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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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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23 17:19 조회5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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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용감성은 타고나는가

7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산발들은 횡성과 원주쪽으로 가면서 점점 낮아지는데 그 골짜기로 제천과 평창, 원주로 뻗은 도로들이 우불구불 뻗어있다. 산골짜기로 올라가다가 산기슭을 빙빙 돌기도 하고 바위벼랑뒤로 사라지기도 하며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누워있는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분주히 지나다닌다. 어제도 오늘도 끊길 새가 없다.

《열하나, 열―두울… 부부장동지, 이런거나 셈을 세선 뭘합니까?》

쌍안경으로 큰길을 내려다보던 한중일이가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려넣으며 중얼거렸다. 원주비행장을 습격한 후 수림이 빽빽하고 산세가 험한 곳에 근거지를 정하고 들어앉아 머물면서 벌써 한주일째나 도로를 감시하고있으려니 그도 오금이 쑤셔난것이다.

《그게 다 적정자료요. 내 늘 말하지만 정찰병은 만사능통해야 하오. 손쉽게 적의 심장부에 침투하거나 적병을 재치있게 포로하며 필요한 자료를 뽑아내고 적지휘부, 참모부, 통신결속소 등 대상물들의 외적인 특징과 적군으로 위장하였을 때의 행동준칙, 주민들과 만났을 때의 행동원칙 등 사소한 문제들까지 다 알아야 하지. 또 놈들의 군사편제와 부대배치, 후방공급체계와 무장상태, 민족구성, 생활조건과 말투 지어 활동지역내 주민들의 생활처지까지도 파악해야 하는것이 바로 정찰병이요. 그뿐이 아니요. 지나가다가 나무가지가 꺾어진것, 풀잎이 넘어진것만 보고도 적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갔다는것을 알아야 해. 그렇게 놓고보면 지금 동무가 장악하는 자료는 놈들의 병력이동과 기도를 련상해볼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진단 말이요.》

리학문은 어느사이에 자신이 다심한 소학교 교원이 된듯 한 생각이 들어 벙싯 웃었다. 한중일은 강의받는 학생처럼 진중하게 그의 긴 말을 새겨들었다. 그러다가 불쑥 딴소리를 한다.

《그렇군요. 하지만…》

《하지만 뭐요?》

《부부장동지, 저놈들을 곱게 보내겠습니까?》

《응? 무슨 좋은 수가 있소?》

《예. 저놈들을 몰아서 족쳐버리자는겁니다.》

《몰아서?》

중일이는 수첩을 무릎에 놓고 두손으로 형용까지 해보이며 성수가 나서 설명했다. 이번에는 그가 강의를 하는것 같았다.

《우리 고장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때 뚝을 막고 보쌈을 놓지요. 그러면 물고기란 놈들이 잔뜩 모여든답니다.》

《보쌈이라?》

《예. 어구로 치면 신통해뵈지 않지만 손쉽게 물고기를 잡는데선 으뜸이지요 뭐.》

학문은 기뻐서 그의 무릎을 쳤다.

《좋소. 마음에 들어! 발전이 빠르거던. 사실 난 적후로 들어올 때 우리 동무들이 꽤 정찰병구실을 해낼수 있겠나 하구 걱정했더랬소. 이제 보니까 괜한 걱정이였구만. 아주 좋아. 중일동무의 의견대로 일거리를 만들어서 해보자구.》

제천쪽에서 나타난 자동차행렬이 평창쪽으로 가고있다. 자동차마다에는 총을 무릎사이에 세운 사병놈들이 빼곡이 들어앉았는데 아마 전선으로 보충되여가는것 같았다. 저것들이 전선에 가닿기 전에 하늘로 날려보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장악된 차량과 인원에 대한 자료는 무선으로 군단에 보고되였다. 정찰대의 결심을 알게 된 군단에서는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동의를 주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적의 력량을 분산약화시키는데서 대단한 의의를 가지는 일이였다.

해가 금방 떠오른 아침이였다. 외통길목에 3명의 《국군》이 서있었다. 한명은 중령이고 두명은 사병이였다.

험한 골짜기를 따라 오불꼬불 올리뻗은 산골길은 너무 비좁아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산탁으로는 눈이 강설처럼 쌓였는데 다른쪽으로는 벼랑이 아찔하게 내리깎였다. 그아래쪽에서는 남한강의 세찬 물소리가 소연히 들린다.

자동차 한대만 멈춰서면 영낙없이 길이 막혀버릴 외통길목이였다.

저쪽령길옆 수풀속에서 솔가지가 흔들렸다. 길바닥에 지뢰를 매설할 임무를 받은 정찰병들이 일을 다 끝냈다는 신호다. 그들은 이제 눈속에 매복하여 때를 기다릴것이다. 학문의 신호에 따라 《보쌈》에 든 적자동차들에 수류탄벼락을 안기게 되여있었다.

아침해살이 퍼지자 자동차들이 한대두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되자면 외토리로 오는 화물자동차를 멈춰세워야 했다.

《맞춤한 화물차가 옵니다.》

흥분한 박만호가 주먹을 내흔들면서 속살거렸다.

《덤비지 말라우. 나도 봤소. 침착하게 멈춰세워야겠소.》

리학문이 주의를 주었다. 화물차가 고개길로 올라왔다. 뒤에 달린 차는 보이지 않았다. 짐을 몹시 많이 실어서인지 숨넘어가는듯 한 발동소리를 지르며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왔다.

한참 지나서야 자동차가 그들앞에 이르렀다. 차용대가 길복판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가며 곤봉을 쳐들고 호각을 새되게 불었다.

자동차는 스르르 멎어섰다.

학문은 차가 멎은 후에야 거들거들 차앞으로 다가갔다. 운전칸에 앉았던 괴뢰군중위놈이 머리를 내밀었다.

《중령님, 여기에 무슨 검문소가 갑자기 생겼습니까?》

학문은 이새로 침을 찍 내쏘았다.

《중위는 꽤 건방지구만. 이동검문소두 중위의 승인을 받고 내오게 돼있나? 인민군정찰병들이 침투했단 말을 듣고도 그따위 소릴 해?》

《헤헤… 그야 뭐 밤낮 듣는 소린걸요.》

헤식은 소리를 귀등으로 넘기며 박만호에게 턱짓했다.

《적재함을 잘 수색해봐!》

만호는 적재함에 오른것이 아니라 운전칸문을 열어제끼며 운전사의 멱줄기를 들이쳤다. 옛 권투선수의 주먹에 놈은 단매에 너부러졌다. 학문은 중위놈의 멱살을 잡고 제창 벼랑아래로 내리던졌다.

《아―악!》

비명소리를 끄을며 천길낭떠러지로 두놈이 날아내렸다. 일은 눈깜박할 사이에 벌어졌고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벼랑아래서 들려오는 소연한 물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고있었다.

일은 순조롭게 되였다.

자동차의 적재함에는 탄약상자들이 그득 실려있었다. 그것도 안성맞춤이였다.

학문은 기화기접점과 배전선을 뽑아버렸다. 누가 깐깐히 살펴봐도 꼼짝달싹할수 없는 한심한 상태인것을 알게 해야 했다.

자동차가 이 지경이 되였대서 그냥 가버리면 적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고장난 차를 벼랑턱으로 굴려버릴수 있었다. 이제부터 차용대는 운전사역을, 박만호는 조수역을 하면서 고장을 퇴치하는체 하며 적자동차들이 앞뒤에 많이 밀릴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박만호는 씩씩거리며 큰 돌을 가져다가 자동차뒤바퀴에 고였다.

차용대가 운전사로 가장하고 차밑에 기여들어갔다.

학문은 호송장교답게 사병들을 독촉하면서 시끄럽게 구는자들이 접어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잠간사이에 몇대의 자동차들이 달려와 멈춰섰다.

차용대는 차밑에서 고장을 찾는척 하면서 망치소리를 요란히 내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질렀다.

《야! 스파나! 32스파나를 달라구!》

만호가 제꺽 허튼 공구를 섬겨주었다.

《눈깔은 동냥을 갔나. 32스파날 달라는데 이건 뭐야?》

《젠장, 이건 스파나가 아니구 뭐요?》

《임마, 이런것 말구 끝이 직각으로 꼬부라진 복스파날 달란 말야.》

《그따윈 약으로 쓸래두 없수다. 콱 통채루 가지구 찾아보구려!》

그는 공구주머니를 차밑에 왱가당 집어던졌다.

《내 저따위 밸통머리 사나운 조수놈을 만나서 고생문이 열렸어.》

그러는 사이에 적의 자동차들이 10여대나 더 달려와 멎어섰다. 고장난 차에서 아웅다웅하는 꼴을 보며 기웃거리던 놈들은 차를 인차 고치기는 판이 글렀다고 생각한듯 상판을 찡그렸다.

《어이, 어디가 고장잉기로?》

차에 와서 기신거리던 한놈이 거칠게 물었다.

《사등뼈가 부러졌당게.》

《임마, 인자 뭐라구 지껄였나?》

박만호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데 화가 오른 그놈은 주먹을 움켜쥐고 걸쳐보려들었다. 그러나 투박한 상대의 주먹을 보자 목을 움츠렸다. 그러거나말거나 만호는 느물거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쨔식, 눈깔로 보구도 몰라? 다리갱이가 부러졌당기로!》

그러자 다른 놈들이 와하하 웃어댔다.

《배때기는 성하대?》

《꼬랑지는 어떠렇대?》

차용대가 바퀴짬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리소리질렀다.

《이새끼들, 뉘 에미가 어드랬늬? 정 알구싶으문 와서 볼게지 도적맞은 과부년처럼 소래기는 왜 질러?》

성칼사나운 작자들과 싱갱이질을 해야 좋을게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놈들은 비실비실 제 차들에 돌아가 졸거나 마시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였다. 그사이에 계속 들이닥치는 자동차들의 발동소리, 경적소리, 술병이 깨지는 소리…

판은 점점 커졌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든든히 먹어야 했다. 어떤 놈이 도발을 걸어와도 끄떡없이 뻗쳐내야 한다. 까다롭게 구는 놈들중에 직급이 높은 장교들도 있을수 있고 괴뢰군을 우습게 여기는 미군도 있을수 있다.

몇놈이 더는 참지 못하겠던지 서슬이 퍼래서 다가왔다.

《이 차의 주인님은 누구신게로?》

《어드래서 그래? 내 차가 탐나나?》

차용대가 성칼사납게 새된 소리로 응수해나섰다.

《시간이 귀한 전시에 이런 털터리는 굴려버리는게 마땅하당게로.》

《뭐야? 이 기생오래비같은 새끼가? 맞서보자는기야?》

옥신각신 험한 욕설이 오갔다. 주먹이 나갈만큼 량쪽이 악에 치받쳤을무렵 리학문이 나섰다.

《어느눔이 감히 이 차를 굴려버리겠다고 하느냐? 사병아이새끼들이 돼먹지 못하게스리!》

놈들은 장교를 알아보고 술렁거리며 돌아섰다.

그때 미군장교가 통역관을 앞세우고 다가왔다.

《노, 중령, 당장 길을 여시오. 우리 미군 시간 매우 바쁩니다.》

《바쁘긴 우리도 같소.》

상대가 제놈의 말에 호락호락 복종하지 않는것을 통역을 통해 알게 된 미군장교는 노랑눈을 활활 태우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까땜!》

《이 양키새끼가? 총은 여기도 있어!》

리학문도 권총을 마주 내대였다.

미군장교는 괴뢰군장교를 허술히 보고 접어들었다가 눈깔이 뒤집혀 뒤걸음질쳤다.

《야!》

별안간 리학문이 더 큰소리를 지르며 놈의 가슴팍에 권총을 더 가까이 들이대자 미군장교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고말았다. 괴뢰군놈들은 그 광경을 보자 뭐라고 수군거리며 다 달아나버렸다.

그다음부터는 거칫거리는 놈들이 없었다.

학문은 늘어선 자동차들을 넌지시 셈해보았다. 거의 칠팔십대는 됨직했다.

(한탕에 이만하면 푸짐하군. 이젠 그만 욕심을 부리고 다음순서로 넘어가자. 물고기가 너무 많으면 보쌈이 찢어질수 있어.)

흐뭇해난 그는 자동차밑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야, 다 고쳤으면 나와! 손이나 씻고 오자.》

그들은 기름걸레를 찾아들고 물을 찾아가는척 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부부장동지, 이제는 한알씩 선사해야지요?》

수림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차용대가 수류탄을 한발 꺼내들고 학문을 쳐다보았다.

《덤비지 말라구. 첫발은 우리가 수리하던 탄약차에 먼저 던져야 해. 침착하게!》

셋은 수류탄을 한개씩 쥐고 힘껏 던졌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매복했던 정찰병들도 불벼락을 퍼붓기 시작했다.

꽈르릉 꽈르릉! 퉁탕 퉁탕! 쾅쾅!

수류탄이 작렬하는 서슬에 길바닥에 설치해놓았던 지뢰들까지 연거퍼 터졌다. 차에 실었던 탄약이 폭발하며 자동차들이 산산쪼각나서 공중에 날아올랐다. 가슴후련한 섬멸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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