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의 나래 15회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1년 4월 14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비약의 나래 15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4-06 19:44 조회32회 댓글0건

본문

20210324165530_2ce3cb6f0e35973d34b07aae3052648b_o4u8.jpg

제 2 장

1

창으로 흘러드는 아침해살이 넓다란 집무실에 비껴들었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한여름의 해빛은 아침부터 열기를 뿜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방안을 거니시였다. 오른손에는 방금 보시던 통신자료가 그대로 들려있었다. 집무탁으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전화로 고중환을 찾으시였다. 교환수는 그의 사무실이 아니라 집으로 전화를 련결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여느날과 달라 아직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던것이다.

《부부장동무, 휴식일이지만 나와 좀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인차 나가겠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울려오는 고중환의 목소리는 감기를 앓는 사람처럼 석쉼하게 갈리였다.

《몸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고중환은 흔연히 대답하려는듯 했으나 여전히 목청이 맑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것이 과로한탓이라고 짐작하시였다. 최근에 고중환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낮에는 여러 연구기관과 교육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당에서 준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했고 밤에는 밤대로 사무를 처리하고 사업에 대한 설계를 하여야 했다.

《아직 침대에서 푹 쉬여야 하는걸 내가 찾은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딸애와 함께 집안청소를…》

고중환은 얼결에 가정의 사말사를 비쳤다고 생각하는지 말끝을 감추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있을 그를 그려보시며 련민의 정을 느끼시였다. 고중환은 재작년에 상처를 하고 지금은 중학교에 다니는 딸애와 단둘이 살고있었다. 교육사업을 보는 부부장이 결원된 후로 그는 두사람의 몫을 담당하고있는데 가정적으로도 안해가 해야 할 일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에게 오늘만이라도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마련해주고싶으시였다.

《마저 청소를 하고 한시간쯤 지나서 천천히 초대소로 오시오.》

한시간후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초대소정원에서 등나무그늘밑에 놓인 원탁을 사이에 두고 고중환과 마주앉으시였다. 짐작하셨던대로 사업에 다몰린 고중환의 얼굴은 눈에 띄우게 수척해보였다.

《너무 과로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과학원을 다녀가신 후에 과학계가 들끓고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어쩔수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고중환은 어줍게 미소했다.

《우리가 과학원을 다녀온 후에 석홍범동무는 어떻게 지내고있습니까?》

《말씀의 뜻을 깊이 새기고 새롭게 분발하고있습니다. 얼마전에 과학원에 나가 만나보았는데 결의가 대단합니다. 자기는 과학자로서 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심정이라고 하면서 기어이 다른 나라것보다 월등한 초고압유압프레스를 개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참 반가운 일입니다.… 나는 과학원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 동무를 두고 종종 생각했습니다. 새 세대 과학자들을 키워내는 우리 교육에서는 그들의 가슴속에 세계과학을 굽어보는 담력과 포부를 깊이 심어주지 못하는 부족점이 있습니다. 우리 과학이 현실적으로 남들보다 뒤떨어진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따라잡을 힘이 있기때문에 후진성을 인정하는데 린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 세대들의 머리속에 그러한 후진의식이 응당한것으로 남아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의식을 가시지 못한채 자라서 과학계에 진출하면 고작 앞선 나라들의것을 모방할 목표나 세우는데 머무를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쳐주신대로 각급 학교들에서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의 사상을 해설하는 교양사업을 더욱 활발히 벌리고있습니다.》

그 구호에는 단순한 애국이 아니라 세계에 조선을 떨칠 웅대한 포부를 배움의 목적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있었다.

《학생들에게 그 구호의 사상을 깊이 심어주는것도 중요하지만 실지로 과학분야에서 세계를 압도하고 조선을 떨칠수 있는 재능과 슬기가 자신들에게 있다는것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것이 필요합니다. 내 오늘 아침 여러 나라에서 국제수학올림픽준비를 다그친다는 통신자료를 보았는데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경연인지 알고있습니까?》

《알고있습니다.》

국제올림픽은 대학에 가기 전 학생들의 수학실력을 겨루는 세계적인 경연무대였다. 1956년에 로므니아의 저명한 수학자 로만이 발기하였는데 여러 나라 교육계가 이에 호응하여 57년부터 해마다 열리였다. 처음에는 수학교육이 앞섰다고 하는 유럽의7개 나라만이 참가하였다. 그후 해마다 불어나서 80년대부터는 50여개 나라가 참가했다. 그런데 아직 절대다수의 발전도상나라들은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중학생들의 경연이였지만 그것은 나라의 교육수준뿐아니라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시험장이였다.

《알고있다니 좋습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을 국제수학올림픽에 내보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부장동무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고중환은 볼을 쓰다듬으며 침묵했다. 선뜻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듯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않더니 소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는 여태껏 우리 학생들을 국제수학올림픽에 참가시켜보려는 생각을 하여본 일이 없었습니다. 교육과 과학이 비교적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도 처음 참가해서는 례외없이 마지막순위를 차지했습니다. 전례를 보면 어느 나라든지 여러번 방청으로 참가해서 경험을 얻은 다음에 정식 경연에 참가했습니다. 그런것만큼 우리도 한두번 방청으로 참가해서 경험을 얻은 다음에 정식 참가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우리가 남들의 본을 꼭 따라야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꼴찌를 하면 나라의 위신에도 손상을 주고 그 소식을 듣게 될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실망을 줄수 있을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탁우로 시선을 떨구시였다. 그의 말대로 꼴찌를 한다면 의도와는 달리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수 있었다. 그런데 경험이 필요하다면 왜 진작 우리 학생들을 경연에 참가시켜서 필요한 경험을 얻도록 하지 못했는가? 교육일군들은 어찌하여 수십년전부터 열리는 국제수학올림픽에 우리 학생들을 진출시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있었는가?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엄청나게 뒤떨어졌기때문인가?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우리의 교육수준은 상당한 높이에 이르렀고 학생들의 머리도 총명하다. 우리 학생들의 수학실력은 결코 남만 못지 않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일군들이 국제경연에 참가시킬 용기를 가지지 못한것은 오랜 타성으로 은연중에 남보다 아직 뒤떨어졌다는 자기 비하의 의식이 남아있기때문일것이다.

일순 침묵에 잠기셨던 그이께서는 번쩍 고개를 드시였다.

《교육일군들이 우리 학생들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두뇌경쟁에서 세계를 압도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기때문에 여태 우리 학생들이 국제수학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예술과 체육분야에서 세계를 놀래우는 좋은 성과를 거두고있습니다. 과학지식분야에서도 조선민족의 우수한 능력을 반드시 세계에 과시하여야 합니다. 올해부터 우리 학생들을 국제올림픽에 참가시켜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정식 경연에 참가시켰으면 좋겠는데 승산이 없다면 방청으로라도 참가시킵시다.》

가볍게 낯을 붉히던 고중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들이 소심했기때문에 지금껏 우리 학생들을 국제수학올림픽에 내보내지 못했댔습니다.… 올해에 정식 경연에 참가하는가, 방청으로 참가하는가 하는 문제는 제가 1중학교에 나가보고 의견을 말씀올리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국제수학올림픽에서 제출되는 문제를 어느 정도로 풀수 있겠는지 한번 검열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 문제는 후에 다시 토론합시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사업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 함께 휴식을 좀 합시다.》

그이께서는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의자에서 일어서시였다. 고중환도 따라 일어섰다. 해볕은 뜨겁게 내려쪼였지만 나무가 무성한 정원속은 서늘했다. 저쪽에서 뿜어올리는 분수는 눈부신 해빛에 무지개빛포말을 날리며 청신한 촉감을 실어왔다. 그옆에 펼쳐진 화단에서는 망울을 터친 갖가지 꽃들이 취할듯 한 향기를 풍기였다.

꽃향기를 즐기며 분수터옆을 에도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잣나무와 소나무가 키높이 자라오른 숲속을 가리키시였다.

《우리 저리로 갑시다. 내 부부장동무가 입이 무겁다는걸 알기때문에 오늘 단둘이서 은밀한 놀음을 벌려보자고 합니다.》

눈웃음을 지으시며 은근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영문을 알수 없는 고중환은 말없이 의아한 표정이였다.

《풋강냉이구이를 하잔 말입니다.》

고중환은 너무도 놀라와서 입술을 반쯤 벌리고 눈을 슴벅이였다. 다정한 벗과 즐거운 약속을 하던 동심의 세계에로 되돌아가신듯 그이의 얼굴에 비낀 순결한 미소를 보고서야 그도 훈훈한 감정에 휩싸여 싱긋이 웃었다.

《자강도의 어느 협동농장 관리위원장동무가 제 손으로 육종을 해서 가꾼 올강냉이를 맛을 보라고 몇이삭 올려보냈습니다. 어린시절에 나와 인연이 깊었던 동무였습니다. 그 얘기는 차차로 하고… 기온이 낮은 산간지대에서 재배를 했는데도 벌써 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풋강냉이야 삶은것보다 구운것이 더 맛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느덧 그이의 기분에 공감된 고중환은 즐겨 대답했다.

《우리가 강냉이구이를 했다는 소문이 나면 웃음거리가 될수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 둘만이 아는 비밀로 붙여둡시다.》

《알겠습니다.》

정원변두리의 숲속에 이미 삭정이무지와 황록색껍질끝에 말라버린 수염이 소담스러운 풋강냉이가 놓여있었다. 깨끗한 풀밭우에 편히 앉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휴지를 불쏘시개로 삭정이밑에 넣은 다음 성냥을 그어대시였다. 휴지에 당긴 불길이 마른 삭정이에 쉽게 번지였다.

《부부장동무는 강냉이구이를 해본 일이 있습니까?》

《어려서는 해보았지만 철들어서는 해본 일이 없습니다.》

마주앉은 고중환은 지나온 시절을 기억에 떠올리며 웃음진 얼굴로 대답올렸다. 해방된 이듬해에 외국류학의 길을 떠났고 귀국후에 대학교단을 거쳐 책임적인 직위에서 일하게 되였던 그에게는 강냉이구이를 하여볼 기회가 없었다. 간혹 농촌에 나갔다가 농민들이 휴식참에 강냉이구이를 하는것을 보고 구미가 당겼지만 제 먼저 맛을 보자고 청을 드릴 용기가 없었다. 농민들은 천한 음식으로 치부되는 구운 강냉이를 대접하는것이 실례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권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시절은 물론 그후에도 해마다 철이 되면 풋강냉이구이를 즐겨합니다. 내가 풋강냉이에 맛을 들인것은 조국해방전쟁시기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전쟁시기 평양교외의 농촌마을에서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그때 마을아이들과 함께 풋강냉이구이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구운 강냉이는 정말 별맛이였습니다. 어린시절에 인상을 남긴 구운 풋강냉이맛은 잊을수 없습니다.》

《이 풋강냉이를 보내준 사람도 혹시 그 시절에 아시게 된 사람이 아닙니까?》

고중환은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덮쳐잡으며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함치복이라는 동무입니다. 얼마 같이 있지 않았지만 서로 정이 들었댔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추억에 잠기시는 그이의 안광에 그윽한 빛이 어리였다. 고중환은 초조히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년시절의 다정한 벗들을 그려보는듯 하시였다.

《그 동무는 걸음마를 탈 때 걸렸던 소아마비로 소학교를 다니던 그때에도 왼쪽다리를 조금씩 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름대신 〈다리뱅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또래 아이들의 철없는 소행이였지만 그냥둘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치복이의 편역을 들어서 다른 애들이 별명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동무가 나를 따르게 되고 둘이 각별히 친하게 된것은 그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치복이는 공부가 시원치 못했습니다. 불구의 몸에 공부까지 잘하지 못하다보니 늘 주접이 들어서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한번은 교원이 마을단위로 조직된 학습반에 나와서 산수시험을 쳤는데 곁에 앉은 그는 내가 쓰는 답안을 훔쳐보고 그대로 답을 써서 시험지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나 다른 애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애원했습니다. 며칠후에 선생님이 나를 찾아서 치복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는가고 물었습니다. 치복이가 시험을 잘 친것이 의심스럽던 모양입니다. 나는 대답을 하기가 난감했습니다. 사실대로 대답하기도 어려웠고 치복이의 당부를 어기기도 어려웠습니다. 생각끝에 치복이는 제 실력으로 시험지를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가볍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때 당하셨던 난감했던 처지와 괴로왔던 마음조차 오늘에는 동요시절의 즐거운 추억으로 되새겨지는것이여서 내처 웃으시는 얼굴로 말씀하시였다.

《선생님을 속이고 뒤가 켕겼던 나는 치복이의 공부를 도와서 다음번에는 그가 제힘으로 시험을 잘 치도록 하여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앞에 떳떳할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공부가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산수공부를 도와주려고 집으로 돌아간 치복이를 찾아갔습니다. 치복의 아버지는 전선에 나가고 젊은 어머니가 혼자 치복이를 데리고 사는데 그때 앓고있었습니다. 치복이가 보이지 않길래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는 뒤동산기슭에 강냉이를 따러 갔다고 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와 퇴지에 딩구는 모지랑낫을 찾아들고 치복이를 도와주려고 밭으로 갔습니다. 치복이는 나를 보고 펄쩍 뛰면서 낫을 뺏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와 함께 강냉이대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몇고랑씩 베고는 밭기슭 참나무그늘밑에 앉아 산수공부를 하였습니다. 뒤따라 치복이어머니도 밭으로 나왔습니다. 앓는 몸으로 왜 나왔느냐고 물었으나 시뭇이 웃을뿐 대답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단물이 잡혀서 알이 말랑말랑한 이삭들을 따로 골라 광주리에 담더니 나와 치복이에게 구워먹으라고 했습니다. 구워먹기에 알맞춤한 이삭들을 골라주려고 뒤따라 나왔던것입니다. 인정깊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날 나와 치복이, 그의 어머니 셋이서 참나무그늘밑에 오붓이 둘러앉아 구워먹던 강냉이맛은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을 끊고 여전히 입가에 애틋한 미소를 머금으신채 널름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시였다. 움직이지 않는 시선은 눈앞의 그 불길이 아니라 옛시절 참나무그늘밑에서 강냉이구이를 하시던 그날의 전경을 그려보시는듯 하였다.

고중환은 이야기에 심취되여 숙연히 앉아있었다. 따스하고 훈훈한 감정이 가슴에 젖어들었다.

《자, 불길이 좋아졌는데 강냉이를 구워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새 현실로 돌아섰는지 표정을 바꾸며 강냉이를 불길속에 던져넣으시였다.

《풋강냉이는 이렇게 껍질채로 구워야 제맛입니다.》

고중환도 말없이 몇이삭 던져넣었다. 아직 심취된 감정에서 깨여나지 못하다보니 면바로 던져지지 못한 한 이삭이 불길이 사위여버린 모닥불변두리에 떨어졌다. 뽀얗게 재티가 날리였다. 그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재티를 피해 한걸음 물러앉았다.

《강냉이구이를 하자면 재티세례쯤이야 받을 각오가 되여있어야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헌헌하게 웃으시며 막대기로 강냉이이삭들을 뒤번지시였다. 그이의 어깨와 머리우에도 재티가 내려앉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으시였다.

《그후에는 어떻게 되였습니까?》

제자리에 도로 앉은 고중환은 채 끝나지 않은 그이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생생한 연록색껍질이 불에 그슬리면서 강냉이알속이 익자면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후 치복이네는 자강도로 갔는데 정확한 주소를 알수 없었습니다. 영 소식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수십년이 지난 재작년에 자강도에 나갔다가 도당청사 마당에서 그 동무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장년기에 이른 그는 어릴 때의 모습이 적지 않게 변했지만 나는 대뜸 알아보았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알고보니 그는 지금 협동농장관리위원장을 하고있는데 도당에 회의를 왔다가 나를 만나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자기네 협동농장에서 10여년전부터 강냉이올종자를 얻기 위한 육종시험을 계속해온다고 했습니다. 어릴적부터 그는 농사물계에 눈이 텄습니다. 엉뚱한 재배시험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자강도의 산간지대는 가을철에 일찍 서리가 내리기때문에 조숙종을 육종하는것이 절실했습니다. 아무튼 육종시험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쩐지 그가 헛수고를 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책들을 구하는대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일찍 알이 드는 강냉이품종을 얻어냈습니다. 그 동무가 보내온 풋강냉이를 받아놓고 우리 나라에는 전문연구기관뿐아니라 처처에 이런 연구사들, 애국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어질고 근면하고 재능있는 우리 인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민을 가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과학기술을 아직 세계적높이에 이끌어올리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전히 담담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으나 그이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속에 숭고한 사명감이 비껴흘렀다. 그이를 바라보던 고중환은 가슴에 마쳐오는 경건한 느낌에 가늘게 숨을 몰아쉬며 숙연히 시선을 떨구었다.

그이께서는 나라의 과학발전을 위해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일찌기 가장 정확한 과학지도사상을 제시하시고 최근년간에 이 부문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눈부신 비약에로 이끌고계신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자족을 모르고 늘 자신을 돌아보시는것이다. 그것은 그이께서 지니신 조국애의 높이와 시대적사명감의 중량을 재여보이고있다. 숭고한 목적과 열렬한 지향은 남다른 고민과 탐구를 가져오기마련이다. 그이의 선택과 결심이 언제나 정확한것도 천재적인 예지와 더불어 이러한 랭철한 분석력에서 오는것이 아닐가? 위대한 령도자로서의 그이의 사색과 정신적부담의 크기를 고중환은 이 순간에 비로소 엿보는듯 하였다. 동시에 그 부담에서 몇순간만이라도 그이를 풀려나게 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설사 지금처럼 즐거운 휴식의 한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보고 느끼시는 모든것, 기억에 떠오르고 생각이 미치는 모든것에서 나라의 부강을 위해 모색하시였다.

《우리가 130만의 지식인대군을 길러냈고 근로자들이 전반적으로 중등교육을 받은 조건에서 과학기술축전을 대대적으로 벌릴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축전은 전문과학자, 기술자들만이 아니라 전민, 전군이 참가하는 하나의 거대한 과학기술사업으로 되여야 할것입니다. 축전요강을 잘 작성해서 후에 나와 함께 토론해봅시다.》

《알겠습니다.》

《강냉이껍질이 타들고있습니다. 알속이 타지 않게 손을 써야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막대기로 강냉이이삭들을 뒤번지시였다. 고중환도 자기앞의것을 막대기로 끄당겨서 타다남은 껍질을 벗겨버리고 잉걸불우에 올려놓았다. 노랗게 익어가는 강냉이가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였다.

《자, 이젠 맛을 봅시다.》

잉걸불이 사위여가기 시작했다. 고중환도 손을 뻗쳐 한이삭 집어들었다. 데일듯이 손이 뜨거웠다. 얼결에 풀밭에 떨어뜨리고 식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벌써 방울나무잎에 강냉이이삭을 싸들고 맛을 보시였다.

《참 맛이 좋습니다. 언제 식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그제야 고중환도 빙긋이 웃으며 강냉이를 먹기 시작했다. 아직 뜨거웠으나 달콤하기도 하고 풀기가 좋아서 감칠맛도 있었다.

얼마후에 손을 털고 수건으로 입술을 닦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남은 이삭들을 고중환에게 주시였다.

《가져다 딸애한테 주시오. 그 애가 언제 구운 강냉이를 먹어보았겠습니까. 참, 그 애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요?》

《향미라고 부릅니다.》

《어린 딸애의 손에서 끼식을 대접받는 동무도 불편스럽겠지만 집살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그 애도 부담이 클것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진 고중환은 별로 사양치도 않고 구운 강냉이이삭들을 종이에 싸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정의 안색으로 곡진히 말씀하시였다.

《내 이미전부터 고동무에게 권고를 하자고 생각해왔는데 오늘은 터놓겠습니다. 더 미루지 말고 재취를 하시오. 언제까지나 독신으로 지낼수야 없지 않습니까?》

《환갑이 다된 나이에 재취를 한다는것이 좀 면구스럽게 생각됩니다. 딸애한테 가정부담이 가기는 하지만 생활에서 별로 불편이 없습니다.》

고중환은 어줍은 미소를 그리였다.

《나는 앞으로도 몇십년 동무와 함께 일할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동무는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자신을 여기는군요.》

그이의 안색에 떠오르는 서운한 기색을 살핀 고중환은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어떤 때는 나이지숙한 녀성을 데려와볼가 하는 생각이 노상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간 딸자식들과 향미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고중환에게는 아들이 없고 향미의 우로 두 딸이 있는데 그들은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에 시집을 갔다.

《딸들과 의논해봤습니까?》

《제 자식들이지만 그런 말을 꺼내기가 헐치 않습니다.》

《딸들이 리해할겁니다. 돌아간 부인도 남편이 앞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을겁니다.》

고중환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숙연히 머리를 숙이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1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