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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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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2-08 17:38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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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전상환은 책상우에 널린 서류들이며 도서들을 주섬주섬 걷어모으기도 하고 어떤것들은 서류함에 넣기도 하였다.

퇴근차비를 하는것이다. 대소한 무렵이다보니 저녁 6시가 되자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말았다. 다른 때에 비하면 좀 이른감이 있기는 하지만 며칠동안 출장길에서 피곤이 몰린데다가 방금 부장방에 올라가 되게 비판을 받고보니 머리가 뗑해나 다른 사업으로 넘어갈만치 기분전환을 해낼수가 없었다. 그의 퇴근시간은 대체로 밤10시 지나서였다. 복잡하다고들 말하는 문학예술부문을 담당한 부부장인데다가 출판보도부문을 담당한 부부장이 오래동안 결원이여서 결국 두사람몫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였다.

책상을 다 거두고나니 더이상 별로 할 일이 없게 되였다. 그래 그는 평양시내와 지방의 몇개 극장들에 전화를 걸어 최근 무대형편을 대강 알아보았다. 어데도 별로 특이한 문제가 제기된것이 없었다. 하나 미진된것은 며칠전부터 나와달라는 사진전시회장을 꾸리는 문제였다. 며칠동안 휴관하면서 내용을 새롭게 보충하고있는데 문학예술관만은 꼭 봐달라고 했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시간은 아직 넉넉하다. 하지만 래일로 미루자… 그래놓고도 그는 심드렁한 기분에 잠겨 방안에서 한동안 서성거리고있었다. 아직도 노기띤 부장의 목소리가 귀전에 울리는것 같았다.

며칠전 일이다. 전상환은 부장의 지시에 의해서 발레 《에스메랄드》창조성원들과 함께 제철소에 갔었다.

부장의 구상에 의하면 세계적명작이라고 하는 가극, 연극, 무용극 같은것을 평양시안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대담하게 지방에까지 침투시키자는것이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으로 로동계급이 집중되여있는곳에 나가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세기적락후성과 비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큰 혁명과 같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전상환은 의견을 달리하였다. 아무리 좋은것이라 해도 받아먹을 사람들의 구미에 맞지 않아 외면하게 되면 다가 아닌가. 그리고 다른 나라 특히 유럽고전에 대하여 이전에 우리가 여러번 시도해보지 않았던가. 기대했던것과는 달리 연극《오쎌로》, 《와냐아저씨》, 가극 《예브게니 오네긴》, 무용극 《백조의 호수》 등등. 그러나 이것들은 유럽고전들이기때문에 인식적의의가 어느정도 있었고 겸해 호기심으로 해서 보기는 하였지만 우리의것들처럼 군중속에서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발레극 《에스메랄드》는 우선 그 형식에서 더 그럴것이 뻔하였다. 반면에 대중이 좋아하고 당장 해야 할 우리것이 얼마나 많은가. 천리마시대에 상응한것, 항일혁명투쟁시기이야기, 여기에 겹친 우리 나라 고전들…

과정은 어떻든 전상환은 몇달동안 창조과정을 거친 발레극《에스메랄드》를 가지고 제철소에 갔는데 첫날에는 좌석이 꽉 찼고 다음날에는 한 절반정도밖에 채우지 못하였다.

잠시동안 명상에 잠기였던 전상환이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전화종이 울리였다.

《네! 전상환이 전화받습니다.》

김정일입니다.》

《네?》

너무나 뜻밖이였던것이다.

《영천에 와있습니다. 요즘도 바쁘시겠구만요. 제철소에 나가있다더니…》

《오늘오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신통치 못합니다. 후에 만나는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래일은 무슨 일이 예견되여있습니까. 만났으면 하는데요. 들어가서 만날가요? 전 작가들과의 사업을 며칠 더 해야 할것 같습니다.》

《래일오전 아니면 늦어도 오후쯤에 그리로 나가겠습니다. 저도 작가들을 좀 만나겠습니다.》

《그래요. 하여튼 적당한 시간에 나오십시오.》

전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전상환의 기분은 순간에 밝아졌다. 그 무엇인가 기쁜 일이 있을것 같고 앞에 막아섰던 사업상 고충같은것들이 자취없이 사라질것같은 느낌이였다. 제철소행차가 아니였다면 전상환이도 지금쯤은 거기게 나가있을것이였다. 지난 년말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새해에 접어들어 인차 작가들과 함께 어느 조용한곳에 나가 새로운 혁명문학건설에 대한 방도를 의논하자고 하시였던것이다.

전상환은 활짝 밝아진 얼굴을 들고 현관앞에서 차에 올랐다. 김정일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아니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려만 보아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온몸에 희열이 넘쳐흐르고 신심이 생기는것이다. 왜 그런가고 설명하라면 전혀 표현해낼수 없는 순수 륙감적인것이다. 기쁠 때는 더 말할것도 없지만 사업상의견을 받거나 충고가 있은 경우에조차 마음은 자석처럼 그이께로만 마냥 쏠리는것이였다.

어느사이에 차는 벌써 옥류교 네거리를 지나 창광산쪽으로 꺾어돌려고 하였다.

《차를 곧추 몰아서 련못동쪽으로 갑시다.》

사진전시장에 가야 하였다. 래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언제로 되겠는지 기약하기 어렵게 되는것이다.

차는 잠간사이에 련못동에 이르렀다. 전시관 부관장이 밤을 새면서 5.1절전으로 끝내기 위해 작업을 다그치고있다고 하였다. 말이 문학예술관만 보아주면 좋겠다고 하였지 속심으로는 전시관전체에 대한 의견을 받고싶다고 고백하였다.

전상환은 한시간이상 걸려 의견을 주었다. 그에 따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수첩에 적어둔 다음 돌아섰다.

차에 오르다가 문득 생각되는바가 있어 운전수더러 룡성으로 나가는 뻐스시발점에 나가보자고 하였다. 룡성뻐스! 그것을 생각하노라니 지난 초겨울 김정일동지를 여기서 만나뵙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전상환이 김정일동지를 알게 된것은 벌써 오래전부터였다. 그러나 그이의 인상을 가슴깊이 새기게 된것은 그이께서 중앙당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안되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 어느날 여기 룡성행 뻐스정류소에서였다. 기다랗게 늘어서있는 뻐스줄 한가운데서 차례를 기다리고있는 그이의 모습…

전상환은 그때 그 모습이 생동하게 떠올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를 그리로 돌리게 했던것이다.

《저기다 차를 세우시오.》

전상환은 마치 사전에 예정이라도 했던듯이 침착하게 일렀다. 차에서 내린 그는 목을 움츠리며 외투깃을 일쿼세웠다. 맵짠바람이 불어왔다.

전상환은 작년 초겨울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던 룡성행 뻐스정류소를 찾아보았다. 대체로 사람들이 몰켜선데가 전차나 뻐스의 정류소이겠는데 그럴만한데가 인차 눈에 뜨이지 않았다. 룡성쪽을 향해 몇번 두리번거려서야 그때 그 정류소를 찾아낼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정류소표식이 달린 전주밑에 이르렀다. 뻐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네댓명밖에 되지 않았다. 맨앞에 선 청년에게 뻐스가 인차 오는가고 물었더니 이제 한 5분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하면서 구태여 줄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것이다. 형광등불빛이 쏟아져내리는 정류소표식판을 저쯤 바라볼수 있는 거리를 두고 전상환은 그때를 회상하게 되였다.

…전상환은 그날 평남도 순천군당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오고있었다. 해가 지자 날씨는 더 추워졌다. 눈보라가 일어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 재빨리 걸음을 다그치거나 털모자를 눌러쓰고 모재비걸음을 하였다. 승용차는 속도를 한껏 늦추어 련못동어구에 들어섰다. 넓다란 마당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차가 룡성행 시발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고있던 전상환이 급한 소리를 질렀다.

《차를 세우시오.》

순간 바퀴지치는 소리를 아츠럽게 내면서 차는 급정거를 하였다. 전상환은 다급히 차에서 내리더니 오던 길로 한 50메터 되짚어 걸어갔다. 기다랗게 줄지어선 뻐스정류소에 이른 그는 맨 앞에서부터 한사람 한사람 톺아나가다가 중간쯤에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심을 보았다. 역시 빗보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아무 말없이 그이께로 다가가 팔을 덥석 잡고 끌어내려고 하였다.

《아! 왜 이럽니까?》 그이께서는 팔을 뽑아 전상환의 어깨를 가볍게 떠미시였다. 《저는 지금 룡성으로 가는 뻐스를 기다리고있습니다.》 그이께서 승용차를 리용하지 않고 뻐스를 타신다는것이 전혀 리해되지 않았다.

《저기에 차가 있습니다. 어서 가십시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 뻐스를 꼭 타야 합니다.》

《꼭 뻐스를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저어 계속 거절하건만 전상환은 완강하게 모셔가려고 하였다.

두세번 같은 말과 동작이 반복되였다.

그러는 사이에 뻐스가 나타나 사람들이 차에 오르게 되였다. 차에는 설자리도 없이 올랐건만 기다란 줄의 앞머리가 좀 줄었을뿐 차례가 오자면 아직도 두석대는 기다려야 하였다. 그러는사이에 꼬리가 또 늘어나 승객은 좀체로 줄어들지 않았다.

김정일동지의 단호한 태도를 보게 된 전상환은 더이상 권하지 못하고 어둑컴컴한 길가에 비켜서서 그이를 지켜보고있었다. 검은 외투를 걸치였을뿐 털모자도 쓰지 않으시고 발은 보통의 구두바람이였다.

(어디로 가기에… 무엇때문에… 한데 왜 뻐스를 꼭 타야 하는지…)

단꺼번에 여러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답답한것은 어느 하나도 그럴만한 까닭을 찾아낼수 없는 점이였다.

한시간 거의 되였을 때 뻐스에 오르면서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바로 이때의 모습이 어떻게나 뇌리에 깊이 새겨졌던지 후날에도 룡성행뻐스를 생각하게 되면 즉시에 그 모습이 떠오르군하였다.

뻐스가 떠난후에도 전상환은 인차 자리를 뜰수 없었다. 막차가 떠난후에야 그는 승용차 있는데로 돌아왔지만 가자는 소리를 인차 하지 못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후 전상환은 놀랄만한 사연을 알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에 오셔서 사업을 시작한지 몇달 안된 어느날이였다고 한다. 수령님께서 평양시민들의 생활문제를 말씀하시다가 해질녘에 룡성쪽으로 나가게 되시였다. 기다란 뻐스줄을 보게 되였는데 거기에는 애기어머니들까지 끼워 스산한 바람을 맞고있었다고 한다. 수령님께서는 차에 앉아 그앞을 지나자니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 하시였다는것이다. 계속해서 수령님께서는 남새도 철에 맞추어 상점에 내놓지 못하니 신선한 오이나 부루 같은것도 귀물로 되여있는 형편이라고 말씀하시였다는것이다.

그이튿날로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서일군들의 방조를 받는 한편 자신께서 직접 뻐스도 타보고 식료상점과 농장에도 나가시여 하나하나 대책을 세우시였다고 한다. 려객문제를 푸는데서는 정류소배치와 선로에 따르는 복선조직, 기관기업소의 실정에 맞게 출퇴근시간을 조절하고 교통질서를 강하게 세워 륜전기재의 능률을 높이였다고 한다.

남새공급은 생산과 공급을 합리적으로 맞물리게 하고 주민지대별 특성에 따르는 공급체계를 세웠다. 례를 들면 평양방직공장과 같이 녀성종업원이 집중되여있는곳에는 그곳 주민수에 관계없이 퇴근길에 아무데서나 사들고 갈수 있게 하고 주문판매도 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전상환이도 그렇고 당중앙위원회 일군모두가 놀랐다. 그것은 우선 평양시민들의 생활문제라면 해당 전문부문 일군들이나 할 사업으로 알고 자신들은 방관하였기때문이였다. 전상환이자신은 더욱 그러하였다. 도시생활이란 곧 교통과 공급에서의 긴장이 그 대명사로 되여있다는것이 현대인의 상식인것이다. 이 행성우 그 어디에서나 대도시라고 하면 그것은 곧 과대인구에 의한 부작용으로 해서 생활불편이란 필연불가피의 현상이고 보편적인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나라에서는 창피한대로 자기들은 교통지옥에서 살고있다거니 식품에서 록색결핍이 극한점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형편이다. 한데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존공식을 타파하고 끝내 해결을 보고야말았던것이다. 놀라운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평양시민들의 생활문제를 놓고도 그이께서는 시당위원회사업에서의 결함을 발견하신것이다.

평양시 인민생활문제에 대해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벌써 오래전부터 말씀이 계시였다. 그러나 해당 부서나 산하기관의 일군들은 5분열도식으로 끓다말거나 림시 굼때기를 했기때문에 어느정도 해결되였다가도 인차 다시 도루메기가 되고말군하였다. 그런즉 여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가 줄기차게 흐르지 못하고 그 어떤 장애들이 있다는것이 명백한것이다.

김정일동께서는 이 문제를 그해 년간사업을 총화하는 자리에서 당사업에서 주선이 명백치 못하다는것으로 심각하게 제기하심으로써 일군들에게 강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상환은 못잊을 그날 이곳에서 다른 사람과 전혀 다름없이 평범한 차림으로 뻐스줄에 서계시던 그 인상적인 모습을 한동안 그려보며 섰다가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

현관에 들어서니 안해 금순이가 달려나오고 뒤따라 두 딸애가 나타났다. 방안은 훈훈하였다.

외투와 상의를 벗어 거는데 금순이가 생각났을 때 알려주어야겠다면서 말하였다.

《여기 뒤에 허부상네가 있잖아요.》

《허부상?》

《그 왜 외무성 춘희 아버지 아시지요?》

《그래서… 허담부상말이지.》

《그래요. 좀전에 전화를 걸어왔는데요, 이제 여기로 오시겠다고…》

《여기로 온다구?》

《네! 분명 그렇게 말했어요. 꼭 전해달라구요. 사무실에 들리니까 벌써 퇴근한지 오랜데 어디 들린 모양이라구 하면서.》

《그래?》

전상환은 세면장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였다. 웃방에서는 피아노소리가 울리였다. 작년에 음대예비과에 들어간 맏딸 금옥이의 솜씨이다.

수건에 손을 문대고나서 인차 밥상을 받았다.

흰쌀밥과 깍두기, 시뻘건 동치미에 그리고 시래기국이 올랐다.

《여보! 여기로 좀 오우.》

나이에 비해 일찌기 허리가 굵어진 안해가 술병을 들고 나타났다.

《식성이 좋고 몸이 난 녀편네하구 사는 남편은 밥 얻어먹지 못한다는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난 요새야 그 진의를 알게 되누만…》

《직발 반주! 그러면 될걸 뭘 그리 빙빙 에돌지요?》

《아니 여보, 내 알려줄게 한가지 있어 그러오. 물고기류는 암만먹어도 절대 몸이 안나. 안심하구 수산물을 좀 사오우. 지금 흔해빠진게 동태인데 그걸 두부와 함께 숭덩숭덩 썰어서 부글부글 끓이면 얼마나 좋게…》

《한잔 하세요.》 금순이는 술잔에다 찰랑찰랑 부어서 내민다. 《무슨 음식이나 맛나게 잡수시면 돼요. 원자재가 문제가 아니거든요.》

초인종이 울리였다. 금순이가 사뿐히 일어나 나간다. 혹시 허담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상환이 일어서는데 《아유, 어떻게 된일이세요. 춘희 아버지가 우리 집엘 다…》 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전상환은 급히 나가며 《어찌된 일입니까.》 하였다. 복도에 둘이 마주서게 되였다.

《밤중에 실례합니다. 하긴 아직 10시전이긴 하지만…》

언제나 몸가짐과 차림새에서 나무랄데 없이 단정한 허담은 불과 두 집 건너에 있는 이웃인데도 넥타이를 맨채로였다. 그것으로 보아 옆집에 마실로 나온 걸음이 아닌것이 분명하였다.

《왜 그새 전혀 볼수 없었는가요.》

전상환이 먼저 말을 떼였다.

《그럴 일이 있었지요. 저 유럽일판을 한바퀴 빙 돌다보니 어느새 한해가 거의 다 가고 겨울이 되고말았습니다. 그런데다가 인차 함흥에 내려가 한 스무날 있다보니…》

《그래서요?》

《그래서… 아니, 그럼 내가 여기 못올 집에 왔습니까?》

《아니 아니, 그런건 아니구요.》

전상환은 바삐 손을 내저었다.

《내가 찾아온건 다른게 아니구 순전히 우리 녀편네때문이지요.》

《네?》

《놀랄건 없습니다. 출장갔다 들어서는 참인데 녀편네가 하는 소리가 전부부장네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연인즉 내가 외국에 가자마자 인차 우리 큰애 춘희가 기침을 하며 고열이 났다는겁니다. 병원에 가니 입원해야겠다고 해서 보름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그동안 사흘이 멀다하게 이 집 아주머니가 병문안을 오군했다지 않습니까. 그래 완치돼서 오늘 퇴원했다는거지요. 녀편네 하는 소리가 가다오다 한마디 인사치레로 고맙수다 이러지 말고 우정 집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라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러니… 여보.》 전상환이 아래방에 대고 소리를 치니 이집 주부가 인차 문가에 나타났다.

《참말 감사합니다.》

허담은 부인에게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의를 나타내였다.

《그건 그렇다 칩시다. 왔던김에 여기 앉아 얘기나 합시다.》

전상환이 보건대 허담은 어느때 보나 결코 허례허식이 없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였다. 오랜만에 그와 속심있는 얘기나 나누고싶었다.

그들은 서로 나이가 비슷하고 또한 허담이 한때 선전부 과장으로 있을 때 전상환이도 같은 부서의 과장으로 일한적이 있었다. 과거경력도 또한 어슷비슷하였다. 허담이 광산출신이고 전상환은 전쟁에 나갔다가 발전소언제공사장, 그다음에는 군당, 도당을 거쳐 중앙당학교를 나오고 중앙당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서재에 올라가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게 되자 허담이 신중한 기분으로 말을 떼였다.

《중요한 문제가 있어 의논하자고 찾아갔더니 방이 비였더군요.》

근시경을 밀어올리고나서 허담은 담배에 불을 달았다. 몇모금 빨면서 사색을 정리하는것 같더니 곧 뒤를 이었다.

《이번에 유럽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동유럽안에 있는 사회주의나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돌아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나라들에서는 모두 정책수립에서 갈팡질팡입니다. 거의 모든 공산당, 로동당들이 편안치 못하고 어떤 당은 분파가 생겨 고통을 당하고있었습니다. 그 진상을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지요.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볼 때 유독 우리 조선로동당에서만은 그 어떤 변화도 동요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 점입니다. 내가 만나본 각 나라들의 모모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조선로동당의 실태와 그 경험을 알고싶어하고있습니다.》 허담은 상대방의 심정을 알고싶었던지 말을 중단하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의자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전상환은 탁자에 놓인 보온병을 기울여 김이 뽀얗게 서려오르는 차잔을 밀어놓는다.

누구보다도 허담은 전상환의 성격과 사람됨됨을 잘 알고있었다.

전상환은 말이 적은 반면에 행동에서도 남다른 열정을 발휘하는 일군이다. 그는 일단 옳다고 결심한것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내밀며 절대로 중도반단함이 없다.

허담이 말했다.

《동유럽실태를 보면서 나는 느낀바가 많습니다. 외국사람들이 알고싶어하는 우리 당 문헌을 더욱 깊이 파악해서 거기에 정통하고 언제 어디서나 그들에게 말해줄수 있게 준비돼있어야 한다는걸 느꼈습니다.》

《아 그렇지요. 저도 그런 측면에서는 정말 준비가 부족합니다.》

그러자 문득 생각난듯 허담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부부장동무, 내 외국에 가기전 함흥에 갔다가 시간이 있어서 그곳 연극단에서 공연하는 <일편단심>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 연극을 본 감상이 어떻습니까?… 한데 부상동무가 어떻게 갑자기 연극을 봤습니까?》

《내가 왜 연극에 관심을 두면 안됩니까?》

허담은 빙그레 웃었다.

《그런게 아니라…》 당황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전상환은 뒤말을 이었다.

《미안합니다. 난 부상동무가 철학이나 경제학에는 관심이 많으나 예술에 대해서는…》

《옳습니다. 난 예술에는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그 연극에 대해선 뒤소리가 좀 있길래… 직방 말해서 그 연극 주인공의 원형이 누군지 하는데서 론의가 있는것 같습니다. 결국 누구를 내세우려고 그러는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들 합니다.》

《부상동무, 원형이 무슨 상관입니까. 혁명가의 안해를 형상하려 했다면 여러 원형들의 특징을 하나의 인물에 일반화해서 결국 전형을 창조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연극이 신통치 않던 모양이지요?…》

여전히 전상환이 혼자서 말했다.

《그래서 우린 그 연극을 평양에 올려다 방조도 붙이고 해서 더 굴려보자는겁니다… 그 연극에 대한 여론과 반향을 더 알아보겠습니다. 부상동무가 심중히 말해주는건데 무심히 스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어디까지나 예술이니만치 사실과 맞을수도 있고 안맞을수도 있습니다. 그저 있음직한 성격과 생활을 형상해내는것이니깐요.》

그러자 허담이 불쑥 명쾌한 어조로 말했다.

《예술의 감화력이 큰것만큼 그것이 어느 사실이나 원형에 기초했다면 그 사실과 원형은 아주 큰 신빙성을 갖지요. 실지 생활에서 있었던것 이상으로 말입니다.》

허담의 이렇듯 뜻밖의 론의에 전상환은 잠시 얼떠름해졌다.

(역시 세상을 많이 돌아다니니 안목이 트는것 같애. 지성의 키가 눈에 띄우게 커지거든.)

《부상동무 말이 옳습니다. 그건 부인할수 없지요.》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부상동무 견해는 어떻습니까. 우리 무대가 지내 진부하지 않습니까. 발전된 문명한 나라에도 많이 가보았으니 말입니다. <배뱅이>나 가지고 우리 인민의 미학정서적요구를 충족시켜내겠습니까?》

《옳습니다. 수령님께서도 지적하신 문제이지요.》

《그래서 우선 예술에서도 좀 때벗이를 하자는겁니다. 더구나 소설부문에서 혁명적대작을 창작할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도 있고 해서… 무대에서도 혁신해야 할게 아닙니까.》

전상환은 여기에 이르러 흥분에 못이긴듯 자기의 주장을 내친김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부상동무도 리광수의 <혁명가의 안해>를 읽어봤겠지만 거기서 얼마나 혁명가의 안해를 모독했습니까. 결국 혁명 그 자체를 모독했지요. 그래서 우린 이번 기회에 그걸 눌러버리는 혁명가의 안해를 하나 창조해놓자는겁니다. 해방전에 감옥에 갇힌 혁명가를 배반하지 않은 조선녀성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수백리길을 걸어 감옥에 찾아가 남편가까이에서 고생살이를 해가며 옥바라지를 하는 얘기가 좀많습니까. 이것이 해방전 우리 녀성들의 전형이지 리광수가 그린것처럼 앓는 남편을 아래방에 두고 웃방에서 치료하러 다니는 의사와 치정관계를 맺는 그런년이 어떻게 조선녀성의 전형이며 더구나 혁명가의 안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전상환은 목이 마르는지 식어버린 차잔을 들어 쭉 들이키였다.

《하여튼 해당 도당에도 알아보겠습니다. <일편단심>에 대한 군중의 의견과 여론, 반영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머리를 돌리였다

《부상동무,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장기를 한판 두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장기수가 좀 늘었겠지요.》

그들은 오래전부터 장기의 적수였다.

전상환이 벽장에서 장기판을 내놓는데도 허담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러는 허담의 기색을 보며 전상환이 여유있게 말을 던진다.

《부상동무, 마음놓으시오. 사상사업을 맡은 나를 걱정해서 이렇게 말해주는걸 내 모르지 않습니다. 난 정치일군으로서 안전띠를 항상 든든히 매고 일합니다. 어쨌든 <일편단심>은 혁명이라는 붉은 바탕에서 벌어지는 얘기가 아닙니까. 현시기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문화정서생활을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키는데서나 문학예술을 때벗이하는데서 내용도 형식도 새롭게 해보자는겁니다. 더구나 혁명과 건설이 심화되는 지금 권선징악같은 옛날주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 약자선수라 내 먼저 졸을 씁니다.》

장기를 즐기는 허담인지라 자리를 바투 옮겨앉으며 안경을 밀어올리였다.

《3판 2승으로 딱 자릅니다.》

마침내 허담은 장기판에 온 주의력을 다 쏟고있었다. 밤12시에 장기는 각기 1승1패로 되였다.

허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겠습니다. 밤새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밤편히…》

현관에까지 나가 허담을 바래준 전상환은 집안에 들어와 한주일정도로 예견한 출장준비를 하라고 안해한테 이르고 침실에 들어갔다.

×

전상환이 영천에 당도한것은 오후 2시경이였다.

전상환은 인차 해가 잘 드는 아늑한 방에서 차탁을 가운데 하고 김정일동지와 마주 앉게 되였다. 잠시 인사말이 오고간 다음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제철소에 나갔던<에스메랄드>가 어떻게 됐다구요?》 하고 웃으며 물으시였다.

《초벌 선을 보이는 정도는 되였는데 결과를 놓고보면 시원치 않습니다.》

뒤더수기로 손을 가져가며 어색해하던 전상환은 인차 기분을 돌려 명랑한 어조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에스메랄드>가 뭔지 잘 모를수 있다고 생각해서 막을 올리기전에 발레에 대한 상식과 극적줄거리에 대해서 알아들을만치 해설을 했습니다. <에스메랄드>란 집시속에서 자란 한 처녀의 이름인데 <노트르담대사원>이라는 소설을 발레로 각색형상한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까지모도라는 종지기 곱새사나이는 인정비극의 희생물로 된다는 등 내용을 가지고 예비지식을 충분히 주었습니다. 그래 그런지 첫날에는 좌석이 꽉 차고 관중들과의 호흡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점점 빈자리가 많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지 않고도 대체로 짐작이 갑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담배갑을 전상환의 앞으로 밀어놓고나서 계속하시였다. 《발레라는것은 다른 무용과 달라서 우리 사람들에게 잘 리해되지 않을수 있습니다. 180°선상에서 5가지의 특징적인 동작이 계속 반복되고 발끝으로 서서 걷거나 회전하는것인데 그걸 리해하고 흥취를 얻게 된다는것은 조련치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데서는 순전히 무언극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글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조선민족은 흥이 나면 어깨를 들썩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사람들은 허리나 엉뎅이에 흥을 싣습니다. 또 유럽에서는 주로 발을 구르고 하체를 움직이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으시였다. 전상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걸 대중이 리해하게 되자면 시간이 걸릴것 같습니다.》라고 하며 딱해하였다. 그리고나서 《문명》을 줄기차게 군중들속에 밀어넣을데 대한 자기의 구상을 한참동안이나 펼쳐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 전상환을 알게 된것은 벌써 몇해전부터였다.

재작년 여름 어느때인가 영화때문에 중앙보급사에 나갔을 때 잠간 만난적이 있었다.

최근년간 여러 나라에서 영화창작이 높은 열기를 띠고 진행되고있다는것과 몇개 나라의 영화추세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그후부터 영화문제가 제기되기만 하면 즉시에 찾아오군하였다.

그이께서 중앙당에서 사업을 시작하자 맨 처음 찾아온것도 전상환이였다. 그이께서 보신 전상환은 태여난 그대로 모서리가 닳지않은 고지식한 일군이였다.

사업에서 요행수나 줄타기가 전혀 없었는데 이것으로 해서 그이께서는 진심으로 그를 대하게 되시고 그의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시였다.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하신것도 전상환을 좀더 깊이 료해하자는것도 있었고 또 최근에 은연중에 받아안게 되였던 몇가지 의문을 얼마간 풀어보시자는것때문이였다.

《그러니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겁니까?》

김정일동지께는 탁자우에 놓았던 밤빛가위의 책 한권을 앞으로 밀어놓으며 전상환을 쳐다보시였다. 그렇게 되자 전상환은 이에 대한 대답을 사전에 준비라도 하고있었던것처럼 거침없이 속을 털어놓았다.

《우리 나라는 지금 혁명과 건설에서 일대 앙양이 일어나고있지 않습니까. 그런것만큼 그에 상응하게 근로자들의 문화정서생활도 폭을 더 넓히고 흥겹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그건 물론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앞뒤를 살펴가며 좌지를 정해야 하지 않을가요?》

《좌지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적과 대결하는 마당에서 차지하는 자리말입니다.》

전상환은 홀연 몸이 굳어졌다. 부지불식간에 자기의 견해가 왕청같은데로 빗나가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생긴것이다. 그이께서는 때때로 군사용어를 즐겨써서 자신께서 의도하는것을 간명하게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한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좌지를 정한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좌지를!》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우에 놓인 책을 집어드시였다.

《그러면 어제 제가 보고 느낀것을 한가지 말해보겠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전화를 걸게 됐던겁니다.》

책장을 번지였지만 거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제오후에 바람도 쏘일겸해서 여기 읍거리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못 흐뭇한 기분에 잠겨 좌우로 상점들이 주런이 늘어선 거리를 걸어가고계시였다. 한걸음 뒤에는 몸이 다부진 이곳 초대소 소장이 따라가고있었다. 이따금씩 벌판에서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머리우에 해빛이 호돗호돗 내리쪼이는 한낮이였다. 봄날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이께서는 닫긴깃옷의 웃단추를 하나 터놓고 아득히 펼쳐진 벌판을 바라보시였다. 만면에 미소가 어리고 천천히 내짚는 걸음에는 온몸에서 미쳐오는 쾌감이 한껏 실려있었다. 여기 온지 벌써 열흘이 지나 보름이 되여온다.

거리 한복판에 이르게 되였을 때였다.

《영천책방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잠간 간판을 올려다보시였다.

《여기 책방책임자의 일욕심이 대단한것 같습니다.》

허리에 손을 짚고 서서 미소를 지으며 뇌이시였다.

《간판이 책방답게 단정하고 문화성이 있는것도 좋지만 건물에 비해 약간 과장된것을 보면 자기 사업에 대한 의욕을 잘 나타내고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자기가 잘 아는 책방책임자가 정말 그렇다고 초대소 소장은 즉시에 수긍하였다.

책방에 들어서니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어떤 사람은 선채로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진렬장안을 이쪽저쪽 살펴가며 책을 고르기도 하였다.

때마침 이곳 책방책임자가 신간도서에 대한 선전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키가 껑충한 그는 량쪽에 하나씩 책을 갈라들고 그것에 대해 엇바꾸어가면서 해설을 하였다.

온 읍거리에서는 물론 도에까지 일욕심쟁이로 소문난 책방책임자는 얼마전부터 그대로 묵어있는 신간도서《목민심서》를 제꺽 팔아치울 생각을 했던것이다.

《여러분, 이<목민심서>라는 책을 한번 꼭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19세기 우리 나라 실학파에서 대표적인물인 정다산이란 사람입니다. 글을 많이도 쓰고 또 잘도 썼지요. 이 책을 보면 오늘 우리 일군들이 사업작풍을 잘못 가진탓으로 과오를 범하는 일이 절대로 없게 됩니다. 이를테면 과오에 대한 예방은 문제없다는겁니다. 여기에 별의별것이 다 적혀있으니까요. 심지어 직급상 웃사람이 길을 갈 때는 어떻게 하고 도중에서 식사를 할 때는 어떻게 한다, 이런것까지 다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람들틈에 끼워 주의깊이 들으시였다. 해설이 끝나자 그이께서는 좌우로 걸음을 옮기며 서가를 깐깐히 둘러보시였다.

도서들은 정치, 과학기술, 문예도서 또는 잡지나 사전류들이 보기 좋게 진렬되여있었다. 책들을 소개하는 직관물들도 어떤것은 벽장에 또 어떤것은 족자에 걸어 모두 방안 규모와 분위기에 잘 어울리게 해놓았다.

《책임자동지!》

등뒤에서 정도이상의 큰소리가 들리였다. 그것은 열람석에 앉아 책을 보고있던 곤색잠바를 입은 청년의 공손치 못한 목소리였다.

《이 책을 도로 물려주시오. 선전이 그럴듯해서 하나 살가 했는데 그만두겠습니다.》 그는 책을 흔들어대면서 계속하였다. 《지도일군들은 누구나 꼭 읽어야 하는 지정도서라고 하기에 한절반 읽어봤습니다.》

《여보 젊은 친구, 아까 내가 뭐라고 했소. 뜨락또르운전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잖았나. 이건 간부용이요, 간부용!》

《내가 필요해 그런건 아니구요, 우리 형이 도당과장이란 말입니다. 그래 하나 살가 했는데…》

《좋도록 하시오. 억지로 사라는건 아니니까.》

《이건 전탕 베잠뱅이 입고 하늘소 타고 다니던 때 이야기뿐인데…》

옆에 서서 청년의 거동을 지키고있던 김정일동지께서 그의 어깨를 붙잡으시였다.

《여보 운전수동무, 그 책을 나한테 주지 않겠소?》

《그렇게 하지요. 간부라면 꼭 읽어야 한다니까요.》

청년은 잠시 여겨보고나서 두손으로 책을 내들었다.

그이께서는 책값을 치르고나서 정치도서 매대앞으로 자리를 옮기시였다.

《최근에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가 많이 나옵니까?》

《요새는 나오는것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나오는것을 가지고 보급하니까요. 며칠전에 평양에 물어보니까 이달에는 찍어내는것이 없다고 합니다.》

《찍어내는것이 없다?》

의문이 생기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치도서들과 문예도서 진렬장을 유심히 살펴보시고나서 자리를 뜨시였다.…

《부부장동무, 이 책을 본 기억이 있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상환이앞으로 책을 내드시였다. 전상환은 책을 받아들고 가위를 번지며 대답하였다.

《<목민심서>라. 네, 보았습니다. 학교다닐 때 본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정다산에 대해서 생각되는바가 많아집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동기에 의해 새로 출판돼서 보급되고있는지 알고싶습니다.》

《별로 동기라는것은 없고 우리 고전들을 소개하자는 정도입니다.》

《그건 나쁠것이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바보였다 하는 식으로 민족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되니까요.》

《이번에 출판한것은 번역도 잘되였고 또 내용에서도 별로 나쁜것이 없잖습니까.》

《아, 그래요.》

이렇게 응대를 해놓고나서 그이께서는 잠시 침묵에 잠기시였다.

(그래 그자체야 나쁘다고 할수 없지.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의 하나니까. 그런데 당에서 내놓은 사업방법과 사업작풍에 대한 책들은 다 어데가고 백년이 넘은것을 이제와서 선전하고있단 말인가?)

《그러면 하나 해명할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목민심서>가 어떻게 돼서 오늘 우리 일군들의 필독도서로 지정되여야 하는가 하는 그 까닭입니다.》

《필독도서라구요?》

《그렇습니다.》

《그건 부장동무가 직접 발기한것인데… 박부위원장의 권고로…》

말끝을 채 맺지 못하는것을 보면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얽혀있다는것을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전상환은 《목민심서》를 도로 탁자우에 놓더니 고개를 돌리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저도 역시 학교시절에 읽었고 어제밤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놓고나서 그이께서는 진지하게 설명을 가하시였다. 정다산은 실학자의 대표적인물이면서 리왕조에 복무한 관리의 한사람이다. 표제가 말해주는것처럼 《목민》이란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심화될수록 얼굴색이 차츰 달라지는 전상환을 보면서 그이께서는 온건하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저의 립장은 될수록 선의적이지 누구에게 감투를 씌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볼것은 끝까지 알아보아야 후과가 없을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 나라 사회주의와 봉건사회를 동일시하자는것인지 그리고 또 우리에게 지금 <경세유표>나 <려전법>에서 제기하고있는것처럼 어떤 개혁이라도 요구된다고 보는것인지 이것을 알고싶단 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엄청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여기에다 우리 근로자들속에 많이 보급하고있는 유럽 가극이나 발레 같은것, 례하면 《백조의 호수》나 《에스메랄드》까지 첨부한다면 이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간단히 스쳐 보낼 문제가 아닌것이다.

《부부장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릎을 그러쥔 전상환의 손을 당겨보시였다. 그리고는 그 손등을 따뜻이 쓸어만지며 계속하시였다.

《아까 그 이야기를 다시 계속합시다. 우리가 차지할 전투좌지는 자기를 효과있게 보호하고 적을 명중시킬 그런데를 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지금 남조선당국자들은 내놓고 승공통일을 부르짖고있습니다. <에스아르>고공정찰기는 매일이다싶이 우리 상공에 날아들고있습니다. 우리앞은 이렇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익측은 어떤가? 현대수정주의자들이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쏘련이 지금 어떻게 돼가고있는지 부부장동무는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흐루쑈브는 쏘련의 현실은 지금 맑스-레닌주의에다 빠다를 바르면 되는 그런 단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는 한술 더 떠서 <대포로부터 빠다에로!>라는 구호를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땅크를 강철로에 처넣고 검을 꺾어 보습을 만드는 포스타가 나붙었습니다. 이에 대처해서 우리 당은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라는 구호를 들고 나가고있습니다. 최근에는 수령님께서 정세의 추이로 보아 아무래도 지난날 항일유격구에서처럼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 방침을 제기해야 될것 같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가까운 시일안에 당대회나 대표자회 같은 큰 회의를 열고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도 하고 그에 상응한 대책을 세워야 될것 같다고 하시였습니다…》

전상환의 앞에서 손짓도 하고 또 한두걸음씩 앞으로혹은 뒤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말씀하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창문가로 다가가시였다. 그런후에 저녁이 짙어가는 서쪽하늘을 향해 손을 뻗치시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위험은 현대수정주의입니다. 적은 적이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현대수정주의는 우리 편이라는 탈을 쓰고 야금야금 다가들어 혁명의 보루를 무너뜨리고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수정주의는 문명을 자랑하는 양풍을 타고 들어옵니다. 특히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귀맛이 좋고 보기에 현란한 너울을 쓰고 들어옵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생각되는바가 없습니까? 양풍은 서양사람들이 밀어넣는것도 문제지만 우리 사람들이 양풍을 밀수입하는것이 더 위험합니다. <에스메랄드>라는 작품자체는 수정주의일수도 없고 또 나쁠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 한꺼풀 허울을 벗고 다른것으로 변신할 때에는 사태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 하늘아래서, 이 땅우에서 우리 민족끼리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때문에 민족성을 버리고 양풍을 끌어들이는것을 무조건 반대해야 합니다. 민족성을 잃어버리면 민족자체가 없어집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침투가 바로 민족성의 말살을 노리는것입니다. 우리의 전후좌우가 이런데 오늘 우리 실정에서 출발한 정치방식은 다 어디다 줴버리고 어느 옛날도서를 간부들이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내리먹이고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리해해야 합니까? 부부장동무!》

그이께서는 자리를 옮겨 이쪽의 일거일동을 주의깊이 살피고있는 전상환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시였다.

《부부장동무! 의견을 말해보시오. 저의 견해가 지나친것입니까? 아니면 어느 정도 참고할 점이 있는겁니까. 저는 느낀바를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을뿐입니다.》

그이의 저력있는 음성에는 오직 진실만이 울릴뿐이였다.

순간 전상환은 마음속의 시름과 근심을 죄다 잊어버리고 넋없이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이를 대할 때마다 느껴지군하는 감동이라고 할가. 아니 그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어쩔수 없이 정화시켜주는 그런 신비한 힘의 매력이랄가…

참으로 사리에 맞고 예리하고 정확한 말씀이시였다. 전상환은 그런 충격속에서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돌이켜봐야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아나가야 하는지 전상환자신도 지금은 딱히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업에서 심상치 않은 결함이 나타나고있다는것만은 느낄수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차츰 생각해보도록 하고 우선 이 <목민심서>에 대하여 이 글이 가지고있는 제약성이라든가 참고해야 할 점에 대해서 공개적인 론평을 주는것이…》

《공개적인 론평이요?》

《그렇지 않고서는…》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시였다.

《그건 지나친 신경과민입니다. 만약 지정도서요, 필독도서요 하는 지시가 잘못된것이라고 하면 그것을 취소할 필요는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유산을 이제와서 타매한다면 기저귀를 버린다는것이 아이까지 버리는 격으로 됩니다.》

전상환은 입술을 굳게 다문채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시각에 미쳐오는 모든것들, 창유리를 통해 바라보이는 측백나무라든가 그뒤로 펼쳐진 밤하늘 같은것이 모두 꿈속에서처럼 몽롱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확실히 비정상이다. 그리고 엄청난 과오이다.)

환상은 폭풍직전에 보게 되는 음산하게 꿈틀거리는 하늘처럼 갈피를 잡을수 없을만치 착잡한 장면들을 련달아 펼치였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상환의 팔을 잡아 안락의자에 앉히시였다.

《이렇게 심각해질줄 알았더라면 차츰 말할걸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확대경을 들이대니 전투좌지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대체적인 륜곽이 떠오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나면 여기가…》

그이께서는 전상환의 대퇴부위를 꾹꾹 눌러보면서 계속하시였다.

《락동강전투에서 관통상을 입었다는데가 일없습니까?》

그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자기가 부상당했었다는것을 그 누구에게도 말한적이 없었던것이다.

《별일 없습니다.》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이께서는 머리를 흔드시였다.

《그럴리가 있습니까. 참고 견디는거겠지요.》

이렇게 되여 얼마간 기분을 돌려놓게 되자 전상환은 래일일과를 알아보고 자리를 뜰 작정을 하였다.

《래일 작가동맹위원장을 만나시겠다는 예정에는 변동이 없겠습니까?》

《아! 그렇지, 잠간 기다리시오. 전화를 한번 해보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들어 외무성 허담부상을 찾아달라고 하시였다. 잠시후 교환에서는 허담부상이 대외출장에서 돌아왔다는것과 지금은 중앙당에 들어가 자리가 비였다고 하였다.

《잠간 기다리시면 전화를 받도록 련결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안해도 됩니다.》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올려놓고 전상환에게 말씀하시였다.

《천세봉위원장은 후에 만나겠습니다. 래일은 내가 평양에 들어가 허담부상을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벌써 며칠전부터 기다리는 허담이였다.

《모레아침 첫시간에 같이 만납시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한건 참고로 들어주시오. 말을 하다보니까 좀 지나친것도 있을수 있는데 그건 량해하구요. 우리 한번 시간을 내서 제철소에 같이 나가보지않겠습니까. 여기 와보니 농촌실태는 대충 알수 있는데 산업로동자들이 집중된데를 더 보고싶습니다.》

전상환을 바래주면서 벽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첩에 무엇을 적기도 하고 참고서적을 뒤지기도 하시였다.

그러다가 문득 전화통을 끌어당겨 보위성 부상 오진우를 불러달라고 교환수에게 이르시였다.

몇분후에 백두산지구의 어느 한 구분대에 나가있다는 오진우의 거쉰 목소리가 들리였다.

《밤이 깊었는데 미안합니다.》

그이의 말씀에 오진우는 펄쩍 뛰면서 아무때고 말소리만 들어도 기쁘다고 하였다. 정이 떠지는것은 아닌데 자주 만나지 못하는것이 못내 아쉽기만 한 오진우인것이다.

수화기에서는 오진우의 숨소리가 차츰 거칠어지는것이 알리였다.

《요새 건강이 어떻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허두를 떼시였다.

《건강합니다.》

《새로운 직무가 마음에 듭니까.》

《네, 어깨가 더 무거워집니다.》

《요새 분계선에서는 계속 총소리가 울리고 승공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적들이 확성기로 밤낮 불어대는데 군대들의 사기는 어떻습니까.》

그이께서 실상 알고싶은것은 이전처럼 교양실 한쪽에 씨비리벌판을 형상한 그림을 붙이고있지는 않겠지만 그런류의 현상이 없는가 하는것이였다.

《사기는 말그대로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안전장치를 풀어놓은 탄알처럼 격침이 와닿기만 하면 아무때고 뛰여나갈 태세입니다.》

《그래요? 그것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빨찌산회상기라든가 혁명가요 노래집 같은것이 많이 나옵니까.》

《우리는 자체로 필요한것만치 찍어내니까 걱정없습니다. 얼마전까지 사회에서 보급받았는데 지금 자체로 찍습니다.》

《그것참 잘했습니다.》

그것으로 용무는 끝난셈이였다. 《목민심서》와 같은것이 혹시 군대안에 미치지 않았는가 그것이 념려되시였던것이다.

《그럼 됐습니다. 교양자료형편을 알고싶어서 그랬습니다.》

얼마간 한담이 있은후 전화는 끝났다.

그이께서는 전화통을 이윽토록 여겨보면서 방금 거기에서 울려나온 우리 군대는 탄알처럼 뛰여나갈 준비가 돼있다는 오진우의 말을 거듭거듭 상기하고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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