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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32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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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14 08:33 조회7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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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32 회)

12 장

네거리, 전차길 복판에 한 군관이 서있었다.

온 얼굴에 붕대를 칭칭 동인 그 군관은 초점없는 눈길로 하늘과 땅, 집과 사람들을 보았다. 향방도 목표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자태였다.

떼지어 밀려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번씩은 꼭꼭 그에게 멎군 하였으나 그는 그에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애당초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있다. 《빙과, 빙수, 화채, 수정과… 인민군대님들에게 무상봉사!》라는 간판을 세우고 흰 차일이 드리운 그늘아래에서 부채질을 슬슬하며 오가는 손님들을 불러들이던 청량음료의 대머리는 몇번이고 일어나 그에게로 갈듯 하다가도 그 군관의 시선과 부딪치면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앉았다.

《단단히 상심이 든 장교로군.》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차도로 해방된 수인들이 탄 차가 굴러왔다. 수기를 젓고 노래를 부르는 하얀 얼굴의 수인들을 눈청이 흐릿해 바라보던 대머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뛰여나오며 그 차를 막았다. 다짜고짜로 내리라고 소리치고는 운전칸에 앉은 사람부터 끌고내려서는 차일밑으로 끌어갔다. 화채인지 수정과인지를 버치채로 식탁우에 올려놓고는 고뿌에 떠 권한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리는 족족 매 수인과 악수를 하고는 고뿌를 권하고 그 마시는양을 지켜보며 만족한 웃음을 그들먹이 채운다. 전차길에 섰던 군관이 그 수인들을 보다가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방된 이 수인들이 다시 차에 오르자 더 따를념을 안하고 다시 멍청히 굳어져있다.

《장교님!》

대머리가 용기를 내여 말을 걸었다.

《수정과외에 막걸리도 있습니다.》

군관은 무슨 말인가 하는듯 대머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맙습니다.》 하고는 그대로 서있었다. 대머리가 달려가 알른알른거리는 놋그릇에 수정과를 담아오자 군관은 머리를 젓고 돌아섰다. 대머리는 실망한 기색으로 몇걸음 쫓아가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원 장교님, 너무합네다. 내 이래뵈두 려수항쟁때 아들을 바친 사람입죠.》

군관은 대머리의 말에 전혀 무감각이였다.

그는 림운학이였다. 땅크우에서 화상을 입은 그는 후송치료를 요구하는 땅크련대 군의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형무소의 감방들을 뒤졌다. 련화를 찾아내지 못한 그는 지나가는 군인들의 차를 얻어타고 서대문감옥으로 갔다.

감옥에서는 안전일군들이 도망치지 못한 감옥관리들을 심문하고있었다. 문건들을 선별하던 한 안전군관이 그의 사정을 알고 심문중의 사찰계장에게 물었으나 수만명의 《죄인》을 상대한 놈의 기억에서 림운학의 아버지나 성련화의 존재란 남아있을수가 없었다. 운학은 경비소대전사들의 충고로 감옥뒤의 묵정밭을 돌아보았다. 죄인들을 학살하고 대강만든 가무덤들이 널려있는곳이였다. 거기서 헛탕을 친 그는 홍제원화장터에까지 갔다.

사람들로 인산인해인 홍제원화장터는 《아버지!》, 《오빠!》를 부르는 녀인들의 목멘 통곡소리로 차고넘쳤다. 운학은 통곡하는 사람들사이를 헤집으며 구뎅이에 줄느런히 쓰러진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화장터를 내리다가 그는 조총의 일제사격소리를 들었다. 아카시아숲속에 커다란 봉분이 있고 열댓명의 군인들과 꽃을 든 녀인들, 맨 머리바람의 수인들 몇이 서있었다. 봉분앞에는 커다란 흰 무명천이 주렴처럼 드리워있었다. 《고이 잠드시라! 우리 생명의 구원자들이여… 서대문형무소 수감자일동…》이라는 먹붓글씨가 유난히 눈을 찔렀다. 운학은 수인들속에 행여나 아버지가 있지 않을가 하고 살피다가 단념하고말았다. 화상에서 오는 열감과 동통으로 쑤셔대는 몸을 끌고 3년전까지 하숙으로 정하고있던 무교동의 먼 친척집으로 찾아갔었다. 그 집에서는 낯모를 녀인이 나와 원래 살던 가족은 이미 48년도에 《부역자》집안으로 몰리워 어딘가 먼 산골로 추방당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운학은 그처럼 환희에 넘쳐 그려보군 하던 상봉의 꿈이 가닥가닥 찢겨나가는 뼈저린 고통을 감수했다. 이젠 두번다시 아버지를 만날것 같지 못한 절망감이 그를 윽죄였다. 대돌에 주저앉은 그는 얼굴을 싸쥔채 한식경이나 까딱않고있었다.

감옥 면회실 창구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그리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집주인녀자가 어쩔바를 모르며 찬물사발과 무슨 고약을 들고나타나 권할 때에야 간신히 자신을 다잡았다. 그는 림천이라는분이 혹시 오게 되면 아들이 왔다는것을 알리라 하고는 친절한 녀인의 동정어린 눈길을 받으며 그자리를 떴다.

걸음걸음 다가서는 아버지에 대한 상서롭지 못한 예감에 짓눌린채 계동의 성련화네 집에 이르니 그 역시 빈집이였다. 몽우리 앉은 무궁화나무를 우두커니 서보는데 한 녀인이 쪽문옆에 서서 지켜보다가 누구냐고 물었다. 운학은 이 옆집에 살던 두부장사아낙을 알아보았다. 운학은 그 녀인에게서 성련화의 아버지가 오늘 새벽 괴뢰장관의 차를 타고 도망쳤다는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련화에 대해서만은 그 녀인도 아는것이 없었다.…

독립문쪽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켜서서 인민군대만 나타나면 《만세!》를 목터지게 불렀다. 따뜻한 미소가 어린 감사의 눈길들이 가는곳마다에서 맞았다. 남대문에 이르자 꽃과 기발로 장식된 커다란 물체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전차였다. 땡, 땡, 땡.

연거퍼 울리는 종소리에 운학은 부지중 미소를 머금었다.

활짝 열린 차창마다엔 공화국기와 빨간 수기들이 내밀리여 흔들리였다. 운학이 성급히 전차길에서 물러나자 전차는 그를 위해서인듯 불시에 제동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타십시오!》

량볼에 진한 홍조가 물든 젊은 운전수가 상냥스럽게 미소하며 소리쳤다. 운학이가 전차에 오르니 초만원이였다. 온 서울이 전차에 오른셈이였다. 아이, 어른, 할머니, 젊은 녀인들까지 있었고 운학이처럼 초청을 받은듯 한 군인들 몇이 만족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운학은 로동복차림의 한 청년이 내주는 자리를 마다하고 전차안을 깐깐히 훑어보았다. 모두가 명절맞이를 가는 얼굴빛들이였다. 어디 일이 있어 가는 사람이란 하나도 없었다. 누구도 무엇때문에 이 전차를 탔는지 모르고있었다.

(이 전차를 련화와 함께 탈 때면 그는 늘 맨 앞에 서곤 했고…)

운학은 길게 드리운 손잡이끈에 머리를 대이고 잠시나마 아릿한 추억에 눈을 감았다.

(련화, 련화는 지금 어데 있는가. 아버지와 너를 구하려 온 내가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도 너도 없구나.)

그러자 또다시 조총소리가 귀에 울리고 죽은 전사의 모습이 눈앞에 지나가며 이 기쁨에 젖은 군상과 엇섞여 돌아갔다.

《장교동지, 앉으십시오.》

캡을 쓴 사민 한명이 또다시 일어나 자리를 권하였다. 운학은 자기가 비칠거렸음을 깨닫고 몸을 꼿꼿이 펴고 밖을 내다보았다. 거의 집집마다 공화국기가 걸려있었다. 큰것, 작은것, 창가와 마당에 선 사람들마다 전차를 향해 손을 젓고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종주먹을 쥐고 달려오고있었다.

《동해면옥!》

커다란 낯익은 간판이 보였다. 운학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추운 겨울날 그 엄동의 날에 무슨 바람이 불어 련화앞에서 그처럼 희떱게 놀았던가.

《국수를 좋아해요?》

《그렇소. 우리 평양사람들은 랭면이라 하면 다 두세그릇씩이요.》

《그럼 세그릇 살가요, 랭면으로.》

《사오.》

그 찬국수를 다 먹고 밖에 나와 덜덜 떨 때 련화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지.

《바보!》

《그렇소. 난 바보온달이고 동문 평강공주.》

《공주란 좋지 않아요. 차라리 선녀 아니, 눈꽃이라고 부르세요.》

련화는 뱅글뱅글 떨어져내리는 눈송이를 잡아쥐려 손을 뻗치며 재롱스럽게 말했다.

국수집은 안에는 물론 밖에까지 사람들이 서있다. 중절모 쓴 점잖게 생긴 사람이 국수를 받아들고 서있는것이 우습게 보였다. 먹을 자리가 탐탁치 않아서인것 같다. 긴 의자마다 사람들이 줄져앉았다. 한사람이 일어나며 그 중절모를 앉히자 마치 그들은 친구이런듯 인사를 건넨다.

중절모는 역시 점잖게 나무저가락을 쪼개여 국수를 한번 휘젓는다. 이제 후루룩- 삼키겠지 하는데 중절모는 지나가는 수인 한명을 보더니 벌떠덕 일어서 내달렸다.

아는 사인가? 아니였다. 중절모가 뭐라 말하자 수인은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끝내는 그 손에 끌려와 중절모가 받았던 국수 그릇앞에 앉았다. 중절모는 그 죄수복이 저가락을 들고 먹는것까지 지켜보다가 국수집안으로 사라진다.

거리의 군상은 다양했다. 리야까를 끌고가는 군인, 그옆에서 황송해 어쩔바를 모르며 따르는 로인, 리발의자를 아예 문밖에 내놓고 머리를 깎는 위생복차림의 리발사, 그옆의 리발소 표식판에는 긴 종이장이 너펄거렸다.

《해방리발을 해드립니다. 오늘 당일만은 무료!》

아이들이 오구구 떼지어 줄지어 서있었다. 림운학은 왜서인지 눈앞이 흐려지였다. 눈앞에 스쳐지나는 건물, 번쩍이는 유리창… 유리창까지 그대로 있다…

그늘진 담벽밑에서 총들을 껴안은채 잠든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옆에는 말아놓은 돗자리며 방석들이 있었다. 집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끝내 성공 못한 사람들이 해방자에 대한 정성으로 꺼내온것들일것이였다.

전차가 급제동을 거는바람에 운학은 정신을 차렸다.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창밖으로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전차문을 열고 뛰여내렸다. 운학은 무슨 일인가 하여 밖을 내다보았다.

전주대밑에 숱한 사람들이 둘러싸여있었다. 그 전주대꼭대기에는 통신병 한명이 가름목에 넌쩍 올라앉아 주둥이가 삐죽이 나온 확성기를 통신줄로 비끄러매고있었다. 그 확성기에서는 힘찬 노래소리가 왕왕 울려나왔다. 운학은 성부와 화음이 맞지 않는것으로써 방송국을 장악한 군인들이 부르는것임을 알아맞혔다. 만세와 돌격함성속에 쉬여버린 목청이였다. 그러나 감격과 열정에 목메인 그 소리는 어떻게나 가슴을 세차게 치는지 운학은 한동안 주변의 움직임도 잊다싶이했다.

운전수로부터 로파에 이르기까지 홀린듯 노래를 들었다. 전차안이 인차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노랜가?》

《그것도 몰라?》

《당신 알아?》

《저 노래도 모르는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난 48년도 단선반대때부터 저 노랠 불렀지.》

림운학은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줄줄이 볼을 타고 내렸다. 그는 차창에 머리를 대이고 오래도록 눈물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조선민족의 얼이고 정신이고 량심이다. 우리 전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예까지 왔고 또 갈것이다.)

그는 이 전차안에 대고, 아니 이 맥박치는 도시전체를 향해 목이 터져라 웨치고싶은 불같은 충동에 휩싸였다.

서울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웃으며 활보하는 이 도시 이 거리가 어떻게 남아있게 되였는가를 당신들이 자자손손 살며 물려온 집들과 당신들의 안녕을 위해, 력사깊은 도시의 유적들을 위해 민족의 봄을 가져오기 위해 이 길에서 흘린 전사들의 피와 땀,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뜻을.

서울이여, 서울사람들이여, 이것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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