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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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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27 17:26 조회5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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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금별의 바다

3

사단지휘부건물은 높은 담장과 철조망속에 들어앉아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져있다.

정문을 가로막은 차단봉은 뱀의 허리처럼 얼룩얼룩한 칠을 했고 당직장교놈이 있는 정문옆의 단층건물은 단단하게 지은 세멘트건물이다. 건물앞에는 모래마대로 든든히 쌓은 바리케드가 설치되여있었다. 거기에는 철갑모를 눌러쓴 사병들이 기관총의 독사대가리같은 총구를 내대고있다.

사단지휘부로 들어가는 곧은 길에 행색이 조금이라도 류달라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수많은 눈초리들이 쏠리기가 일쑤였다.

정찰병들이 사단지휘부앞에 이른 때는 인적기가 뜨음해진 정오무렵이였다. 앞에는 중령견장을 단 리학문이 섰고 사병차림을 한 복남이와 관주가 뒤따랐다.

그들은 대담하게 적사단장놈을 사로잡아 무선기기술문건을 먼저 탈취하고 무선차를 없애치우기로 결심했다.

자동차들이 큰 변이나 생긴듯 먼지를 일구며 분주히 지나갔다. 차량들에는 장교들과 사병들이 초췌한 몰골로 앉아있다.

정문에 다가간 류관주가 보초병에게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자 곧 당직장교가 나와 용무를 다시 물었다. 대위였다.

학문은 골살을 찌프리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사단장님에게 긴히 전할 문건이 있어서 왔다질 않나.》

《알겠습니다.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온곱지 않은 중령한테 더 말붙이기가 저어되는듯 대위는 정문옆의 건물안으로 인차 사라졌다. 어디다 전화를 거는지 꽥꽥 고아대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왔다.

리학문은 속이 뜬뜬해서 뒤짐을 진채 정문옆에 높이 자란 뽀뿌라나무에서 깍깍 울어대는 까치를 쳐다보았다. 까치는 지체하지 말라고 재촉하는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나무가지우에 가있으나 귀는 전화하는 소리에 쏠려있었다.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2시 15분, 직일근무를 내놓고는 모두 밥먹으러 갔을 때이다. 지휘부건물에는 특세를 좋아하는 고위장교들만 늦장부리며 앉아있을것이다.

문득 학문의 마음속에는 야광시계를 채워주시며 하시던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이 울려왔다.

《동무가 적후에서 잘 싸웠다는 보고를 받고 꼭 주고싶어서 마련해두었던것이요. 앞으로 더 잘 싸우시오.… 정찰병은 용감하고 대담해야 합니다. 정찰병이 적후에서 정찰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자면 책임성과 령활성과 같은 고상한 전투도덕적품성과 기질이 있어야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것은 용감성과 대담성입니다.… 나는 믿소. 이제 전쟁이 승리하는 날 영웅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도록 합시다.》

위험이 시시각각 목숨을 노리는 머나먼 적후에서 그날의 말씀을 되새겨보느라니 뜨거운 격정이 솟구쳐올랐다.

(최고사령관동지! 가르쳐주신대로 용감하고 대담하게 행동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크나큰 승리의 보고를 안고 전승의 그날에 최고사령관동지를 뵙겠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절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느라니 신심과 용맹으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때 통화가 끝난 모양 《알겠습니다.》하고 송수화기 놓는 소리와 함께 대위가 밖으로 나왔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중령님. 실례했습니다.》

먼데서 볼 때는 멋쟁이처럼 보이던 지휘부건물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럽기 짝이 없었다. 벽에는 얼룩덜룩 때가 끼고 지붕에는 해묵은 잡풀이 마른채로 서있었다.

정찰병들은 현관문을 지키는 보초병들과 2층계단의 보초앞을 무난히 통과했다. 세개의 보초소를 지나자 배심이 더 든든해졌다.

뚜걱뚜걱… 그들은 징박은 군화발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어둡고 침침한 2층복도를 뻐젓이 걸어갔다.

왼쪽 세번째 나들문앞에 이른 리학문이 뚝 멈춰섰다. 부관실이였다.

문전보초병은 차렷구령이나 들은것처럼 허리를 꼿꼿이 폈다.

《보초병, 이게 부관실이야?》

학문은 나들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장교님, 부관실로 들어가자면 신분을 확인해야 합니다.》

《건방진 자식, 정문에서 이미 했는데 또 확인타령이야? 정 할테면 해야지. 그런 걱정말구 묻는 말에나 대답해. 요즘은 사병놈들이 도덕두 없단 말야. 그런 개버릇 어데서 배웠어?》

《장교님, 전 임무를 집행할 의무를 지니고있습니다.》

보초병은 탁성을 돋구었다.

《아직두 주제넘게 대답질이야? 너한테 장교가 빌붙으라는건가?》

발을 탕 구르며 학문은 호통쳤다. 보초병은 얼이 빠져 증명서도 바로 보지 못했다.

문이 열리였다. 책상 한개와 의자 몇개가 놓여있는 좁은 방에 혼자 앉아있던 부관이 의아한 눈길을 들었다.

《어데서 오셨는지요?》

모자를 벗어 말코지에 걸고나서야 학문은 흔연스레 말을 건넸다.

《이 방까지 들어오는 절차가 여간 까다롭지 않군. 사단지휘부치고는 특별해! 흠!》

그의 스스럼없는 태도에 부관은 인차 긴장을 풀며 버주룩이 웃었다.

《지금이야 전시가 아닙니까.》

《딴데서는 전쟁을 안하구 놀음을 하고있나? 군단지휘부도 이렇지는 않던데. 내 이자 방금 예까지 들어오면서 뭘 생각했는지 알겠나?》

《거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단지휘부엔 신경과민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경계근무에 너무 치중하는것두 일종의 공포심일세. 그만한 병력을 일선에 돌리면 아마 한두개 고지는 넉근히 지킬수 있을게야. 내 말이 지나치면 량해하라구.》

《뭘요, 그 말두 일리는 있는것 같습니다.》

《것 보라구, 자네두 인정하지 않는가. 그래 사단장님은 계시는가?》

《예, 아침부터 쉬임없이 일을 보십니다.》

《그래? 바쁜 시간을 침범하게 됐군. 사단장님의 업무가 중요해. 그렇게 로심초사하시는데 부관이 잘 모셔야 하네. 식사두 제때에 하두룩 하구.》

근심이 깊은듯 얼굴까지 흐리우며 하는 말에서는 진심마저 엿보였다.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담은 사단장님을 만난 후에 하자구. 급한 문건을 전해야겠네. 사단장님께 아뢰게. 가리산 18련대에서 련락장교가 왔다구.》

《가리산 18련대라구요?!》

부관이 대뜸 의아한 기색을 짓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학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포로한 그 중위놈이 거짓말했다는것을 부관의 태도에서 제꺽 알아차린것이였다. 지체없이 림기응변해야 했다.

《아참, 내가 실언을 했군. 그만 입버릇이 돼놔서 그랬네. 그건 우리 련대에서 하는 속말일세. 그저 18련대에서 문건을 가지고 련락장교가 왔다고 하라구. 점심시간이니 어서 여쭈게.》

《알겠습니다.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의심이 풀린 부관이 사단장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방안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벽에 걸려있는 큼직한 미군외투가 유표하게 눈에 뜨이였다.

긴장한 순간이 흘렀다. 부관놈이 수상한 기미를 챘다면 예상밖의 일이 벌어질수 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 들어있는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러나 잠시후 부관은 아무 일도 없는 모양 문을 열고 나왔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사단장님이 기다리십니다.》

리학문은 대답대신 두 정찰병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여기 까딱말구 서있어! 아무데나 궁둥이 붙일 생각말고!》

그리고는 목각조각돋침을 한 밤색나들문을 열면서 부관이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날쌔게 권총을 빼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급해할것이 없었다. 배달환은 번들거리는 량수책상앞에 작은 몸체를 잔뜩 숙이고 무슨 문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널마루를 깐 널직한 방안에는 별로 신통한 물건이 없고 큼직한 책상과 철궤가 있을뿐이였다.

배달환의 자태를 보는 순간 리학문은 꿈결에도 소스라치도록 증오스러운 그 모습을 알아보았다. 비록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 모색은 변했어도 해당화 불타는 남해섬의 모래불에서 어린 마음에 새겼던 저주로운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권총을 틀어쥔 손이 부르르 떨었다. 당장 쏘아눕히고싶었으나 임무를 생각하며 겨우 자신을 자제했다. 그러느라니 숨소리가 높아갔다.

나들문소리가 났는데도 인적기가 없는것을 감촉한 배달환이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상대를 알아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엉?!》 작고 가늘게 째진 뱁새눈이 화등잔만큼이나 커졌다. 《이게, 이게 누구야? 리학문?!》

학문은 한걸음 더 다가섰다.

《그렇다, 나다! 조선인민군 정찰군관 리학문이다! 손들엇!》

배달환은 중풍을 만난것처럼 화들화들 떠는 두손을 두귀우에 쳐들었다.

그는 지금 제임스고문관이 사단의 신형무선기를 보겠다는 바람에 그 기술문건을 꺼내놓고 들여다보는중이였다. 제임스는 신형무선기를 가동시킨 후 적지 않은 시일이 흘렀으므로 촉각이 예민한 인민군정찰이 냄새맡았을것이 분명하다면서 보다 안전한 보호책을 찾아보라고 분부했다. 그러고도 제가 직접 나와보겠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제임스가 아니라 인민군정찰병이 그것도 꿈속에 보아도 소스라칠 리학문이 들이닥친것이였다.

달환은 목에 걸고있는 행운의 호신부를 생각했다. 이 순간 제발 제임스고문관이 방문을 벌컥 열고 뛰여들었으면하는 간절한 생각에 심신이 불타올랐다.

(그래,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끌자. 그러면 제임스가 꼭 나타날것이다. 이젠 나타날 시간이 거의 됐어.)

이런 타산에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난 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긴장된 얼굴을 풀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학문이! 자넨 그동안 어데 가있다가 이렇게 불쑥 나타났나? 아아, 그 권총은 좀 치워주게. 우리야 한고향내기 소꿉친구들이 아닌가. 비록 군복은 서로 다른걸 입었어도 옛정이야 변할리가 있을라구.》

비린청으로 엮어대는 그 넉두리에 학문은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흥, 옛정이라구? 우리 집의 온 식솔과 남해섬 온 마을사람들의 등가죽을 벗긴 〈정〉을 말하는가? 너희 착취자들은 우리의 피땀을 짜내기 위해서 이 하늘아래 생겨난 흡혈귀들이다. 우린 너희들에게 더는 피땀을 빨리우며 살수가 없어서 이 총을 잡은거다. 네놈들은 그 더러운 욕망을 실현해보려고 미국놈들을 등에 업고 전쟁까지 일구었어도 우린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네놈들과 맞서 싸운다. 이 싸움에서 우린 승리자의 행운을 타고났고 너희들은 패배자의 운명을 걸머졌다. 그건 우리에게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야. 자, 우린 긴 말할새가 없다. 어서 신형무선기의 기술문건을 내놔!》

《기술문건? 그런건 없다!》

배달환은 만만히 굽어들 자세가 아니였다. 회유가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아차리고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 머슴놈아, 분별없이 굴지 말아. 네가 아무리 날고뛴대도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해. 여기가 어딘줄 알아. 사단지휘부야. 내 부하들이 너를 탕쳐죽이고말게거덩, 쌍!》

리학문은 코웃음쳤다.

《넉두리는 그만해! 우린 죽더라도 임무를 수행하고야 죽을 사람들이야.》

그리고는 책상앞으로 다가가 책상우에 널려있는 문건들을 한손으로 걷어모았다. 그러자 배달환은 언제 도고했더냐싶게 비굴해져서 두손으로 그것을 덮쳤다.

《제발, 제발 이것만은…》

그때 부관놈을 처리한 하복남이가 들어와 놈을 밀쳐버렸다. 배달환은 마루바닥에 쾅 하고 나가넘어졌다.

문건을 들여다보니 무선기의 구조작용과 회로도에 대한 설명문이 영어로 깨알만 한 글씨로 박여있었다.

(신형무선기기술문건이 분명하구나.)

리학문은 가슴이 후두두 떨렸다.

그들은 책상우에 놓여있던 악어가죽가방에 그 기술문건들을 모조리 밀어넣었다. 복남은 검회색철궤의 문짝까지 열어제끼고 필요한 문건들을 걷어냈다.

그 순간 배달환이 발작적으로 몸을 솟구며 책상서랍에 손을 뻗쳤다. 무기를 꺼내려는것이였다.

때를 놓칠세라 리학문의 오른발이 놈의 손을 타격했다. 놈이 겨우 틀어쥐였던 권총은 마루바닥에 나딩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책상옆의 신호단추에로 손을 뻗쳤다.

이번에는 복남이가 선손을 써서 신호단추에 련결된 전기선을 와락 끊어버렸다.

《좀스러운 장난질은 그만해!》

악에 치받친 배달환놈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어릴 때두 힘내기에서 쪽을 못쓰던 네놈이… 감히 완력을 겨루자는건가?》

학문은 마구 헤덤비며 달려드는 놈의 배허벅을 주먹으로 타격했다. 배달환은 또다시 마루바닥에 꺼꾸러졌다.

복남이가 포승끈을 꺼냈다. 놈의 두팔목을 단단히 비끄러매고 모가지에 올가미를 걸었다.

이제는 빠져나가는것이 문제였다. 어물거릴수 없었다.

학문은 부관실에 걸려있던 미군외투를 배달환의 몸뚱이에 덧씌웠다. 그리고는 잡아일구며 오금을 박았다.

《자, 가자. 우린 목적을 이루었으니 이젠 신형무선기를 찾아가겠다. 명심하라. 만약 우리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날치면 네 잔등을 총알이 꿰뚫게 된다.》

포승끈은 미군외투에 감쪽같이 가리워졌다. 뒤로 비틀어묶은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포승줄이 목을 조이는 바람에 배달환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군 했다.

(이놈을 부대까지 끌고갈테다.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할테다. 고향의 이름으로, 조국의 이름으로!)

배달환은 순순히 움직였다.

그것은 이제 나타날 제임스에게 기대를 걸었기때문이였다. 제임스만 나타나면 처지가 뒤바뀔것이다.

(이새끼야, 이제 두고 보자. 제임스고문관이 네놈들을 그냥둘줄 알아? 그때 내 너의 생눈알을 뽑고 배를 가를테다!)

정찰병들은 놈의 뒤에 바투 붙어서서 2층계단을 내렸다. 점심시간이여서 복도도 바깥도 어디라없이 조용했다.

일행은 유유히 걸어서 차고에까지 이르렀다.

《운전사! 운전사 어디 갔어?》

리학문이 소리치자 차고안에서 작달막한 운전사가 달려나오며 헤벌쭉 웃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어디긴 어디야. 식사하러 가야지. 점심시간두 몰라? 밥먹으러 가는 길에 신형무선기나 보고 가자. 그새 무슨 일이 없는지 맘이 안 놓여. 야야, 사단장님이 시장해하신다. 빨리 가자!》

운전사는 군말없이 발동을 걸었다. 복남이가 조종하는대로 배달환은 좌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찌프차는 회색연기를 토하며 속력을 높였다. 정문을 벗어나 한참 달렸다. 이제는 마음이 놓였다. 운전사놈은 기특하게도 산벼랑밑에 숨겨놓은 무선차에로 찌프차를 바투 들이몰았다. 먹어놓은 떡이였다. 그런데 배달환이 꿈지럭거리며 요동하기 시작했다. 리학문의 주먹이 명치끝을 타격하여 잠재워놓았기에망정이지 무슨 일이 생겼을는지 몰랐다. 그통에 운전사놈이 낌새를 채고 얼굴을 홱 돌렸다.

《관주!》

학문이가 소리쳤다. 말뜻을 알아차린 류관주가 큼직한 주먹으로 운전사놈의 뒤덜미를 내려치고 운전석을 차지했다.

《수류탄!》

구령에 따라 세발의 수류탄이 동시에 날아갔다.

쾅! 쾅! 쾅!

벼랑밑에 서있던 무선차가 폭음에 허양 날아났다. 연유통에 불이 달려 삽시에 시뻘건 불길이 타래쳐올랐다.

《그만하면 됐어. 전속력으로!》

찌프차는 산기슭을 에돌아간 길을 따라 내달렸다. 굽인돌이를 돌아섰을 때 검문소차단봉이 앞길을 막았으나 사단장차를 알아본 놈들은 황황히 차단봉을 올렸다.

배달환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으나 일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뱁새눈은 점점 사납게 번뜩이였다. 마지막검문소를 벗어나는데도 제임스가 나타나지 않자 죽음이 가까와온것을 깨달은것이였다.

허나 운명의 신은 이번에도 역시 배달환을 외면하지 않는듯 했다. 검문소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 미군찌프차 한대가 마주 달려왔던것이다.

찌프차에 거방지게 앉아있던 미군장교가 삐죽이 긴 턱을 잔뜩 쳐든채 마주오는 차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두손가락을 어깨우에 펴들고 천천히 흔들어댔다. 차를 세우라는 신호였다.

학문은 그 미군장교가 제임스인것을 알리 없었다. 공교로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할것인가?! 사단장차도 함부로 세우는걸 보니 결코 무맥한 놈은 아니야. 여기서 세웠다가는 놈들의 수색을 당할수 있고 그러면 불리해진다. 놈들을 끌고 검문소구역에서 빨리 벗어난 뒤에 해치워야 한다.)

《전속으로!》

찌프차는 먼지발을 일구며 홱 지나쳐 달려갔다.

자기의 재채기소리에도 꿈틀 놀라는 배달환사단장이 그냥 달아빼는것을 보고 사태가 여의치 않은것을 알아차린 제임스는 찌프차우에서 벌떡 일어섰다.

《까뗌! 홀트 오 아일 슈트! (개자식! 서라, 쏜다!)》

그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쏜 권총탄이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면서 리학문의 귀전을 스치고지나 앞차창유리를 깨부셨다.

제임스의 찌프차는 급급히 차머리를 돌려 추격하기 시작했다. 검문소에 대기하고있던 모터찌클과 화물차가 그뒤를 따라섰다.

질풍치듯 내달리는 찌프차우에 상반신을 솟군 제임스는 연방 권총을 흔들어 사병들을 다몰아대다가 다시 권총을 겨누었다. 때를 놓칠세라 리학문이 련발로 갈겨댄 자동총탄이 그놈을 명중했다. 제임스는 가슴을 그러쥐고 모지름을 쓰다가 차에서 굴러떨어졌다.

고속으로 달려오던 모터찌클은 다이야터지는 소리를 요란하게 지르며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사병놈들을 가득 태운 화물차는 끈질기게 추격해왔다.

총탄들이 앙칼진 휘파람소리를 지르며 날아오고 차밑에서 흙먼지가 풀썩하더니 갑자기 차체가 뒤집힐듯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이야가 총탄에 꿰뚫린것이였다.

차는 길섶에 대가리를 박으며 급정거했다.

이제는 사생결단의 결사전이다. 달려드는 적들과 일대 격전을 벌려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살아서 신형무선기의 기술문건을 부대에 가져가야 한다. 포로도 끌고가야 한다.

학문은 찌프차에서 뛰여내리며 명령했다.

《배달환, 일어낫! 내려라!》

제임스가 죽어자빠지는것을 보고 얼이 빠진 놈은 반정신이 나가서 떠뜸거렸다.

《나, 나를 어데로 데려가려고 그래?》

《넌 포로다. 우리와 함께 가야 해!》

학문이 재촉했으나 놈은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을 쓰며 고아댔다. 제편놈들이 추격해오는것을 보고 값싼 마지막용기가 꿈틀거리는 모양이였다.

《안 가! 못 가! 쌍! 나에겐 미국이 준 행운의 호신부가 있어 이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나의 부하들은 네놈들을 몽땅 사로잡을것이다. 난 네놈들을 몽땅 목매달라고 명령할테다!》

원쑤는 죽는 순간까지 원쑤였다. 죽을 기를 쓰고 발악하는 이런 놈을 끌고가기에는 정황이 너무도 위급했다.

《그럼 할수 없군. 이놈아, 이젠 결산을 하자. 네놈이 늘 지껄였지, 하느님이 너의 집에 복을 내려줬다구. 그래서 머슴과 지주는 날적부터 운명이 다른거라구. 나도 어릴적엔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나는 태여날 때부터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거라고, 그게 운명이라구 말이다. 허나 우리의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그 운명을 뒤바꿔주셨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행운을 받아안고 다시 태여났다. 오늘 네놈들은 미국을 하느님으로 믿지만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을 하늘처럼 믿는다. 너 죽기 전에 똑똑히 알아둬라. 우리는 미국놈들을 이 땅에서 남김없이 쓸어버릴것이다!》

마디마디에서 불이 튀는듯 했다. 말을 마치고 어금이를 꽉 윽문 리학문은 권총을 겨누었다. 눈깔을 까뒤집고 달려드는 놈의 가슴팍에 거퍼 총탄을 안겼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배달환은 꼬꾸라졌다.

《서라!》

《손들어라!》

적들이 가까이까지 이르렀다. 총알이 휘파람을 불며 비발치듯 날아왔다.

세 정찰병은 수림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근처의 산기슭에 대기하고있던 대원들이 일제사격으로 그들을 엄호해주었다.

아군의 화력이 여간한것이 아닌것을 첫탕에 맛본 적들은 주춤거리더니 길섶에 산개하여 머리도 못 들고 눈먼 총알만 날리다가 정찰병들이 산림속으로 철수해버렸는데도 따라올념을 하지 못했다. 역시 목숨을 아까와하는 겁쟁이들은 늘 그 모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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