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강자 19, 20회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장편소설 강자 19, 20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1-20 16:55 조회420회 댓글0건

본문

20210109172639_7d02744ae90c954f465aee3eb71a3fa0_199n.jpg


19

현장에서 로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기술혁신안에 대하여 토론하던 엄명선은 직장통계원으로부터 뽐프공장 당비서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그 공장 당비서가 날 왜 찾아왔을가?

당비서에 대한 표상은 공장을 떠나기 전에 잠간 만나본적밖에 없었다.

그때 그가 뭐라고 했던가.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하면 안된다고 했던가?

어쨌든 가지 말라고 한것 같은데… 기억이 삭막하다.

그후 자기가 발을 뽑은 뽐프공장에 새 당비서가 온 다음부터 종업원들의 정신력이 앙양되여 뽐프생산이 올라갔으며 모든 일을 사회주의경쟁순위에 의한 공정한 평가로 하여 지난 시기 악습으로 굳어졌던 평균주의는 종적을 감추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였다.

평양에 올라갔다가 새로 건설하는 창전거리살림집들에서 리용할 뽐프를 수입해온다는 말에 격분하여 그 사실을 뽐프공장 지배인에게 알려주려고 동분서주한것은 무슨 공장에 대한 옛정에서라기보다 공민적인 자각에서였다. 그후 전화로 봉화산려관 관리원녀인을 만나 뽐프공장 지배인에게 쪽지편지를 전달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떻게 진척되여가고있는지는 모르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공장의 기술장비현대화에서 주역을 맡고 대사집 맏며느리처럼 늘 바쁘게 뛰여다니는 명선으로서는 언제 그 공장 일에 관심할새가 없었던것이다.

명선은 뽐프공장 당비서를 만나고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모처럼 찾아온 사람을 피하는것이 도리에 어긋나는것이기에 하는수 없이 밖으로 나섰다.

눈앞에 키가 크고 얼굴이 길쑴한 박영식이 서있었다.

명선을 알아본 박영식이 반가운 미소를 짓고 마주걸어왔다.

《명선동무로구만, 오래간만이요.》

《안녕하십니까.》

박영식은 구면지기라도 만난듯 명선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가기요.》

《어디로…》

얼떠름해서 반문하는 명선의 눈에 저만치 나무그늘아래에 서있는 갱생승용차가 안겨왔다.

승용차가 슬슬 명선이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타오.》

명선은 차문을 열며 채근하는 박영식을 의문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타라니까.》

대체 무슨 감투끈인지 종잡지 못한 명선은 까짓거 어디 한번 가보자는 심산으로 차에 올랐다.

박영식이 차에 오르자 승용차가 가볍게 미끄러졌다.

기계공장구내를 벗어나 기본도로에 들어선 승용차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처음 차를 타보는 사람모양 허둥거리며 줄창 시창 량옆을 두릿거리던 명선이가 조바심쳤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겁니까?》

《랍치는 아니니 걱정마오. 난 동무를 우리 공장으로 다시 데려가자고 왔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리에 명선은 펄쩍 뛰였다.

《아니, 싫습니다. 당장 차를 세우십시오.》 하며 당장 차에서 뛰여내릴듯 문손잡이를 비틀었다.

그것을 본 박영식이 운전사에게 급한 소리를 하였다.

《차를 세우시오!》

승용차가 멎어섰다. 얼굴이 화로불이 되여 씨근거리는 명선을 보며 박영식이 히죽이 웃었다.

《원, 성미두… 정말 우리 공장에 다시 안 가겠소?》

《안 가겠습니다.》

《실망하게 되누만. 난 그래두 동무가 마음 한구석에 우리 공장에 대한 정이 남아있는줄 알았는데… 내가 오산했는가?》

한숨쉬듯 뇌이는 박영식의 말에 명선은 긴장되였다.

《?!》

《에돌것없이 터놓고 말하겠소. 고양정뽐프를 만들자면 동무가 필요해서 우리 지배인동무와 토론을 하고 이렇게 찾아온거요.》

명선은 어리둥절해졌다.

고양정뽐프를 만드는데 내가 꼭 필요하다는건 무슨 소리인가.

박영식이 한 말을 음미해보던 명선은 뭔가 깨도되는것이 있었다.

그러니 창전거리살림집들에 리용할 뽐프를 수입이 아니라 우리의것을 만들어 설치한다는것이 아닌가.

그런 일이라면 한번 해볼만 한 일이 아니겠는가.

가슴은 급기야 불덩이를 안은듯 달아올랐다.

한편 박영식의 진정을 무시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 어떻소? 한번 해볼만 하지 않소?》

《예, 해볼만 합니다.》

《허허허! 난 동무가 그렇게 나올줄 알았소.》

히죽이 웃어보인 박영식이 운전사에게 어서 가자고 일렀다.

승용차가 다시 움직이였다.

흥분한 명선은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러니까 그 고양정뽐프라는게 지금 한창 창전거리에 건설하고있는 초고층살림집들에 놓을거겠습니다?》

《옳소! 거기에 놓을거요. 그 뽐프를 우리 공장에서 제작하기로 된데는 기막힌 사연이 있소.》

《기막힌 사연이요?》

《내 언제부터 수수께끼를 하나 풀지 못해 고심하는데 나와 함께 풀어보지 않겠소?》

박영식의 왕청같은 말에 명선은 눈이 떼꾼해졌다.

《수수께끼라니요?》

잠시 동안을 두었던 박영식이 말을 이었다.

《얼마전에 말이요, 웬 사람이 평양출장중인 우리 공장 지배인동무한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소. 나라의 존엄과 관련되는데다가 우리 공장 로동계급의 자존심과도 관련되는 중대사를 말이요.》

귀를 항 열고 이야기에 끌려들던 명선은 그만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던것이다.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중요한 정보란 말이지. 그 표현이 아주 그럴듯 한걸… 하긴 중요한 정보라는 말도 옳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나가는지 마지막까지 들어보자.

명선은 태연하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였습니까?》

명선은 지금 박영식이 승용차후사경을 통하여 자기의 거동을 예민하게 살피고있는줄 모르고있었다.

《허, 흥미가 동하는게로구만. 그래서 지배인동문 그 정보를 받자마자 그 즉시로 창전거리건설지휘부로 달려갔지. 알아보니 사실이더란 말이요. 성이 독같이 난 지배인동문 그 사람들에게 들이댔소. 당신들은 자존심도 없는가, 우리 동주뽐프공장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 뽐프를 놓고 나라에 무슨 돈이 많아서 남의 주머니에 채워주려고 하는가, 당장 수입을 중지하라.》

부지중 명선은 평양에서 지배인 리대철의 행처를 찾아 뛰여다니던 일이 생각히웠다.

《중지시켰습니까?》

《암, 중지시키지 않구. 우리 지배인이 누구라구.》

명선은 속이 후련해났다.

대방과 계약했던 수입계약을 중지시킨다는것이 간단한 일인가.

역시 리대철지배인이 배짱이 있거던.

어느새 묵은 상처로 응어리졌던 리대철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물건너간것처럼 사라진듯 싶었다.

《그 뽐프수입에 대하여 알려준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야. 말하자면 애국자라고 할수 있지.》

《애국자라구요?》

박영식의 과찬에 명선은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허, 내가 애국자라.

《그럼, 대건설전투장에서 땀을 바치는 사람만이 애국자겠나.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자기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자기의것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도 애국자라고 할수 있지. 그 사람이 아니였더라면 어쩔번 했나? 인민의 피와 땀이 스민 수십만금의 귀중한 자금이 연기처럼 사라질번 했거던.》

허, 이 엄명선이 이제보니 대단한 인물인걸.

명선은 절로 마음이 으쓱해졌다.

《이쯤하면 수수께끼의 답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넌지시 던지는 박영식의 말에 명선은 한순간 굳어졌다.

지금 당비서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선은 자기가 했다고 말을 하자니 제자랑을 하는것 같아 어색하였다. 후사경을 통하여 명선을 유심히 살피던 박영식이 대답을 기다리다 못해 쿡 찔렀다.

《허, 언제까지 침묵할텐가? 솔직히 말하라구, 그건 동무가 한 일이지?》

《예, 제가 했습니다.》

기여드는 소리를 하는 명선은 붉어진 얼굴을 떨구었다.

《허, 내가 빗보지 않았군.》

하나의 큼직한 사건을 결속한 수사원처럼 흡족해진 박영식이 명선이쪽으로 돌아앉으며 벙싯 웃었다.

명선은 박영식의 추리판단이 놀라왔다.

어떻게 되여 자기를 점찍었는지 알고싶었다.

《어떻게 되여 저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응, 그건 말이요. 지배인동무한테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예감이 동무한테 가더군. 왜냐면 공장을 떠나간 후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동무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기때문이였지. 그 누구보다도 뽐프에 대하여 애착이 깊었다는… 그래 지배인동무가 가져온 편지를 동무가 공장에 있을 때 가까왔던 사람들에게 보이니 동무의 글씨와 비슷하다는거요. 수사방향을 옳게 잡았구나 하고 기계공장 당비서한테 전화를 했지. 동무를 만나자구 말이요. 그런데 그의 말이 며칠전에 기술자료연구때문에 인민대학습당에 올라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거요. 그래서 동무가 평양에 있은 날자와 지배인동무가 편지를 받은 날자를 따져보니 비슷이 맞아떨어지더란 말이요. 어떤가? 그만하면 나도 수사원쯤은 할수 있겠지, 허허허!》

명선은 가슴이 뭉클해났다.

박영식이 자기에 대해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있은줄은 생각 못하였던것이다. 이런 웅심깊은 당일군인줄은 모르고 3년전 공장을 떠날 때 가지 말라고 함께 일하자고 붙잡던 그를 뿌리친것이 후회되였다.

이런 당일군과 함께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그리고 방금전의 무엄했던 처신을 용서해주십시오.》

《그건 오히려 내가 할 소리요. 기계공장 당비서동무는 동무를 절대로 내놓을수 없다고 딱 잡아떼는걸 손이야 발이야 빌며 겨우 설복시켰소. 그런데 동무가 버티면 어쩔가 했는데…》

박영식의 진정에 명선은 좋은 당일군을 만났다는 기쁨에 심장속에서 뜨거운 피가 뿜어져오르는것 같았다.

《아직 갈길이 먼데 우리 이야기를 계속 하자구. 동문 어떻게 되여 뽐프에 대하여 남다른 애착을 가지게 되였소. 그걸 알고싶구만.》

무랍없는 박영식의 물음에 명선은 어줍은 웃음을 지었다.

《뭐 별로 자랑할만 한것은 못됩니다. 제가 어릴 때…》

추억의 돛배에 닻을 올리는 명선의 낯빛은 추연하였다.

명선의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는 상하수도사업소의 뽐프운전공이였다. 그런 아버지를 명선은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의 아버지들은 지배인, 당비서가 아니면 텔레비죤과 신문에 자주 나오는 기관사, 용해공, 건설자들인데 자기 아버지는 자그마한 뽐프장에서 온종일 소란스럽게 돌아가는 뽐프만 주무르는것이 도저히 눈에 차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런데다가 아빠트사람들은 하루만 물이 나오지 않으면 금시 벼락이라도 떨어진듯 기겁하여 뽐프장으로 몰려와 소동을 피우군 하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천벌을 받을 죄라도 지은듯 그들앞에 머리를 숙이고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였는데 명선은 아버지가 무엇이 모자라서 구접스러운 일을 하며 락제생 몰리듯 할가 하는 창피감으로 얼굴이 뜨거워났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명선은 아버지가 일하는 뽐프장앞에 가득 몰켜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가슴이 덜컥 하였다.

무슨 일일가. 혹시 사고라도 난게 아닐가?

가슴을 헤집고 뛰여나올듯 쾅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사람들을 비집고 뽐프장으로 들어선 명선은 깜짝 놀랐다.

배를 가른 짐승내장을 끄집어낸듯 해체해놓은 뽐프앞에 쭈그리고앉은 아버지가 기름이 잔뜩 게발린 손으로 부속품들을 하나하나 닦고있었다.

명선의 귀에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뽐프가 낡아서 수명이 다 되였다누만.》

《뽐프운전공이 이제껏 저런 한심한걸 돌리느라 명절날, 휴식날도 모르고 일했대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하루만 물이 나오지 않아도 뽐프운전공을 못살게 볶아댔구만.》

이번에는 아버지에 대한 동정에 이어 산같은 근심들이 쏟아져나왔다.

《야단났구만, 뽐프가 저 정도이니 언제 수리를 할가.》

《아이구, 15층까지 어떻게 바께쯔로 물을 길어올린담.》

《한달이면 고쳐낼가?》

《에이구, 복속에서 복을 모른다고 여태 운전공의 수고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 우리가 죄를 만났지.》

오는 말, 가는 말을 다 들은듯 한 아버지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서더니 그들에게 죄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루라도 물을 보장하지 못하면 안되지요. 그러니 마음들을 놓고 돌아들가십시오.》

근심에 싸였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듯 고개들을 궁싯거리였다.

명선도 고물과 같은 뽐프로 다시 물을 퍼올린다는것이 허황한 일처럼 생각되였다.

그날 밤 명선은 뽐프를 수리하는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주었다.

《너도 보았지? 사람들이 물때문에 속상해하는걸.》

《보았어요.》

《그래, 그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아버지를 빠금히 올려다보는 명선은 선뜻 말을 떼지 못하고 머루알같은 두눈만 깜빡거렸다.

《허허허! 녀석두. 그걸 생각 못하니 이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하찮게 생각할수밖에. 그래 넌 날마다 집에 물이 철철 넘쳐나니 그게 저절로 생기는줄 알았느냐. 이 뽐프가 물을 퍼올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밥을 짓고 빨래는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자부한단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활에서 공기 못지 않게 중요한 생명수를 보장해주는 일이니까.》

아버지의 말을 새겨듣는 명선은 그제야 뭔가 깨도되는것이 있었다.

생명수를 보장하는 뽐프, 만약 생활에서 뽐프가 없다면…

이어 아버지는 뽐프가 사람들의 생활뿐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쓰이는가에 대하여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었다.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자고 해도 공업용수를 퍼올리는 뽐프가 있어야 하고 탄광, 광산의 지하수를 퍼올리는 일도, 농사를 짓는 물을 퍼올리는것도 뽐프가 없다면 안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난 뽐프를 가리켜 인간생활과 인민경제 어느 부문이나 할것없이 심장과 같은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심장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수 없듯이 뽐프가 없으면 사람들이 생활상고통을 받고 생산이 죽고말거던.》

듣고보니 이제껏 한갖 쇠덩이로만 생각했던 뽐프가 금덩이처럼 느껴졌다.

뽐프는 참 신비스러운것이였다.

어머니가 날라온 저녁밥을 잡숫기 바쁘게 자전거를 끌고 어디론가 갔던 아버지가 새벽이 다 되여 뽐프부속을 싣고 돌아왔다.

날이 밝을무렵 조립된 뽐프가 기운차게 돌아가며 아빠트 집집들에 물을 퍼올리였다.

고물이 되다싶이 한 뽐프를 고치려면 며칠은 걸릴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여느날처럼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자 왕가물에 단비를 만난듯 기뻐하며 저마다 뽐프장으로 달려내려와 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 아버지를 보며 명선은 세상에 아버지만큼 흘륭한 사람이 없는듯 가슴이 뿌듯하였다.

명선은 이담에 크면 인간생활뿐아니라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없어서는 안될 심장과도 같은 뽐프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사복무를 마친 명선은 어린시절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강선공업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졸업후 자진하여 동주뽐프공장에 온 명선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뽐프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열정을 다 바치였다.

중규소내열주철에 의한 쇠물프레스형타생산방법을 비롯한 여러가지의 발명은 명선의 고심어린 탐구의 산물이였다.

흥미진진한 명선의 이야기를 듣고난 박영식이 빙그레 웃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소. 이번에 고양정뽐프를 만들면서 한번 본때를 보이오. 참, 공장을 떠나기 전에 시도하였던 뽐프의 경량화를 위한 개량제연구는 어떻게 되였소?》

명선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것은 공장을 떠나기 전에 시도하였던것으로서 그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몇사람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당비서가 어떻게 알고있을가.

《그건 이미 기계공장에서 현실에 도입하였습니다.》

《저런! 그러니 알은 뽐프공장에서 품고 낳기는 기계공장에서 낳은 셈이군. 물론 실용성이 클테지?》

《예, 개량된 구상화흑연주철을 뽐프생산에 리용하면 뽐프의 무게를 주철에 비해 훨씬 가볍게 할수 있고 수명도 몇배로 늘일수 있습니다.》

《좋구만! 역시 동문 욕심이 나는 사람이야.》 하던 박영식이 갑자기 무엇을 보았는지 운전사에게 다급한 소리를 쳤다.

《가만! 차를 세우오.》

운전사가 어리둥절해서 차를 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대답이 없이 차에서 내린 박영식이 승용차가 지나쳐온 뒤로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였다.

저만치에 멎어있는 승용차곁에 웬 사람이 서있었다. 리대철이였다.

영문을 몰라 차에서 내리던 명선은 먼 눈빛으로 리대철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박영식을 향해 리대철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왜 거기 서있습니까. 차가 고장입니까?》

《아닙니다. 당비서동지를 기다리댔습니다.》

《나를?》

《예, 아까부터 지켜서있었는데 왜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군요.》

《허, 벌써 로환인가. 난 제꺽 알아보았는데…》

《비서동지 눈과 내 눈이 같습니까. 나야 청맹과니인데…》

리대철의 말에 박영식이 어깨를 뒤로 제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 롱담이 고약한데요.》

마주 웃던 리대철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되였습니까. 명선동무를 데리러 갔던 일 말입니다.》

《누구의 령이라고 감히…》 하며 박영식은 히죽이 웃었다.

《그러니 성공했다는겁니까?》

리대철의 입에서 환성이 터졌다.

《그럼요.》 하며 자기가 타고 오던 갱생차쪽에 눈길을 던지던 박영식이 차곁에 서있는 명선을 보고 손짓했다.

《저기 마침 명선동무가 차에서 내렸구만요.》

명선을 보는 리대철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스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야 무슨… 아닌게아니라 기계공장 당비서가 어금이를 뽑아간다고 아부재기를 치는걸 겨우 설복시켰습니다.》

《본인은 쉽게 응했습니까?》

《예상외로 쉽게 응하더군요. 참, 그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 압니까?》

《누굽니까?》

《바로 저 명선동뭅니다.》

《그렇습니까?!》

리대철은 어마지두 놀랐다.

편지를 손에 쥔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인간으로 생각하였던 그 주인공이 엄명선이라니…

가슴속에 보석같은 애국의 마음이 꽉 들어찬 결곡한 인간을 곡해하고 멀리한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이거 내 저 친구에게 귀잡고 절을 해야겠군요. 지나간 일도 사죄할겸… 덤으로 말입니다.》

《응당 그래야지요.》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어 명선에게로 다가선 리대철이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담으며 그를 덥석 그러안았다.

《명선동무,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구만. 내 지난날 동무에게 죄를 지었댔소. 진심으로 사죄하오.》

집게처럼 꽉 그러안은 리대철의 품에 몸을 맡긴 명선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지나간 일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박영식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넘실거리였다.

명선을 놓아준 리대철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껄껄 웃었다.

《명선동무, 그때 왜 편지를 쓰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소. 그 좋은 일을 하면서 말이요.》

리대철의 느닷없는 물음에 명선은 당황해졌다.

《예, 그건…》

다음말을 번지기를 옹색해하는 명선을 비호하듯 박영식이 혀를 끌끌 차며 리대철을 나무랐다.

《지배인동문 지나간 일을 놓고 별걸 다 캐묻누만요. 그럴것없이 내가 어떻게 편지의 주인공이 명선동무인가를 알아맞추었는가 하는걸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한다하는 수사원들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가 풀었거던요.》

《그게 정말입니까?》

눈이 덩둘해진 리대철은 믿어지지 않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허, 내 말을 믿지 않는군. 그럼 명선동무 말을 들어보십시오.》

《좋습니다, 가면서 듣지요.》

어느새 그들의 곁으로 굴러온 승용차문을 연 리대철이 명선에게 말했다.

《나하고 함께 가기요.》

《그렇게 하오.》

박영식이 제 먼저 갱생승용차에 오르며 명선에게 일렀다.

리대철과 명선이가 차에 올랐다.


20

주물사형다짐봉을 새것으로 교체하려고 건설직장 목공반으로 가던 송화는 통나무가 가득 실려있는 대형자동차가 장벽처럼 막아서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다.

통나무를 부리는 사람들이 없는걸 봐선 금방 차가 도착한듯 싶었다.

자동차를 에돌아가려던 송화는 어디선가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강구었다.

《자, 기운들을 써보자구. 이걸 다 부리면 정창근 〈후방부직장장〉이 후방사업을 할테니까.》

《여, 그런걸 바라지 말라구. 어려운 모퉁이마다 창근이를 후방사업시키는건 잘된 일이 아니야. 그러다가 사람을 바릴수 있어.》

《걱정두 팔자다. 아, 곁에서 송화가 교통단속원처럼 착착 바로잡아주는데 바리다니…》

그들의 말을 듣기가 무안해난 송화는 걸음을 되짚어 주물직장으로 향하였다.

그 시각 창근은 화려하게 꾸린 어느 한 집의 푸짐한 상앞에 마주앉아있었다.

돋을무늬로 꽃장식을 한 맥주고뿌에 맥주병을 기울인 50대의 집주인이 호기있게 말하였다.

《자, 시원하게 쭉 내자구.》

거품이 부글부글 끓는 맥주가 든 고뿌를 손에 쥔 창근은 숨 한번 들이쉬지 않고 단숨에 비웠다.

맥주고뿌를 상에 내려놓은 집주인이 마른명태를 뜯어 상우에 놓았다.

《잘하누만. 안주도 들라구.》

안주를 집어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는 창근의 고뿌에 맥주를 부으며 집주인이 아까 하던 말의 계속인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이요, 동무의 부탁대로 도에 있는 대외건설사업소에 알아보니 고급목공이 필요하다는거요. 그래 제꺽 동무 이름을 댔지. 고급기능공정도가 아니라고 한바탕 자랑을 하면서… 그랬더니 지배인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당장 소환하겠다는거요.》

호감이 동한 창근은 맥주고뿌를 들 생각도 잊고 군침을 삼키였다.

며칠전 창근은 이 사람과 알게 되여 집의 가구제작을 맡아 해주기로 약속하였다.

집주인의 요구대로 가구들을 제작해주는 과정에 이 사람이 도에 있는 대외건설사업소와 연줄이 깊다는것을 알게 된 창근은 그에게 그곳에서 일했으면 하는 소망을 슬쩍 비치였다.

언제부터 도소재지에서 살고싶었던 창근이였다.

얼마 크지 않은 산골도시인 여기 동주보다 형편없이 넓은 번화한 도시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때는 시들해서 알아보자는 식으로 말하던 집주인이 지금 이렇게 창근의 간을 말리고있었다.

《그렇습니까. 솔직한 말로 목공기술에선 난 누구와도 짝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배인 그 친구에게 한 소리가 그게 아니요. 뭐니뭐니해도 사람은 대처에서 살아야 해. 거기 가서 한번 솜씨를 보여 이름만 내게 되면야 주문자들이 줄을 설거요. 그때 가서 나를 잊지 말라구, 허허허.》

《아, 그야 물론… 그걸 잊으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렇다는 의미에서 한잔 찧자구.》

기분이 흥그러워진 창근과 집주인이 쨍강ㅡ 소리가 나게 맥주고뿌를 마주쳤다.

고뿌를 비운 집주인이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좀 들어오오.》

남편의 부름에 해사하게 생긴 녀인이 행주치마에 물묻은 손을 문대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왜 그러세요?》

《이 사람 솜씨가 어떤가 당신이 평가를 해보오.》 하며 남편이 웃방에 놓여있는 새로 제작하여 도색까지 한 이불장과 옷장을 가리켰다.

웃방으로 올라간 녀인이 무슨 흠이라도 잡을듯 가구들을 유심히 살피다가 탄성을 올리였다.

《야! 듣던바대로 아저씬 손재간이 보통이 아니군요. 이걸 보면 누가 개인이 만들었다고 하겠어요, 그렇지요?》

녀인의 호들갑에 남편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녀인이 태우는 비행기에 올라앉은 창근은 우쭐해졌다.

《뭘 그쯤한걸 가지구 그럽니까. 또 부탁할것이 있으면 하십시오. 둘러보니 이 집에 화장용경대가 없는것 같은데…》

창근은 옆에 있는 가방을 끄당겨 가구도안책을 꺼내 녀인앞에 펼쳐놓았다.

《이걸 보고 마음에 드는걸 고르십시오.》

녀인이 갖가지 종류의 가구도안들을 찍은 사진들이 묶여있는 책을 번지며 입을 다물줄 몰랐다.

《야! 정말 멋있군요.》

저가락같은 손가락으로 화장경대도안들중 이것저것 찍어가던 녀인이 제 마음에 드는 도안 하나를 골라냈다.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러지요.》

맥주기운에 얼굴이 벌개진 집주인이 처를 보며 빈정거렸다.

《다 늙어가지구 화장이나새나.》

《늙어도 기생이라지 않아요, 호호호.》

그때 손전화기에서 신호음이 울리였다.

얼른 손전화기를 꺼내 현시판을 본 창근이 골살을 찌프리며 단추를 누르자 송화의 목소리가 총알처럼 튀여나왔다.

《지금 어데 있어요?》

번쩍 놀라난 창근은 집주인들이 들을세라 몸을 일으켜 전실로 나가며 역증을 냈다.

《그건 알아서 뭘해?》

《동무 지금 제정신이예요? 작업반동무들은 지금 한창 통나무를 부리고있는데 어디서 돌아치는가 말이예요?》

《엉?! 통나무가 들어왔다구? 그 차야 오다가 도중에 고장이 나 래일 아침에나 올것 같다고 하더니… 알겠어.》

급해맞은 창근은 방안으로 들어와 목수도구가 든 가방에 가구도안책을 집어넣었다.

《미안합니다. 전 일이 있어서 가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쫓기듯 집을 나서던 창근은 엉거주춤 일어서는 세대주에게 한마디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저, 아까 말하던 문제를 꼭 성사시켜주십시오.》

세대주가 걱정말라는듯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걱정말게, 인차 좋은 소식이 있을걸세.》

이어 애교가 찰찰 흐르는 녀인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아저씨, 화장경대를 잊지 마세요.》

《걱정마십시오.》

목을 꺾으며 인사를 한 창근은 황황히 밖으로 나섰다.

마라손주로를 달리는 선수처럼 헐떡거리며 잰걸음을 옮기는 창근의 얼굴로 비지땀이 줄줄이 흘러내리였다.

잠간이라도 한숨을 돌리고싶었으나 언제 그럴 경황이 없었다.

작업반사람이 전화를 하였다면 후방사업핑게를 대고 볼장을 다 보고 천천히 가도 되겠지만 재수없게 송화한테 걸려들었으니 용빼는 수가 없었다.

만나기만 하면 가시처럼 콕콕 찌르기만 하는 송화와 마주서기가 두려웠다. 자기를 보는 송화의 얼굴은 늘 생이를 뽑히운 상이였는데 그가 웃는 모습을 본지도 까마득하다.

내가 그렇게도 못나보이는가.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가까와지려고 하는데 왜 송화는 점점 멀어지려고 하는가. 암만 생각해봐도 난 언제한번 송화를 노엽히는 일을 한적이 없는것 같은데 마주서기만 하면 왜 남들처럼 일을 착실히 못하는가고 하면서 훈시질을 하는데 막 죽을 맛이였다.

내가 남들처럼 일을 못한건 뭔가.

직장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후방사업을 한몫 맡아하는건 잘한 일이지 못한 일인가. 그리고 짬짬이 남들의 부탁을 도와주는것도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란 말인가.

뒤죽박죽이 된 잡념을 한가득 안고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가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야외매대판매원녀인이 얼굴에 웃음을 활짝 피우며 가살을 떨었다.

《아저씨, 그냥 가면 안되지 뭐.》

그 소리에 창근은 벌씬 웃어보였다.

《안녕하시오?》

후방사업을 한답시고 이 녀인한테서 몇번 음식들을 가져간적이 있어 면목을 익히였다.

물론 후에 꼭꼭 돈을 물어주기는 하였지만 급할 때마다 신세를 진것으로 하여 고맙게 생각하는 녀인이였다.

게다가 창근이가 손재간이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만날 때마다 자기 조카를 붙여주겠다고 성화이다.

조카가 예술선전대 성악배우인데 인물이 쭉 빠졌다나.

송화가 알았다간 큰일날 소리다.

주저주저하며 매대앞으로 다가간 창근은 시답지 않게 말하였다.

《전번만큼 주시우.》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고한 작업반원들앞에 빈손으로 나타날수가 없어 내린 용단이였다.

녀인이 비닐구럭지에 이것저것 식료품들을 담기 시작하였다.

《내가 전번에 말한걸 생각해봤나?》

《뭘 말이요?》

《아, 우리 조카 말이야.》

《그만두겠수다.》

《왜?》

송화 소리를 하자니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난 아직 장가 가려면 10년은 있어야 돼요.》

《애개개, 10년? 임자나이 지금 몇살이라구 그런 소릴 하나. 음, 알만해. 이미 봐둔 처녀가 있는게로구만, 맞지?》

《그쯤 알아두구려.》

퉁명스럽게 하는 창근의 말에 녀인은 금시에 새파래졌다.

신경질적으로 구럭지에 음식들을 와락와락 걷어넣는 녀인을 어이없는 눈길로 지켜보던 창근은 가방에서 돈을 한줌 꺼내들었다.

창근의 손에 쥐여져있는 돈을 본 녀인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싶게 환해졌다.

《아이구! 임자 이제 보니 간단치 않구만. 뭘 더 담을가.》

비닐구럭지를 넘겨다본 창근은 손을 흔들었다.

《그만하면 됐수다.》

돈계산을 하고 량손에 구럭지를 든 창근은 다시는 이 녀인과 상종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돌아섰다.

《종종 들리라구.》

살뜰한 녀인의 목소리가 잔등을 두드리였으나 창근은 대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내짚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으니 마음 놓으라구요.

불난 집에서 뛰여나온듯 헤덤비며 직장앞에 이르니 산더미같이 쌓인 통나무뿐 작업반원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