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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21,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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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1-21 18:05 조회4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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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떡심이 풀린 창근은 통나무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량손에 무겁게 들고온 음식구럭지가 맥없이 미끄러져내렸다.

제길, 한걸음만 빨리 왔어도 되는걸.

이제라도 직장휴계실에 가면 동무들이 있지 않을가.

막연한 기대를 품은 창근은 움쭉 몸을 일으켰다.

구럭지를 들고 직장휴계실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별안간 등뒤에서 《하루품을 판 값에 비하면 손에 든것이 너무 가볍지 않은가요?》 하는 송화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창근은 못된짓을 하다가 덜미를 잡히운듯 공연히 화닥닥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퇴근중인듯 외출복차림의 송화가 생글생글 웃으며 서있었다.

날씬한 몸매에 장미꽃처럼 환한 얼굴에 웃음까지 함뿍 담은 송화를 보는 창근은 머리가 핑 도는것 같았다.

송화가 이렇게 아름다왔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놀라운것은 오래간만에 송화가 웃는것을 본것이였다.

마치 무겁게 드리운 구름장사이로 얼굴을 내민 해를 보는것만큼이나 마음이 즐거웠다.

아까 전화를 할 때 보아선 만나면 독오른 고추처럼 새파래서 기관총 련발사격하듯 두들겨팰것 같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가.

오래간만에 받아보는 따뜻한 정에 흥이 난 창근은 빙긋 웃어보였다.

《동무들의 수고에 비하면 작은건 사실이야.》

《호호호! 오늘은 벌이가 시원치 못한게지요?》

그 말에 속이 켕긴 창근은 침먹은 지네처럼 꼿꼿해졌다.

《그건 무슨 소리야? 남을 도와주었는데 벌이라니…》

《또 그 소리, 이젠 내앞에서 낡은 축음기같은 소리를 곱씹기가 창피하지 않아요? 내 공연한 소릴 했지. 그걸 어서 수고한 동무들에게 가져다주세요.》

《퇴근하지 않았을가?》

《아니예요. 이제 오면서 보니 금방 목욕을 끝내고 직장휴계실에 들어가더군요.》

《그래?!》

창근은 늦게나마 면무식을 하게 되였다는 생각에 숨이 나갔다.

《그럼 내 얼른 갔다오겠어.》

사기가 난 창근은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통나무무지를 에돌아 사라졌다.

한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창근이가 사라진쪽을 지켜보는 송화의 입에서는 가는 한숨이 새여나왔다.

좀전에 작업을 끝내고 뒤거두매를 하고있는데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퇴근하면서 창근을 집에 데리고 오라는것이였다.

무슨 일인가고 물으니 창근이가 좋아하는 잉어매운탕을 끓여놓았다고 했다.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만 창근을 자식처럼 여기는 아버지의 분부여서 군말없이 응하였다.

사실 저녁에 창근을 만나 오늘 작업을 뚜꺼먹은 일을 놓고 단단히 회계를 하려고 별렀었다.

창근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악습으로 굳어져가는 그 버릇을 깨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회계를 하자면 낯을 붉혀야 하는데 얼굴에 장마비구름을 안고 아버지앞에 나타날수야 없지 않는가.

그러니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으로 창근을 집으로 《모시고》가는 수밖에…

직장사무실에 갔던 창근이가 싱글벙글하며 돌아왔다.

《어딜 갈가? 식당에 갈가, 극장에 갈가?》

오랜만에 천진한 어린애처럼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창근을 보는 송화는 고까왔던 감정이 말짱 사라진듯 싶었다.

《호호호, 서쪽에서 해뜨겠네.》

《그건 무슨 소리야?》

《동무 입에서 식당, 극장에 가자는 소리를 처음 듣는것 같아 하는 말이예요.》

송화의 비양에 창근은 얼굴이 벌개지며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이때라고 송화가 탕개를 조였다.

《어디한번 꼽아보라요. 내가 제대되여온 날부터 오늘까지 언제한번 그런 말을 해본적이 있어요? 남들은 퇴근후면 산보를 하고 극장, 영화관에 간다는데… 우린 뭐예요? 만나면 얼굴을 붉히는 일밖에 더 있어요?》

그 목소리에는 설분이 짙게 풍기였다.

속이 뜨끔해난 창근은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애매하게 고개를 끄떡끄떡거렸다.

개인들이 주문한 가구를 그들의 취미와 기호에 맞게 제작한다는것은 고도의 신경전이여서 언제 다른 일에 마음의 여유를 둘새가 없었다.

그러니 송화를 위해 시간을 낼수 없은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진정 송화에게 미안스럽기 그지없었다.

《좋아, 이제부터 송화를 기쁘게 해주겠어. 퇴근후에는 산보도 하고 극장과 영화관에도 가고… 좋지?》

창근의 장담에 송화의 버들눈섭이 꼬리를 쳐들었다.

《그렇다는 의미에서 오늘은 극장으로 가자구.》

흥분한 창근은 당장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듯 흰목을 뽑았다.

진정이 넘치는 창근의 호기에 말려든 송화는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였다.

《정말?》

《정말이라니까, 가자구.》

창근이 송화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가자요.》 하고 몇걸음 끌려가던 송화는 아버지의 당부가 생각이나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오늘은 안되겠어요.》

《안되다니? 왜?》

《아버지가 동무를 집에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동무 아버지가? 왜? 무슨 일인데…》

성급하게 묻는 창근이의 얼굴이 금시에 긴장되였다.

혹시 송화 아버지가 앓는게 아닐가.

이 기회에 창근을 정신차리게 해줄 엉뚱한 생각이 든 송화는 부러 시무룩해서 기여드는 소리를 하였다.

《아마 아버지가 동무에 대해 다 들으신것 같아요. 맡은 일에 성실하지 않고 개인들의 가구제작에 정신이 빠져돌아가는…》

《뭐야? 그걸 어떻게 아신단 말이야? 혹시 송화가 다 일러바친게 아니야?》

혼겁해서 내지르는 창근의 외마디 소리에 송화는 웃음집이 흔들거리는것을 참고 성난 표정을 지었다.

《날 무슨 고발쟁이로 아는게 아니예요? 시시하게…》

《챠 이런, 야단났는데… 그러니 송화 아버지가 날 찾는건 매를 안기기 위해서겠어?》

《혼쌀나게 됐지. 우리 아버지 성나면 범보다 더 무섭다는걸 알지요?》

송화의 말은 사실이였다. 평시에는 말이 적고 인자해보이는 송화 아버지는 일단 성이 나면 범보다 더 무서웠다.

그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송화, 난 동무 아버지앞에 나설 자신이 없어. 그러니 혼자 가서 사정이 여사여사해서 데려오지 못했다고 잘 말해달라구.》

《몰라요. 난 이미 아버지한테 동무를 데려간다고 전화를 했어요. 그러니 무조건 가야 해요. 어쩔테예요?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호미난방격이 된 창근은 잔뜩 여기가 질려 갈팡질팡하였다.

시르죽은 상을 한 창근을 띄여본 송화는 정도이상으로 놀리는것 같아 탕개를 늦추었다.

《방금 한 말은 내가 지어낸것이예요.》

《뭐야?》

《내 말로는 동무를 교정할수가 없어 아버지이름을 빈것이니 이젠 정신을 차리라요, 알겠지요?》

안도의 숨을 내그은 창근은 민망한 눈길로 송화를 흘기며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알겠어, 이제부턴 내 송화가 싫증이 나도록 산보를 시키지.》

《호호호, 두고보자요. 누가 싫증이 나는가.》

《그런데 동무 아버지가 날 찾는 리유는 뭐요?》

《응, 그건… 동무가 좋아하는 잉어매운탕을 대접하시겠다나.》

《잉어매운탕?》

탄성을 올리는 창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집에 기쁜 일이 있거나 특식이 생기면 잊지 않고 꼭꼭 찾는 송화 아버지 진정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날 송화 아버지의 성의가 담긴 얼벌벌한 잉어매운탕을 두사발이나 축낸 창근은 래일부터 자기를 기쁘게 해주기를 갈망하는 송화를 실망시키였다.

지어먹은 마음 사흘 못 간다고 경쟁적으로 접어드는 가구주문자들의 유혹이 송화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게 하였던것이다.



22

며칠전부터 내리는 비는 오늘도 멎지 않고 계속 내리고있었다.

장마가 시작된것이다.

지배인 리대철의 방에는 설계연구소 사람들과 엄명선이 그리고 여러명의 기술자들이 둘러앉아 고양정뽐프제작을 놓고 의견들을 나누고있었다.

그들과 좀 떨어진 곳에 앉은 박영식은 그 일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하늘처럼 먹장구름이 꽉 덮여있었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누구도 알수 없었다.

《개량제는 어떻게 되였소?》

리대철의 물음에 엄명선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다.

《규소철과 희토류를 해결하였는데 마그네시움이 아직… 세천에 알아보니 인차 뽑는다고 하는데 그게 언제쯤이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앉아서 기다리는 장수보다 돌아치는 꽁생원이 낫다는데 시원히 갔다오오.》

《알겠습니다.》

《설계는 어느 정도 진척되였습니까?》

설계연구소 김정민부소장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승준실장동무가 오늘 아침에야 고양정뽐프에 적응한 날개바퀴각도와 흡입과 배출구의 수치를 찾았습니다.》

그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리대철이 흥분하여 환성을 올리였다.

《그렇습니까! 대단하구만요! 대단해. 실장동문 왜 가만있소? 설계의 돌파구가 열렸는데 소리쳐 자랑을 해야 할게 아니요.》

번대머리실장이 씩 웃으며 그답지 않게 기여드는 소리를 하였다.

《우리 설계가들을 위해 바친 지배인동지와 당비서동지 그리고 공장종업원들의 성의에 비하면 너무 늦었지요.》

리대철이 처음 설계가들과 한 약속대로 후방사업을 한걸 두고 하는 말이였다.

아닌게아니라 하루빨리 설계를 완성하기 위해 주야전투를 벌리는 설계가들을 위해 제작조동무들과 공장종업원들이 바친 지성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송화의 아버지 최금석은 설계가들의 입맛을 돋구어준다면서 매일과 같이 청천강에 나가 낚시질을 하여 물고기를 잡아왔고 명선과 주경세는 그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리대철은 실장의 솔직한 고백에 코마루가 매워났다.

처음 해보는 설계이지만 세계를 딛고 올라설 야심을 품고 밤낮없는 전투를 벌린 저들의 헌신에 비하면 공장사람들이 한 일이 뭐라고 저렇게 쭐나게 그러는가. 고지식하고 성실한 사람들…

그렇듯 큰일을 하고도 어깨를 낮추는 그들을 리대철은 업어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설계가동무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뽐프에서 핵심부분인 날개바퀴각도와 흡입, 배출관의 수치가 확정되였다는것은 뽐프제작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다는것을 의미하오. 그렇지 않습니까? 부소장동무.》

《옳습니다. 이제 정향동무가 콤퓨터로 설계의 요구대로 뽐프의 모형을 빚고 특성모의시험과 해석만 끝나면 됩니다. 한두시간 후면 끝낼것같기도 한데…》

《그러니까 오늘중으로 끝낼수 있다는게 아닙니까?》

부쩍 호기심이 동한 리대철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여태 말 한마디없이 창밖만 내다보고있던 박영식이 사람들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 처녀가 참 기특하거던. 어제 밤늦게 퇴근하다가 방에 불이 켜져있기에 들려보니 저녁식사도 잊고 콤퓨터앞에 마주앉아있더군.》

《예, 볼수록 정이 가는 동무입니다. 얼마나 이악스러운지… 그 동문 꼭 해낼겁니다.》

실장의 칭찬이였다.

《정향동무가 해석을 완성하면 표창휴가를 보냅시다.》

엄명선의 제기에 리대철이 그건 무슨 소리냐는듯 쳐다보았다.

《군대에선 군무생활에서 특출한 성과를 올린 군인들은 표창휴가를 주지 않습니까.》

눈이 어웅해있던 리대철이 제꺽 맞장구를 쳤다.

《그거 좋구만! 정향동무야 당당하게 표창휴가를 받을만 하지. 지금 하고있는걸 성공하면 당장 보내기요. 그 사실을 알면 부모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소.》

《난 반대없습니다. 보냅시다.》 하던 박영식이 생각난듯 물었다.

《실태료해조사람들은 언제 내려오겠답니까?》

《예, 어제 평양에 알아보니 처장이 출장을 갔는데 그가 돌아오면 인차 내려오겠답니다.》

그때 섬광이 번쩍하더니 하늘이 터진듯 우뢰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였다.

방안이 다 흔들거리는듯 싶었다.

방안의 사람들이 모두 불안스러운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데 박영식이 《이거 안되겠군.》 하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말코지에 걸어놓았던 모자를 벗겨 머리우에 올려놓았다.

그가 부업지에 나가려고 서두른다는것을 느낀 리대철이 급해맞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업지에 나가시려는게 아닙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누만요.》

《제가 나가보지요.》

《지배인동문 언제 그런데 신경쓸새가 있습니까.》

무뚝뚝하게 뇌인 박영식은 더 어쩔 사이없이 방에서 나갔다.

그가 사라진 문가에 눈길을 박은 리대철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후방사업은 당일군들의 몫이라고 하시였다면서 지배인은 기업관리와 생산에만 전념하라고 하고는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뛰여다니는 박영식이였다.

신발창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바친 그의 노력으로 돼지목장과 남새온실에서 나는 고기와 남새들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여 종업원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박영식의 머리속에는 어떻게 하면 종업원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내세우겠는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의 지론은 잘 먹고 잘 살아야 생산도 잘되고 그래야 어디 가도 주눅이 들지 않고 떳떳하다는것이였다.

당비서가 그렇게 후방사업문제를 틀어쥐고 내미니 리대철은 일하기가 헐하였다.

오직 생산과 기업관리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그러니 어찌 생산이 올라가지 않으랴.

내각에 회의를 가거나 지도국에 회의를 가면 다른 공장, 기업소 지배인들이 계획을 못해 머리를 숙일 때 리대철은 늘 주석단에 앉아 그들을 굽어보군 하였다.

그때문인지 다른 공장 지배인들은 리대철을 보고 코대가 세다고 한다.

강자는 고개를 쳐들게 되고 약자는 고개를 떨구기마련이라고 남들한테 떳떳한데야 코대가 높을수밖에… 그게 무슨 흠이란 말인가.

리대철은 그것을 존엄이고 자존심이라고 한다.

어떤 지배인들은 리대철이 그렇게 된것은 당비서를 잘 만난 덕이라고 한다.

리대철은 그 평가를 전적으로 수긍하며 이렇게 말하군 한다.

행정일군이 당일군을 잘 만나면 룡마를 탄것과 같다고…

《꽈르릉!》

천둥소리가 심연에 빠져있는 리대철을 잡아흔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방안을 둘러보니 모두 언제 사라졌는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빨리 당비서를 따라 부업지로 나가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리대철은 머리를 흔들었다.

부업지에는 당비서가 나가있어 마음을 놓을수 있는데 지금 정향이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였다.

그 시각 콤퓨터화면에 현시된 뽐프모형을 검토해보는 정향의 등뒤에서 설계연구소 부소장과 실장이 예리한 눈길로 화면을 주시하고있었다.

뽐프의 모형이 화면에서 살아숨쉬는 생명체처럼 좌우로 움직인다.

이어 뽐프의 부분품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해보던 실장이 입을 열었다.

《물흐름길부분을 다시한번 살펴보오. 그리고 날개바퀴와 안내날개의 값을 잘 따져보오.》

실장의 요구대로 정향은 날개바퀴와 안내날개의 흐름단면을 좁히고 날개출구각을 변화시키였다.

《날개출구각이 너무 꺾이지 않소?》

부소장의 의견에 정향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력학적견지에서 볼 때 축동력의 안정성을 보장하자면 지금상태가 가장 안전하답니다.》

드디여 화면에 뽐프의 물흐름량, 양정, 축동력의 특성값이 현시되였다.

설계도면과 그것들을 대조해본 실장이 만족해서 부소장을 쳐다보았다.

《부소장동지! 이젠 됐습니다.》

콤퓨터에 시선을 박은 부소장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피여났다.

《옳소! 성공이요, 성공!》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듯 의자를 차고 일어선 정향이가 두사람을 보며 목멘 소리를 하였다.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요.》

정향의 눈에 어느새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피타는 탐구로 날과 날을 지샌 보람이 있어 오늘 드디여 성공이라는 가슴쩌릿한 기쁨을 안고보니 자기도 뽐프제작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바쳤다는 긍지로 막 환성을 터치고싶었다.

벙글거리는 실장이 생각난듯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우리만 좋아해서야 되나. 빨리 지배인동지에게 알려야지.》

때마침 나들문이 벌컥 열리더니 물참봉이 된 리대철이 방안으로 뛰여들었다.

《에, 무슨 놈의 비가 이렇게 사납게 오는지…》 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에 묻은 비물을 훔쳐낸 리대철이 다우쳐물었다.

《어떻게 됐나?》

《성공입니다.》

조용히 뇌이는 부소장의 말에 리대철이 환성을 터뜨리였다.

《그래! 어디 보자구.》

허리를 구부리고 선채로 콤퓨터에 현시된 뽐프모형에 눈길을 박은 리대철은 마우스로 이리저리 모형을 돌려가며 주의깊게 살피였다.

《멋쟁이로구만!》

다음으로 매 부분들의 모형을 하나하나 살피고나서 특성값을 따져보았다.

《설계와 대조했겠지?》

《그럼요. 1미리메터오차도 없이 완전무결합니다.》

뻐기듯 말하는 실장의 대답에 리대철은 콤퓨터에서 눈길을 떼며 흥분해서 웨쳤다.

《멋있소! 이것이 바로 우리 식의 고양정뽐프요. 그런데 왜 이 사실을 나한테 제때에 알리지 않았소?》

《지배인동지가 이렇게 달려올줄 알고 기다렸지요. 기쁜 소식은 예고없이 맞다들려야 쾌감이 크다던지…》

실장의 능청에 리대철은 그의 어깨를 철썩 두드리였다.

《엉큼한 친구! 하하하.》

방안이 들썩하게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난 리대철이 갑자기 콤퓨터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던지였다.

《다시한번 보자구.》

그 소리에 방안의 사람들이 모두 뜨아해했다.

마우스를 쥐고 뽐프의 동체와 부분품들을 다시한번 유심히 살피는 리대철의 마음속에서는 연신 탄성이 터졌다.

《아무리 보아도 멋쟁이야, 멋쟁이!》

홀린듯이 콤퓨터화면을 들여다보느라니 생각이 깊어졌다.

처음 고양정뽐프를 수입해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분격하여 야밤중에 건설지휘부에 뛰여들어 당장 수입을 중지하라고 항변하던 일이며 설계를 참고할만 한 자료가 없어 속을 태우던 일, 공장의 능력과 기술로는 어림도 없다고 비웃는 사람들과 맞대거리로 언쟁을 하던 일들이 돌이켜졌다. 그런데 이렇게 멋쟁이설계를 마주하고보니 그 일들이 아득한 옛일들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두려울것이 없다. 멀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자력갱생의 위력을 떨친 강자로 세상 보란듯이 우뚝 올라설것이다.

석상처럼 굳어져 움직일줄 모르는 리대철을 지켜보는 김정민부소장과 승준실장 그리고 정향의 표정은 한껏 긴장되여있었다.

왜 그럴가? 무슨 흠이라도 발견한것이 아닌가.

승준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배인동지, 왜 그러십니까? 혹시 무슨 흠이라도…》

그 소리에 리대철은 머리를 흔들며 돌아섰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아니… 그런게 아니요. 이걸 보느라니 지나간 일들이 돌이켜졌소. 처음 고양정뽐프를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설계를 참고할만 한 자료가 없을 땐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했댔소. 믿을건 자력갱생이였지만… 동무들이 아니였더라면 한갖 허풍으로 되고말았을거요. 그런 의미에서 내 동무들에게 머리숙여 인사를 드리오. 부소장동무, 실장동무, 정향이, 정말 수고들 많았소.》

리대철이 정회가 깊은 눈길로 그들을 한사람한사람 둘러보며 깊숙이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하였다.

그를 본 사람들이 급해맞아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아니, 지배인동무, 왜 이러시우?》

《지배인동지, 이러지 마십시오. 제발…》

《지배인동지…》

《내 너무 기뻐서 그러오. 세계와 당당히 맞설 우리 식의 뽐프를 만들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생긴것이…》

격동된 리대철이 주먹으로 눈지방을 문질렀다.

정향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얼마나 기뻤으면 어린애들처럼 눈물을 흘리랴. …

이때 실장이 능글거리며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인사야 말로 하는게 아니지요.》

《아, 그럼. 내 다 생각이 있다니.》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요. 지배인동지가 누구라구, 하하하!》

그때 방안에 차넘치는 기쁨을 휘저으며 손전화기 신호음이 울리였다.

손전화기를 꺼내든 정향은 웬일인지 샐쭉해지며 차단단추를 눌러버렸다.

재차 신호가 울렸다. 정향이 다시 전화를 꺼버리자 리대철은 뜨아해하였다.

《왜 전화를 받지 않나?》

《잘못 들어온 전화입니다.》

《한심한 작자로군, 남의 흥을 다 깨버리고…》

리대철을 조롱하듯 다시 울리는 신호음.

리대철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뻗치였다.

《그 전화를 이리 달라구. 콱 욕사발을 날리게…》

금시 일을 칠듯 리대철의 얼굴이 험하게 이그러졌다.

《아, 아닙니다. 저의 아버지 전화…》

정향의 기급한 소리에 리대철은 그만 굳어지고말았다.

《엉? 아버지 전화? 그럼 받아야지. 오늘의 기쁜 일도 알려주고.》

심중에 앙금처럼 가라앉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고까움을 알리 없는 리대철은 흥을 내며 든장질을 했으나 정향은 이번에는 아예 전원을 차단해버리고말았다.

그것을 본 리대철은 고개를 기웃했다.

왜 그럴가. 우리앞에서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가.

부지중 무엇인가 뇌리를 쳤다. 윤상배가 떠올랐던것이다. 윤정향이 그의 딸일수 있다는 예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아니아니한 마음으로 정향을 유심히 보며 윤상배와 비슷한데가 있는가 찾아보려 애썼으나 정향의 이목구비의 어느 한 부분도 조금도 비슷한 점이 없는듯 싶었다.

허참, 의심이 병이라더니…

리대철은 마음속으로 정향이는 윤상배의 딸이 아니기를 바랐다.

가라앉은 방안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리대철이 흥을 돋구었다.

《설계를 인쇄하라구. 그리구 온 공장이 다 볼수 있게 크게 확대해서 내붙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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