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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43, 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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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2-01 14:38 조회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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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정향을 방에서 내보낸 리대철의 마음은 무거웠다.

언젠가부터 기연가미연가 하던 윤상배와 정향이 관계가 명백해진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였지만 공장을 떠나겠다는데 대하여서는 동의해줄수가 없었다.

기가 막혔다. 인간의 존엄도, 자존심과 량심도 시궁창에 처박은 윤상배에게 그렇듯 훌륭한 딸이 있다는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처세술에 능란한 윤상배는 나라와 인민의 리익은 안중에도 없는 무분별한 인간이라면 그의 딸 정향은 비둘기처럼 착하고 샘물처럼 순결한 처녀였다.

성실한 인간은 자기에게 해당되지 않는 잘못을 제 몸에 멍에처럼 지니고 다닌다더니 아버지때문에 마음속에 무거운 연추를 매달고있을 정향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의 마음속 구김살을 펴주고싶었다.

《정향아, 너의 진심을 알게 되여 고맙다. 그때문에 난 널 보내지 못하겠구나. 우리 함께 고양정뽐프를 제작해가지고 평양으로 가자. 그럼 너의 아버지도 잘못을 뉘우치겠지.》

《정말 그렇게 될가요?》

《난 그러리라고 믿는다.》

《좋은 말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정기를 잃었던 정향의 얼굴에 한가닥 밝은 빛이 스치였다.

《내 정향이에게 하나 부탁을 할가?》

《무슨 부탁인지 말씀하십시오.》

《난 정향이가 처음 공장에 왔을 때처럼 활짝 웃으면서 생활하였으면 한다. 그렇게 하지?》

리대철의 진정에 정향은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알겠습니다.》

목소리를 떠는 정향의 눈가에 맑은것이 함초롬히 고여올랐다.

정향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리대철의 가슴속에서는 윤상배에 대한 원망이 꿈틀거렸다.

상배, 이제라도 비둘기처럼 착한 딸을 위해서 선택을 옳바로 하라구. 그 길이 자신도 살리고 보배같은 딸앞에 떳떳한 길이야. 부모의 미덕이 자식에게 있어서 최대의 재부라고 했어. 알겠나?

지배인방을 나선 정향은 어깨에 지였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듯 마음이 가벼웠다.

방금전 지배인이 한 말이 귀에 매달려 떨어질줄 몰랐다.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책임질수는 없다. 그러니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맡은 일에 전심해라. 네가 주저앉으면 뽐프제작이 흔들린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일에 네가 할 일이 얼마나 많으냐.》

그것은 그 어떤 위안이나 당부이기 전에 정향이가 지닌 의무감을 깨우쳐주는 충고였다.

지배인 말마따나 이제 첫걸음을 뗀 고양정뽐프제작은 류체력학을 전공한 정향에게 많은 몫이 차례져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육체적으로 땀을 바치지는 않아도 생산가공되는 매 부분들의 기술적특성을 다시 콤퓨터에 재현하여 설계의 요구에 도달하였는가를 따져보고 과학적으로 결론을 내리는것이 정향이가 할 일이였다.

그야말로 무겁고도 책임적인 일이였다.

그런 중대한 사업을 놓고 어찌 사사로운 감정에 빠질수가 있겠는가.

가슴속에 삭이기 힘든 돌덩이를 매달아놓은 아버지와 헤여져 공장에 내려온 정향은 아버지가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는 다시는 마주서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이였다.

잘나도 못나도 자기에게 피를 주고 생명을 준 아버지가 아닌가.

어쩌면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기 말을 들을것만 같은 기대를 안고 전화로 아버지를 만났다.

전번에 인사도 없이 훌쩍 집을 떠나온 잘못을 빌었다.

예상외로 아버지의 목소리는 친근하였다.

생활조건은 어떤가, 부탁할것은 없는가 하며 잔근심을 하는 아버지앞에 정향은 혈육의 정은 어쩔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여리여졌다.

하지만 약해지려는 마음을 용케 다잡은 정향은 공장에서의 뽐프제작진행정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이 공장 로동계급을 믿어야 해요. 제가 보기에도 뽐프제작은 기술적으로도 그래 성공은 명백한것 같은데 그걸 무시하고 수입에 매달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나요.

벌써부터 공장사람들이 우리의 힘과 우리의 기술을 외면하고 수입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혁명의 배신자처럼 타매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뽐프수입을 주관한 당사자가 나의 아버지라는걸 알가봐 겁이 나요. 자력갱생의 정신력에 역행하는건 씻을수 없는 과오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내 말을 꼭 명심해주세요.》

여느때같으면 정향의 말을 도중에서 꺾어버리고 제가 옳다고 고집을 세웠을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다 듣고나서 한숨쉬듯 말하였다.

《너도 이제는 다 컸구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였는지 가려볼줄도 알고… 허나 생활은 네가 말한대로 단순하지 않아. 경험도 없이 처음 만든 뽐프가 단번에 성공한다는 담보가 없는 이상 수입을 중단할수야 없지 않니. 완공된 살림집들에 물을 보장 못하면 공장지배인이랑 뽐프제작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될것 같으냐. 그게 몇마디의 추궁으로 끝날상싶으냐?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면 너는 이 아버지를 설복할것이 아니라 그 공장 지배인을 설복해야 해, 알겠니?

됐다. 그런 말은 그만두자. 누가 옳았는가는 조만간에 판가름이 날테니까. 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하거라. 너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썩이는지 모른단다.》

전화를 끊은 정향은 아버지가 사대주의라는 악성종양에 단단히 병이 들어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도 분간 못할 지경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를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서도 헛눈을 팔지 않으리라 마음을 도사려먹은 정향은 설계연구소쪽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그 무엇에 쫓기듯 종종 걸음을 치던 정향은 공장정문앞에서 길 잃은 사람모양 서성거리는 창근을 발견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창근동지!》

다정한 부름소리건만 창근은 별로 반가와하는 기색이 없이 씁쓸해서 정향을 쳐다보았다.

《정향이로구나.》

창근이가 공장에서 나가게 된다는것을 알리 없는 정향은 그를 놀려줄 생각으로 빈정거리였다.

《난 지금쯤 창근동지가 보안서에 불리워간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거예요?》

가슴이 섬찍하게 하는 그 소리에 창근은 펄쩍 뛰였다.

《뭐, 보안서? 내가 왜 보안서에 불리워간단 말이야?》

《중요대상설비생산을 지연시킨 해독행위를 했으니까요.》

《할말이 없구나.》

창근의 풀죽은 소리에 정향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롱담이 지나쳤다면 용서하세요. 난 사실 동지가 사고를 저질렀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어쩌면 사람이 그 지경에 이르렀을가 하고 원망도 했구요.》

《내가 어리석은 놈이였지.》

《나하고 약속하자요.》

《무슨 약속?》

《일을 잘해서 잘못을 씻겠다는…》

《이젠 늦었어.》

《늦다니요?》

《난 오늘부터 이 공장 사람이 아니야.》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그렇게 됐어.》

작별인사를 하듯 맥없이 한손을 들어보인 창근은 어깨를 쭈그러뜨리고 터벌터벌 사무청사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로동과에 들려 수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멍청해서 창근의 뒤를 쳐다보는 정향의 심정은 야릇하였다.

무엇인가 잃은듯 마음이 허전하였다.

정향을 동생처럼 따뜻이 대해주던 창근이였다.

그래서 오빠처럼 허물없이 따랐고…

그런 창근과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서라요!》

귀따가운 소리에 발목이 잡힌 창근이가 주춤하였다.

구울듯이 달려온 정향이가 앞을 막아서며 내쏘았다.

《그렇게 비겁하게 물러가겠다는거예요? 잘못을 빌고… 숙인 머리는 베지 않는다는데… 왜 용서해달라고 하지 못해요? 어서 지배인동지한테 아니, 당비서동지를 찾아가서 잘못을 빌어요. 그리고 분발하면 될게 아니예요. 그렇게 하지요?》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매달리는 정향의 진정에 창근은 목이 꺽 메였다. 자기의 문제를 두고 잘코사니라고 입을 비죽거리고 기껏해서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은 있었어도 정향이처럼 속상해하고 안타까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신적으로 환자가 된 창근은 정향의 따뜻한 진정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정향이! 고맙다만 이젠 늦었어.》

《늦긴 왜 늦었다고 그래요? 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정신을 차리고 두주먹을 부르쥐고 일을 해서 영웅이 되였는데… 사내대장부 맞아?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매일 쫓아다니며 앙앙거려 못살게 구는건데, 그랬더라면 이런 가슴아픈 일이 없잖아. 좋아요, 내가 지배인동지를 만날테야.》

《네가 날 울리는구나.》

격동된 창근은 쿡 치솟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눈굽을 찍었다.

그 즉시 지배인방으로 달려갔던 정향은 본전도 못 찾고 메사해서 쫓겨나고말았다.

리대철은 정향이가 창근의 말을 꺼내기 바쁘게 골살을 찡그리며 성을 내였다.

《안돼!》

정향을 닭쫓듯 한 리대철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리대철은 방금전에 당비서방에 가서 창근이때문에 비판을 받고 온 길이였다.

박영식의 비판이 옳다는것을 인정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무엇인가 채 삭이지 못한것이 있어 풀떡거리는데 정향이가 뛰여들었던것이다. 창근을 오빠라고 하면서 일장 사연을 늘어놓을듯 한 정향에게 무작정 안돼 하고 차단봉을 내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몰풍스럽게 처신하였는지 자기로서도 리해가 안되였다.

담배 한대를 꺼내 불을 붙여문 리대철은 그제야 가슴속에 뭉쳐돌아가는 어혈같은것이 다름아닌 자신에 대한 불만임을 느끼게 되였다.

당비서가 뭐라고 했던가.

《누가 지배인동무에게 인간의 운명문제를 제마음대로 처분할 권한을 주었습니까. 창근이가 사고를 내고 잘못을 저지른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반역죄인가, 창근이가 교양 못할 인간인가. 터놓고 말해서 난 이미전부터 창근의 생활의 이모저모에서 결함들이 제기된다는것을 알면서도 걱정을 하지 않았댔소. 왜, 그건… 창근의 이모부인 지배인동무가 능히 교양하리라 믿었기때문에… 마음을 놓았댔단 말이요. 그런데 동문 창근이를 위해 얼마만큼 품을 들이였소? 기껏해야 욕이나 몇번 했겠지. 동문 창근이를 공장에서 내쫓으라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소? 동무의 손에서 눈을 감으며 아들을 부탁한 동서를 생각해보았는가 말이요? 못했을거요. 했더라면 그렇게 가혹하게 처신할수가 없소.》

격해서 하는 박영식의 비판은 변명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이 모두 정당한것이였다.

리대철은 창근의 일로 하여 동서에게 죄를 지었다는것을 자인하였다.

동서였던 창근의 아버지 정지성은 리대철에게 있어서 참으로 잊을수 없는 인간이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생산현장에서 일하면서 우리 나라의 뽐프기술을 세계적수준으로 끌어올리는것이 리대철의 꿈이고 리상이였다.

그런데 졸업을 하면서 덜컥 뽐프설계연구소에 배치될줄 어찌 알았으랴. 리대철은 속이 알찌근하였으나 배치지인 뽐프설계연구소에 닻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 2, 3년쯤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공장에 내려가리라 마음먹은 리대철은 지써 코를 박고 맡겨진 일에 성실하였다.

3년이 지나 공장으로 옮겨앉으려고 보니 연구소 일군들이 말을 들을것 같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리대철의 이름을 무슨 구호처럼 내세워주고 추어주는데 영영 연구소에 묶어놓을것만 같았다.

야단이였다. 속이 숯가마처럼 달았으나 차마 공장에 보내달라고 제기할수도 없었다.

그러한 때 리대철을 황금덩이처럼 욕심을 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공장 주물직장 작업반장인 정지성이였다.

뽐프설계실현을 위해 몇번 주물직장에 드나들면서 낯을 익힌 정지성은 비록 로동자이긴 하였지만 다문박식하고 인정미가 있어 대번에 정이 가는 인간이였다.

그와 교제를 하는 과정에 리대철은 책상에서 리론으로만 익힌 수백종이나 되는 뽐프를 제 손으로 직접 조립을 해보았으며 결함이라고 찾아본것을 놓고 정지성과 머리를 맞대고 밤깊도록 토론을 하군 하였다.

그 나날 리대철은 정지성의 방조를 받으며 뽐프의 자동급수조절체계라는 발명권을 받게 되였다.

처음으로 뽐프의 질을 높일수 있는 발명권을 받은 기쁨은 하루빨리 현장에 나와야 한다는 야심을 부채질하였다.

하지만 연구소 일군들은 리대철이 너무 공장으로 기울어진다면서 설계과제를 산처럼 안겨주며 공장으로 가는 길에 차단봉을 내리우려고 하였다. 로골적인 본위주의였다. 그렇다고 항변 한마디 할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연구소성원이니만큼 연구소지시에 복종할수밖에 없었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던 어느날 연구소소장방앞을 지나던 리대철은 안에서 들려오는 청높은 목소리에 주춤하였다.

《여보! 자네 정말 너무하구만. 벌써 몇번째 날 찾아와 성화요? 동무때문에 일을 하겠소?》

《자네 친구지간에 정말 이러긴가? 난 무슨 개인적인 리해관계때문에 당신을 찾아다니는것이 아니야. 그 사람은 실력으로 보나 통솔력으로 보나 우리 공장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두고보라니, 앞으로 큰일을 하는걸. 그러니 너무 본위주의를 부리지 말라구.》

목소리를 들으니 정지성이였다. 도대체 누구를 념두에 두고 소장을 못살게 구는걸가. 호기심이 동하였다.

혹시 나를 공장에 데려가려고 떼를 쓰는것이 아닐가?

리대철의 생각을 넘겨짚기라도 한듯 소장의 목소리가 가슴을 쿡 찔렀다.

《에이, 질군이라구야. 혹시 본인이 공장에서 일했으면 하고 당신을 사촉질한게 아니야?》

《아무렴 그 사람이 누굴 사촉질해서 연구소에서 빠져나갈 치졸한 놀음을 하겠나. 그건 오핼세.》

《하긴 그래. 그 동문 성격이 직통배기여서 갈것 같으면 나한테 직접 제기했을거야. 에에, 쓸만 한 나무 먼저 도끼질 당한다더니 연구소에서 그 동물 기둥감으로 점찍었는데… 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공장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란 말이지. 알겠소, 내 당위원회와 토론해보겠소.》

《고맙네. 난 그럼 자넬 믿고 돌아가겠네. 그런데 이보라구, 그 동무에겐 내가 자네를 찾아다녔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게.》

《알겠네.》

그 말을 들은 리대철은 얼른 자리를 피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정지성이 바람처럼 밖으로 사라졌다.

정지성이 욕심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부러웠다.

사흘후였다. 소장이 찾는다기에 가보니 평시에는 무뚝뚝해보이던 소장이 여느때없이 벙글벙글 웃으며 공장에 가서 일하고싶은 생각이 없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처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답지 않게 주밋거리던 리대철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자기의 심정을 토설하였다.

《공장에 가고싶지만 소장동지랑 딱하게 만들것 같아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 소리에 소장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였다.

《내 동무를 연구소에 붙잡아두려고 했었는데 안될것 같구만. 벌써 몇번째나 그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 동무를 내놓으라고 못살게 구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옳은것 같아. 공장으로 가라구. 당위원회와 토론을 했소. 가서 나라의 뽐프제작기술을 세계에 떨치라구.》

목갈린 소장의 말에 리대철은 드디여 소원을 성취하였다는 기쁨과 흥분으로 가슴이 뻐근하였다.

《고맙습니다, 소장동지!》

《인사는 나에게가 아니라 주물직장 정지성반장한테 하라구. 쉽지 않은 사람이야.》

《알겠습니다.》

이미 정지성의 인간됨을 잘 아는 리대철은 오늘 일을 두고 그 인간의 진가를 다시금 뜨겁게 느끼였다.

그렇게 되여 공장에 보금자리를 편 리대철은 주물직장에 배치되여 일하게 되였다.

뜨거운 열풍을 내뿜는 용선로앞에서 정지성과 함께 땀을 흘리며 쇠물을 부어내는 일은 힘에 부치였지만 보람찼다.

이태후 박영란과 결혼한 리대철은 정지성과 친형제처럼 더욱 가까와졌다.

하루하루를 불타는 정열과 피타는 탐구로 이어가며 리대철은 여러건의 가치있는 발명으로 뽐프제작기술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실로 리대철의 성장에는 정지성의 남모르는 수고가 깃들어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지성의 생전에 무엇을 해주었던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다는 죄책이 전신을 휘감았다.

지금도 현장에서 동지들을 구원하고 순직하는 순간 자기의 손을 잡고 하던 동서의 부탁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보게, 우리 창근이를 사람만들어달라구.》

그런데 난 동서의 부탁을 어떻게 대하였던가. 생각해보기조차 부끄러웠다.

문득 안해생각이 났다. 창근이가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는데 공장에서 내보내면 어떻게 하는가 하던… 그때 나는 들은체도 않고 코웃음쳤지, 그 녀석의 버릇 개 못 준다고. …

자책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던 리대철은 담배불이 손톱을 지지는 바람에 펀뜩 정신을 차리였다.


44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매달리던 정향과 헤여져 로동과로 향하는 창근의 가슴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엉켜돌아갔다.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른 원망, 물에 빠진 사람 꼭뒤 누르는듯 한 이모부에 대한 야속함…

그중에서도 제일 가슴허비는것은 송화와의 영리별이였다.

철없던 시절부터 오늘까지 송화와 맺은 인연은 그 누구도 허물수 없는 천연요새와도 같은것이였다.

그런데 창근이라는 불법무도한 인간이 그 요새를 허물어버리였다.

송화가 그 요새를 지키려고 얼마나 안타까이 모지름을 썼던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라, 자존심을 귀중히 여기라, 량심을 버리지 말라고 귀에 길이 나도록 웨치던 송화의 충고를 먼산의 우뢰소리만큼도 여기지 않던 자신이 천만번 후회되였다.

창근은 자기라는 인간은 지금 존엄은 고사하고 량심도 줴버린 뼈대없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동무 손재간 좋구만, 그 친구 솜씨 영광가구가 왔다가 울고 가겠는걸 하는 주문자들의 침발린 과찬에 고무풍선처럼 붕 떠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부르면 달려가 남들이 발편잠을 잘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대패질을 하고…

완성된 제품을 놓고 이것이 마음에 안 드오, 저걸 고쳐야겠소 하면 예, 예 하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던 지난날이 괴롭게 되살아났다.

그것이 과연 무엇을 남기였던가.

로력비로 차례진 몇푼의 돈이였다. 돈밑에 깔린 인생이였다.

바친 땀에 비하여 보잘것 없는 그 돈으로 작업에 빠진 명분을 세운다면서 《통이 크게》 벌린 후방사업… 그 뒤끝에 따르는 몇몇 사람들의 칭찬, 창근이가 괜찮아. …

그것에 기고만장해서 세상에 자기가 똑 제일인체, 남보다 힘이 있는 강자인듯 했던 창근이였다.

아, 나는 세상 천하 바보였구나.

나야말로 정신적인 약자, 정신적인 불구자였다.

이제 공장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가. 당장 갈 곳도 없다.

가구주문자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칭찬할 때에는 당장 먹을알 있는 직장, 괜찮은 기관으로 갈것만 같아 지배인인 이모부에게 가겠다, 보내달라며 우둘렁거렸지만 막상 몸 담을 곳을 꼽아보니 발을 들이밀기가 서슴어졌다.

나의 인간됨이 공정하게 평가된 평정서를 본다면 그 누가 나를 품어줄텐가.

그전날 친절했던 가구주문자들은 언제 보았더냐싶게 외면할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창근은 자기야말로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것을 통절히 느끼였다.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진듯 무겁게 계단을 오르는데 웃층에서 투닥투닥 덤벼치는 신발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절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왜 이제야 오는거야?》

로동과장의 목소리였다.

창근은 속이 불끈하였다.

이건 뭐야, 만나자바람으로 떡떡거리면서… 소도 도살장에 보낼 땐 잔등을 쓸어준다는데 나같은건 소만도 못하다는거야?

심사가 울뚝해진 창근은 본체도 않고 그냥 계단을 올려짚으려는데 로동과장이 어디서 불이라도 난듯 볶아댔다.

《그 수속용지를 달라구.》

수속용지는 왜 달라는거야?

창근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수속용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홱ㅡ 나꾸어챈 로동과장이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동무, 수속 그만두라. 알겠지?》

최종결론처럼 명백하게 하는 로동과장의 말에 창근은 금시에 바자말뚝이 되고말았다.

왜 수속을 그만두라는거야?

《이제 빨리 당비서동지방으로 가라구, 알겠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덤벼치며 말한 로동과장이 홱 바람을 일구며 사라졌다.

창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비서아바이가 날 찾는다? 날 왜 찾는다는거야?

의문부호를 풀지 못한채 당비서방에 들어서니 박영식이 기다리고있었다.

《왔구만.》

따뜻한 목소리가 속이 한줌만 해서 들어선 창근을 포근히 감싸안았다.

벌받은 학생처럼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창근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박영식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가사를 알고있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물음이라 가뜩이나 얼친 망둥어꼴이 된 창근의 얼어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송화에게 준 그 노래가사 말이다.》

《?!》

창근은 맨발로 불판우에 올라선듯 흠칠 몸을 떨었다.

비서아바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계실가. 송화가 말했을가?

그럴수 있다. 이제는 나와 영 남남이 된 그가 당비서에게 무슨 말인들 안했겠는가.

대답을 못하는 창근에게로 다가선 박영식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덜된 녀석! 누구보고는 조국에 심장을 바치라고 훈시질을 하고는 자기는 돌아앉아서 제 심장에 오물들만 가득 채워?》

《…》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얼마나 소중한 부름인가.

자기 심장을 조국에 바치지 않고서는 사는 보람도 행복도 없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강조국건설에 자신들의 피와 땀, 지어는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치고있느냐. 영웅적최후를 마치고 공장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속에 사는 너의 아버지만 보아도 그런 훌륭한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지. 한발자국만 비켜서도 얼마든지 살수 있었지만 동지들을 위해 자기 심장을 서슴없이 내댔거던. 그런데 네 녀석은 뭐냐? 키워주고 먹여주고 공부시켜준 고마운 조국에 눈곱재기만큼도 보답한것이 없이 저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지, 버러지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정신적인 병자가 되였거던.》

예리한 칼로 심장을 찌르는듯 한 박영식의 꾸중에 창근은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여적 아버지의 영웅적최후에 대하여 감감 잊고있었던 창근이였다.

공장사람들이 아버지를 영웅으로 추억할 때면 그처럼 빛나는 위훈을 세운 아버지가 왜 남들처럼 영웅칭호를 못 받았는가고 아쉬워한 창근이였다.

아버지가 진짜로 영웅이 되였다면 자기의 앞날은 창창하였으리라고 허황한 꿈을 꾼적도 그 몇번이였던가.

《그래, 네 잘못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예.》

창근의 목소리는 금방 숨이 넘어갈듯 힘이 없었다.

《송화가 아니였더라면 난 널 만날 생각이 없었다.》

《?!》

송화라는 말에 창근은 소스라쳤다.

송화가 아니였더라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해온 송화가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내 아무리 궁리가 너그럽다고 해도 공장의 중대사를 망쳐놓은 녀석까지 품어안을 생각이 없었거던. 그건 네 이모부도 마찬가지야. 이모부 소리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자. 내 지배인에게 창근이를 공장에서 내보내는 문제를 고려해보자고 했다가 코를 떼웠다니.

당비서가 그렇게 속이 넓은줄은 미처 모르고있었다는게 아니겠소. 얼마나 격분했으면 그랬겠어. 그래 송화의 말도 안 듣겠는가 했더니… 하, 금시까지 범처럼 펄펄 뛰던 지배인이 벙어리가 되고말더라니까. 새겨들어. 송화가 날보고 뭐라고 한줄 알아? 오작난 날개바퀴는 다시 만들면 되지만 공장에서 몹쓸놈이라고 버린 사람은 누가 맡아안겠는가, 그러면 창근이라는 인간은 영영 사회와 집단의 버림을 받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만다고 하더란 말이야. 듣고보니 생각이 많았어. 도대체 송화가 너처럼 못난 녀석이 뭐길래 이 당비서의 가슴을 울렸는지 모르겠거던.》

《비서동지!》

창근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듯 비칠거리며 떨어지는 눈물을 팔소매로 연신 벅벅 닦았다.

《허, 그래도 가슴이 영 메마르지는 않았군. 진정해라.》

박영식이 창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생나무에 불이 붙으면 무섭게 타번진다는데 강심을 먹고 새 출발을 해야 해. 알겠니?》

《알겠습니다.》

《가보라구.》

굽석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창근에게 박영식이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그 돌의자를 제자리에 가져다놓을수 있을가?》

《…》

창근은 못 들은체 방을 나섰다. 심장이 다시 세차게 고동쳤다.

당비서가 던진 그 말이 큰 파문을 일으키며 감정의 파도가 출렁이게 했다.

정말 돌의자가 다시 제자리에 놓일수 있을가?

아니, 난 송화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놈이야.

죽자 하구 일을 해서 잘못을 씻는데만 정신을 집중해야 해.

당위원회청사를 나서니 공장의 모든것이 새로운 눈으로 안겨왔다.

주물직장, 가공직장… 그리고 비록 마가을이여서 잎들을 털어버렸지만 돛대처럼 곧추 자란 수삼나무들이 무척 정답게 보였다.

그전에는 정을 느껴보지 못한것들이였다.

심호흡을 가다듬는 창근의 가슴은 뻐근해났다.

공장사람들의 버림을 받았던 자기가 그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되였다는 기쁨이 가슴을 달구었다.

당비서아바이가 말했지, 생나무에 불이 달리면 무섭게 타번진다고.

그래, 내 꼭 무섭게 타번지는 불이 되리라.

정향인 또 뭐라고 했던가. 그렇지, 나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정신을 차리고 분발해서 영웅이 되였다고 했지.

영웅은 못된다 해도 혁신자야 왜 못되겠는가.

정향에게 자기 소식을 알려주고싶었다.

그가 알면 얼마나 기뻐할텐가.

마냥 들먹이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향방없는 걸음을 옮기는데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리였다.

손전화기를 보니 현시판에 알지 못할 번호가 찍혀있었다.

《누굴 찾습니까?》

《정창근동무 아니예요?》

가구주문자 같았다.

그전 같으면 장타령을 하며 요구하는 가구형태를 물어보고 시간을 약속하였을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먼 과거의 일로 되고말았다.

창근은 단호히 뿌리쳤다.

《그 정창근은 죽었수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상대방의 목소리.

《어마나, 그게 사실이예요?》

《사실이요.》

《야! 참 안됐군요. 그 재간이 아깝다.》

전화를 끊은 창근은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말았다.

또다시 걸음을 내짚던 창근은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는것만 같아 주물직장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

저기 주물직장앞 수삼나무옆에 송화가 서있는것을 본것이다.

그를 보는 순간 창근의 가슴은 숨죽었던 자동차기관이 발동이 걸리듯 와당탕거리였다.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듯 사정없이 가슴을 걷어찼다.

송화, 고마와 하는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다가 잦아들었다.

그전처럼 스스럼없이 송화를 부를수 없음을 느낀 창근은 강잉히 머리를 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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