병을 구원한것이며 복심이가 평양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그후 입대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최현은 가슴이 쓰렸다.

평화스러운 저녁의 수도풍경과 더불어 보꾸레미를 안은채 넘어져 어쩔바를 모르던 이 녀인의 순진스런 모습이 떠오르며 코등이 저릿해올랐다.

(전쟁은 숫스러운 새각시같던 이 녀자마저 싸움터에 나서게 하였다.)

최현의 얼굴은 먹장처럼 질려있었다. 그는 복심이를 진찰대에 눕히는것까지 본후 군의소장에게 무조건 살려내라는 명령을 주고 뛰다싶이 돌아나왔다.

사단참모장은 수정보충한 《전투보고서》를 놓고 최현을 기다리고있었다. 작전참모들과의 협의끝에 채택된 보고서는 최현의 의도대로 6련대의 습격전투를 위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여있었다.

최현은 손바닥으로 얼굴과 눈을 문다지고(그는 이로써 아직도 눈에 서물거리는 복심이라는 녀대원의 강렬한 인상을 지우려 했다.) 보고서철을 펼쳤다. 그는 사단병력수가 적힌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 수자를 가리켰다.

《이건 병력을 더 달라는거요?》

《우린 편제에 비해서 2 500명이 모자랍니다. 현재 사단력량은 괴뢰군 사단에 비해 삼분지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현은 색연필을 집어들었다. 병력요청을 바라는 참모장의 속심을 빤히 넘겨다보면서 그대로 두는것은 비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에서 실태를 알아야지 않는가, 그것은 규정적보고인 이상 둬둬야 하지 않는가 하는 목소리에 주저했다.

결국 그는 색연필을 그대로 든채 아래부분을 마저 읽었다.

사단과 련대들에서 료해한 적정분석, 피반령계선의 적병력집중에 대해서는 완전히 확인된 사실처럼 《…피반령엔 괴뢰1군단의 수도사단, l사, 2사, 3개 사단이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하였는바…》라고 쓴데서부터 최현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였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대목은 그아래에 있었다.

…이런 정황으로 하여 현재 사단의 능력으로는 7월 8일, 7월 11일 전선사령부명령에서 지적된 목표를 명령된 시간내에 점령할수 없음을 보고드립니다.…

《이게 뭐요!》

최현은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단참모장과 작전과장은 약속한듯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수그렸다.

최현은 색연필로 그 대목을 벅벅 그어버렸다. 연필알이 부러져 나갔다. 그는 터져오르는 분기를 간신히 억제하고 그밑을 마저 읽었다.

…현재상태에서 피반령공격을 수행하자면 최소한으로 한개사단의 병력과 장비, 두개 련대이상의 땅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현은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피우지는 않았다. 담배를 만지작거리기만 하였다. 담배대는 손가락에서 흙먼지처럼 부스러져 떨어져내렸다. 최현은 종이까지 가루처럼 만들어버리고 소리나게 손을 털었다. 이렇게 그는 자기 분노를 진정시켰다.

최현의 눈에 퍼런 빛이 번쩍이는것을 두려웁게 보던 참모장은 안경을 벗어 매만지는것으로 위압되는 자기를 다잡으며 매우 침착히 말했다.

《사단장동지, 그건 현재의 상태에서 반드시 필요한 수자입니다. 객관적인 분석에-》

《객관이고 손님관이고 걷어치우오.》

《전선사령부에서 이 실태를 알고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 알면 어떻게 한다는거요? 띤하고 맞붙어 힘내기를 하는 쪽에 대고 땅크랑 사단이랑 보내달라는거야. 그럼 거기는 어찌는가, 아니 하늘에서 군대와 땅크가 떨어져내릴걸 생각하나, 결국 못하겠다는 우는 소리지, 무슨 소리야 응?》

최현은 책상을 쳤다. 오동나무로 만든 책상은 피아노의 건반을 한꺼번에 때릴 때처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였다. 그 소리에 최현은 자기 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앉으시오.》

최현은 그때까지 참모장과 작전과장이 서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소리를 낮춰 부드럽게 말하려 했으나 말소리가 갈리여 거칠어졌다.

최현은 자기가 왜 이처럼 자신을 다잡지 못하게 예민하여졌는가를 생각하며 다시 전투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글줄이 방금전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였다.

(생각한것은 우에다 말할수 있잖을가. 그러나 한개 사단과 두개의 땅크련대… 이건 너무하다.)

최현은 만년필을 꺼내들고 그 한개 사단과 땅크라는것만은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 《지원이 필요》라는 글줄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결국 더 달라는 수작질이지. 최현아, 너도 구차하게 되였구나.)

최현은 입귀를 이지러뜨리며 지원이 필요하다는 대목마저 지워버리려다가 멈칫하고 동작을 멈췄다.

그러자 수자들이, 군사작전과 전술의 초보적규범들이 일시에 그의 사색에 뛰여들었다.

《1대 4…》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참모장과 작전과장이 의아스럽게 지켜본다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최현은 자기의 사단이 4배의 적과 맞다들었다는것을 우연스럽게 입에 올린것이였다. 유격대시절부터 수십배의 적과 싸워 버릇한 최현에게 4배라는 적이 결코 두려운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지금의 전투는 유리한 때는 적을 치고 필요한 경우에 물러서는 자유자재한 유격활동이 아니다. 엄연히 전선을 유지하며 적을 소멸할뿐아니라 한치한치의 땅을 해방하고 그자리를 지키는것이다. 물론 최현은 정규전이라 해도 방어력량보다 공격력량이 3배 우세할 때만 공격한다는 리론같은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번 전쟁자체가 사실로써 그것을 증명했다. 최현의 뇌리에는 전쟁 첫날부터 오늘까지의 적과의 력량상대비가 구체적전투정황과 엇섞여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춘천을 해방하고 나올 때만도 l대 1이였다. 진천계선에 이르렀을 때 다 부서져나간 괴뢰6사 대신 재정비된 수도사단과 경찰대와 마주섰을 때 력량상 아군 하나에 적이 둘로 되자 전투는 어려워졌다. 그때 최현은 물론 모든 전사들이 마지막힘까지 다해 싸웠다. 그런데 이제는 적이 넷이다. 싸움을 의지와 담력, 지혜의 대결로 보면서도 전술적계산에 밝은 최현은 사단참모부가 머리를 짜 만든 이 보고서가 결코 비겁쟁이의 우는 소리가 아닌 매우 과학적인것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지원요청대목을 그대로 두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생각하였다. 최현장령도 결심이 흔들릴 때가 있다는 뒤말쯤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과 달리 그부분을 모조리 그어버렸다. 매우 힘겹게 글자 하나하나를 다 지워버린 그는 큰일을 해제낀 사람처럼 모두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매우 미안스러운 거의 어줍은 기색으로 참모장과 작전과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단장 권한으로 이런 독단을 하는데 대하여… 량해를 바라오.》

성미가 드센 장령에게서 이런 말을 처음으로 듣는 사단 참모장과 작전과장은 몹시 놀라는 기색이였다. 최현은 그런것에는 아랑곳않고 생각깊은 어조로 계속했다.

《동무들의 분석은 정확하면서도 또 틀리기도 하오. 그것이 무슨 아까데미에서 토론되는 작전전술리론이라면 매우 훌륭한 분석일거요. 그러나 이미 명령을 받은 집행자의 눈으로 보면 틀린것이요. 명령에 대해서는 그것을 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론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는것만 생각는 사람이 되여야 하오. 동무들은 전선사령부에서 내린 명령을 가지고 흥정하려드는데 그래서는 안되오. 그 명령은 곧 장군님께서 내리신 명령이 아니겠소.

장군님께서 내리신 명령은 꼭 할수 있으며 또 죽더라도 해야 되는것이요. 나는 이제껏 그렇게 싸워왔소. 그렇게 싸워 실패한적이 없었으며 매번 죽음을 각오했지만 살았소. 장군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단말이요! 우리 장군님께서는-》

최현의 목청이 갑자기 떨리며 눈굽이 불깃해졌다. 그는 흥분을 내리누르려 주먹을 꽉 부르쥐고 안깐힘을 쓰다가 힘주어 말했다.

《명령에 제시된 전투계획은 변경시키지 않겠소. 지원요청도 빼겠소. 반대 없소?》

《알겠습니다. 사단장동지!》

한시간후 최현은 련대장이상 모인 자리에서 새로운 전투계획을 발표하였다. 6련대를 주공으로 사단공격전투를 단행하기 위한 그의 결심은 다음과 같았다.

4련대와 17련대는 어두울무렵부터 소구분대들의 산발적인 공격으로써 적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6련대는 적의 대구경포진지를 습격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미리 준비시킨 대대를 참외밭골짜기로 진입시켜 적의 종심을 뚫는다. 적들이 그 대대의 기습을 알아차리고 력량을 거기에 집중시킬 때 6련대가 공격에 진입하여 그들을 지원한다. 그때에 4련대와 17련대는 6련대의 린접을 보장하고있다가 변화되는 정황에 맞게 좌우로 우회하여나가던가 6련대가 개척한 통로로 계속 진격한다.

이 계획 실현의 성과여부는 전적으로 첨입대대의 역할에 달려있었다. 온 전선에 소동을 일쿤 틈을 타 종심깊숙이 들어간다는것도 문제지만 일정한 교두보를 확보하고 주력이 올 때까지 견지한다는것도 희생을 각오하는 결사전이였다.

《어느 대대를 보내겠소?》

마지막으로 이것을 물을 때 최현은 얼굴기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6련대장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을 빤히 알고있었기때문이였고 그가 예상한것과는 다른 대대가 찍혀졌으면 하고 바라는 자기의 속심이 거북하여 눈살까지 찌프린것이였다.

아닐세라 6련대장은 오래 생각지 않고 대답하였다.

《박로수동무의 대대를 보내겠습니다. 그런데서 경험도 있고 그들은 벌써 낌새를 맡고 련대정찰과 함께 참외밭을 돌아봤습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박로수에 대해서는 모든 부직간부들이 깊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있는것이였다.

《동무넨 왜 2대대밖에 없소?》

최현은 목구멍에까지 치밀어오르는 이 말을 간신히 참았다. 그는 련대에 가서 보고결정을 짓자고 결심하였다. 최현에게는 오랜 싸움과정에 미신이라고 할수도 있는 《예감》이 있었다. 그저께 청주전투를 앞둔 공격출발진지에서 최현은 잠시동안 박로수를 만날수 있었다.

《영혜한테서 편지가 왔나?》

최현은 인사말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박로수의 얼굴색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전쟁판에 편지가 그렇게 쉽게 오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최현은 겉으로는 긍정했으나 속으로는 약간 의아해졌다. 영혜의 처지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드나드는 최고사령부기통을 얼마든지 리용할수 있으니만치 오히려 평화시보다 편지가 빨리 올수도 있는것이다. 그는 박로수도 필경 이쯤한것은 알리라고 생각하였다.

《저… 사단장동지! 후날 오영혜동무를 만나면 저에 대해서… 얘길… 하겠습니까?》

《거야 해야지.》

《사단장동지, 영혜동문 요구성이 높습니다. 춘천에서의 저의 잘못을 용서 안할것입니다.》

《원, 이런 바보라구야. 그래 몇시간 철직된것을 써보냈는가?》

《네.》

《알고보니 쑥이야. 남자란게 녀자한테 그렇게 오밀조밀 다 보고하면 어찌하나. 하여튼 후날 그건 내가 말해줘.》

《고맙습니다.》

그때 박로수의 목소리는 분명 떨리는것 같았다.…

회의가 끝난후 최현은 6련대장을 한발 앞서보내고 군의소에 전화를 걸었다. 복심이의 진찰결과를 알고싶어서였다. 군의소장은 방금전에 서울로 가는 차편에 복심이를 후송해보냈다고 하였다.

《파편이 심장근처에 박혔기에 우리로서는 수술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희망은… 별로 없습니다.》

최현은 맥이 풀렸고 마음이 우울해지였다. 복심이의 해쓱한 얼굴과 박로수의 얼굴이 한데 겹쳐 빙빙 돌아갔다. 6련대지휘부까지 가면서 최현은 줄곧 갈마드는 불안스런 생각에 눌려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했다. 주먹같은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리기 시작하였다. 개였다가는 흐리고 흐렸다가는 개이는 변덕스러운 장마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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