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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40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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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22 10:25 조회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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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40 회)

15 장

김책이 중앙청에 도착한것은 밤 12시 10분이였다.

그는 평양에서 떠난길로 내처 오산전투장까지 나갔었다. 그 어떤 필요로 나갔는가고 누가 묻는다면 꼭 찍어 대답할수 있는 리유란 없었다. 감정적으로 볼 때는 평천리폭격장에서 받은 그 어떤 충격에 끌렸다고 할수 있었고 론리적으로 볼 때는 이제 최용건이나 강건을 만나 사업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가볼 시간을 얻어낼수 없다는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뭔가 전선에 대한 일정한 표상과 준비를 가지고 인계사업에 들어서고싶은때문이였다.

나가본 소득은 컸다. 오산은 인간의 증오라는 감정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거대한 힘을 낳는가를 보여주는 격전터였다. 미군의 《신화》는 여기서 여지없이 깨여져버리고말았다.

전투는 10시경부터 시작되였다.

도로를 따라 전진한 15땅크련대의 선두땅크들은 바주카포의 집중포화를 맞받아 맹속으로 돌진하여 그대로 남쪽으로 나가 평택과 안성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였다. 그뒤를 따르던 30련대의 땅크들은 도로변의 포좌지를 무한궤도로 짓뭉개고 페리중좌가 있는 포지휘소를 일격에 짓부셔버렸다. 포지휘기능이 마비되고 곡사포들이 입을 다문 기회를 틈타 18보병련대의 전사들은 땅크와의 협동작전밑에 《스미스특공대》의 제1제대인 A중대와 B중대를 정면과 익측으로 쳐들어가 전멸시켰다. 나머지순위의 중대들로 구성된 스미스자신이 지휘하는 주력이 틀고앉은 118고지는 강력한 중기관총화력으로 아군을 제압하려들었다. 미군비행대까지 날아들어 미군의 권위가 이 땅에서 처음으로 시험되는 《모범전투》를 지원하여 기관총, 폭탄사격까지 퍼부었다. 그러나 어떤 힘도 아군의 진격을 막을수 없었다. 한개 대대가 익측을 우회돌파하여 118고지를 포위하는것으로 전투의 운명은 결정되였다. 논벌과 야산기슭으로부터 총창을 꼬나들고 땅크의 장엄한 동음과 더불어 죽음과 같이 무시무시한 함성을 웨치며 내달아오는 갈색옷차림의 사람들이 불사신마냥 전호에 뛰여들 때 《유람식싸움》, 《스포츠적인 놀음》, 《경찰전》의 달콤한 선전에 끌려와 일확천금의 환상곁에 취해있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기들을 이런 지옥에 끌어온자들을 미처 저주하기도전에 총창과 총탁에 가슴팍이 뚫리고 골통들이 바사져나갔다. 극소수의 인원만이 살아 도망쳤다.

미군포로는 없었다. 《항복》이라는 조선말을 배워주지 않은 미군지휘관들의 잘못이였으나 보다는 남의 땅에 기여든 이 강도들에 대한 인민군전사들의 증오심이 그런 아량을 베풀게 하지 않았다.

김책은 여기서 로획품 무기와 탄약을 자기들의 부대 운수차가 오면 실어보내려고 기다리는 54사 18련대 군인들과 만났다. 알고보니 그들은 118고지를 창격전을 벌려 점령한 모범전투중대로서 운수차만 아니라 종군기자들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사진촬영대상으로 찍혀져있었던것이다. 김책은 송기덕이라는 중대장과 혼자서 18명의 미군을 찔러눕힌 병사와 짤막한 담화를 나누며 이들은 미국놈 알기를 헝겊막대기처럼 우습게 본다는것을 알았다.

(그래, 이것이 기본이지.)

김책은 큰 발견을 한 사람처럼 기분이 부쩍 좋아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서 그 기분은 깨여지고말았다. 도로는 내려올 때처럼 돌아갈 때도 완전한 복새판이였다. 왕복 90여km밖에 안되는 길에서 근 두시간을 잡아먹었다. 포차와 화물차 고등어차와 탄약차, 행군하는 보병들로 립추의 여지없이 붐비는 도로는 저마끔 앞서겠다는 경적과 고함소리로 터져나갈 지경이였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김책은 사람과 차로 혼탕이 되여 굼뜨게 흐르는 행렬을 보며 심각해지였다.

간밤에 하시던 김일성동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미군의 본격적개입으로 전선사태는 시시각각으로 엄중해집니다. 우리의 승리적전진의 결과로 전선의 길이가 멀어진 실정은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을 빚어내고있습니다.

군수물자의 수송보장, 통신련락체계, 이것이 제일 큰 고충으로 제기될것입니다. 또한 시간을 다투며 급변하는 정황에 대처하여 전선지휘관들이 어떻게 령활한 반응과 기민한 전투조직을 하는가 하는 이것입니다. 전선사령관은 우마차운행과 전화선가설법으로부터 작전에 이르기까지 박식할뿐아니라 포괄적으로 조직지휘하는 군사가, 경제가의 두뇌를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이 전쟁이 전인민적전쟁이라는것입니다. 이 전쟁의 목적과 의의를 자각한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인민들의 힘을 능동적으로 창조적으로 조직동원하는면에 대해서도 전선사령관은 응당한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거기서는 남반부인민들도 례외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정연하고 유일적인 보고체계와 명령지휘체계의 확립입니다. 독자적인 결심과 판단을 내릴수 없는 문제는 즉시적으로 보고하여 결론 받아 움직이는 측면에서 지난 기간 결함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하여 전선지휘에서 우유부단하고 좌왕우왕한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이런데서부터 일부 지휘관들속에서는 자의적으로 움직이려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인 유격전쟁에 몸배인 우리 지휘관들만이 할수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허나 그것은 립체적인 협동동작밑에 수행하는 현대전에 놓고볼 때 약점으로도 됩니다. 그렇다 하여 복잡하고 수시로 변하는 각이한 정황속에서 지휘관들의 독자적인 결심채택을 무조건 억제하고 <균형>과 협동만을 요구하면 결국 사슬에 묶어놓은 식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전선사령관으로서의 동무의 몫이 있습니다.》

중앙청계단을 오를 때의 김책의 마음은 여러가지로 복잡하고 무거웠다. 그는 군사적인 능력과 지혜로 볼 때 언제한번 자기를 최용건보다 낫게 여긴적이 없었다. 오히려 많은 면에서 그는 최용건의 장점을 인정하고 존경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강에서 범한 최용건의 실책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불만을 금할수 없었다.

오랜 벗이였으나 이로 하여 그는 최용건에 대해 랭혹하다고 할 정도의 비판적인 립장에 서있었다. 당직군관의 보고를 받고 뛰여나온 강건이 2층계단에서 김책을 맞이하였다. 김책은 악수만 나누고 간단히 말했다.

《부서장들이 다 있소? 2시 20분부터 전선사령부 부서장회의를 합시다.》

김책은 강건이 최용건의 방에 안내하려는것을 그만두게 하였다.

《동문 입술에 퉁기까지 쳤구만.》

김책은 강건의 주의깊은 시선을 느끼며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문을 열었다. 차렷자세를 취한 최용건의 부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집무실문을 열었다.

탁상등이 푸릿한 빛을 던지는 작전탁모서리에 앉은채 두손을 지도우에 얹고 내려다보는 최용건의 모습이 흰벽에 커다란 그림자로 굳어져있었다.

《안녕하시오, 최용건동무!》

최용건은 알릴듯말듯 몸을 흠칫하였다.

《아, 왔구만!》

의자를 와락 밀치고 일어선 그는 성급한 동작으로 걸어왔다.

두사람은 한동안 꽉 부둥켜안았다가 손을 잡은채 작전탁쪽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나 해서 걱정했소.》

최용건이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격동과 고민이 스쳐간 자욱이 거밋하게 그늘을 지운 최용건의 얼굴은 전반적으로는 약간 상기되여있었다.

최용건은 작전탁우의 지도를 반듯하게 해놓고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김책을 보았다.

《김책동무, 나는 지금 대전까지 나갔어야 할 전선을 겨우 여기서 인계하오.》

최용건은 오산계선을 조금 벗어나간 화살표식에 시선을 주었다가 김책의 반응을 지키듯 입을 다물었다.

《다 알고있는 전선이니 그만둡시다. 강건동무도 있지 않소. 그건 그만두고 나의 사업에서 앞으로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되는 점들에 대해서 말해주오.》

최용건은 저으기 놀란 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점점 고통스럽게 변해갔다.

《내가 무슨 신통한 조언을 줄수 있겠소. 있다면 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것이요. 나의 실책은 서울에서의 3일간 지체를 만들어놓았소. 그런데 아직도 그것을 회복하지 못하고있소. 앞으로도 그것은 무엇으로도 보상 못할것이요.

나는… 결국… 장군님의 작전방침에 지장을 준 사람으로 되였소. 김책동문 응당 그에 대하여 말해야 될것이요.》

김책이 그에게 담배갑을 꺼내 내밀었으나 최용건은 그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

김책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담배대를 뽑아쥐다가 갑채로 놓고말았다.

《동무의 실책을 생각하면 괴롭소. 나 역시 그런 정황에 부딪치면 다른 방도를 얻지 못했을것이요. 아니 필경 그랬을것이요. 그런데는 왜 제때에 보고하지 못했는가 이것이 안타깝소. 급속강행도하명령을 받고도 동무가 그런 완만한 결심을 단독으로 채택한것이 리해되지 않소.》

김책은 바라지 않던데로 화제가 뻗어가는것이 못마땅했으나 일단 제기된 문제에서 피할수는 없었다.

《어찌보면 동무가 자만하지 않았는가 또 다르게는 가벼운 인정에 끌려 그러지 않았는가.》

김책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최용건의 얼굴이 재빛으로 변해가면서 눈섭이 푸들푸들 떨었다.

《최용건동무. 안됐소. 만나기 바쁘게 가슴아픈 말만 했구려.》

《무슨 말을!… 나 하나 가슴아픔이 뭐요? 조국의 운명이, 민족의 운명이 판가름되는 이때에… 나는 전쟁승리를 앞당기는데 아무런 보탬도 못준 지휘관이 되고말았소.》

최용건은 가슴에서 태질하는 진통을 더 참을길 없는듯 김책을 보다가 계속하여 말했다.

《나는 시간을 잃었소. 이것은 나에게 일생 남을 후회요. 정말이지 시간과 기회는 가버리면 다고 후회는 가실길 없으니 영원한 괴로움이요. 김책동무, 열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들이 나를 검증했구만. 나는 낡았소.》

《최용건동무.》

《아니! 내가 왜 이처럼 괴로운가. 그건 더구나 동무앞이기때문이요. 나는 요즈음 자주 41년도 정월회의때를 생각했소. 지금은 더욱 그렇소. 나는 그때의 열렬한 맹세와 약속을 어겼다는 느낌까지 드오. 그래, 어긴것이지.》

최용건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 열어제낀 창가로 다가가 비통한 자세로 기둥박힌듯 서있었다.

1941년 1월, 북방의 밀림속, 강마른 추위, 어데나 희디흰 눈뿐이였다. 그날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련합군 지휘간부회의에 모인 자리에서 다가오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그리며 혁명의 광활한 전망을 펼쳐주시였다. 밤새 밀림을 쥐여흔들며 눈보라가 울부짖었으나 그때 최용건이나 김책은 진달래 곱게 핀 조선의 산언덕을 해방자로 밟는 아릿다운 꿈에 취해있었다. 회의가 끝난 새벽, 밖으로 나섰을 때 눈보라가 고요히 잠든 밀림의 정수리를 꿰비치며 아침해가 떠올랐다. 흰눈을 붉게 물들이는 려조를 밟으며 김책과 최용건은 애된 소년의 천진한 마음으로 끝없이 걸었다. 최용건은 어느 작식대원이 떨어뜨린 장작개비를 들고 나무가지에 대고 힘껏 던지고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발속에 뛰여들어 허허 웃었다. 그러며 그때 그는 시정에 젖어 말했다.

《김책동무, 우리는 이젠 중로배들이지만 장군님앞에는 어린애들이요. 장군님은 거인이요. 이처럼 위대한분을 모신 전사가 된다는것은 과남한 축복이며 행복이요.

그저 다른게 없소. 어중이떠중이들이 영웅으로 되겠다 개싸움치던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종파력사가 우리 대에 끝나야 하오.

우리는 장군님 받든 기둥으로, 주추돌로 영원불멸해야 할것이요. 엊저녁 내 장군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이제부터 나는 장군님앞에서는 군장이 아니라 전사요 그러되 가장 모범적인 전사일것이요.

앞으로의 나의 생은 장군님의 손과 발로 되는 길뿐이요.》

지금 최용건은 그때의 맹세, 정화된 량심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고있다. 그점에서 조금도 변심이 없고 리탈이 없다. 그렇다면 최용건은 장군님에 대한 인간적매혹, 사상과 령도, 담력과 예지에 대한 감탄과 동경 하나에서 걸음을 멈춘것이 아닌가. 그것은 결국, 장군님을 잘 받들겠다는 주관적욕망 하나에만 떨어지는것으로 된다. 잘 받들겠다는 충신의 자세는 잘 모실수 있는 준비와 바탕을 필요로 하는것이다. 그렇다면 최용건은 장군님의 의도와 작전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는데서 노력을 게을리하는것이 아닌가. 이야말로 큰 교훈이다.

누구나 장군님의 높이에서 내다보고 분석하고 판단할수는 없다. 그러나 가깝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며 그이의 뜻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것은 곧 장군님의 사상과 령도, 방법을 골육에 새겨 살과 피로 만드는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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