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여름 28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 조선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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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28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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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10 09:30 조회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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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28 회)

11 장

똑똑똑, 똑똑똑

옹골차게 쥐여진 녀인의 주먹이 거멓게 쩌들은 세멘트담벽을 두드린다.

성련화는 오도카니 앉아 그 통방신호를 지켜보고있다. 백정식의 마수에서 벗어나 달리다가 다시 경찰서, 헌병대를 거쳐 이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온 성련화는 다행스럽게도 《국대안》반대투쟁에 나섰다가 잡힌 처녀들, 로동쟁의에 떨쳐났던 녀공들이며 제주도의 이름짜한 해녀들과 한방살이를 하게 되였다. 통방신호를 날리는 후리후리한 체격에 두눈이 호남자의 눈처럼 억실억실한 그 녀인은 제주도폭동시 한 소조장이였다. 그 연고로 또 상대를 압도하는 기품과 폭넓게 사람을 감싸는 마음으로 이 방의 호주로 되고있다.

지금 그 녀자의 통방신호를 보지 않는 녀자는 련화옆에 망낭둥이라 불리우는 녀인뿐이다. 그는 저녁밥을 들여오는 목궤에서 누군가 집어넣은 쪽지를 본 후부터 지금까지 내처 울고있다.

그 쪽지에는 《오늘 오후 려수순천사건관련자들을 흥제원화장터에서 집단학살했음.》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그 려수순천사건관련자들속에 이 녀인의 애인이 있었던것이다.

방금전 그들은 오늘밤내로 형무소 수감자전체를 학살한다는 소식을 옆방에서 보내온 통방신호로 알게 되였다. 방안사람들은 자기들모두에게 닥쳐든 불행앞에서 마지막 최후를 생각하고 다른 호실과 련계를 취하는것이다.

《동무들!》

통방을 끝낸 정록주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한손으로 추어올리며 번쩍이는 눈길로 둘러보았다. 성련화는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제저녁 이리로 오기전 호송차에 실리우며 한 헌병장교의 구두발에 호되게 채운 옆구리가 쑤셔나 이발을 앙다물었다.

정록주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후시각에 다들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어. 그런데 다른 호실들에서는 뭔가 남겨야 한다는거야. 이제 인민군대가 오면… 그래도 이 세상에서 공화국을 우러러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는것을 알려야 한다는거야. 매 사람이 가장 남기고픈… 말하자면 유언이기도 한것을말이야.》

성련화는 《유언》이라는 말에 이제껏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섬찟했다.

(그러니 내가 좀 있으면 영 이 세상에서 사라진단 말인가. 파파 늙었을 때 하게 되는 유언을 이제 한단 말인가.)

정록주가 언제 준비해뒀는지 흰 옥당목자투리를 꺼내 정히 펼쳤다. 그는 자기 동무들을 묵묵히 보다가 련화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련화는 무엇을 남겼으면 좋겠어?》

고개를 쳐든 련화는 뿌연 전등빛에서 자기를 주시하는 엄숙하면서도 더없이 다정스러운 눈길들과 부딪치자 엉겁결에 입을 열었다.

《전… 저의 동무에게 제가 여기서… 간다는 글발을 남기면 해요…》

말을 마친 련화는 문득 려수사건관련자인 애인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녀인의 시선과 부딪치자 고개를 수그렸다.

《그 동무란 누구예요? 물론 비밀이라면 말 안해도 돼요.》

련화는 정록주의 맑고 큰 눈을 보다가 애인을 잃었다는 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미안스러웠다. 그런데 그 녀자의 눈매는 더없이 상냥하였고 눈가에는 동정의 빛까지 어려있었다. 성련화는 이 사람들속에서는 조그마한 비밀도 숨겨둘수 없음을 느꼈다.

《그 동문 저의 애인이였어요. 지금 이북에 가있어요.》

《그래요?! 동문 행복하군요.》

애인을 잃은 녀인은 웃어보이며 련화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련화는 그의 행동이 눈물이 나게 고마왔다.

정록주의 말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나는 이 천에 우리 마음의 태양인 김일성장군님 만세를 피로 새기고 우리들의 이름을 적자는것을 제기해요.》

《언니!》

격동어린 웨침과 함께 주먹쥔 손들이 불쑥불쑥 올라갔다. 련화의 손을 뜨겁게 매만져주던 녀인도 손을 쳐들었다.

련화는 엄숙하면서도 감격에 번쩍이는 눈길들을 보는 순간 자기와 이들과의 아득한 차이를 감득하며 송구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정록주가 그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동무의 소망도 적자요. 적을 자리는 많으니까.》

련화는 그 뜨거운 정이 담겨진 말에 흑 하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죽음이란 때로 비겁한 사람도 용감하게, 용렬한 사람도 슬기롭게 만든다. 그것은 죽음의 목적과 의의가 신성할 때 정화된 량심이 비쳐주는 빛에 고무된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때문인것이다. 격앙된 흥분속에 죽음을 과감히 직시하는 이들은 그러한 승화된 세계의 절정에 이르러 아무런 두려움도 슬픔도 모르는듯 저마끔 손에서 피를 내여 자기 마음속의 가장 소중한 글들을 새겨갔다.

일이 끝났을 때 련화는 벽에 기댄채 지친듯 눈을 감고 운학이를 그려보았다. 운학의 말을 따랐더라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애잡짤한 후회가 가슴을 훑었다. 운학이와의 마지막이 눈물겹게 떠올랐다.

그날 련화가 저녁동자를 마치고 설겆이물을 쏟으러 밖에 나가니 온 천지가 하얗게 눈속에 묻혀있었다. 련화는 흰눈에 얼룩지을 설겆이물을 차마 마당에 쏟지 못하고 울타리밑에 선 무궁화나무밑에 던졌다. 그런데 그 흰눈 쓴 무궁화나무뒤에서 꿈속의 모습인양 림운학이가 표연히 나섰다.

《어마!》

《쉿!》

운학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련화는 문쪽을 얼른 돌아보고는 대야를 뿌려던진채 운학에게 달려갔다. 운학의 손과 옷은 물에 푹 젖어있었다.

《아이!》

《좋은 선물을 받았어.》

운학의 말소리는 덜덜 떨렸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뭐 조금.》

련화는 눈뿌리가 따끔해져 행주치마를 풀어들고 설겆이물에 적셔진 그의 가슴자락을 닦았다. 운학이가 그의 손을 조심히 뿌리쳤다. 그 손은 얼음장처럼 차거웠다.

《집에 들어가요. 동상 걸려요.》

《아버님 계시지?》

림운학은 방문쪽을 힐끗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겁쟁이!》

련화는 이렇게 말했으나 그를 끌고들어갈 담보까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주의바람》에 날뛴다고 하며 운학이가 오는것을 엄금하였다.

《아버님한테 꾸지람 많이 들었소?》

《안…》

련화는 거짓말을 하였다. 사실 련화는 운학에 대한 처사에 맞서 아버지와 몹시 다투었다. 운학이와는 이미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정 말리면 자살하겠다고까지 위협했다.

《아버님 노엽히는 일은 마오.》

운학은 모든것을 눈치챈듯 부드럽게 말했다. 련화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 어떤 륙감에 소스라치듯 놀라며 운학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슬픔에 싸인 모습이였다. 꽉 다문 입,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 그 눈길은 련화의 시선을 안고 깊은 호수처럼 그윽히 빛났다.

《련화!》

운학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그가 한걸음 무섭게 다가왔다. 련화는 얼결에 한걸음 물러섰다. 운학의 손이 련화의 팔목을 잡았다. 련화는 머리가 핑 도는것만 같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어째서인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운학은 몹시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어떻게 건사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을음이 잔뜩 낀 굴뚝모서리를 잡았다.

《손이 어지러워져요.》

련화는 눈살을 찌프리며 아래사람에게 하듯 나무랬다. 림운학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다음 그는 매우 활발한 태도로 건강을 조심하라거니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한다거니 두루 말하던끝에 불쑥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내밀었다.

《이걸 받아주겠소?》

《건…》

련화는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 수첩은 련화도 잘 아는것이였다. 운학이가 좋아하는 작가와 철학가들의 명언으로부터 걸리기만 하면 감옥에 갈수 있는 이북의 노래들이 적힌 수첩이였다. 언제인가 련화가 장난겸 진정겸으로 써넣은 여덟줄짜리 시도 적힌것이다.

운학은 망설이는듯 하다가 말했다.

《난 집으로, 어머니한테로 가오.》

《네? 그럼 전…》

련화는 발밑이 무너져내리는듯 하였다. 운학은 까딱하지 않고 그를 보다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난 련화씨도 함께 가줬음 하오.》

《이북으로요?!… 아버지는 어찌하고… 그리고 거긴 험하다는데.》

《그 험하다는건 반역도배들의 거짓선전이요. 련화, 제발 함께 가주오.》

운학의 숨소리는 거칠었고 눈은 황황히 불을 뿜는것 같았다.

련화는 속이 한줌만해지며 한걸음 물러섰다. 미지의 그 세계는 그에게 공포로만 그려졌다. 운학은 한숨을 짓고 모든것을 체념한듯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는 무궁화나무에 얹혀진 눈을 움켜쥐고는 손가락사이로 녹아내리는것을 즐기듯 보다가 훌 털어버리고 불쑥 손을 내밀었다.

《련화, 벗을 잘 사귀여주오.》

애절한 목소리였다. 련화는 몸부림을 치고싶었다. 그는 슬픔과 야속함에 못이겨 울음질려 소리쳤다.

《나에겐 운학씨보다 더 귀중한 벗은 없어요.》

련화는 끝내 흐느낌을 터치고야말았다. 기침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불빛을 등에 지고 나서는 아버지를 보자 운학은 결심한듯 그쪽으로 다가섰다.

《아버님, 작별인사로 왔습니다.》

《운학군인가?》

《…》

아버지는 끌신을 신고 문밖 대돌에 나와섰다.

《어델 가는가?》

《고향에 갑니다.》

《고향?!… 엄친은 어찌하고…》

《부친께서 분부가 있었습니다.》

《음… 옳은 처사지.》

련화는 몸을 떨었다. 온갖 생각들이 얼어붙은듯 심장만 놀란 새가슴처럼 바삐 뛰였다. 아버지가 상해에 갔을 때 사왔다는 해리털외투를 들고나왔을 때야 자기도 뭔가 움직이고 말해야 한다는것을 알았으나 제정신이 아니였고 발은 땅에 뿌리내린듯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바래주거라.》

외투를 억지다싶이 운학에게 씌워준 아버지가 성난듯 한 음성으로 이 소리를 남기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갔을 때야 련화는 자기일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각이 닥쳐왔음을 알아차렸다.

《안돼요!》

그는 제잡담 운학의 팔굽을 잡아쥐였다.

《이러지 마오.》

림운학은 뼈짬에서 나오는듯 한 힘겨운 소리로 뇌이며 련화의 두손을 꼭 포개쥐였다가 놓았다. 련화는 어쩔바를 몰랐다.

《반동한테는… 시집가지 마오.》

운학의 말은 여기서 끊어졌다. 그는 성송암이 준 외투를 련화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잘 있소.》

그다음 운학은 홱 돌아섰다. 대문밖으로 나갈 때야 련화는 정신을 차렸다.

《운학씨!-》

련화는 목메여 부르짖으며 달려가 그의 팔을 그러잡았다. 외투가 발치에 흘러내려 둘사이에 계선을 그었다.

《가지 말아요.》

련화는 애타게 뇌였다. 운학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운학은 모질게도 련화를 뿌리쳤다. 그다음 비칠거리며 쫓기듯 걸어갔다. 외투를, 외투라도… 련화는 그를 쫓아 달리다가 쓰러지고말았다. 아버지가 찾아나올 때까지 그는 차고 슴슴한 눈을 녹이며 그자리에 그냥 엎드려있었다.

방안에 들어간 련화는 운학이가 주고간 수첩을 펼쳤다. 첫페지에 큼직큼직한 글이 불덩이처럼 살아 꿈틀거렸다.

《련화씨,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죽어도 살아도

            부디 안녕히!》

이처럼 그들의 사랑은 고백과 함께 슬픈 리별로 끝나고말았다. 그때부터 애모쁜 그리움과 괴로움속에 번민어린 나날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축구공을 넣은 그물중태기를 엇가로 멘 상고머리의 낯선 청년이 나타났을 때 련화는 그가 행복과 희망을 가져올 천사인줄 꿈에도 몰랐다. 그 청년은 언젠가 림운학이와 눈물어린 작별을 하였던 무궁화나무옆으로 돌아가 그물중태기에서 축구공을 빼들었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축구공의 죄임끈을 풀고 내피의 바람을 뽑았다. 납죽해진 축구공안에 손을 집어넣고 무슨 요술사처럼 움직이더니 네절로 접은 모조지를 넘겨주었다.

그것은 림운학의 편지였다.

상고머리청년은 경평축구대회로 평양에 갔다가 풋낯이나 알고있던 운학이를 만나 편지를 받아왔노라고 하였다. 련화는 이 고마운 《은인》을 방에 모실 생각도 못하고 굴뚝모퉁이에 쪼크리고 앉아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련화.

나는 동무를 잊으려고 했습니다. (《동무》라는 말 어설피지요? 그러나 나는 련화를 《동무》라고 부르렵니다.) 기억속에서 마음속에서 동무의 자태마저 잊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남남의 평행선을 걷는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나는 이 《결심》이 얼마나 허무한 위선이고 거짓이였는가를 깨달았습니다.

련화, 나는 지금에 와서 동무 없는 삶의 매 순간순간은 아픔과 후회로 이어진 고통의 지루한 시간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동무를 데려오지 못한것, 억지로라도 끌어오지 못한것, 강제로라도 사랑을 쟁취하지 못한것, 이 모든것이 후회로 남습니다.

여기는 창조와 활력의 세계입니다. 랑만과 환희, 희망에 넘치는 동산입니다. 이로 하여 나의 후회는 더 크고 번민 역시 무겁습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한나라, 한민족이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어찌 갈라져 살수 있겠습니까! 《평화통일》을 위한 세찬 움직임이 대하처럼 일어나고있습니다. 나는 동무를 끝까지 기다리기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지금 그대는 무얼 하는지. 그 아름다운 눈동자속에, 고요히 맥박치는 심장속에 이 나를 받아주오. 동무를 떠난 내가 없듯이 내가 없는 동무가 없게 되기를 나는 충심으로 빕니다…

련화는 그 다음날로 상고머리청년을 찾아가 림운학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였다. 일생 림운학이만을 알며 살겠노라고 썼다.

갑자기 복도가 술렁거리는 소리에 련화는 회상에서 깨여났다.

대여섯명의 경관들이 복도에 나타났다. 손에는 번쩍거리는 휘발유통을 들었다. 열쇠꾸레미를 쥔 녀간수가 흰자위가 가득한 눈을 이상스레 희번뜩거리며 련화네 호실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에 깨김까지 다 드러나게 낯이 핼쑥해진 간수는 련화를 보자 손짓했다.

《성련화 나왓.》

녀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련화에게 쏠렸다.

련화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부를가, 이 언니들은 무엇때문에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가 하고 똑바른 판단을 내리려고 했으나 무엇인지 아직은 딱히 알수 없는 불안스러운 예감에 짓눌려 머리가 뻥하였다. 간수가 쇠를 열었다.

《빨리 나와!》

간수는 초조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련화는 차마 걸음을 내짚을수 없었다.

《련화, 나가봐요. 혹시.》

정록주가 땀기어린 손으로 련화의 종다리를 가볍게 떠밀었다.

그 힘에 련화는 앞으로 나가려다가 무춤하고 멈춰섰다. 그는 백정식을 보았던것이다. 경찰들의 뒤에서 불쑥 솟구쳐나온 잠바차림에 푸르딩딩한 살기어린 얼굴의 백정식은 오도카니 서있는 련화를 보자 뻔뻔스럽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련화는 이제라도 백정식이 또 야수처럼 덤벼들것 같은 공포속에 한발자국 뒤걸음쳤다. 백정식은 눈섭을 찌프렸다.

《미쓰 성, 용서하오. 지나간건 말하지 맙시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나오시오.》

련화는 몸서리가 처졌다. 이 순간 그는 여기에 자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이자앞에서 지금은 무서워할 하등의 리유도 없음을 깨달았다. 이 생각에 닿자 후안무치하게 덤벼들던 그자의 더러운 행동이 떠오르며 차거운 비웃음이 떠올랐다,

《전 안나가겠어요, 떠나가요.》

련화는 자기도 통쾌할 정도로 차겁게 내쏘았다.

《정말이요?》

백정식의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이제 안나가면… 여긴 불바다가 돼.》

련화는 부지중 그자의 낯판대기에 침이라도 콱 뱉어줄 심정으로 웨쳤다.

《물러가요. 더러운것.》

백정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쌍년!》

낮게 뇌인 그는 갑자기 문을 홱 열어젖혔다. 그러자 이제껏 둘의 대화를 지키던 녀인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일어났다. 백정식은 황급히 문을 도로 닫으며 뒤로 물러섰다. 후들후들 떠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서있던 련화는 알수 없는 쾌감과 동시에 아찔한 흥분속에 잠겼다.

《정말 안가겠소?》

눈을 희번뜩거리며 위협적으로 물은 백정식은 집어삼킬듯 련화를 노리다가 《이 빨갱이년!》 하며 갑자기 권총을 뽑아들었다.

련화는 권총의 격발기를 여닫는것을 보며 《아!》 하고 낮게 신음쳤다. 그때 정록주가 련화를 밀치며 나섰다.

《무슨짓이예요. 당신은 뭐예요?》

《이 빨갱이들!》

백정식은 악마같은 상을 하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였다. 련화의 얼굴을 보자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

《그래 쏴라. 이 망나니야.》

련화가 정록주의 잔등을 막 밀치며 악에 받쳐 앞으로 내달을 때 《련화동무.》 하며 한 녀인이 달려나가며 련화를 막았다. 백정식의 짐승같은 악청과 함께 권총의 야무진 총성이 련발사격하듯 울렸다. 신음소리와 함께 《저놈 죽여라!》 하는 웨침이 감방안을 울렸다. 련화는 자기 앞을 막아섰던 애인을 잃었다고 울던 녀인의 몸이 넘어지는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그러안았다. 뜨겁고 끈적끈적한것이 만져졌다.

《이 인간백정아-》

련화는 정신없이 소리쳤다. 모든것이 뽀얀 안개속에 휘말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지러진 총성과 폭음이 일며 복도에서 백정식의 광기어린 발작을 구경하던 경관들이 왁작 고아대며 뛰쳐달아났다. 누군가 백정식의 팔소매를 잡아끌자 《이년들 보자.》 하고 소리치며 달려나갔다. 마루바닥이 울리고 벽체까지 움직이는것 같았다.

《인민군대다! 인민군 땅크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소리를 따라 울음진 만세의 웨침들이 터져올랐다. 그러나 련화는 자기 가슴에 안겨 마지막숨을 몰아쉬며 초점잃은 눈길로 허공을 쳐다보는 녀인을 그러안은채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예측대로 인민군땅크 한대가 서대문형무소로 들이닥쳤다. 땅크는 휘발유도람통을 만재한 석대의 트럭을 류탄으로 날려버리고 괴뢰군 헌병들과 경찰들을 기관총사격으로 쓸어눕혔다.

그다음 우에 타고있던 보병들을 내려놓고 륙군형무소쪽으로 내달렸다.

그 땅크에는 림운학이 타고있었다. 마포형무소까지 세개의 형무소폭파를 막을 임무가 그들에게 지워져있었다.

그런데 땅크는 륙군형무소근방에 이르기전에 시창이 명중되여 불타기 시작했다. 림운학은 단신으로 철갑우의 불과 싸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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