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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27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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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09 07:57 조회8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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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27 회)

11 장

성송암은 5룡등촉에 백옥같은 초대로(이 초대는 그가 1차 원동인민회의 성원으로 모스크바로 갈 때 티베트의 한 고을을 지나다가 고려의 왕실에서 만들어진것임을 알고 산것이다. 보부상의 등짐에 실려 그 먼 타국에까지 간 그 초대를 선조의 뛰여난 솜씨에 대한 긍지로 수십년 건사하던 그는 오늘 골동품들을 정리하다가 자기로도 무엇때문인지 모르게 꺼내 꽂은것이다.) 환히 불을 밝힌 밑에서 고대페르샤의 멸망사를 읽고있었다. 죽은 안해의 낡은 치마로 차광막을 친 방은 양초의 불빛으로 대낮같이 밝았으나 돌개바람이 지나간 뒤같이 어수선하였다.

집안벽을 장식하던 그림과 서예품들은 거의다 없어지고 고서를 넣던 문갑들이 이리저리 널려있었다. 때오른 베개들을 덧놓고 누워있는 송암의 머리맡에는 까맣게 탄 보리밥 누룽지가 담긴 귀떨어진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밥을 안친채 책을 보다가 다 태워먹은 후 그 누룽지쪼박으로 위를 달랜 그는 마음괴롭고 불안할 때면 달관의 세계로 이끄는 고대강국과 부유민족들의 멸망사를 읽었다. 송암이 《미이라》로 될 결심을 지니고 지하실에 있은것은 불과 두시간도 못될것이다.

먼 후날의 세대들이 보면 좋고 보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글발을 적어놓고 지하실벽에 기대여있던 송암은 처음부터 환각속에 자주 빠져버렸다. 쥐가 버스럭거려도 그랬고 몸을 움직일 때 간혹 떨어지는 흙부스레기에도 그는 신경을 뻗치며 《폼뻬이의 마지막날》과 같은 시각을 그렸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가도 폼뻬이를 페허로 만든 활화산의 폭발과 같은 폭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초조했고 신경은 더욱더 예민해졌다. 습기찬 지하실이라 호흡조차 가빠들었다. 이것을 극복하려 공상을 달리기도 했다. 수백년후에 이 페허로 된 땅을 어느 발굴대가 뒤지다가 력사의 슬픈 결론을 담아쓴 글발앞에 굳어져있는 자기와 수백천년전부터 만들어진 도자기며 금은공예품을 보면서 쓸쓸한 미소를 그릴것을 상상해보며 기다리는 초조감을 잊어도 보았으나 그것도 한때였다. 그런데다 점심과 저녁을 다 번진지라 배가 몹시 고파났다.

더구나 자기가 여기 박혀있는 시간에 련화가 왔다가 사라져버릴것만 같은 불안까지 겹치자 더 앉아있을수 없었다. 결국 이런 실제적인 느낌과 생각이 그로 하여금 지하실에서 나오게 한것이다.

(죽을 때는 죽는거고…)

송암은 아테네의 창녀 타이스가 페르샤인들에 대한 복수로 아케 메네스조의 화려한 왕궁을 불사르던 페지를 번졌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글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마음을 가라앉히지도 못했다. 여느때면 보석으로 몸을 휘감고 주지육림속에 살을 찌우며 향락과 방탕으로 질탕한 나날을 보내던 그 부요한 민족의 처참한 멸망을 눈앞에 방불히 보면서 인생의 무상과 일종의 허무를 느끼면서 고뇌와 번민을 잠시나마 잊고 최면상태에 이르군 했었다. 그것이 남의 큰 불행앞에서 자기의 작은 불행을 위안하게 되는 인간의 리기적지력에서 생겨나는것임을 알면서도 송암은 늘 이렇게 하였었다. 허나 지금은 그것을 읽을수록 그때와 방불한 현실에 생각이 뻗어가며 그의 일체 감각을 밖으로 이끌어갔다.

송암은 원색그림들로 가득찬 세계사를 집어던지고 머리맡을 더듬었다. 바가지가 손에 마치자 그는 누룽지 한쪼박을 집어들어 쓰고 쩝쩔한 그것을 입에 넣고 씹다가 도로 뱉어버리였다. 그리고 다시 머리맡에 손을 올려 부딪치는 책을 집어들었다. 신채호의 문집이였다. 6월 24일 저녁 집에 돌아와 한번 다시보자 하면서도 다만 자기의 불안스럽고 혼란된 마음을 위안하는것으로 보기에는 그 대학자며 애국자인 고인의 령혼앞에 죄스러운것 같아 몇번 들었다가 놓은것이다. 그는 별로 페지를 찾지 않고도 자기가 말년에 이르러 깨도하게 된 체험을 딱 찍어 밝힌듯 아프면서도 감복할만치 정확하게 썼다고 본 대목을 더듬어 읽었다.

《…공자, 예수, 맑스 그 누구를 보더라도 그 제자들은 스승들의 정의를 잘 리해하여 자기의 리익을 구했던고로 중국의 석가는 인도와 다르고 일본의 공자는 중국과 다르며 카우츠키의 맑스와 레닌의 맑스, 또한 중국이나 일본의 맑스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람은 리해이외의 진리를 구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는 되지 못하고 석가의 조선이 된다. 기독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기독교가 되지는 않고 기독교의 조선이 된다.

대체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못하고 주의의 조선이 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한 조선은 있어도 조선을 위한 도덕, 주의는 없다,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일것이리라…》

《그럴지고.》

저도 모르게 옛날 말투가 영탄조로 흘러나오고 손에서 책이 미끄러져 바가지우에 떨어져내리고 눈귀로는 뜨거운 눈물이 맺히다가 귀밑으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갑자기 빗장을 지른 바깥대문이 왈가닥거리고 가냘픈 녀인의 목소리와 청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부른다.

《아버지-》

《선생님-》

환각속의 부름인듯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앉아서도 그대로 있던 송암은 자동차의 경적소리까지 반주하듯 울리자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현기증에 머리가 팽 돌아 손을 헛짚었다. 신사임당의 족자가 손에 잡혀 삐뚜루 돌아간다. 뒤축을 베여낸 코찢어진 백고무신을 끌고 대문가에 이르자 계화의 목소리가 초조히 울렸다.

《아버지 빨리-》

찌그덩 문이 열리자 검정두루마기로 몸을 감싼 계화가 엎어질듯 하며 송암의 손을 잡았다.

《웬일이냐?》

송암은 대문앞에 선 리윤병의 승용차와 계화의 뒤에 선 억대우같은 남자를 살펴보며 물었다.

《아버지, 어쩜 이러고계셔요. 공산군들이 시내로 들어와요.》

《그래-?!》

《마구 사람을 죽인다고 시부께서 모셔오라고… 피난해야 한다고 했어요.》

송암은 제앞으로 짐을 실은 리야까가 삐그덕거리며 굴러가는것을 보았다.

《아빠, 나 잘래.》

《쉿, 안된다. 자면 빨갱이가 와 널 잡아먹는다.》

《이잉, 거짓뿌리.》

맞은편 자전거포에서 널대문에 못을 박는 소리가 청승스럽게 울린다.

《아버지, 어서요.》

계화가 발을 동동 구른다. 송암은 밤어둠속에 처염할 정도로 희맑게 보이는 딸의 모습을 보다가 가슴 찌르는 회한의 아픔을 느꼈다. 피줄이란 어쩌지 못하는가부다. 그래도 제 애비라고 이처럼 끄는것이 아닌가.

《선생님, 가셔야 됩니다. 선생님은 여기 계시면 일없다고 생각하는것 아니요.》

체대 큰 사나이가 비쳐들었다. 리윤병이네 사환을 하는 사람인것을 알아본 송암은 서글프게 웃었다.

《군대란 살생이 법인데 내 어찌 무사할걸 믿겠소. 더구나 독이 오를대로 올라 내달아오는 군대가 아니겠소.》

《그렇다면 왜 망설입니까. 그래도 리윤병장관님께서는 일각이 삼추같은 형편에서도 선생님의 신상을 걱정하셔-》

《아버지, 난 아버지 안가면 안갈래요.》

계화는 해여진 송암의 팔소매를 잡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송암이 모질게 먹은 결심이 흔들렸다.

(인민군대가 서울에 들어온다면 장관의 며느리에 장교의 처인 계화는 참살을 면할수 없으렸다. 계급적원쑤에게 무자비하다는것이 그네들의 신조일진대 그러나 련화는… 어찌하는가.)

송암은 저만치 사라진 리야까의 형체를 더듬다가 한숨을 푹 내쉬였다.

《련화가 찾아와 내 없으면 어쩌겠니?》

《아버지, 내 깜박 잊었군요.》

울음울던 계화는 반겨 입을 열었다.

《시부가 그러는데 련화는 분명 대전으로 끌려갔을것이라는거예요. 게까지 가면 이번엔 자기가 꼭 빼내겠답니다.》

《련화가 끌려갔다고?-》

송암은 련화를 빼내겠다는 윤병이의 장담은 못믿었으나 행방은 알아봤을수도 있겠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가자!…》

《아버지, 짐을 챙겨야지요.》

《짐은 무슨 짐.》

《선생님, 우리 댁 어른께선 선생님한테 짐이 많을것이라고 하셨는데… 》

례의 그 사나이가 전지불을 켜들고 집벽을 비추었다. 그러자 방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계화도 돌따서 한마디하였다.

《아버님이 보관하시던것을 다 가져가야 한다고 했어요. 공산군이 오면 다 없어질것이라구요.》

《그래?-》

성송암은 어이없었다. 리윤병의 약아빠진 얼굴이 떠올랐다. 옛날 서대문에 갇혔을 때 소장된 골동품에 대해서 그 시세까지 미주알고주알 캐묻던것이 떠올랐다.

(그래서였구나. 내가 아니라 그 유물들이 탐났을테지.)

송암은 일체 귀중품을 지하실에 감춰둔것을 거의 통쾌하게 생각하며 싹 잘라 말했다.

《뭐 없어져서 아까울 물건이란 없다.》

송암은 이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옛날에 메고나니던 륙크샤크에 입을 옷가지와 5룡촉대 신채호의 문집과 세계사를 쑤셔넣었다. 장서에 가득한 책을 보다가 한숨을 짓고 돌아섰다. 그런데 계화가 장농을 뒤져 어머니의 반짇고리며 패물따위를 꺼내여 륙크샤크에 쑤셔넣었다. 성송암은 벽에 건 옛날 몇대조 할아버지가 신사임당에게서 기념으로 받은 족자를 내려놓았다. 그것도 넣을가 했으나 자리가 없었다. 그때 밖에서 서성거리던 사내가 뛰여들어오며 송암이 매만지는 륙크샤크를 황급히 집어들었다.

《땅크소리입니다. 빨리 나가야겠습니다.》

송암은 계화의 손에 팔목을 잡힌채 끌려나갔다. 그는 대문을 닫고 문득 맞은편 자전거포주인이 널문에 못질하던것이 떠올라 못을 박을가 하다가 《에라, 그만둬라.》 하고는 차에 올랐다. 계화가 《아버지, 불을 안껐군요.》 하고 말했다. 송암은 차광막 틈새로 빠금히 비쳐나오는 그 불을 보고 울음이 터지려는것을 간신히 참았다.

《차라리 저 불이 모든걸 다 태우면 좋겠다.》

짐을 가득 실은 스리쿼다옆에서 서성거리던 리윤병은 성송암을 태운 차가 나타나자 늦었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몹시 반기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차안과 뒤의 짐실이칸을 본 그의 얼굴은 순간에 새풋하게 질렸다. 그는 성송암을 못마땅하게 보며 말했다.

《아, 거 옛날 그릇들이랑 어쩌려고 그대로 남깁네까.》

《다 팔아버린 뒤지요.》

송암의 말에 리윤병은 두눈이 올롱해지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말은 더 할수가 없었다. 자지러진 총소리가 길건너 집뒤쪽에서 울리였던것이다. 리윤병은 냉큼 계화와 송암이 탄 차의 앞자리에 앉으며 《떠나자.》 하고 소리쳤다.

앞에서 달리는 리윤병의 세간을 실은 차의 적재함우에 산봉우리처럼 가려 쌓은 짐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리윤병은 짐을 보고서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에 따라서인지 십자를 긋고는 손수건을 꺼내 코와 함께 눈물을 풀어내치고는 목멘 소리로 탄식했다.

《46년이 엊그제같은데 또 적색마귀에 쫓기게 되였으니… 으흑 춘설이 분분히 날리는 그날은 맵짜기도 하더니. 그래도 신양리 자택을 떠나 대동강을 건넜을제는 희망이 꿈틀거렸건만… 온다는 미군은 과연 오는지…》

한강교에 들어섰을 때 장갑차가 길을 튀며 질러나가다가 리윤병이네 화물차를 들이받아 란간에 짓쪼아놓았다. 그 차의 운전칸에 처를 태웠던 리윤병이 비명을 치며 일어섰으나 앞뒤로 빼곡이 밀려드는 흐름속에서 차를 세울수도 문을 열수도 없었다. 차가 한강다리를 건너 영등포로 나가는 길에 들어서는데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폭음이 울리며 차까지 움씰하고 들었다놓았다. 그들이 뒤돌아보았을 때 한강다리가운데가 불길속에 휘말려 훌 들리였다. 한강대교의 폭파인것이다.

침침한 어둠속에 거대한 탑마냥 적황색 불기둥이 일떠섰다. 그 화염의 기둥속에는 부서진 교각, 철근쪼박과 세멘트덩이, 찢겨진 승용차들과 짚검불처럼 타버린 시체가 휘말려올라갔다. 수초동안 하늘과 강물을 찬연한 백광으로 물들이던 불기둥이 사라지자 무서운 폭음이 진동하였다. 삽시간에 묘혈로 되여버린 한강은 사품쳐 끓어번지며 수백수천의 인명과 수백대의 차량을 삼켜버리였다.

장사진을 이둔 도주의 무리들, 군용트럭과 고급승용차에 몸을 실은 장교들과 《장관님》들, 《국회의원》들은 미처 저주의 말을 뱉을새도 없이 뒤로 밀려드는 인파와 장갑차, 트럭의 추적속에 끊임없이 그 낭떠러지, 차와 사람이 겨끔내기로 떨어져내리는 물속으로 곤두박혀 들어갔다. 말그대로 아비규환 염라국의 한 장면이 20세기 고도 서울에서 연출된것이다.

성송암이 탄 차는 몇메터 못가서 멈춰섰다. 앞서달리던 차와 사람의 떼가 일시에 멈춰섰다. 화광속에 해골같은 얼굴들과 경악한 눈들이 번쩍였다. 아우성과 비명이 폭음의 메아리와 더불어 강반의 어둠을 찢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한 녀인이 학생모를 움켜들고 《철아, 철아.》 하고 부르며 부러져나간 다리쪽으로 미친듯이 내달았다. 그 녀인만이 아니였다. 이름을 부르며 오가는 사람들이 저들끼리 부딪치고 넘어진 사람을 타고넘기도 하였다. 장성을 단 《국군》이 권총을 뽑아들고 누구를 향해선지 욕설을 퍼부으며 떠들썩 고아대는 다리목으로 달려갔다.

《<국군>이 다리를 끊었다.》

《군대가 배신했다!》

차문을 열어젖히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성송암은 다리가 꺾인듯 쓰러졌다. 단말마의 포효같은 스산한 웨침이 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계화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송암은 넋을 잃은듯 주먹으로 차창문을 두드렸다.

《불쌍한 배달의 민족아.》

몸을 옹골뜨리고 얼빠진듯이 앉아있던 리윤병은 후들후들 팔을 떨며 입안의 소리로 웅얼거렸다.

《하느님, 굽어 감찰하옵소서.》

그의 의식속에서는 아직 자기 처가 강물에 수장되였다는것이 사실로 새겨지지 않은 모양이였다. 혼돈과 광기의 시간이 강반을 지배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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