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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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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26 16:42 조회1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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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금별의 바다

2

무거운 눈얼음을 이고 고생하던 나무아지들에 푸릿푸릿 봄물이 오르더니 벌써 파아란 새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전투로 해가 밝고 전투로 해가 지는 속에서도 천하만물이 신생하는 환희로운 봄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온 겨울 수십차례나 전선을 넘나들며 정찰활동을 벌려온 군단정찰대는 이해의 새봄을 적후에서 맞았다.

적후의 봄은 유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듯싶다. 온 겨울 찬눈발을 헤치며 적배후를 종횡무진하던 정찰병들은 봄의 따스함과 아름다움보다도 정찰활동의 편의를 보장해주는 이 계절의 은혜로움에 마음부터 먼저 푹 젖게 되는것이다. 봄이 되면 아무리 식량난이 겹쳐들어도 큰 걱정이 없고 추위나 더위에 몸을 떨 근심도 덜어진다. 그야말로 정찰병들이 마음껏 활개치는 계절이 왔다.

무선안테나를 소나무에 걸어놓고 부대와 무선교신을 끝낸 차용대는 한장의 긴요한 무전문을 리학문에게 내밀었다.

최고사령부 정찰국에서 통보해온데 의하면 미군과 특정한 괴뢰군부대들에 신형무선기가 도입되였다는데 시급히 그 무선기를 로획하든가 무선기에 대한 기술문건을 탈취할데 대한 특별임무였다.

자동적으로 변신되는 이 신형무선기때문에 아군련합부대들의 비밀정보들이 적지 않게 도청당하고 그로 하여 작전에서 보는 피해가 크기때문에 이 임무는 분초를 다툰다고 했다.

그제서야 정찰병들은 어떻게 되여 지난 겨울 적후정찰때 적들이 정찰대의 행동을 그리도 재빨리 포착하고 추격해오군 했던지 그 까닭을 알게 되였다.

《신형무선기라!》

리학문은 생각을 더듬었다. 제일먼저 점찍히는것이 괴뢰군 3사지휘부였다.

정찰대가 지금 위치한 현리 북쪽에서 불과 10리정도밖에 안되는 방태골에 괴뢰군 3사지휘부가 있다. 이놈들은 미군부대들과 동급의 보급을 받는다고 으시대는 놈들인만큼 신형무선기도 공급받았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먼저 실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숲속에서 간단한 준비를 한 정찰병들은 곧 괴뢰군 3사지휘부를 향해 출발했다.

봄물이 파릇파릇 오른 민들레며 냉이풀이 다문다문한 산자드락을 헤질러 적들의 눈에 띄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행군하여 저녁에는 방태골에 이르렀다.

밤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3사지휘부방향으로 한치한치 접근하면서 유리한 근거지가 될수 있는 대상을 눈여겨 찾아보았다. 근거지는 놈들에게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정찰대의 활동에 편리하고 안전해야 했다.

《부부장동지, 저 기와집이 어떨가요?》

맨 앞장에서 걸어가던 박만호가 별빛아래 어슴푸레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과연 우중충한 산기슭에 바투 다가붙은 배집지붕의 큼직한 민가가 있었다. 집두리에는 오지기와를 얹은 흙담장이 높이 둘러쳐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외따로 자리잡고있는 그 집은 만약 적들에게 장악된것이 아니라면 근거지로 안성맞춤일것 같았다. 집에서 3사지휘부까지 불과 5분길도 못되는데다가 외딴집이여서 뭇사람들의 왕래도 별로 없을것이였다.

《좋소, 가보기요.》

조심히 담장을 넘어 뜨락에 들어서서 살펴보니 여간 부유한 집이 아니였다. 전쟁전부터 지주가 살던 집 같았다. 이런 집에 묵어있으면 어려운 생활을 하고있는 인민들에게 페를 끼치는 옹색함이 없을것이고 적들의 의심도 덜 사게 될것이였다.

《으험, 주인장 있소?》

리학문이 틀스럽게 인기척을 내자 마루우의 미닫이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던 주인령감이 턱수염을 까불며 초롱불을 들고 버선발로 뛰여나왔다.

《이 집에 좀 묵어갈수 있겠나?》

《원 이런, 국군어른들이 아니웨까. 어서들 들어오슈.》

안방에 들어가보니 역시 여간한 부자집이 아니였다. 방안에는 옻칠을 한 자개박이의농이 줄느런하고 그우에 비단이불채가 그득그득 쌓여있었다.

집은 바깥채와 안채로 이루어져있는데 안채는 가운데에 부엌이 있고 동쪽으로 살림방이 두칸, 서쪽으로 살림방이 한칸 있는 량통식건물이였다. 뜰을 사이에 둔 앞채에는 널직한 사랑방이 있었다.

《식사들은 물론 했겠지요? 요즘 군대어른들은 미국소고기통졸임만 잡숫던데… 아이구, 이놈의 전쟁통에 우린 아예 알거지가 되였습니다. 양지촌, 후평동, 황천동, 속사동 이 아근의 땅은 다 내건데 그 망할놈의 전쟁바람에 작인놈들은 빨갱이물을 먹고 다 북쪽으로 들어가버리구 머슴놈들두 싹 도망쳐버리지 않았갔소. 그뿐인줄 아슈, 공산당세상이 되니까 땅을 빼앗구, 집을 빼앗구… 그런걸 미군하구 국군하구 다시 들어와서 되찾기는 했소만 찾아선 뭘 하갔소. 땅은 다 묵어나구 머슴으로 부릴 놈두 없으니… 그래 내 남쪽으로 도망갈 때 가지고갔던 벌통에 명줄을 걸구 지금 살아가고있수다. 잉―》

비단바지저고리를 입고 고매끼를 졸라맨 령감쟁이는 흰 수염이 다보록한 턱을 달달 떨면서 연신 주절거렸다.

《그런가. 그참 안됐네. 그래도 좀 참으라구, 두상. 이제 인차 전쟁이 끝나게 된다니까.》

《그래요? 암, 어서 끝나야지요. 헌데 저 공산당은 여게 못 오게 하구 끝나야 합니다. 또 땅을 뺏들자고들테니까요. 동란이 일구 그것들이 다닥쳐드니까 정말 무섭더군요. 글쎄 온순하던 소작쟁이와 머슴놈들까지 무슨 마귀에라도 접했는지 호미에 낫가락을 둘러메구 막 달려드는데… 장교님, 제발 그 악당같은것들이 다시는 내 땅에 발길질 못하게… 꺽 꺽…》

《알겠소, 알겠다니까그래. 토지개혁때 혼맹이가 쑥 빠졌던 모양인데… 령감은 우리가 그것들을 혼쌀내우는 거사를 치를 때까지 저 안방에서 안정이나 하고있소.》

《예예, 그러지요. 무슨 거사인지는 몰라라 그저 빨갱이놈들 혼맹일 뽑아준다면야…》

정찰병들은 가증스러운 늙다리내외를 안방에 가두어버렸다. 만약의 정황을 타산하여 뒤뜰 감자움속에는 피신처삼아 가마니짝을 깔아놓았다.

초긴장속에 하루밤을 보내고 이른새벽에 경계초를 파견한 후 온 정찰대가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한나절을 소득없이 보내고 어느덧 정오경이 되였다.

도로경계초로부터 아래부락에 괴뢰군장교 세놈이 나타났는데 두놈은 도중에 어디론가 가버리고 한놈이 가까이 접근하고있으니 통과시켜도 좋겠는가 묻는 신호가 왔다.

《통과시키라고 하오!》

학문의 지시를 받은 차용대가 두주먹을 모아붙여 입바람을 불면서 약속된대로 뻐꾸기소리를 내였다.

뻐꾹 뻐꾹 뻐뻐꾹…

대상물은 인차 나타났다. 옷차림이 군대물에 쩌들지 않은채로 말쑥하고 낯가죽이 반드럽게 생긴 놈이였는데 중위밖에 안되는것이 시골에 행차한 암행어사만치나 흔들쩍거리며 걸어왔다.

집대문에 붙어서서 그놈의 거동을 살펴보던 학문은 어이가 없어서 하늘을 쳐다보며 소리없는 웃음을 웃었다. 대문앞을 그냥 지나쳐가겠는지 뜨락으로 들어오겠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마침내 햇내기중위가 대문앞에 이르렀다.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둘가 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덮치기로 결심했다.

(저렇게 빤질빤질한 놈이 비밀을 많이 다루는 요긴한데 배겨있을수 있지.)

그는 대문을 찌꿍 열어젖히며 웃음어린 얼굴을 내밀었다.

《중위량반! 어디서 올라오능기요? 날 만나러 왔다면 들어오락꼬.》

꿈틀 놀란 그놈은 걸음을 뚝 멈추고 긴장해서 돌아다보았다. 재빨리 권총갑에 손을 가져가다가 상대가 남도사투리의 《국군》장교인것을 알아보고는 안심되여 긴장을 푸는 기색이였다.

《중령님도 꿀을 맛보시러 오셨습니까?》

《그렇다능기요. 임자도 한번 맛보고 가지.》

《그야 물론이디요. 이 집은 내레 단골입니다. 중령님도 내레 싫다하면 꿀맛을 좀해선 보기 어렵디요. 하하… 헌데 이 집 늙다리들은 다 어디 갔기레요?》

스스럼도 없이 마루에까지 올라와 엉치를 붙이며 그놈은 이상스럽다는듯이 학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디 잠간 나갔당게로. 그 늙은이들도 자네 얘길 많이 하더락구. 임자 말씨가 고질적인 평안도말씨군 그래?》

《예, 그게 다 사연이 있디요. 내레 원래는 평양태생인데 대동벌지주였던 아버지가 청산된 후에 원산으로 도망가서 문천농업전문학교라는델 들어갔디요. 헌데 처지가 꼭같은 한 친구가 지주경력을 기만한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민청에서 캐고들겠디요. 기래 내레 겁이 나서 월남하고말았습니다. 도망치길 잘했디요. 그렇지 않았더라문 이미 목이 뎅겅했을걸요. 그때부터 미군어른들이 인천에 내온 기술학교를 다녔는데 그 덕분에 남들은 일선에서 개죽음을 당하구있디만 난 이렇게 으리으리한 참모부에서 쯔쯔돈쯔 하면서 편안하게 지내고있디요.》

꽤 다사한 놈이였다. 리학문은 한수 더 떠보기로 하고 올리추어주었다.

《임자 직급은 높지 않어두 굉장한 사람이구마. 그 손이랑 보니께니 남들한테 명령하는 팔자지 복종하는 팔자는 아니라는게 알린당게로. 십상 신형무선길 다루는거겠지?》

《쉿! 이 성님이?! 중령님도 낮지 않은분인데 그런 비밀소릴 탕탕… 성님도 알겠는데 그 무선기덕분에 내레 지금까지 무궁화훈장을 6개씩이나 타고 리승만박사의 표창까지 받았디요. 에― 목젖이 근질거린다, 이 넝감노친 어디 가서 안 오나?! 꿀이나 얻어먹군 빨리 가야겠는데…》

더 알아볼것도 없었다. 학문은 다짜고짜 그놈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성님! 아, 갑자기 왜 이러는겁니까? 아군끼리…》

놈은 영문을 알수 없어 야단이였다.

발광하는 그놈을 감자움속에 끌어넣은 정찰병들은 괴뢰군복깃을 제끼고 속에 입은 인민군대복장을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놈은 나불거리던 입을 다물고 머리를 푹 숙이였다.

심문이 시작되였다.

《신형무선기의 위치를 말해라!》

《전, 전 모릅니다.》

《중위, 다 말해놓고도 모른다니 말이 되나. 인제 더 뻗친댔자 좋을것도 없겠는데 차라리 끝까지 솔직한게 좋지 않을가?》

이미 자기가 한 말이 있고 이들이 분명 신형무선기를 노리고 침투한 인민군정찰병들이라는것을 알아차린 놈은 더 빠져나갈 구멍수가 없다는것을 통절히 깨닫고는 목숨을 담보할것을 애걸한 끝에 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단지휘부에는 신형무선기를 설치한 차가 한대밖에 없는데 그것을 잘못 건드리면 자동적으로 폭발하게 되여있다고 했다. 놈들은 자동변신기가 설치된 그 무선기비밀이 새여나갈가봐 무선차주위에 밤낮으로 삼엄한 보초를 세우고있으며 무선기를 가동시키지 않을 때는 갱도속에 넣는다고 했다.

신형무선기기술문건은 사단장의 방에 깊숙이 보관되여있다는것과 그 방의 생김새, 크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사단장의 방에 들어가자면 먼저 부관방을 거쳐야 하는데 그 방의 나들문은 2층계단에 올라가서 세번째입니다. 기술문건은 그 방 마루밑에 보관되여있고 책상에 달려있는 단추를 누르면 비상신호종이 울리게 되여있디요. 하지만 사단장은 수가 이만저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미군어른들의 막강한 후원까지 받는 유력한분입니다. 사단장방에까지 접근하기도 어렵지만 요행수가 생겨 들어간다고 해도 그는 죽으면 죽었지 문건은 절대 내놓지 않을겁니다.》

《사설이 많구만. 그놈두 목숨을 아까와하는 놈이야.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학문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면박을 주었다. 그러자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 그놈은 목숨을 담보받자면 뭔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던지 묻지도 않은것까지 털어놓았다.

《사단장방에 들어가자면 가리산 18련대 련락장교라고 하는것이 제일 무난합니다. 사단장님과 가리산 18련대 련대장은 친분이 매우 두터운 사이니까요.》

《그래? 그 련대장 이름이 뭔가?》

《석치구라고 하는데 련대장의 아버지는 대지주입니다.》

《모를 녀석이군. 사단장의 이름은?》

《배달환입니다.》

(배달환이라? 코코에 늘 듣게 되는 이름인데?!)

별스러운 생각이 든 그는 사단장의 고향과 리력에 대해 따져물었다. 중위는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알고있었다.

(그놈이?!)

비로소 리학문은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것을 깨달았다. 남해안의 호수가에서 보았던 그놈, 그놈과 결산을 못하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오르게 된것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맞다든것이였다. 아니, 전쟁 전기간 리학문 그도, 배달환 그 원쑤놈도 자기의 계급적토대와 목적을 위해 부단한 충돌과 투쟁속에서 운명의 판가름을 해온것을 미처 몰랐을뿐이였다.

《좋다! 맞서보자! 사생결단의 대결이다! 언제이든 반드시 있어야 할 대결전이 이렇게 닥쳐왔구나!》

그는 이발을 윽물고 일어섰다. 이 순간 그는 이상스럽게도 권녕신의 편지에서 보았던 글발을 상기했다.

《대답해주세요. 과연 동무는 영웅이라는 명예를 위해 전장에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가요?》

이 순간 그는 떳떳이 대답할수 있었다.

(아니다! 나는 우리의 귀중한 삶을 빼앗으려 날뛰는 원쑤를 증오하기에, 원쑤를 증오하는 그만큼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우리의 존엄과 생활을 사랑하기에 사생판가리의 싸움에 나선것이다!)

그 순간의 감정이 다름아닌 이 나라 모든 병사들의 심장속에 하나처럼 자리잡고있는 숭고한 애국심이고 영웅성임을 그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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