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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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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18 20:41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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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용감성은 타고나는가

2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수풍에 있는 휴양소에서 보낸 나날은 언듯번듯 흘러 보름이 다되였다. 입소식을 할 때는 열닷새가 언제 지나가나 했는데 정작 휴양생활을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언제 가버리는지 알수 없었다.

이제 래일이면 휴양생활을 마치고 전선으로 떠나게 된다.

휴양생활에 몸이 근질근질해난 영웅휴양생들은 괜히 마음들이 들떠서 돌아갔다. 거기에 부채질한것은 새로운 휴양생들이 도착한것이였다.

리학문은 병실앞 느티나무아래 놓여있는 돌의자에 앉아서 자기네와 교대하게 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새 군복을 차려입었으나 그들에게서는 전선의 화약냄새가 풍기는듯싶었다. 적기의 폭격을 간혹 겪군 해도 전투와는 썩 먼거리에 있는 휴양지에서 생활하다보니 격렬한 긴장과 초인간적인 의지가 충만된 전선생활이 몹시 그리워졌다.

《어, 부부장! 잘 있었나?》

형편없이 큰 목소리가 어깨뒤에서 울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뜻밖에도 한태설부참모장이 두손을 내들고 다가왔다.

《아니, 어떻게 또 왔습니까?》

그들은 부둥켜안고 한참이나 돌아갔다.

《말도 말라우. 이번엔 내가 걸렸네, 걸렸어.》 태설은 두툼한 입술을 삐주름히 내밀어 웃기였다. 《아, 군단장동지가 어찌나 다궂는지 용빼는 수가 있더라구? 최고사령부 명령인데야 어딜… 허허허…

가만, 자네 래일 떠나지? 하아― 어쩐다? 우리 집사람을 같이 만나보고 가야겠는데… 좋네, 내 휴양소장을 구슬려서 꼭 시간을 받아낼테니 당장 나와 함께 가보고 오자우. 차도 있겠다, 거리도 멀지 않겠다, 래일이면 돌아올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되여 그들 둘은 의주로 달렸다.

한태설의 집은 의주읍에서 압록강상류쪽으로 치우친 미산동에 있었는데 그의 말대로 거리도 그리 먼것이 아니여서 해가 많이 남아있는 저녁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의 안해는 옥심이라는 이름처럼 무척 단아한 녀인인데 해방전에는 녀자들은 좀해서 다니기 어렵기로 소문난 정주오산중학을 나왔고 전쟁전에는 어느 신문사에서 기자생활도 한바 있다는 현대풍의 녀성이였다.

《글쎄 난 정주에서 출생해서 자라면서두 다닐 엄두를 못 냈던 오산중학을 이 녀사가 다녔다우. 내야 철도로동자로 굴러먹다나니 언제 공부할 생각이나 해봤겠나.》하고 자랑인지 푸념인지 알수 없는 여담을 늘어놓던 한태설은 정색해지더니 뜻밖의 화제를 꺼내들었다.

《부부장! 이왕 왔던김에 할일이 하나 있다우.》

부대에서와는 달리 각근한 어투로 부르는 바람에 학문은 궁금해나서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았다.

《뭔데요, 대체?》

그의 가정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가릴것이 없었다.

한태설은 부엌에 대고 소리쳐 안해를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범이라도 잡을듯 한 기세로 득의양양하여 학문을 바라보았다. 이미 처와 무슨 약조가 되여있는듯싶었다. 그런데도 옥심은 딴전을 피우는것이였다.

《아주 좋은 처녀가 하나 있는데 그 처녀가 말을 듣겠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듣지 않을거예요.》

《말을 안 듣다니? 여보, 공화국영웅을 싫다고 할 처녀가 어디 있다는거우?》

한태설이 덴겁하여 소리치자 옥심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 처녀는 인물이 곱고 혁명가의 자녀인데다가 어머니가 우리 이웃마을 고급중학교 교장이랍니다. 외동딸이고 아버지는 한다하는 혁명가였는데 적들에게 학살되였다누만요. 처녀는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다가 지금 겨울방학이고 몸이 불편해서 림시 집에 와있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학문에게는 권녕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아닐가?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라는것이 부지불식간 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것이였다.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사람의 일이 아무리 알수 없는것이라 해도 그런 우연이야 어떻게 바란단 말인가.

《싸움이 한창인 때 시시하게 처녀 보러 다닌단 말입니까? 난 안 가겠습니다.》

《하아, 이것 봐라. 싫으면 그만두. 하지만 난 공화국영웅도 타낸다는 처녀가 어떤 처년지 꼭 봐야겠소. 심심하겠는데 동무도 같이 가보고 오자우. 선보러 가자는건 아니구.》

《싫다는데두요.》

《선보러 가는건 아니래두 그래. 주인도 없는 집에 혼자 남아있겠나.》

뻔한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설레발을 치면서 안해와 함께 리학문을 차에 억지로 올려태운 태설은 마치 자기가 선보러가는듯 기분이 붕 떠있었다.

운전사는 옥심이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리키는대로 폭격을 맞지 않은 산탁의 2층짜리 고급중학교 교사앞에 자리잡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로 차를 몰아갔다.

안온한 농촌마을의 평온한 분위기에 익숙될수 없었으나 고향에 돌아온 심정이였다. 눈에 덮인 기와지붕들은 이상스러울만치 깊은 정회를 불러내는것이였다.

두번째 집대문앞에서 주인을 찾자 40줄의 키가 작은편이나 곱살하게 생긴, 검은색양복을 단정히 입고 무척 현숙해보이는 녀인이 나왔다. 중학교 교장선생이라는 처녀의 어머니였다.

옥심이가 귀속말로 사유를 설명하자 녀인은 반색을 지으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면서 일행을 안내해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영웅을 맞아들이기엔 방이 루추하지만. 우리 애는 지금 마을에 선전을 나갔는데 인차 올거예요.》

한태설과 함께 옥심의 뒤를 따라 방안에 들어가앉은 학문은 방안을 휘이 둘러보았다.

네모반듯한 단간방이였다. 우측벽에 의지하여 나무침대가 놓여있고 침대에는 정갈한 하늘색바탕에 함박꽃무늬가 돋친 침대보가 드리워져있었다. 침대곁에는 량수책상이 놓이고 책상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 책장이 있는데 처음보는 소설책들이 줄느런히 꽂혀있었다. 그 맞은편에 놓인 옷걸개가름대에는 견장없는 군복솜옷이 걸려있었다. 양복장도 옷궤도 없는것을 보아 침대밑에 트렁크 아니면 옷궤가 있을게라고 짐작해보다가 정찰병특유의 자기 추리력을 두고 씩 웃었다.

눈에 띄는 가구나 장식은 없었으나 방안은 몹시 아늑했다.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얼마간 시간이 흘러 밖에서 콩콩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니!》

처녀의 맑은 목소리!

《우리 딸입니다.》

상냥하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처녀를 보는 순간 학문은 깜짝 놀라는 동시에 가슴이 후두두 뛰는것을 느꼈다.

(아, 그 동무로구나. 권녕신!)

이런 기적같은 일치도 있던가!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일에 학문은 몸둘바를 몰랐다. 처녀가 알아보면 어쩔가 하는 걱정에 일부러 얼굴을 돌려 책장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처녀에게서는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 동무가 날 알아보지 못했구나. 하긴 전쟁전에 잠간 만난 군관을 어찌 기억하겠는가. 헌데 그가 어떻게 이곳에 와있을가?! 그런 인연이 있을줄 알았으면 곧장 만났을걸 소개자를 달고 나타났으니 처녀가 어떻게 생각할가. 시시하다고 하지 않을가? 그냥 돌아갈가? 아니, 한번 마음먹은 이상 맞받아나가야 한다!)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고패쳤다.

단둘이서 마음놓고 이야기해보라며 옥심이가 교장과 한태설을 데리고나가는 바람에 분위기는 더 어색해졌다.

《난 가겠네. 실컷 속삭이고 오라구. 우리 집으로 말이우. 차는 두고 가지.》

태설은 한눈을 끔쩍해보이고 가버렸다.

학문은 처녀의 얼굴을 한번 훔쳐보았다. 대학에서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두볼에는 여전히 송곳으로 찌른듯 한 보조개가 패여있었다. 그린듯 쌍까풀진 눈에 누가 일부러 휘여놓은듯 긴 눈섭, 얄팍한 입술은 앵두처럼 붉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수수한 얼굴이건만 볼수록 매력있는 아릿다움이 석연하였다.

초간한 시간이 흐르자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쳐졌다.

《저… 동무는 지금 김일성종합대학 몇학년입니까? 학부는 어느 학부구요?》

우물거리다가 겨우 한마디 했으나 해놓고보니 저로서도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처녀는 들릴가말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선어문학부 3학년입니다.》

그 다음엔 화제가 끊어졌다. 무슨 말로 꼬리를 이어볼가 궁리하다가 지난봄에 대학을 찾아갔을 때 만나려고 마음먹었던 그 교수의 행처가 궁금해났다.

《저… 어문학부 교원인데 민덕광교수가 있습니까?》

얼굴을 쳐든 그 처녀는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부정해버렸다.

《우리 학부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없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동무가 잘 모르는군요.》

자기가 교수의 이름을 거꾸로 불렀다는것도 모르고 학문은 고집스럽게 우기였다.

《자기 학부 교원을 내가 모르겠나요. 그런 교원은 정말 없는데요.》

처녀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역정기가 다분한것이 알렸다.

있다거니 없다거니 실없는 입씨름이 벌어졌다. 마치 찾아온 목적이 그 교수를 찾는데 있는듯 했다. 거기서 물러서자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고 막상 화제를 바꾼대도 어떻게 말머리를 돌려야 할는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리해의 여지가 있다면 조금만 서로 양보해도 쉽게 풀수 있는 오해를 그들은 끝내 풀지 못했다.

(에익! 대장부라는게 쪼물짝하게 속심을 털어놓지 못하다니…)

스스로 부아가 나서 주먹을 몇번 쥐였다폈다했다. 그러다가 문득 용기를 내여 단도직입으로 들이대고말았다.

《아아, 없다면 됐습니다. 사실 내가 동무를 찾아온것은…》

《말하지 마세요!》

아미를 숙였던 처녀가 갑자기 머리를 쳐들며 말허리를 잘랐다. 학문은 귀뿌리가 확 달아올랐다. 뜻밖의 도담한 행동에 아연했다.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난 다 알아요. 동무는 잘못 찾아왔군요.》

처녀의 입가에 알릴듯말듯한 웃음이 스쳐지나갔어도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가득 어리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처녀가 그 무거운 침묵을 깨였다.

《내 생각이 옳았어요. 난 더 말할것이 없어요.》

이쯤 되고보니 더 앉아있을 멋이 없었고 할말도 없었다.

《알겠소. 그럼 잘 있소.》

무뚝뚝한 말 한마디를 휴지처럼 내버리고 학문은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오르니 남편과 함께 떠나간줄 알았던 옥심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허겁지겁 뒤따라와서는 뒤좌석에 올라탔다.

차는 달렸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시원스레 식혀주었으나 마음은 몹시 불쾌했다. 부아가 나고 괘씸한 생각이 들어 속에서 불이 일었다.

(내가 언제 일단 마음먹은 일을 못하고 물러선적이 있었던가.)

참을수 없이 분하고 화가 솟구쳤다. 흉벽이 풀무처럼 풀떡거렸다. 속수무책으로 그냥 따라오는 옥심이가 슬미워났다. 그래서 화풀이를 하듯이 갑자기 소리쳤다.

《차를 세우라!》

벽력같은 웨침소리에 화들짝 놀란 운전사가 다급히 제동기를 밟았다. 제동판 긁히는 소리가 아츠럽게 울리며 웃몸이 앞으로 콱 쏠리였다.

학문은 픽 몸을 돌렸다.

《옥심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뭣때메 날 따라다닙니까? 소개를 한다면서 편들어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처녀를 데려오지도 못하면서… 나야 할수없이 쫓겨왔지만 아주머니야 어떻게 하든지 그 처녈 데리고왔어야지요. 당장 돌아가서 이 차에 태워가지고 오십시오!》

옥심은 주먹으로 입을 가리웠다. 남의 가정주부한테까지 자기 대원에게 명령하듯 하는데는 기가 막혔지만 비맞은 수닭꼴을 해가지고서도 우들거리는 총각군관의 모습에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처녀앞에서는 변변히 말도 못해보고 쫓겨나와선 애꿎은 사람과 해보는것이다.

볼이 부은 학문은 차를 돌려세우라고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운전사는 어이없는 웃음을 남기고 차를 돌려세워 부릉부릉 달려갔다.

한태설이 코노래를 부르며 집에서 기다리는것도 모르고 학문은 미산동어구에서 차를 기다렸다. 실히 한시간이 지나서야 먼발치에 찌프차가 달려오는게 보이더니 잠간사이에 학문의 앞에 와서 멎었다. 차안을 얼른 살펴보는 순간 껑충 뛰여오르며 환성을 지를번 했다. 차의 뒤좌석에 옥심과 함께 그 처녀가 앉아있었다. 견장없는 군대솜옷을 입은 그는 더없이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팔뚝만큼한 잉어를 낚아낸 낚시군도 이 순간 그처럼은 기쁘지 못할것이였다.

차소리를 듣고 한태설이 달려나왔다.

처녀는 울상이 되여 량미간을 찌프렸다. 가시돋은 눈길이 옥심에게 돌아갔다.

《아주머니, 날 속였군요.》

분을 삭이지 못해하는 처녀의 가슴이 눈에 알릴만큼 크게 오르내렸다. 바빠난것은 옥심이였다.

《녕신이, 사실…》

《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정말 좋은 책을 줄게 있다니까.》

그는 억지를 써가며 처녀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옥심은 책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녕신에게 집에 좋은 책이 있다고 둘러쳐서 데려온것이였다.

한태설도 그의 한손을 잡고 끈끈히 말을 걸었다.

《녕신동무, 안됐습니다. 동무는 어문학을 전공한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조예가 깊은지 나와 좀 이야기를 나누고싶지 않습니까? 난 글작품은 쓰지 못해도 사회주의레알리즘에 대해선 약간 들어 알지우. 요즘 문필가들이 글을 쓰는데 대체로 어떤 주제를 선택하고있는지우?》

《나는 짐작하고있습니다. 상좌동지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필연코 주인공의 전형을 어디서 찾는가고 물으시겠지요? 대답은 하나, 싸우는 영웅조선의 참모습! 대담무쌍하고 용감한 영웅전사들을 주인공의 원형으로 내세워야 한다는것도… 그러나 나는 참다운 영웅, 제자랑할줄 모르는 영웅만을 내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울 결심을 가지고있답니다.》

웃는 얼굴이였으나 말투는 야무지고 랭랭했다.

《그―래요?! 헌데 공화국영웅인 우리 리학문동무는 그런 주인공감이 못되우?》

《그건 앞으로 두고봐야겠어요. 하지만 분명한것은 주인공의 선택과 그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필자의 권리에 속한다는겁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참된 영웅의 성격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참 유감이예요.》

어색한 순간이 흘렀다. 팽팽한 공기가 흘렀다. 숨이 다 가빠나서 학문은 목단추를 터쳐놓았다.

역시 말수단있는 태설이 불편한 좌석의 화제를 뭉그려놓았다.

《거참, 나도 유감이군. 좋소. 허지만 이렇게 만난바에는 식사나 한끼 같이 합시다. 우린 래일 떠나야 합니다. 반대없겠지우?》

꽤 풍성한 식사였지만 맛없이 들었다.

학문은 저녁이 이슥해서 처녀를 집에 태워다주게 되였다. 혼자서 걸어가겠다는 처녀를 한태설이 강짜를 부려서 리학문과 나란히 앉혀놓았다.

한마디 대화도 없이 처녀네 집앞에 도착해서야 학문은 말을 건넸다.

《잘 있소, 처녀동무. 헌데 동문 날 알게 된걸 후회하지 않소?》

《글쎄요. 글쓰는 사람의 체험내용은 다양할수록 좋은 법이랍니다.》

비양기가 다분한 대답이였다. 학문은 혀를 털었다. 가시때문에 꺾을수 없는 꽃앞에서처럼 공연히 주먹만 쥐였다폈다하다가 내처 하고싶은 말을 쏟아버렸다.

《전승의 날 꼭 다시 오겠으니… 어쨌든 잘 있으시오. 다시 만납시다.》

그다음에는 거수경례를 하고 픽 돌아섰다. 돌아서서 차쪽으로 몇걸음 옮기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웃주머니의 수첩을 꺼내들어 만년필로 몇글자 내갈기고는 한장을 북 찢어들고 돌아섰다.

《참, 편질 해주시오. 나의 군사우편함주소는 이거요.》

처녀가 바라건말건 덜퉁하게 말큰한 손을 후려잡고 그것을 꾹 쥐여주었다.

입을 비쭉거리면서도 처녀는 종이장만은 꼭 틀어쥐는것이였다. 쓴입을 다시며 떠나는 총각군관을 무척 동정에 겨운 눈길로 바래우면서도 끝내 잘 가라는 인사말 한마디 없었다.

차에 올라앉아 차문을 화가 나서 후려닫았으나 마음은 알찌근했다. 학문의 마음이 더 동한것은 처녀의 아련한 모습이나 성격보다도 옥심을 통해서 알게 된 권녕신의 가정사였다. 아버지는 해방직후부터 남조선에서 지하혁명사업을 하다가 피살되였고 어머니도 유능한 지하공작원이였다고 했었다. 권녕신이라는 이름도 미국놈들에게 강점된 남녘땅이 편안하게 될 날이 꼭 올것이라는 확신을 담아 아버지가 지은것이라고 했다.

(편안할 녕자에 편안할 신이라?!)

남녘땅에 고향을 두고 오매불망 못 잊는 자신과 처녀사이에 너무나도 공통성이 많다는것을 생각하며 그는 시창앞을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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