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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의 나래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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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4-28 20:12 조회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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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3

《9월제련소에서 요란스레 떠들며 설치했던 티탄합금압축가공설비가 무용지물로 되였다는 소식을 들었나?》

저녁상을 물리고난 강서원은 담배를 붙이며 사위에게 넌지시 물었다.

《들었습니다.》

석홍범은 장인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였다.

오늘 낮에 장인은 집으로 와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평성에서 저녁차로 왔다. 물론 장인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9월제련소의 일과 관련하여 부르지는 않았을것이다. 한데 그 이야기부터 꼭지를 떼는것이 자못 의아스러웠다.

《압착가공설비문제가 론의될 때 나는 완강히 반대를 하였네. 그때 만일 허위적인 성공에 유혹되였던 제련소일군들의 장단에 나도 춤을 추었다면 이번에 어쩔번 했겠나? 숱한 자재와 자금을 결재해서 내려보내주었다면 큰 과오를 범하였을거네.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곳 당비서는 해임되고 지배인은 행정처벌을 받았네. 당비서는 그렇다치고 지배인은 과학기술도 모르지 않고 사리에도 밝은 사람인데 휘말려들었거던. 내 그만큼 타일렀는데도 압착가공설비를 지지하더니 지배인까지 재미없이 되였네. 9월제련소의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로 심각한 교훈을 남겼네.》

장인은 그 교훈을 되새겨보듯 혈색좋은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그리였다. 그는 그 사건에서 일군들이 서뿔리 과학기술사업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찾은것이 분명했다. 물론 비로소 찾은것이 아니고 이미전부터 가지고있던 그러한 견해가 확고해졌을것이다. 하나의 사건에도 매개 사람들이 찾는 교훈이 엄청나게 다르다는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장인은 담배를 깊숙이 한모금 빨아서 천천히 내불더니 이렇게 물었다.

《자네 박치영이라는 젊은이를 알고있나?》

《만나본 일은 없지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양명심을 통해 박치영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있었다.

《내 그저께 9월제련소에 내려갔댔는데 그가 공업시험소에서 쫓겨나 부업농장으로 갔더군. 이제는 모두들 그 사람을 몹쓸놈으로 몰아붙인다네.》

《실패도 실패지만 개인의 명예를 위해 남의 나라것을 손쉽게 흉내내면서 줄타기를 했다고 그러겠지요.》

《아무튼 그는 헛된 열망에 사로잡혔다가 신세를 망쳤네. 내가 알기엔 그 사람도 자네처럼 머리가 총명한 젊은이였다네. 그가 만일 다른 일에 그렇게 열정을 바쳤다면 성공을 하면 하였지 그렇게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거네. 과학연구란 성공의 확률이 매우 적은 일종의 투기라고 할수 있네. 나는 그 사람의 경우를 놓고 자네를 생각했네. 장차로 자네 역시 박치영이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겠는지 걱정되더란 말일세.》

《그때문에 저를 불렀습니까?》

석홍범은 박치영이한테 자기를 견주어보는 장인의 말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공손히 물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처가였다. 만나자바람으로 장인에게 불쾌감을 드러낼수 없었다. 안해는 사흘이 멀다하게 친정을 다녀가지만 석홍범은 좀처럼 발길을 아니했다. 온 집안의 만류를 뿌리치고 과학원으로 떠나버렸기때문에 문턱을 넘어서기가 서슴어졌던것이다. 그래도 전에는 인민대학습당에 왔다가 가끔 들린적이 있으나 최근 반년동안은 별로 와본적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고 새롭게 연구사업을 시작한 때부터는 다른 이외의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야말로 온넋을 기본작업, 시린다제작에 바쳐왔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바킹을 쓰는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기밀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갈래로 환상을 펼치고 가설을 세워보았다. 안해와 동료들은 휴식을 권고했다. 석홍범자신도 몇달이 지나자 몸이 쇠약해진다는것을 느꼈다. 그는 이따금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공원을 거닐며 산보를 하였다. 어떤 날에는 잠을 푹 자보려고 저녁 일찌기 잠자리에 눕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허사였다. 산보를 해도 잠을 자도 도저히 사색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무엇인가 좀더 노력을 경주하면 기밀방법의 실머리가 잡힐듯 한 유혹이 또다시 머리속에 스며들었다. 경애하는김정일동지의 접견을 받은 그날부터 지속되여온 앙양된 탐구욕은 그를 창조적환상과 가설의 집요한 추구에로 쉼없이 다몰아갔다. 그것은 자신으로서도 어찌할수 없는 내부적인 충동이였다. 석홍범은 그전에 공부에 전심하며 밤을 밝힌적도 많았고 연구사업에 열중하여 주위세계를 망각해버렸던 때도 있었다. 그때에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사에 자기를 복종시킬수 있었다. 휴식을 하고싶으면 휴식을 할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달동안은 마치 알수 없는 그 어떤 힘에 자신이 지배되는것처럼 스스로도 억제할수 없는 탐구의 열정에 포로되여있었다. 전차를 타고가다가 내려야 할 정류소를 놓쳐버리기도 하였고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허공에 멈춘채 생각에 빠져버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반년가까이 지내던 끝에 며칠전에는 마침내 기밀방법의 실머리를 잡았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 환희가 온몸을 휩쌌다. 하지만 과학연구과정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무의미하지만 주관적인 확신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석홍범은 연구소의 여러 사람과 토론을 하여보았다. 어떤 사람은 놀라운 착상이라고 환성을 올렸지만 또 어떤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머리를 저었다. 류체공학의 권위자인 대학시절 강좌장의 의견을 듣고싶었다. 그래서 평양으로 올라오려던차에 장인의 전화를 받았던것이다. 무슨 일로 장인이 급히 찾았을가? 의혹을 가지고 처가에 들렸는데 장인은 9월제련소에서 벌어진 일을 거들면서 박치영의 경우를 미루어 사위의 장래를 걱정하고있었다.

《박치영의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지 말게. 젊은 혈기에 명성을 떨쳐보려고 서뿔리 과학에 발을 잠그었다가 신세를 망친 일은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네.》

강서원은 얼굴을 가리우는 담배연기를 손을 저어 흩날려버렸다. 심심한 우려가 비낀 그의 표정이 선명히 드러났다.

부엌에서 그동안 저녁설겆이를 끝낸 장모가 방안에 올라왔다. 치마폭을 감싸며 자리에 앉은 그는 오가는 대화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남편과 사위를 번갈아보았다.

강서원은 가느스름히 쪼프렸던 눈을 벌려뜨며 말머리를 돌렸다.

《자네를 부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금속공업부 무역회사 해외출장소에 파견할 사람들을 선발하는 문제가 제기되였기때문일세. 내 생각엔 그 책임자로 자네이상 적임자가 없다고 보네.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지만 튕겨보면 해외에 나가 활동할수 있는 무역일군으로 갖추어야 할것을 다 갖추지 못했단 말일세. 국제시장의 추세와 전망을 예민하게 판단하고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가자면 명민한 두뇌와 능란한 외국어실력은 물론 과학기술지식을 갖추고있어야 하네. 헌데 자네는 그 모든것을 다 갖추고있다고 할수 있네. 그래서 내 민옥이를 통해 의향을 말했던바가 있네. 민옥이의 말을 들으니 처음에는 자네가 들을만 해하더니 후에는 그런 말을 비치지도 못하게 했다더군. 하지만 자네의 소견을 직접 들어보고싶어서 불렀네.》

시선을 떨구고 생각에 잠겼던 석홍범은 나직이 대답했다.

《때가 늦었습니다.》

《그건 무슨 뜻에서 하는 말인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과학사업을 줴버리고 그 유혹적인 직업을 택해볼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연구사업이 좌절되였을 때 저는 고민과 허탈에 빠져서 평양을 떠나 평성으로 나간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간곡하신 가르치심을 받은 다음부터는 과학을 가지고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발전에 끝까지 기여하리라는 결심을 확고히 가졌습니다.》

석홍범은 장인이 자기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여주기를 바라며 절절히 말하였다. 되도록이면 감정의 마찰이 없기를 원하였다. 보건대 장인도 여러가지로 깊이 생각던 끝에 무역일군이 되라고 권고를 하는것이 분명했다. 정작 하고싶은 그 권고를 뒤로 미루고 실패한 9월제련소의 가공설비이야기를 꺼낸것만 봐도 그것을 알수 있다. 지금 듣고보니 그 이야기는 사위를 설득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제였다.

《심각한 비판의 말씀을 자네가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한데 생각해보게. 자네가 새로운 방법으로 초고압유압프레스를 만들어보려다가 실패를 한다면 두번다시 그이께 커다란 심려를 드리는게 아니겠나.…

당에 보답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길은 과학연구만이 아니네. 대외무역을 잘해서 한푼의 외화라도 더 벌어들인다면 그것 역시 보답의 길이고 애국의 길이네. 당에서도 지금 무역제일주의구호를 제기하고있지 않나. 대외무역을 발전시켜야 나라의 인민생활을 높일수 있네.》

《아버님.》

석홍범은 한껏 량해를 구하는 눈길로 장인을 바라보았다. 어느 분야의 사업이 더 중요한가 하는 론의는 하등의 의의가 없었다. 서로 부인할수 없는 제나름의 론리가 있을것이다. 도저히 합의에 도달할수 없는 이야기를 어서 끝장내고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의 일을 두고 그토록 마음을 쓰시는 아버님의 심정이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과학을 저버릴수 없습니다. 아버님은 방금 제가 연구사업에서 실패를 면치 못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두번다시 걱정을 끼치게 될 경우를 말씀했는데 저 역시 그런 경우를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설사 성공을 보지 못한다하더라도 그이께서 밝혀주신 탐구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실패는 하였어도 내 조국의 번영을 위해 자기의 지혜를 깡그리 바쳐왔다는 자부심만은 지닐수 있기때문입니다.》

강서원은 사위의 얼굴에 견결한 빛이 어리는것을 보았다.

《자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나는 더 권고하지 않겠네.》

그는 움쭉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아니, 이 사람.》

장모가 사위의 무릎을 치며 실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해외출장소 책임자자리를 타고앉지 못해하는데 자네는 왜 마다하나? 자네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일세. 나이가 나이인것만큼 령감은 한두해안으로 자리를 내놓게 될거네. 늙으면 자식의 신세를 지기마련이지. 자네 일이자 곧 우리 일이야. 그래서 령감도 체면을 무릅쓰고 어떻게 하나 자네를 해외출장소 책임자자리에 앉히자고 하는거야. 제발 생각을 달리하게.》

장모는 간절히 애원했다. 모처럼 차례진 행운의 기회를 놓치는 아쉬움이 너무도 커서 금시 눈물이라도 머금을상싶었다.

석홍범은 응대를 못했다. 장모의 솔직한 리기심을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최근년간 어떤 일군들은 자식들을 먹을 알이 있는 자리에 밀어넣기 위해 자기의 직권을 교묘하게 써먹고있다. 나라야 어찌되든 남들이야 어떻게 살든 제 혼자 잘살기를 꾀하는것은 혹심한 리기주의이다. 그것은 나라와 인민에 대한 배신이고 뜻과 의리에 살줄 알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한 리기주의를 다른 사람이 아닌 처부모들에게서 보게 될줄이야. 자식의 눈으로 차마 보아서는 안될 부모의 추한 몰골을 보았을 때처럼 격분보다 수치감이 앞서는 말 못할 심정이였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장모에게서 얼른 시선을 돌리였다. 장인은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설교하려 했지만 그도 장모처럼 속물적인 리기심에서 출발한것이 아닐가?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곧 부인했다. 그렇게 인정을 하기가 두려웠다. 금속공업부 부부장인 장인은 우리 나라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문을 책임진 일군이다. 그러한 일군까지 나라보다 먼저 제 살 궁냥을 앞세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코 그럴수 없었다. 책임적인 직분도 직분이려니와 그의 인격이 그렇게 속물적으로 형성되여있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침중한 상념에 싸여있는데 장모가 정신을 차리라는듯이 무릎을 흔들었다.

《이 사람, 왜 말이 없나?》

《어머님,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석홍범은 한숨속에 대답했다. 장모의 얼굴에 노여움과 실망이 짙게 서리였다.

난색을 지어보이던 석홍범은 밤 편히 쉬라는 인사를 남기고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이 집을 떠난지 여러해가 되지만 묵고갈 때마다 과학원으로 나가기 전에 자기네 부부가 살던 방에서 자군 하였다.

방안에 들어선 그는 전등을 켜고 책상에 마주앉았다. 한동안 옛 모습그대로인 방안의 전경을 둘러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책상우에는 큼직한 밤색가방이 놓여있었다. 평성에서 들고온것이다. 가방에는 처가에 들고오는 술병과 안해가 꾸려준것이 들어있었다. 저녁식사전에 꺼내놓아야 하는것인데 그만 망각해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최근에는 사사로운 일을 망각해버릴 때가 많았다. 이제라도 장모에게 술병과 꾸레미를 내다줄가 하고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래일 아침 식사전에 내놓아도 무방할것이다.

그는 학습장과 도면을 책상우에 꺼내놓았다. 새로운 기밀장치의 원리를 기록한 학습장과 그 모형을 상상속에 그려본 도면이였다. 래일 옛 스승앞에서 조리있게 설명을 하자면 다시한번 더듬어보는것이 필요했다. 시험을 앞둔 학생과도 같은 심정이였다. 처부모들과 마주앉았을 때의 불쾌하고 딱하던 기분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진지하게 자기의 구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학습장에 기록한 한줄한줄의 설명문과 류체력학의 수식들은 참으로 피나는 탐구의 노력끝에 얻어진것이였다. 시야에 안겨오는 낯익은 글자들은 마치 자기 육체의 세포들처럼 소중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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