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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33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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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15 14:55 조회6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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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 회)

12 장

련 3일간을 꼬박 밝히신김일성동지께서는 서울해방에 제하여 보내는 축하문을 작성하신 뒤 집무실과 맞달린 휴계실에서 30분가량 휴식을 하시였다. 그이께서 벗었던 웃옷을 걸치실 때 강부관이 곤색 제낀양복과 넥타이를 가지고 나타났다.

외국사람들과의 접견이 있다는것으로 준비했겠으나 명절때나 간혹 입군 하시던 의복을 가져온것이김일성동지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였다.

《동문 전쟁이 다 끝난걸로 생각하는게 아니요?》

《사회주의나라 사람이 아닌 기자도 있다고 하던데요.》

《허허, 그 사람들이 내 옷차림을 보자고 오는것은 아니요.》

오늘 서울해방소식이 발표되여 한시간도 채 못되였을 때김일성동지께 여러 나라 대사들의 공동명의로 접견요청이 제기되였다. 서울해방을 축하하여 찾아뵈옵겠다는것이였다. 접견형식은 비공식방문인데 담화까지 포함시켰으면 하는것이 그들의 희망이였다.

외무성을 통해 그 보고를 받으신김일성동지께서는 쾌히 수락하시였다. 그들의 방문목적이 단순히 서울해방에 대한 축하가 아닐것이며 보다는 이 전쟁의 성격과발전전망에 대한 정부의 견해와 립장을 알려는것이 기본일것이라고 짐작하신김일성동지께서는이 회견에 크게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세계의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 이 전쟁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고집스럽게 붙안고있는 조건에서 유익한 기회라고 보셨다.

그이께서 접견장소인 내각 소회의실로 가시자 미리 와 대기하고있던 외교관들이 열렬한 박수로 그이를 맞이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임장봉정식때라든가 명절행사에서 가끔 만나군 한 외교관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고 집사람들의 건강에 대해서까지 물어주시였다. 외교관들은 거의가 다 오늘 본국정부에 서울해방소식을 통보했다는것을 말하였으며 일부 대사들은 자기 나라에서 대대적인 조선지원깜빠니야가 예견되고있음을 암시하기도 하였다.김일성동지께서는 주탁에 와앉으시다가 분명 모란봉이던가 대성산에서 꺾어온듯 한 꽃을 보시였다. 싱싱한 산 냄새와 향기가 물씬 풍기였다. 그이께서는 그 꽃을 보시며 매일 매시 싹트고 피여나고 커갈 무성한 성장의 계절인 여름을 새삼스레 느끼셨다. 갓 모를 낸 벼밭이며 강냉이밭들, 꽃향기가 진동할 과원을 발목이 휘도록 돌아보고싶으신 충격이 가슴을 짜릿하게 훑으시였다.

(두달전에는 이 동무들과 5. l절 들놀이를 하였었지.)

그이께서는 담담한 오후해빛이 아름으로 쏟아져들어오는 창문쪽을 마지막으로 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회의실에서 귀빈들을 맞지 않으면 안된데 대하여 량해를 구하고 서울해방을 축하하여 찾아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시하시였다.

《어저께와 오늘 사이 모스크바, 베이징, 베를린, 부다뻬슈뜨, 지어 로마와 뉴욕에서까지 미제는 조선에서 손을 떼라고 군중집회와 시위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나와 우리 인민에 대한 가장 큰 고무로, 축하의 선물로 여깁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매 정부와 인민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통역이 채 말을 끝내기전에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한번 쳐들어 답례를 표하고 시간상 긴 담화는 할수 없으니 필요되는 질문에 대답을 주겠다고 하시였다. 예견하신대로 질문은 인차 제기되였다.

《수상각하.》

맨 구석진데서 나이 지긋한 외국인이 일어섰다.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북유럽의 정치평론계에서 이름있다고 하는 사람임을 알아보셨다.

《저는 1차대전시기부터 기자였습니다. 에스빠냐전선도 가보았고 쏘도전선도 아프리카의 2전선도 보았습니다. 실례지만 지금 각하의 적국으로 되는 나라들의 사령관과 수상들과도 인터뷰를 했습니다.… 서투른 감상을 지레 발표하는것은 이르지만 지금 저는 이 나라가 생사존망의 위험에 직면한 상태라는것을 잊지 않고있는가 할 정도로 각하의 여유있는 태도에 감탄을 금할수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두가 요란한 기자의 이야기에 각성을 가지고 주의를 집중하셨다.

《각하, 저는 이 전쟁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각하의 전체적인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이 전쟁을 단순한 동족분쟁으로 봐야겠는지, 세계정치세력의 대결로 보겠는지… 다 알고싶습니다.

외교관제씨들, 저의 질문을 량해해주십시오.》

외교관들 거의가 그 기자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정치평론가는 모두의 관심사를 한데 묶어 질문한셈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의깊이 그를 응시하다가 말씀을 떼시였다.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말하자면 부득불 과거부터 소급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격앙되는 흥분을 느끼며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계속하시였다.

《력사를 파헤쳐놓고 볼 때 인류에게 무서운 참화로 새겨진 2차대전은 뮨헨협정에 의한 체스꼬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제는 조선을 그러한 도이췰란드의 <체스꼬>로 만들려고 하고있습니다. 11년전 세계의 비렬하고 어리석은자들의 묵인하에 체스꼬를 먹은 나치스는 큰 맹수로 둔갑하여 뽈스까를 삼키고 프랑스를 걷어쥐였고 영국에 포문을 돌렸습니다. 그때야 세계는 <파쑈도이췰란드>의 위험성을 깨닫고 무장을 갖추기 시작하였으나 늦었습니다. 그 깨달음의 지체는 수천만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일부 사람들은 1939년에 영국이나 뽈스까의 정치가들이 리해하던것처럼 미국을 딸라의 나라로만 알았지 세계를 통채로 위장에 집어넣으려는 허기증에 시달리는 맹수임을 모르고있으며 포츠담회담에서 코를 떼운 트루맨이 뒤에 돌아가 군수독점체의 지령밑에 얼마나 무서운 열전의 무기를 제작하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외면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발과 발톱을 벼른 미국은 오늘 조선을 자기의 첫 침략대상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조선전쟁을 다만 프로레타리아와 부르죠아지의 반목과 모순에 의한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사상과 제도와 리념의 차이로부터 오는 민족공민전쟁으로만 보고있습니다. 유엔마저 미국의 대변조합이 되여 세계라는 이름을 걸고 우리를 비방공격하고있으며 미국은 이에 더욱 기고만장하여 자기의 기도실현에 박차를 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리승만군대는 덤벼드는 첫걸음에 된탕을 먹었고 오늘은 저희들의 이른바 수도라던 서울까지 내주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워싱톤의 선전내용으로 따른다면 민족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북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리념상 적의로 시작된 이 <동족상쟁>의 내란은 이미 승부가 내린것으로 됩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시작된데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지금 미국내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이 그칠새 없지만 트루맨행정부와 펜타곤, 월가의 전쟁상인들은 그 목소리에 관계없이 전쟁의 불을 더 크게 지피려 하고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리성을 돌이킨다면 전쟁은 멈춰질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승냥이가 양으로 변할수 없는 리치와 마찬가지로 한갖 꿈에 불과한 일일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미국이 조선과 나아가서 아시아, 씨비리 전체를 먹으려는 침략의 야망에서 시작된것이기때문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전쟁은 미제국주의가 조선과 나아가서 아시아와 사회주의진영전체를 병탄하려는 세계적인 싸움의 첫시작으로서 우리에게는 반제민족해방전쟁으로 되는것입니다. 현재 미국은 7함대와 5공군으로 이 전쟁에 참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래일에는 미지상군까지 덤벼들것입니다. 그때면 싸움은 매우 어려워질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을것이고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기자선생… 그때에 가서 더 봅시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모두의 얼굴빛이 그 엄청난 사변을 그려보듯 긴장되여있었다. 그때 유럽인치고는 키가 작다고 볼 암팡진 몸매의 한 대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섰다.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젠가 신임장봉정식때 자기를 사냥애호가라고 소개하면서 《장군님의 사격술이 신묘하다는데 그 비결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청하던 일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그리였다. 대사는 외교적호칭을 뛰여넘어 그때처럼 《장군님!》 하고 부르고는 잠시 있다가 힘겹게 말을 떼였다. 《지금 장군님께서 분석하신것처럼 미국은 딸라와 선전수단으로 적지 않은 나라들을 매수하고 국제련합으로 신생공화국을 짓밟아버리려 하고있습니다. 예언대로 미국의 륙군까지 총 출동한다면 비례상 대비도 안되는 싸움으로 될것입니다.

비록 귀정부의 군대와 인민이 매우 용감하고 영웅적이나 그앞에서는 매우 바쁠것입니다. 그러니만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울까지 나가서 위력을 보인이상 더 나가지 않는것이 어떤가 하는것입니다.

지금의 경이적인 승리에 세계가 놀라고있을 때 철수한다면 아무리 파렴치한 미국도 더는 덤벼들 구실이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눈길로김일성동지를 주시하였다.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속에 태풍같은 격한 감정이 치솟는것을 간신히 억제하고 물으시였다.

《당신네 집에 강도가 뛰여들면 어쩌겠습니까?》

대사는 긴장어린 태도로김일성동지를 응시하다가 통역의 말을 듣고는 씽긋 웃었다.

《수상동진 저에게 쏴잡아야 한다는것을 권고하는군요.》

《그렇습니다. 동무야 렵총의 명수가 아닙니까. 양우리에 기여든 승냥이는 때려잡는 길밖에 없다고 이미 이소프시대에 다 밝혔습니다. 그냥 둬두면 또 달려들것이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사를 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우리의 처지에서는 끝까지 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의지이며 결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민은 원체 가축을 물어가는것이 호랑이라 하더라도 다 쫓아가 때려잡는것이 생리로 되여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나는 각성된 인민의 의지는 불패이라는 진리로 대답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 인민은 모두가 영웅으로 될것입니다.》

《수상동지!》

대사는 뭔가 격렬한 웨침을 터뜨릴듯 하다가 두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쳤다.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뒤따랐다. 누군가 《코레아! 게로이(영웅)!》 하고 감격하여 웨쳤다. 그러자 박수소리는 더 높아졌고 《브라보!》 《게로이》라는 말이 합창처럼 터져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손을 저어 그들의 환호에 답례를 표시하시였다. 접견담화가 끝난 뒤 스티꼬브를 비롯한 몇몇 대사들은 따로 남아 그이께 본국과의 합의가 있었다고 하면서 필요되는 원조품목들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의 제기가 고마우면서도 한편 서글픈 느낌을 체험하셨다. 어저께만도 전쟁의 추이를 불안스럽게 주시하던 그들이였다. 그들과의 접견을 마치고 집무실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심한 피곤을 느끼셨으나 휴식할수 없으셨다. 전선동부와 중부의 전투정황을 료해하시고 해당 지시를 떨구시였다. 간난신고를 거듭하여 서울측방에 이르렀다가 남한강으로 진출하는 최현부대에는 원래의 수원이 아니라 진천방향으로 계속 진격을다그치라고 명령을 주셨다. 저녁켠에는 만경대의 김보현할아버지가오셨다. 서울해방을 축하하여 보내는 만경대사람들의 소박한선물인 과일꾸레미를 힘겹게 가지고 온 할아버지는김일성동지의축가신 신색에 놀라며 오늘밤만은 꼭 집에 들어가 쉬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김일성동지께서는 그리하겠다고 대답하셨으나 일감은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새로 꾸리는 군수공장문제를 두고 김책이며 정준택국가계획위원장과 저녁시간을 다 보내고난 뒤끝에는 재정상을 만나 남반부해방지역에서 전시수송사업에 동원된 사람들의 생활보장문제까지 토론하시였다. 그 담화가 끝날무렵에 전방지휘소의 전투보고서가 련락군관편에 도착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강건의 편에, 그리고 어제밤 련락군관을 통해 보낸 2차작전방침에도 강조하여 밝히신 한강을 급속도화하여 진격속도를 멈추지 않을데 대한 지시에 따라 늦어도 래일 저녁으로 한강도하를 개시하겠다는 한줄짜리 대목을 보시고 좀 늦는다고 생각하셨으나 지방자재를 모아 다리복구를 하자면 그만한 시간이 걸릴수밖에 없다고 보셨다. 전화가 개설되였다면 실행여부를 다시 확인하고싶으셨으나 무선은 전파장애로 잘 안되고 46년에 끊어진 평양-서울전화선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서 마감부분에 밝힌 체포한 적 고위급인물들의 명단을 보시고 보위성 문화부상 김일을 찾으셨다.

오늘밤 서울에 나가게 된 김일은 인민군화보의 표지규격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그이께서는 화보와 인민군신문의 편집내용에 대하여 몇가지 의견을 주시고 포로된 남조선 고위급인물처리에 대하여 말씀을 주시였다.

《<정부>나 <국회>의 인물들을 구속하는 놀음을 하지 말아야 하겠소. 물론 리승만이나 그 졸개같은 극반동들은 제외요. 나라를 팔아먹고 손에 인민들의 피를 묻힌자들은 용서할수 없지요. 그러나 여기 안재홍이같은 사람들까지 잡아둔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소. 사상이 좀 다르다는것이 무슨 큰 문제겠소. 제나름대로 보고 사느라면 다 생각이 있겠지요. 늙은분들인데 생활보장에까지 우리가 관심해야 할것 같소. 그리고 김규식이나 최동오선생같은 분들에 대해서는 자택경비까지 서줘야 할것 같소. 적들의 도발적인 테로가 있을수도 있소. 그리고 홍명희선생의 부탁인데 성송암이라는 학자에 대해서 알아보오.》

김일을 떠나보내신것은 10시 조금 지나서였다.

그이께서는 밖에까지 그를 배웅해주시며 마지막으로 한강도하대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여 말씀하시였다.

11시부터는 군사위원회를 지도하시였다.

인민군대렬을 보충하며 부대들의 후방공급사업조건을 잘 보장할데 대한 문제를 토론한 뒤 공화국영웅칭호를 제정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셨다. 영웅칭호제정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제기는 전폭적인 지지찬동속에 채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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