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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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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28 16:03 조회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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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금별의 바다

4

윌리암 킨은 8군사령관 밴프리트에게 불리워갔다. 《부르독》으로 불리우던 워커나 사나운 폭군으로 소문났던 릿지웨이와는 달리 매우 안온해보여도 기질은 결코 그들에 비해 조금도 못하지 않은 밴프리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북받쳐오르는 애수를 어찌할수 없는 모양 다감한 정서에 파묻힌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 킨을 맞이했다.

《기다렸소, 윌리암.》

긴 쏘파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킨에게 한손을 내밀며 지친듯 뜨직뜨직 말했다.

원래 그의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나직하면서도 론리적이고 패기가 넘치는 그의 달변은 막강한 미8군의 의지를 대변하는듯 듣는 사람들에게 억제할수 없는 충동과 미칠듯 한 흥분의 불을 달아주군 했다. 그런 정열이 없었더라면 비록 모두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처럼 많은 병력을 동원한 《하기공세》와 《추기공세》, 《금화공세》를 비롯한 거대작전들의 련속적인 개시가 불가능했을것이다.

밴프리트는 미군에서 수세보다 공세를 좋아하고 방어보다 공격을 중시하는 기질로 알려진 인물이였다. 조선에 건너와서 8군사령관자리에 불과 서너달 앉아있다가 조동되여 맥아더의 《유엔군》사령관 겸 미극동군사령관자리를 타고앉은 릿지웨이의 후임으로 그를 임명한것만 보아도 대통령이나 합동참모본부에서 밴프리트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있는가를 짐작할수 있는것이다.

원래부터 밴프리트는 무엇이든 한다면 한다는 식의 패기만만한 장군이였다. 신임대통령 아이젠하워와 웨스트포인트시절의 무랍없는 동창생이라는 특세도 있으나 노르망디상륙작전때 공격전의 앞장에서 용맹을 발휘하여 일개 련대장으로부터 사단장으로 또 군단장으로 비약승급했던 만만치 않은 경력이 있는 밴프리트였다.

그는 미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헌신적인 사나이였다. 《B―26》경폭격기비행사로 위험천만한 조선전쟁에 기꺼이 참전했던 아들이 황주상공에서 인민군대의 비행기사냥군조가 올리쏘는 저격무기탄알에 어이없이 황천으로 갔을 때도 그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장례식을 별도로 거행하자는 항공전단사령관의 건의도 묵살해치웠다고 했다. 그 사연을 알게 된 윌리암 킨은 무척 감동되였었다.

대통령으로부터 합동참모본부와 극동군사령부를 되게 실망시킨 《정형고지전투》가 처참한 실패로 끝난 후에도 그에 대한 킨의 존경과 믿음은 퇴색하지도 허물어지지도 않았었다.

밴프리트 역시 윌리암 킨에 대한 감정이 좋았다. 비록 번번이 실책을 범하여 군법까지 꺼들며 추궁은 해왔지만 인민군대의 공세앞에 찌그러져가는 미군의 운명을 돌려세워보려고 온갖 심신을 다 바치는 그의 노력은 자기와 대동소이한것으로 여겨왔었다. 얼마전에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인민군정찰병들과의 격전에서 잃었으니 킨과 그자신은 일맥상통한데가 있었다. 이처럼 눈물겨운 헌신이 기울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형편은 날로 험악해지고 미군의 운명은 내리막길을 굴러내리는 제동기없는 자동차마냥 구렁텅이로만 치달아내렸다.

1211고지에 《함정골》, 《상심령》이 생겨났듯이 인민군대는 전선과 배후에서 무수한 《함정골》을 만들어놓았다.

울울한 심정을 겨우 누르고있던 밴프리트는 윌리암 킨이 옆자리에 와앉자 푸념하듯 속을 터쳐놓았다.

《윌리암, 참 답답한 일이 아니요. 대체 우린 누굴 믿고 이 전쟁을 해야 하오? 영예로운 정전이래도 이루어보자고 미군과 국군을 정비확장해서 사단수를 무려 20개나 늘였고 일본과 본토에 있는 병력과 함선, 땅크와 대포, 전투폭격기들까지 대부분을 동원했소. 어디 그뿐이겠소. 원자탄도 우리 수중에 있소. 그처럼 무진막강한 아군의 드세찬 타격전에 인민군대는 그야말로 가혹한 압력을 받았고 북조선은 이미 초토화된지가 오랬소. 헌데 현황은 어떤가. 북조선군이 아니라 우리 유엔군이 헤여날수 없는 곤경에 빠져들지 않았는가. 반도의 작은 나라는 뭣으로 그리도 완강한가 말이요, 엉?》

그는 쉰을 갓 넘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쁜숨을 몰아쉬다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추기고서야 말을 이었다.

《나는 릿지웨이처럼 우리의 장성들을 함부로 마구 목졸라버리는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이 아니요.》

그것은 킨도 잘 알고있었다. 부하들에게 이른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며 부나비처럼 인민군대의 고사화력권에도 마구 날아들군 하던 무분별한 릿지웨이는 부하장성들에게 늘 《제구실을 못하면 무자비하게 떼버리겠다.》는 식으로 위협하군 했었다. 그런 위협은 말로만 그친것이 아니라 한번에 한다하는 미군장성 다섯명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는 과감한 망동으로 옮겨졌다. 그때 킨도 화를 입을번 했었다. 다행히도 제임스가 《영예롭게 전사》하는 바람에 심심한 동정을 얻어 《환생》할 기회를 한번 얻었는데 복이 쌍으로 온다더니 범같은 릿지웨이가 《유엔군》사령관으로 《승급》하여 현해탄건너로 사라져가버리는통에 운수좋게도 화를 깨끗이 면하게 되였다.

무능한 릿지웨이를 대신하여 백악관과 펜타곤의 신임으로 조선전쟁의 운명을 떠멘 밴프리트였다. 그는 킨을 찌글서한 눈으로 여겨보며 속을 떠보는듯 한 투로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용서할수가 없구만. 물론 귀관자신이 자기 운명을 타매할줄로 아오. 지금껏 귀관이 영예롭게도 오래동안 본직분을 지켜온것은 그 어떤 행운도 아니고 제구실을 바로한때문도 아니였소. 또 지금껏 본관이 귀관의 무책임성을 관대하게 대한것은 동정심때문도 아니고 결단력이 부족한때문도 아니였소. 그러나 미군이 특별히 도입한 신형무선기를 탈취당했다는 사실을 알고선 무맥한 당신을 더는 용납할수 없었던거요. 당신은 이제 곧 귀국준비를 해야겠소. 해임장은 이미 사단참모부에 가닿았을거요. 절망하지는 마시오. 물론 나도 함께 가니까. 두시간전에 나도 합참의 소환명령을 받았소.》

《?!…》

일식이나 만난듯 앞이 캄캄해졌던 킨은 밴프리트의 마지막말에 오히려 동정심을 느끼게 되였다. 밴프리트는 억양의 고저가 없는 단조로운 말투로 계속했다.

《나의 후임으로는 테일러중장이, 당신의 후임으로는… 모르겠소, 누가 될는지. 제길, 운수에 맡기지. 우리야 이젠 무슨 상관이 있소. 명백한것은 당신도 나도 불우한 미군장성들이라는거요. 유럽의 광활한 대륙과 태평양의 거창한 대양우에서 승전일로를 걸어오던 우리 미국의 장성들이 척박하고 조그마한 땅, 이 작은 반도의 나라에서는 패전의 오명을 들쓰지 않으면 안되였으니… 어째서일가?! 이상하거던. 희생한게 없다면 말도 않겠소. 귀관도 본관도 아들과 조카까지 대아메리카제국의 성업을 위해 바치질 않았는가. 합중국이 그걸 잊지 말아주어야겠는데…》

밴프리트의 얼굴에 침통한 빛이 어렸다.

킨은 검은 김이 유표한 볼편을 실룩거렸다. 그자신은 이미 각오하였던 운명이였다. 너무도 당연한 파멸의 순간이 실지 닥쳐왔을뿐이였다. 그래서인지 인차 마음을 다잡아세우고 몹시 상심한 상급의 감정에 은근한 아량을 베풀 여유까지 생겨났다.

《그렇습니다, 각하. 미합중국과 하느님앞에 맹세컨대 각하와 마찬가지로 저도 있는 힘껏 싸웠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도대체 그 까닭을 통 알수가 없거던. 참 기괴한 일이야. 력대적으로 우리 대아메리카의 사나이들은 건국이래 100여차에 걸치는 전쟁마당들에서 늘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승리자의 행운만을 누려왔지. 또 개인적으로 볼 때도 미국의 호협한 남아들 그 모두에게 있어서 언제 어디에서나 전장은 치부와 명예와 부귀영달을 약속하는 축복의 마당이였소. 헌데 이 조선전쟁만은, 조선의 전장만은 례외요. 아마 자비심많은 하느님의 은총이 보잘것 없는 이 조선이라는 불우했던 나라에 다 쏠려버린 모양인지.》

값싼 아량을 보이려다가 말꼬리를 잘리우고 우두커니 앉아있던 킨은 두손을 쩍 벌려보이며 반발하듯 어성을 높였다.

《각하,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하느님이 아무리 자비롭대도 미국을 외면하고 자기를 타매하는 무신론자들의 국가인 공산북조선에 승리자의 행운을 가져다줄리야…》

밴프리트는 또 말허리를 잘라먹었다.

《물론 그건 너무도 자명한 리치이지만 실지야 그렇지 않지. 나의 아들도, 귀관의 조카도 나아가서는 우리 미국이 그러한 현실의 증거물이 되지 않았소. 아아, 머리가 아프군, 가슴두 아프구.… 여하튼 우리에게 차례진 운명이니 우리 힘으로야 어쩌겠소, 〈인간이란 하느님의 창조물이어니 지어진 숙명에 반항하지 말지어다.〉 이건 예수 그리스도교의 복음서에 있는 명구지. 그러니 묵묵히 겪어낼밖에… 조선에서 겪는 미국의 운명은 대통령들도, 대독점재벌의 거부들도 영원히 풀지 못할 무서운 수수께끼요. 그런즉 우리들이 더 머리를 쥐여짤것도 없잖겠소. 자, 이젠 나와 함께 갑시다.》

밴프리트는 탄식을 늘어놓던 방금전까지의 그답지 않게 꽤 날렵한 동작으로 벌떡 일어나며 한손을 내뻗쳐 에나멜칠이 번들거리는 문가를 가리켰다.

《어델?!》

《나의 전용식당으로 갑시다. 래일부터는 나의것이 아닐 그 식당에서의 마지막식사를 본관은 꼭 귀관과 하고싶었소. 우리 파면당한 맥아더오성장군과 작고한 워커장군을 추모하며 고별주나 한잔 듭시다. 그들이야 우리의 선배들이 아닌가.》

《옳습니다. 릿지웨이장군도 같고같구요. 각하, 지내 애상적인 말같으나 이제 조선에 오는 그 누구도 다 우리가 오늘 선배들을 추모하듯 우릴 생각하게 될테지요?》

《그렇겠지.》

눈두덩까지 불깃해진 킨을 외면하며 시들하게 대답해버리고 돌아서던 밴프리트는 문득 생각키운듯 되돌아섰다.

《참, 귀관의 귀여운 녀서기 포치엔은 어떻게 할 결심이요? 데리고 가겠소 아니면 떨궈두겠소? 내 공연한 로파심 같지만…》

킨은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며칠전에 자기는 죽더라도 조선전쟁에서 황금의 월계관을 마련해가지고서야 귀국하겠노라 떠벌이던 요염한 포치엔의 독설이 생각키워서였다.

《그 황당한 변덕쟁이는 이 조선전쟁에 아직도 미련이 굉장한 모양입니다.》

밴프리트는 의외라는듯 눈섭을 치켜올렸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침울했다.

《자유를 구속하지는 마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게 녀자의 마음이라지 않소. 이제 이 땅에서 보다 더 큰 실련을 겪어보곤 그 미녀도 정신이 들테지. 귀관은 좀 아쉬울테지만…》

밴프리트도 윌리암 킨도 자기들이 이날에 나눈 마지막이야기가 너무도 가까운 앞날에 진짜 정설로 되리라는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윌리암 킨이나 밴프리트가 그날에 한 말들이 결코 허황한것이 아니였음을 조선전쟁은 현실로써 증명해주었다. 그들처럼 조선전장에 류임되여왔던 클라크나 테일러와 같은 장성들은 그들보다 더욱더 쓰디쓴 패전의 맛을 보았고 행운의 신과 이름을 같이한다는 포치엔은 그로부터 불과 다섯달도 못되여 인민군정찰병들이 매설한 지뢰에 걸려 워커의 신세를 면치 못했던것이다. 수치스러운 패배와 죽음은 미국과 자본의 노복들에게 조선이 정해준 모면하지 못할 운명이였던것이다.

윌리암 킨은 밴프리트의 뒤를 따라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비청비청 걸어나갔다.

《이 땅에서 불쌍하게도 황천객이 되여버린 워커장군에 비하면 그래도 우린 행복자들이요. 마음고생은 많아도 살아서 태평양을 건너가게 되지 않았소.》

앞서가는 밴프리트가 중얼거리는 소리는 못내 처량하게 울렸다. 슬픔에 잠긴 킨은 미국을 조상하듯 머리를 푹 수그린채 두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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