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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7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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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6-16 13:01 조회900회 댓글0건

본문

2013-04-09-U01.jpg

(제 7 회)

3 장

《아버지, 왔어요.》

송암이 눈을 감은 때에 살며시 방을 나갔던 계화가 문을 열고 기쁜빛으로 소곤거렸다.

송암은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그자를 만나?!)

백정식이를 처음으로 알게 된 광경이 눈에 선히 밟혀왔다.

…《두상, 림운학이를 감췄지.》

《여, 빠따방맹이를 멕일가?》

우그그 몰려든 서청패의 어중이떠중이들, 한놈이 야구방망이로 송암의 어깨를 때렸다. 《어이구》 하고 송암이 쓰러질 때 웃방에서 운학이와 함께 있던 련화가 달려나왔다.

《이게 무슨짓들이예요.》

련화가 송암의 온몸을 감싸듯 마주서 소리치자 놈팽이들뒤에 서있던 딱 바라진 몸매에 거무스레한 얼굴, 뽀마도로 재운 머리가 기름단지처럼 번들거리는자가 한걸음 나서며 머리를 가볍게 숙였다.

《아, 이거 성련화양이 아닙니까.》

대리석조각같이 굳어진 련화의 얼굴을 쳐다보는 눈에는 비굴한 아첨과 음심이 깃을 폈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련화씨 형부되는 리영준씨의 동창입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거 집을 헛갈렸구만-》하면서 머리를 긁는 시늉을 하고는 제 패거리들에게 휙 돌아섰다.

《잘못 들어왔다. 이 집은 대학자 성송암선생님댁이시다. 돌아가자.》

…성송암은 선뜻 일어서기가 두려웠다.

《그자는 악당이예요. 서청패의 악질로 사람잡이에 이골이 났어요. 얼마전에 우리 학교 녀동무들 여럿이 미군들에게 끌려가 몸을 망치게 된것도 저놈이 끄나불이 되여 안내했다는거예요.

그때 운학씨가 없었다면 저도 잘못됐을거예요.》

언젠가 련화가 하던 말이 귀가를 쟁쟁히 울린다. 허나 그는 끝내 일어섰다.

(이 모퉁이에 와서 내 주제에 뭘 망설인단말이냐. 련화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지 않았는가.)

응접실에 들어서자 대위의 계급장을 단 카키색모직군복을 입은 백정식이 온 얼굴이 웃음으로 차 거수경례를 하였다.

《선생님,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백정식의 눈에는 알릴듯말듯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아버님, 전 성련화씨를 제 목숨처럼 사랑합니다.

자기 감정을 이런 정황에서 이렇게 드러내는것이 교양없는짓인줄을 알면서도 렴체불고 말씀드립니다. 련화씨는 오늘 빼내지 못하면 위험합니다. 련화씨만 아니라 륙군형무소의 전부가 그렇게 될것입니다. 왜서인가는 묻지 마십시오. 전 이것을 저의 명예를 걸고 말합니다. 련화씨가 공산주의자들의 동정자라는것을 저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전 사상은 관계 않습니다. 사랑이면 되지요. 사랑이면… 전 아버님이 사상과 주의를 초월하여 계시니만치 저의 이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리라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애를 구원할수 있소?》

송암은 미국에 가서 몇가지 얻어들은 엉터리철학으로 인생관에 옷을 입힌 이 백정식이같은 천치와 마주 상대하고있다는데 심한 불쾌감을 느꼈으나 할수 없었다.

백정식은 여느때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송암이 이쯤 나오자 완전히 사기가 올랐다.

《전 모험을 하렵니다. 물론 군직에서 파면될것을 각오한것입니다. 저는 매부의 인장으로 석방서를 만들렵니다. 그렇게 해서 빼내면 조만간 탄로가 나 검색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 기간만은 련화씨를 제가 알선한 거처라든가 이 집에 은신시켰으면 합니다.》

송암은 괴롭게 낯을 찌프리고있다가 계화에게 얼굴을 돌렸다.

《련화가 일루 오는걸 사돈님이 알면 야단맞지 않겠니.》

계화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시아버지껜 알리지 않겠어요. 주인이 안들어오니 나와 함께 있던가 빈방들이 여럿이니 적당히 숨겨두겠어요. 아니 주인의 서재가 유축져서 안전해요.》

《그러면 여기 데려오지.》

백정식은 빙그레 웃으며 계화에게 묻는 눈길을 던졌다. 계화는 실내화를 신은 자기의 조그마한 흰발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송암은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를 문지르고 일어났다. 그는 계화가 점심을 먹고 가라는것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나서 총총히 걷다가 나무에 부딪칠번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나무기둥에 털벌레가 옴질옴질 기여가는것에 한참이나 시선을 박고있다가 넋없이 중얼거렸다.

《막바지로다.》

송암은 단장끝으로 그 벌레를 문질러버리고 자기의 얼뜬 행동이 싱거워나 주위를 살폈다. 멀리 북한산장의 푸른 등허리가 안겨왔다. 송암의 머리에 불쑥 가슴 답답할 때마다 뇌이군한 시구절이 떠올랐다.

만국도성이 개미둑같고

천하호걸이 초벌레같네

옛날 서산대사의 입에서 나와 글로 남은 시구를 격하게 뇌이며 터벌터벌 걷던 송암은 옆으로 꺾어진 골목으로 낡은 시보레차가 역한 가스내를 풍기며 지나가는것에 고개를 돌렸다.

차가 들어가는 집을 바라보던 송암은 《아!》 하고 환성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거의 뛰듯이 그 집으로 갔다. 대문앞에 이른 송암은 원기를 돋구듯 큰소리로 웨쳤다.

《이리 오너라.》

그러나 인차 문이 열리며 열대여섯의 소년이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신지요?》

《계동의 성송암이 주인께 문안 여쭈러 왔다고 알려라.》

《네, 기다리십시오.》

소년이 도로 대문을 닫는데 찰찰 고무신 끄는 소리가 들리고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가 반겼다.

《송암이 어찌된 일이요?》

대문을 활 열어젖히며 약간 빠른 하관에 영민한 눈이 반짝거리는 안재홍이 얼굴을 내밀었다.

《민세, 그간 안녕하시오?》

《어서 들어오시오.》

안재홍은 언제나없이 삽삽하다. 그는 후원의 살구나무밑으로 송암이를 이끌었다. 돗자리까지 펴놓은것이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였다.

《왜 얼굴이 그리 축갔소.》

《민세도 내 한가지구려.》

송암은 자기의 몰골이 너무 초췌한것 같아 대활한 태도로 웃었다. 안재홍이 역시 맞받아웃는데 몹시 서글픈 기색이였다.

《이렇게 찾아오니 참으로 반갑소. 이젠 옛날의 지우라던 사람들도 다 나를 역신 대하듯 피한단말이요. 남북협상회에는 아니갔지. 리승만과 미국사람들한테 딱 붙어 영리만 꾀하지 하고 공론들이 자자한데… 이젠 아이들의 돌팔매에 투서까지 날아드는판이요. 송암이! 송암이야 나를 알겠지.》

송암은 제 사정을 터놓으러 왔다가 뜻밖에 섧은 하소를 듣고나니 제 말만 말이라고 터놓을수 없었다.

《글쎄 송암이도 한때 내가 미국사람이 주는 민정장관의 감투를 쓰니 나더러 양놈의 시녀노릇한다고 비웃었지만 그것이 내 의사로 된것은 아니지 않겠나. 지금도 그렇지. 형무소신세라도 졌으면 젊은 사람들한테서 귀먹은 욕이라도 안듣지 않겠나. 나 하나 외토릴세. 몽양이 백범이 다 넘어지고…

그래 난들 그들처럼 넘어져야 하나. 그러자면 무슨 시위에라도 나가야지. 그래 그런데라도 나가라나. 아니면 국회의원 감투를 벗어팽개치고 리승만타도를 부르짖어야겠나. 자네도 언젠가 말했지. 정치란 늪에 일단 빠져버리면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고… 하긴 제 못난탓이지.》

《민세. 소리를 낮추시오.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그런 소릴 남들으면 무사할가?》

《될대로 되라지. 다 깨진 독인걸. 내 지금 리승만을 만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는길일세.》

《그건 왜?》

《흥, 자넨 귀머거린가? 지금 미국사람들의 부추김밑에 북과 일대 전쟁을 하자고 이제나저제나 하는판일세.》

《그래 리승만을 만나자는건.》

《깨우쳐줘야지. 망녕이 들었습니다고, 동족끼리 피를 흘리면 남들이 웃습니다 하고… 한데 리승만이는 어제부터 우리따위와는 일체 만날념을 않네. 직원들한테서 돌아가는 말인즉은 대통령이 래일은 비원에 가서 낚시질을 한다는거네. 그 정치의 곡예사가 무슨 연극을 하려는지… 내 그래서 오후에 신국방(신성모국방 장관의 략칭)한테 질의하려 가려네.》

《정말 전쟁을 할가. 작년 김석원이때부터 계속 북벌을 떠들었지만 거저 위협뿐이지 않았나.》

《아니, 지금은 위협타령으로 넘어갈 계제가 아니네.

송암이는 정세에 깜깜이군. 지금 동경에 미국의 브랫들리, 죤슨, 덜레스, 맥아더가 모여있네. 일본주둔 미군부대들이 모두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가고 우리 국방군들이 대거 38선에 밀려가네.》

《그래 신국방을 만나면 어쩔셈이요?》

《말려야지.》

《민정장관 3년을 헛했군. 그것이 신성모의 결심에서 되고 안될 대산가?》

《하긴 그렇네만… 하여튼 실상여부라도 알자는걸세. 아, 이제 쌈이 일면 이 재홍이도 천고의 역적으로 몰릴테니… 자네가 부러우이. 속세의 갑론을박을 피해 처염히 사는-》

《민세, 그 처염에 불똥이 떨어졌네. 사실 민세를 만나러 온것도 내 작은 딸때문이요. 그 애가 북에서 날린 6. 7호소문을 지지선동한 죄로 륙군형무소에 잡혀들어갔소.》

《뭣이?》

재홍은 이마전에 심줄이 올롱하여 웨쳤다. 그도 6. 7호소문을 지지한 관계로 리승만에게 불려가 되게 닥달을 받은데다가 출처미상인곳에서 협박전화까지 받았던것이다.

《그래 어쩌겠나? 국회의원의 말은 허수로 듣지 않을테니 한번 힘써주게나.》

송암이 간청하자 재홍은 기막힌 상으로 한숨만 쉬다가 쾌히 승낙하였다.

《가보세. 내 힘이 있어야 벼루지보다는 나을가마는.》

송암은 재홍이 눌러잡는바람에 점심 한술을 얻어먹고 그의 차에 올라 륙군형무소로 내달았다. 차는 형무소정문에 이르기도전에 정지당했다. 노란 기발을 든 헌병이 길가운데 우뚝 서서 도사리고있는것이였다.

《접수를 해야 됩니더.》

위병장교인듯한 소위가 마주나왔다. 그는 안재홍이 내미는 국회의원신분증을 보자 차렷을 하며 경례를 하였으나 안재홍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입가에 알릴듯말듯한 비양조의 웃음을 지었다. 정계의 파상에 예민한 후각을 가진 이런 족속들은 국회의원중에도 경의를 표해야 할 대상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대상으로 갈라놓고있었는데 안재홍은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였던것이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헌병사령관 송요찬씨를 만나러 왔다. 오늘 예와서 군무를 본다고 했다.》

《유감스럽지만 각하를 만날수 없습니다. 오늘은 일체 외인들의 출입을 엄단할데 대한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럼 누구를 만날수 있느냐?》

《누구도 만날수 없습니다. 다만… 직분을 고려하여 당직장교님을 찾아드리겠습니다.》

그놈은 히죽이 웃으며 정문초소막에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후 중령의 계급장을 단자가 종졸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오달진 몸매의 중령은 두 늙은이를 의심쩍게 보다가 안재홍에게 시선을 멈췄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불법감금에 대해서 당신의 상관에게 항의하러 왔소.》

안재홍이 침착히 말했다.

《무슨 불법감금인가요?》

놈은 메밀눈을 한채 싸늘히 웃었다. 안재홍은 낯이 파랗게 질렸으나 헤덤비지 않고 강단있게 말하였다.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당신네 헌병의 월권행위에 대해 엄중항의하오. 헌병의 임무와 권한은 륙해공군의 군기유지와 군법에 관한 수사와 경계지 민간인의 범죄나 정치법에 관해서는 관할 안하는것이 국가법에 부합되는것이요.》

《어느 범인을 념두에 두십니까?》

《당신네는 지금 리화녀대학생 성련화양을 이 형무소에 감금하고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 녀학생은 빨갱이로서 선전뿐아니라 백범선생의 암살을 당국과 군부의 모모 요인들의 작간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래 놓아달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안됩니다. 지금 군비상 계엄령이 실시되는 때라는걸 모르시는가요. 비상계엄령하에서는 국회의원도 필요하면 잡아넣는것이 헌병이라는걸 알고 거동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뭣이 이 고현놈!》

안재홍이 크게 소리치자 헌병중령은 씽글씽글 웃었다.

《각하, 그 발언은 헌병 모독죄로 될수 있습니다.》

《민세, 그만하슈.》

송암이 안재홍이를 떠밀다싶이 차에로 이끌어갔다. 재홍은 끄는대로 차에 실려앉았다. 송암이 차에 오를념을 않자 재홍은 피기가신 얼굴을 바닥에 떨군채 나직이 물었다.

《어쩌겠나?》

《김규식댁에 가보려오.》

《그도 같지, 아니 요즘 그는 감시까지 받지 않나.》

《아니… 그 문제가 아니라 모레 백범의 제사일이라 한번 모이자고 하더군. 그래서.》

《그럼 나도 일즉 거기 들릴테네.》

안재홍이는 쓸쓸한 미소를 남기고 뿌연 연기를 토하는 차와 함께 사라졌다. 성송암이 돈의동의 김규식집에 이르렀을 때 한줄금 비가 쏟아져내렸다. 이 집의 출입객들을 감시하던 사복형사들이 비를 피하여 맞은편 가게방으로 뛰여가는 서슬에 송암은 유유히 그집에 들어섰다.

대청마루에 앉아있던 규식의 호위원이 버쩍 긴장하여 일어났다가 이 집의 단골손님인 송암이를 알아보고 안에다 뭐라 소리치자 머리에 수건을 동인 김규식이 미닫이문을 열고 나왔다. 5. 30사건으로 며칠간 옥고를 치른끝에 제 말로 심화병에 신경통이 겹쳐 신고하는판이다.

송암이 인사를 나누고 방에 들어가니 바둑판을 벌려놓고 최동오가 앉아있었다. 바둑판옆에는 되돌이 술병이 놓인 다담상이 있었다.

《이거 성선생이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무고하셨소?》

최동오가 눈부터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버릇대로 삼각수염을 내리쓸었다. 송암이 맞절을 하고 보료를 깐 옆의 맨바닥에 앉자 규식은 돗방석을 내밀며 물었다.

《따님의 일이 어떻게 되였습니까?》

《죄가 더 커진가봅디다. 뭐 그 애가 백범선생의 살해장본이 리승만이라고 찍어 말한모양인데… 그 언치로 지금은 륙군형무소에 갇혀있답니다.》

송암은 낯이 불깃해 대답했다.

《말세지, 말세야. 그래 백범의 암살이야 리승만이 조작한걸 장안이 다 아는데… 새삼스레 그 말을 왜 꺼내서 그 화를 당한단말이요.》

최동오는 바둑판을 와락 밀어젖히고는 다담상을 끄당겼다.

《성선생, 술이나 마시며 속을 좀 끄시오.》

송암은 인정이 무르고 결곡한 최동오임을 아는지라 그의 진정으로 하는 위안에 가슴이 저리여 부어주는 종지를 그대로 주욱 들이켰다. 최동오는 밥사발에 술을 부어 단번에 들이마셨다.

《그러고보니 그놈의 정치는 은거선비도 아랑곳않는군. 큰딸은 세도대신의 며느리요, 작은딸은 공산당이라. 성선생 신조는 과연 어찌될가.》

《의산 취했구려.》

김규식이 최동오를 나무랬다. 최동오는 그 말에 고개를 들며 싱긋이 웃었다.

《취하는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 지금 생각이 많소.

성선생! 이제 짚고선 두 섬에서 아니 두 배에서 어느쪽으로 가겠소? 리윤병이한테 가는가 막낭딸 공산당한테 가는가 시간문제지만 결국에는 어느 한 배에 타고 노를 저을거 아니겠소.》

《그래 의산은 무슨 배를 탔소? 의산의 정치는 그래 어떤 배에 실렸소?》

성송암은 조용히 말한다는것이 어조가 급격히 높아졌다.

《15년전 의산은 상해에서 나를 만났을 때 무슨 단심줄소리를 하셨지요. 참사상 참주의를 가진 인걸에 뭉치는것이 조선과 민족의 활로라구요. 그때 난 이 땅에서 사상과 주의란 모두 빌려온 장식품이요, 남을 누르기 위한 도구요, 그걸 휘두르며 하는 사색 당쟁이 우리 력사고 래일이다고 했지요. 선생은 날 비웃고 꾸짖었습니다. 왜 참사상이 없겠느냐. 간도의 김일성장군을 보라, 내 있던 의숙의 학생이라서가 아니라 참사상을 가진 인걸이여서 말한다. 그를 기둥삼아 뭉치면 우리도 해빛을 볼거 아니냐고 기염을 뽑았지요. 그렇다면 해방이 되여 북에 김장군이 오셨을 때 따라가서 받드는것이 정치가로 인간으로서의 신념이고 도의가 아니였겠소? 나같은것은 별로 기대도 안가고 또 축에 못가 불리우지도 않아 안갔지만 선생이야 그 뜨르르한 독립운동자의 관록과 김장군의 옛선생이라는 선성을 갖고 남북협상에도 갔댔지요. 난 그때 령감들 다시 못보는가부다 했소. 선생이 참새제비가 아닌즉 대붕의 큰뜻을 좇아 거기 있으리라고… 그런데 돌아왔더군요. 거기에도 부조리가 있었겠지요. 그래 와서 무엇을 했는가. 국회의원감투를 얻는 싸움에 진출하셨소. 결국엔 그 싸움에서 패하고 류치장살이까지 하고 지금은 소생과 술을 마시고… 그래 여기서 무슨 정치가의 신념을 찾겠소. 무슨 정치가의 륜리를 보겠소. 이 땅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 나는 그래서 령감뿐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을 웃고있습니다.》

《송암, 고맙소. 당신은 나에게 불을 지펴주는구려. 송암의 말은 백번 지당하오. 인정하면서도 의혹을 갖고 따르면서도 동요하고 받들려면서도 자조한… 이것이 최동오올시다. 당쟁의 세습이 인 찍혀진 비루한 습성, 무지의 소산이지요. 내 전전년에김장군님 뵈옵고 한생을 회오속에 돌이키면서도 게 눌러앉지 못한것은 그래도 나라를 근심하여 살아왔다는 주제에 공없이 있기에는 체면이 허하지 않아 왔소. 결국 예 와서도 밥버러지로 소일하고있소만… 내 신념이 없는것만은 아니웨다.》

어지간히 취한 최동오의 눈에는 한방울 눈물이 맺히였다.

송암은 씁쓸한 기색으로 말했다.

《령감이 부럽소.》

《그건 무슨 말이요?》

《기대를 가지는 사람은 행복자요. 령감은 희망을 찾았으니말이요.》

《송암이도 나와 같아질 때가 올것이요.》

《천만에!》

그때까지 한마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김규식은 성송암의 말에 그 리지적인 얼굴에 한줄기 웃음을 띄웠다.

《성선생, 선생도 김장군을 가 보일것을 그랬소. 보시오. 그 철석같던 백범선생도 일생의 리념을 뒤집고 련공의 길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허허… 그러나 그 기치의 엇갈림으로 얼마나 많은 죽음이 생깁니까. 난 그것이 괴롭소이다.》

송암은 통탄하듯 말하였다. 김규식과 최동오는 침묵을 지켰다. 송암은 자기가 이 령감들의 체신을 도무지 봐주지 않고 마구 떠들었음을 느끼고 입을 다문채 방안을 두루 살폈다.

창문앞 탁자에 백범선생의 힁사 한돐에 즈음하여 쓴 추모의 글이 주렴처럼 펼쳐져있었다.

송암은 규식이에게 눈을 주고 조용히 물었다.

《김구선생의 제를 크게 열것 같습니까. 계엄령하에서는 일체 모임을 못가진다고 백성욱이 담화를 발표했다는것 같습니다.》

그 물음에 김규식은 득의의 미소를 띄웠다.

《그건 내가 해결했습니다. 오늘아침 백성욱내무를 만나 우리의 취지를 알리니 자기가 책임지고 한돐제를 지내게끔 하겠노라고 하더군요.》

《난 그게 수상스럽습니다. 어떤 제기에 대해서도 〈국부〉께 밀어버리는 그 맹물단지가 군비상계엄령하에서 자기가 다 책임진다는것이 흰소리 아닙니까.》

최동오가 머리를 기웃거린다.

《뭐 대답은 해놓은것이니 우리야 하면 되겠지요.》

김규식이 최동오에게 말하는데 자동차소리가 나고 뒤미처 문이 열리며 안재홍이 들어섰다.

《령감들!》

그는 방에 들어서 한마디 소리치고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가 신음하듯 뇌였다.

《군대는 북진을 시작합니다.》

창졸간에 던진 그 말은 뢰성처럼 울렸다. 방안의 세사람은 요즈음 장안에서 쉬쉬하며 돌아가는 그 소리에 다 인백힌 상태였으나 여느 사람 아닌 안재홍의 그 말에 아연하였다. 김규식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벙벙해서 안재홍이를 보다가 왕청같은 소리를 꺼냈다.

《어저께 〈성조기〉(미군대신문) 한장을 얻어봤는데 웨더마이어가 개인명의로 한국에 미-8형장갑차 12대를 기증한다는 뉴스가 실렸더군.》

《망했습니다.》

안재홍이 흐느꼈다.

최동오는 입술을 악물고 수염만 밸밸 꼬았다. 그러다가 흔들린 사람처럼 껄껄 웃었다.

《버러지지, 버러지. 우리의 힘, 우리의 정의란게 무슨 쓸데가 있어?》

송암은 처절한 눈길로 이들을 둘러보았다.

한생을 제딴으로 배달의 땅, 배달민족을 위해 바친 이 사람들의 비통한 얼굴에서 그는 정치와 외면하려는 자기앞에도 숙고하지 않으면 안될 큰 문제가 제기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딸의 문제면서 또 자기의 문제며 민족의 문제였다.

속세의 싸움에 벗어져 산다고 자부한 그였으나 이 싸움에서 자기는 어데 가 서야 하는가. 똘스또이의 타애를 그중 가깝게 받아들인 그의 심령으로 볼 때 막막하다. 한편 무언가 지글지글 타오르는 분격이 주체할길없이 그의 마음을 휘저었고 그를 떠박질렀다.

《령감님들, 내 정치를 웃습니다. 이 나라에서 정치객이란 주의주장의 싸움군들입니다. 불쌍한것은 백성이지요.

그러고보면 인생이란 그저 조물주의 잘못을 탓하며 그럭저럭 끌려가는 걸음이지.》

송암은 그동안의 모든 설음과 격정이 눈물로 북받쳐올라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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