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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선언한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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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7-06 22:19 조회2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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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1

씩씩씩… 찌찌찌찌… 쉬이쉬이쉬이… 맴맴맴맴… 피리리, 피리리, 피리리… 치이익, 치이이익, 치이이이익… 삐삐삐삐, 삐삐삐삑… 리리릭, 리리릭… 곤충들의 울음소리는 단절음의 지속적인 반복이였다.

수풀속은 그 소리로 가득찼다. 수풀이란 동리의 그 거주자들은 따스한 해빛과 만발한 꽃들이 날리는 향기와 푸르싱싱한 풀잎들이 미풍에 살랑대며 풍기는 신선한 기운에 취하여 자기들이 누리는 행복을 목청껏 노래불렀다. 서로 경쟁적으로… 비록 외마디 단절음의 반복이지만 거기에 저저마다의 감정을 넘쳐나도록 담아 부를줄 아는 본능의 표현력도 신기하지만 하나하나 소리들의 독특한 색갈과 장단이며 어느 소리도 전반적인 화음을 깨뜨리지 않는 그 신비한 조화에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당기지 않을수 없었다.

류성희는 수풀속에 앉아 저아래쪽 호수의 가녁에서 헤염을 치고있는 사나이를 지켜보고있는것 같았으나 풀벌레들의 교향악에 정신이 더 팔려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여가도 있어 그는 오래간만에 1백에 들려 화장품 몇가지를 사들고나오다가 출입문에서 검질긴 사나이, 송기선이와 마주쳤다. 기선은 누구한테서인가 행처를 알고 뒤쫓아온듯 한 기색이였으나 그런 내색은 전혀 비치지 않고 문밖으로 따라나와 주차장에 서있는 고물같은 자가용차옆으로 끌고갔다. 그리고는 례절바르게 집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하면서 동무한테서 빌린 차라는것도 밝혔다.

성희는 걸어가겠다고 앙탈을 부렸지만 기선에게 떠밀려 그리고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여겨보는것이 창피스러워 차안으로 들어가고말았다. 차는 집쪽으로 가는듯 하더니김일성광장에서 휙 돌아 반대방향으로 내달렸다.

천리마동상밑 대통로를 따라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당장 세우라, 세우지 않으면 문을 차고 뛰여내리겠다고 위혁적으로 소리쳤다. 사나이는 응대도 안하고 냅다 몰았다. 성희는 망나니, 날강도… 온갖 모욕적인 욕설을 다 퍼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차가 룡성도로에 나섰을 때 자존심을 자극할수 있는 가장 모욕적이고 결정적인 말이 떠올랐다.

《나는 동무를 보기만 해도 역겨워요. 구역질이 나요!》

차가 스르르 멎어섰다. 사나이는 이마를 조향륜에 박았다. 잔등이 푸들푸들 떨었다. 우는것 같지는 않았다. 기선은 조향륜에 이마를 박은채 귀청이 떨어지도록 사납게 소리쳤다.

《내리라! 나는 동무 엄마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요. 내리오!…》

성희는 놀랐다. 엄마가?… 자기가 너무 지나친것 같고 1년남짓 자기를 따라다니며 속을 태운 청년이 측은해지기도 했다. 남성적인 자존심, 늘 비굴하게 구걸하다가 갑자기 사나와져 부정해버리는 그 단호한 기상에 마음이 흔들렸던지 차에서 내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여기 먼 교외의 호수가로 오게 된것이다.

숲속에 들어온 기선은 미안하다거나 여기가 어떤가라고 묻든가 다정한 소리 한마디 없이 차에서 꺼내온 팽팽하게 부푼 비닐구럭을 (안에 식료품이 들어있는것 같았다.) 그의 발밑에 던지고는 아래쪽으로 스적스적 걸어내려갔다. 호수가에 이른 그는 옷을 와락와락 벗어 모래불에 내던지고는 하얀 구름이 거꾸로 비낀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성희는 헤염치는 그한테서 눈길을 떼고 수풀속에 누워버렸다. 무심결에 풀가지를 꺾어 잘근잘근 씹으며 풀벌레들의 노래소리를 듣다가 저 동무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것일가 하고 생각하였다. 문득 민옥이라는 동무의 아버지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간호원학교 동창생이고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민옥의 아버지 문성로선생은 유명한 고생물학 박사로서 다소 현학적인데가 있지만 어떤 때에는 딸의 동무들을 앉혀놓고 가슴에 남아 길이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를 했었다.

어느 명절날 민옥의 아버지는 이제는 너희들도 사랑이란 감정을 체험할 나이에 이르렀는데 깊이 알아야 한다, 이 신성한 감정에는 생명발전의 수억년에 달하는 장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다, 이 감정은 인간을 인간으로 되게 하였으며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징표중의 하나라고 하면서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함부로 홀시하거나 구속하거나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참사람은 사랑앞에서 가장 성실하고 진실한 면모를 보인다고 력설하였다. 그리고는 취흥에 불깃해진 얼굴로 그 감정의 진화발전과정을 구수한 옛말처럼 엮어 이야기하였다. 단세포동물인 아메바는 세포분렬로써 번식작용을 하여 후대를 증식하였으니까 다음에 출현한 강장동물은 자웅을 한몸에 지니고있어 사랑의 열정이나 번민을 몰랐고 혼인의 례법도 없이 후대를 증식할수 있었다. 곤충기에 이르러 비로소 자웅이 갈라졌는데 그것들한테도 사랑의 감정이 없었다. 너희들이 탁아소, 유치원, 인민학교 시절에 남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데 어울려 뛰논것은 이런 진화과정의 유전적인 반복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러니까 수억만년의 진화과정을 십여년동안에 걸친셈이지. 진화론적으로 볼 때 지구상에 척추동물이 생기고 거기에서 포유류가 갈라져 나온 다음부터 어미가 새끼한테 먹이는 따뜻한 젖과 함께 사랑의 가장 원시적이고 맹아적인 감정이 움텄다고 말할수 있다. 피가 차겁고 사나운 파충류의 공격을 물리치고 새끼를 보호해주면서 그 싹은 점점 곱게 피여나기 시작하였다. 류인원을 거쳐 인간이 출현하여 근면한 로동을 통해 물질정신문화가 발전하면서 인간에게는 개성이라는것이 생겼다. 어느덧 개성은 사랑을 선택적인 감정으로 만들었다.

모든 남성이 모든 녀성을, 모든 녀성이 모든 남성을 사랑하던 시기로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상대만을 골라 사랑하고 혼인을 맺는 시기로 넘어왔다. 선택적인 사랑은 우리의 성춘향을 피투성이로 형틀에 쓰러지게 하고 로메오와 쥴리에트를 자살시키면서, 시인 뿌슈낀을 격투의 총탄에 쓰러뜨리면서 본능의 성애에 저항하고 더더욱 선택적인 감정으로 벼려졌으며 절개와 의리, 불굴의 정신으로 풍부해지고 시적으로 승화되여왔다.

인간은 봉건의 구속과 편견을 박차고 동정마저도 돈으로 사고 파는 황금만능, 자본의 시궁창을 헤쳐오며 사랑을 지키고 꽃피워오면서 하나의 륜리적인 기준을 정립하였는바 그것은 사랑과 혼인을 어떤 부대조건도 없이 넋과 넋의 공감과 융합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이다. 이렇게 장구한 력사를 통하여 발생완성되여온 인류공통의 감정을 소홀히 다루면 수수만년 흘러온 대하를 잘못 다스려 재난을 당하는것처럼 엄청난 화를 입을수 있다.

때문에 배우자선택을 일생을 좌우하는 운명적인 문제로 여기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성희는 그후 자기보다 일찌기 결혼하여 신혼생활의 행복을 한껏 누리는 벗들을 볼적마다 은근히 부러움도 들었다.

성희는 도로 일어나앉아 호수물에서 청춘의 열정과 힘을 시위하듯이 곱등어헤염을 정신없이 치고있는 사나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선택을 두고 생각하였다.

(왜 나를 선택했고, 나는 왜 그 선택에 응하지 못하는가…)

그한테 문성로박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기를 선택한 까닭을 끝까지 밝혀내고 그에 응하지 못하는 원인도 고백하여 오늘로 이렇게든 저렇게든 끝장을 내고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호수물에서 나와 옷을 입고 수풀속으로 올라온 사나이는 《어, 시원하다!》는 소리를 련발하며 처녀한테로 다가왔는데 축축히 젖은 머리며 물방울이 맺혀있는 얼굴이며 목 그리고 온몸에서 난생처음 맡아보는듯 한 살냄새가 확 풍겨왔다. 성희는 화딱 놀란 사슴처럼 주춤 물러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기선은 소리없는 사자웃음을 벙긋 웃어보이고는 비닐구럭옆에 웅크리고 앉아 그안에서 빵 두개를 꺼내 하나는 입에 넙적 물고 다른 하나는 그에게 던져주었다. 얼결에 허리를 굽히며 받아쥐였다.

《허허?… 송구를 했댔어?》

재미나는데도 있는 동무같았다. 그러나 눈이 올롱해서 대답을 안했다. 다른 말이 나왔다.

《가겠어요.》

《가지 뭐…》

《나 혼자 먼 평양까지 어떻게 걸어가요. 태워다줘요.》

《공짜로?》

《그럼 뭘 내라요?》

《이걸… 이걸…》 하고 사나이는 주먹으로 심장쪽을 툭툭 때려보였다. 성희는 터무니없기도 하고 노는꼴이 재미나고 우습기도 하여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쏘듯이 말했다.

《묻는 말에 죄다 솔직히 대답하겠어요? 다 알아보고 낼수 있으면 내겠어요.》

송기선은 수집음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대담성이며 개방적인 말투에 좀 기가 질린듯 주눅이 들사한 얼굴로 처녀를 지켜보았다.

《첫째로 엄마한테 자기 아버지가 온다고 했는데 어째 오지 않나요?》

《글쎄… 아마… 거기서 수해복구가 한창 벌어져 몸을 빼지 못하는것 같소.》

《아버진 왜 불렀어요?》

《왜 불렀는가구? 동무네 할아버지를 만나게 하자구…》

《할아버지가 여기에 무슨 상관인가요?》

《그러지 마오. 난 동무네 가정내막을 다는 모르지만 좀 아오. 할아버지 승낙이 없으면 모다구 하나 옮겨박지 못하는걸…》

《누가 그랬어요?》

《생각해보오…》

《다시 할아버지를 건드렸다간 가만있지 않겠어요.》

《어쩔테요? 치겠소?》

《가버리겠어요!》

《평양으로?… 걸어서… 백리길을? 하하하…》

《간다면 가요!》

《히야, 대단한데…》

《할아버지를 만나서는 어쩌자는거예요?》

《설복해보자는거요. 그 봉건제왕을… 아차 또 실수했군… 잘못했소. 신성모독으로 여기지 말아주오. 말버릇이 고약해서… 막돼먹은 놈이 돼서… 할아버지가 반대하는걸 알게 됐소. 회사의 내 직업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렇지 않소? 좀 진지하게 말해주오.》

《그러지요. 할아버지는 그런 직종의 사람들을 경계하고 천시하는건 요새 류행되는 편견이라고, 사람나름이라고 했어요.》

《그럼 왜 싫어하오. 나를 어떻게 알고있소?》

《싫어도 좋아도 하지 않아요. 그저 좀 간이 모자란다고 했어요.》

《간이라는건 무슨 소리요?》

《소금이지요. 평양비행장에서 만났던 일이 생각나요?》

《…》

《그때 타이손님을 할아버지와 나한테 데리고와서 인사시키고 필요도 없는 말을 많이 했지요.… 그때 간이 모자란다고 했어요.》

《싱겁다는건가? 허허…》

《웃을 일이 아니지요. 할아버지와 같이 인생체험이 많은 분들은 싱겁다, 짜다 그런것만 보고도 사람됨을 가늠하지요. 속담에도 있지 않아요. 장맛을 알자면 어떻게 해도 된다는…》

《령감태기…》

《뭐라구요?》

《실수했소.》

《좋아요. 할아버지를 모욕하는걸 보면 동무한테는 나를… 내 마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어요. 처음부터도…》

《그렇다면 일년이상이나 찾아다녔겠소?》

《탐욕, 그것은 무서운 탐욕때문이예요.》

《뭐라구?!》

《사랑이 무언지 알아요?》

《모르오. 좀 강의해주구레.》

《동무한테는 타산밖에 없어요. 엄마는 속일수 있어도 난 속이지 못해요, 못해요! 우리 가문… 아버지와 삼촌… 특히 삼촌의 힘을 빌어 출세의 길을 열자고 타산했지요… 우리 삼촌은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당중앙위원회 일군을 뭘로 알아요?!》

《어, 그런건 우리 아버지 힘만으로도 넉근하오.》

《왜요. 그 만능의 아버지와 삼촌이 힘을 합치면 더 헐하게 총국장도 될텐데요.》

《판단이 멋들어지구만. 그런걸 뭐라고 하는지 아오? 정신적테로라는거요.》

그리고는 불이 황황 이는듯 하면서도 구슬픈 빛이 어린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나는 동무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줄은 몰랐소. 이때까지 내가 한 경솔한 말들은 다 롱말이였소. 다시는 찾아가지 않을테니 안심하고 생활하오. 어머니한테 내 마지막인사나 전해주오.》

송기선은 일어나 처녀앞을 세번 왔다갔다 거닐다가 등을 돌려대고 서서 호수쪽을 바라보며 움직일줄 몰랐다.

《이게 무슨 꼴인가 아! …테르무트… 싼토스… 고메스… 그들이 내 이 꼴을 보면 무어라고 하겠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특수교육을 받고 아프리카에 파견됐댔소. 항쟁투사들을 도왔댔지. 더위… 열풍… 젠장 왜 이런 소릴 하는가… 갑시다! 정말 미안하게 되였소.》

그는 홱 돌아서 아래쪽으로 성큼성큼 걸어내려갔다.

성희는 오도카니 앉아있다가 일어나며 치마자락에 묻은 풀잎들을 털어버리고 비닐구럭을 들었다. 그리고는 맥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따라내려갔다.

머리가 핑 돌았다. 한손으로 이마를 싸쥐였다.

(이 동무는 자기를 깊이 감추고 사는 사람이 아닌가?… 비밀사업의 타성일테지… 싫으면 싫다고 점잖게 거절할것이지 왜 자꾸 모욕했을가… 이런 사람을…)

성희는 모진 자책과 자기 모멸감에 가슴이 허물어지는듯싶었다. 송기선은 열댓걸음 아래쪽 소나무그늘밑에서 처녀를 흘깃 돌아보고는 다시 결패스럽게 걸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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