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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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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14 16:05 조회1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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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영 웅

3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가을에 들어와 처음으로 보는 된서리였다. 언 풀잎이 사각사각 밟히는 소리는 미구에 닥쳐올 엄혹한 겨울앞에서 신음하는 자연의 비명처럼 들렸다.

신새벽이였다. 페부를 찌를듯 쩡하게 차거운 대기가 몸을 으쓸하게 만들었다. 간밤을 숲속에서 보낸 정찰병들은 으스스 떨리는 몸으로 어느 한 마을근방에 이르렀다. 원산과 양덕, 고원으로 가는 길이 갈라져나가는 삼각교차점에 자리잡고있대서 삼거리라고 불리우는 마을이였다.

마을쪽에서 두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선행정찰로 먼저 떠나보냈던 정영모네 정찰조였다.

《부과장동지, 마을엔 적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헌데 이상한것은 적이든 아군이든 방금까지도 있었던것 같은데 잠잠한겁니다. 어느 한 집에 들어가보니까 전화선이 그냥 늘여져있고 아궁이에 불도 그냥 타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참, 모를 일입니다.》

정영모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감시병도 없었소?》

《없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하나도 못 봤습니다.》

《거참 이상한 일이군.》

도무지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적들의 함정이 아닐가? 큰 고기를 낚자고 작은 고기를 놓아보내는 음모가 아닐가?!

쌍안경으로 주변의 산들을 둘러보았다.

특이한 마을이였다. 소꿉놀이하는 아이들이 일부러 빚어놓은것처럼 홀로 우뚝 솟은 산의 변두리를 따라 초가집들이 띠염띠염 널려앉았는데 마을의 변두리에는 마을복판의 산보다 훨씬 더 높은 산들이 또아리처럼 우중충 둘러서있었다.

어디를 살펴보아도 이상한 기미는 느낄수 없었다.

종잡지 못할 정황을 한두번만 겪어본것이 아니여도 이때처럼 결심을 내리기 힘든적은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불붙는 모험심과 리성이 씨름질했다.

(헌병대로 둔갑했는데 주저할것이 무엇이랴. 속시원히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학문은 자신의 결심이 무모한 모험심이 아니라 대담성이라는것을 확신했다. 대담해야 한다.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드는 식의 모험심은 필요없는 객기에 불과한것이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타산한 용기는 대담성인것이다.

정찰병들은 경계심을 한껏 높이며 마을로 들어갔다. 정영모네가 들려봤다는 집은 마을 중간쯤에 있었다. 들어가보니 정말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정영모의 말대로 창문으로 전화선이 늘여졌는데 방웃목에 검회색나는 미국제전화기통까지 뎅그렇게 놓여있었다.

(십중팔구 적들이구나.)

부엌 부뚜막에 걸려있는 소여물가마만큼이나 큰 가마에서 더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고있었다. 나무로 된 뚜껑을 열어보니 다 익은 흰쌀밥이 그득 차있었다.

(방금전까지 이 집에 있던 적들이 어디로 갔을가? 다 된 밥은 왜 그냥 팽개치고?!)

《동무들! 여기엔 분명 무슨 쪼간이 있소. 마을을 수색해봐야겠소.》

조별로 흩어져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창항이네가 괴뢰군사병 두놈을 붙잡아왔다. 뒤산에서 어슬렁거리며 내려오기에 끌고왔는데 화식병들이였다.

《화식병이라는 녀석들이 밥가마앞을 비워두고 어딜 개싸다니듯 해? 그러다가 나쁜 놈이 독약이라도 넌떡 치면 어쩔테야? 엉? 이자식들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지 안되겠군.》

헌병장교가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엄포를 놓자 사병놈들은 왜가리처럼 가느다란 목을 뽑으며 아부재기를 쳤다.

《아이고 소령님, 우린 잘못이 없습니다요. 중대장님이 비상을 거는 바람에 소대장님이 몽땅 산에 올라가라고 해서

《산에? 너흰 어느 부대야?》

적들은 태백산줄기를 타고 후퇴하는 아군의 길을 가로막기 위해 고원에 배치했던 병력을 갑자기 이곳으로 기동시켰다. 병력은 한개의 보병중대와 중화력중대였는데 중화력중대는 마을 한복판에 우뚝 솟은 산고지에 배치되였고 보병놈들은 다른 산들에 매복했다고 했다.

《중대장은 어디 있어?》

《외톨산중턱에 〈치안대〉대장네 집이 있는데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정찰대가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어도 결국 적의 소굴에 들어와있는셈이였다. 이런 때일수록 맞받아쳐야 했다. 실정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보고 놈들을 타격해야 할것이다.

《련락병! 가자, 중대장을 만나보고 오겠다.》

그는 복남이와 안창항이를 데리고 사병놈들이 외톨산이라고 부른다는 산고지로 올라갔다. 길은 부디 묻지 않아도 되였다. 전화선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중대부에 가닿게 되는것이다.

산중턱을 오르며 지형을 살펴보니 과연 놈들은 묘한 곳에 진을 치고있었다. 이 산고지에 틀고앉으면 원산과 고원, 양덕쪽으로 가는 도로를 손금보듯이 내려다보면서 포와 기관총사격으로 통제할수 있는것이다. 게다가 린근의 산들에 전개된 보병놈들이 발악하면 퇴로마저 막히울수 있다. 교활한 적들이 함정을 파놓고 후퇴하는 아군을 노리는것이였다.

(고현놈들!)

학문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놈들을 일망타진해야 했다. 주력부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다가는 늦는다. 그때는 이미 놈들의 함정에 빠져든것으로 될것이다.

그때였다.

《땅!》하는 총소리가 나더니 총알이 피융― 소리를 지르며 귀전을 스쳐지나갔다.

《뭐야?》

그리 멀지도 않은 떡갈나무밑에서 보초서던 사병놈이 무작정 총을 쏜것이였다.

《저 새끼가?! 임마! 헌병도 몰라보는가? 왜 군호도 묻지 않고 사격하는거야?》

안창항이가 노기등등하여 산탁을 달려올라갔다. 그제서야 헌병복장을 알아본 보초놈은 눈이 휘둥그래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리학문이 떡갈나무밑에 이르렀을 때는 안창항의 된주먹과 발길질에 사병놈의 얼혼이 빠진 뒤였다. 너무나 밸통이 난김에 그놈을 엎어놓고 실컷 짓밟아주고도 안창항은 아직 직성이 풀리지 않는지 씨근거렸다.

《이 미시리같은 자식! 죽지 못해 지랄이 난게다. 어따 대구 감히 총질을 해!》

《아아, 그만하라.》 코피가 터진 보초놈에게 손수건을 던져주며 학문이 틀지게 말렸다. 《헌데 보초병이라는게 군호도 모르고 근무를 서나? 어디 군호가 뭔지 알기나 하는지 볼가. 군호가 뭐야?》

겁에 질린 그놈은 서둘러 바른자세를 취하며 떠듬거렸다.

《모르진 않는데… 너무 무서운김에…》

《군호가 뭔가 묻지 않아!》

《옛, 멸공―필승입니다.》

《흠, 알긴 아는군. 보초를 똑바로 서! 보초병도 문제이지만 장교들이 더 문제야. 내 너희 중대장 혼쌀내줄테다. 등신같은것들! 중대장이 어디 있어?》

《저, 중대장님은 이자 방금 저―어쪽 3소대로 가구 소대장님밖에 없습니다.》

《소대장이면 소대장, 몽땅 군기검열이다!》

군호를 알아낸 덕분에 그다음의 보초소는 무사통과였다.

중대부가 들어있는 집은 《치안대》 대장을 한다는 놈팽이가 전쟁전에 못된짓을 하면서 숨어살던 곳이라는데 제법 한살림 펼수 있을만큼 방들이 널직널직했다. 지붕에는 기와까지 얹었고 벽에는 참지를 발랐다.

학문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소위계급장을 단 장교 하나가 창문앞에 놓인 침대에 누워서 자다가 전기에 감전된 놈처럼 후닥닥 뛰쳐일어났다.

《네가 소대장이야?》

헌병장교가 불시에 들이닥치며 호통치니 잠결에 봉변을 당하게 된 그놈은 얼떠름해서 빤히 마주 바라보았다. 학문은 정신차릴새없이 다몰아댔다.

《왜 군기를 위반하는가? 장교란것들이 사병놈들이 부락에 내려와 로략질해도 모르지 않나, 보초라는건 등신처럼 군호도 사용할줄 모르지. 소대장, 중대장이 시시펀펀해있으면서 도대체 밥처먹고 뭘하고있어? 엉? 당장 중대를 부락에 집합시키라! 버릇을 가르쳐줘야겠다!》

그제서야 일이 편안치 않겠다는것을 직감한 소대장놈은 전화기를 손더듬해 찾았다.

《저― 중대장님한테 물어봐야겠습니다.》

안창항이가 불이 번쩍 나게 놈의 뺨을 후려갈겼다.

《건방진 자식! 헌병의 말이면 다지 물어보구말구 할게 뭐 있어! 졸경을 쳐봐야 알겠어?》

《그럼?》

반신반의하는 그놈의 속을 넘겨짚은 학문이 소리쳤다.

《너희 소대만이라도 먼저 집합시키라. 중대장한텐 직접 따로 명령을 주겠다.》

산에서 철수해서 부락에 모이라는 소대장의 지시를 받은 사병놈들이 영문을 알수 없어 쑤군거리면서 어정어정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 소대의 놈들도 모두 마을로 내리몰고서야 정찰병들은 산을 내렸다. 중대장놈은 어디 갔는지 종시 찾을수가 없었다. 행처를 아는 놈도 없었다.

리학문은 김윤도와 정영모네 조를 앞산에 산개된 보병놈들을 견제하도록 각각 떠나보내고 차용대에게는 사단과의 무선을 빨리 결속할 임무를 주었다. 중화력중대를 무맥하게 만들어버린 조건에서 보병놈들만 견제하면 사단의 전진을 얼마든지 안전하게 보장할수 있었다.

라동수가 놈들이 다 집합했다고 보고해서야 그는 소대별로 늘어선 놈들앞에 뒤짐지고 나섰다. 놈들을 한참이나 둘러보던 끝에 엑― 가래침을 톺아내여 뱉아버리고 오만상을 찌프렸다.

《에― 내 이곳 중대에까지 오면서 숱한 부대들을 돌아봤지만 군기가 이렇게두 문란한 부대는 보느니 처음이요, 듣느니 처음이다. 미군의 특별한 신임에 의하야 중화력무기까지 가지고 리승만박사의 하해같은 은총에 의하야 반공일선에 서게 된 중대가 이게 웬 꼴이냐? 중대장으로부터 일등병까지 다 같구같아. 보란 말야, 중대장이란건 왼땅보러다닐내기 꼬랑지도 볼수 없지, 보초병이란건 헌병도 몰라보구 군호도 묻지 않구 마구 총질이지, 사병들은 사병들대루 바람난 수개들처럼 제멋대로 쏘다니면서 못하는 짓거리가 없지, 취사장은 비워놓구 나쁜 놈들이 작란질하는것두 모르지. 용서할수가 없다. 우리 헌병사령부는 이 중대의 군기를 바로세우기 위하야 당분간 군무집행에서 리탈시켜 특별검열을 실시하기로 하였음을 알린다.》

일장훈시를 하다가 라동수를 돌아보며 거들지게 물었다.

《여기 어디 큰 방이 없나?》

그동안 마을을 돌아보며 실태를 알아본 동수는 제꺽 말뜻을 알아채고 대답했다.

《민주선전실자리가 그중 널직한데 빨갱이랍시고 바지저고리들만 한가득 가둬놓았습니다.》

학문은 버럭 어성을 높였다.

《보란 말야. 인민군대와 싸울 생각은 않구 그런 바지저고리들이나 잡아놔선 뭘해? 그것들은 당장 내쫓구 이것들을 채워넣어. 한명한명 검열해봐야겠어.》

《알았습니다. 곧 집행하겠습니다.》

라동수가 절도있게 경례하고 달려갔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정찰병들을 아연한 눈길로 바라보던 납작모자를 쓴 놈이 학문의 앞으로 엎어질듯 뛰여왔다.

《장, 장교님, 이게 웬일이웨까. 그놈들은 악질빨갱이놈들이올시다. 리당위원장놈도 있구 면인민위원장놈두 있습니다. 그놈들을 내놓으면 안됩니다.》

학문은 시끄럽다는듯 한손을 홱 내저었다. 그러나 납작모자는 게거품을 물고 달라붙었다.

《장교님,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놈들은 틀림없는 악질빨갱이놈들이래두요. 놓아줘선 안됩니다요.》

《뻥까우리사민놈이 군대일에 웬 참견이야? 넌 도대체 어떤 놈이야?》

학문은 사납게 눈을 흘겼다.

《난, 난 이곳 〈치안대〉대장이올시다.》

《음, 그렇다? 좋다! 그럼 〈치안대〉대장과 함께 가서 당위원장이나 인민위원장과 같은 놈들은 따로 골라내라!》

《알았습니다.》

명령을 받은 동호와 덕천이가 제꺽 경례한 다음 《치안대》대장놈을 앞세우고 사라졌다. 악질반동놈을 조용히 처리해버리라는 말뜻을 그들이 못 알아들을리 없었다.

정찰병들은 갇혀있던 애국자들을 석방하여 피신시키고 놈들을 대신 쓸어넣었다.

그러나 일은 순조롭게만 되지 않았다. 보병놈들이 어떻게 낌새를 알아채고 공격해왔던것이다.

후에 알게 된 일이나 그날이 보병중대장놈의 생일이여서 아침부터 축하연이 벌어졌는데 초대받고갔던 중화력중대장놈이 돌아오다가 벌어진 사연을 알아차리고 소동을 일구었던것이였다.

놈들은 무작정 총을 쏘아대며 외톨산으로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산우에는 중화력무기들이 그대로 있었기때문에 놈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모든것이 허사로 되여버릴수 있었다.

김윤도조와 정영모조의 성원들이 총격전을 벌려 놈들을 막았다.

정찰병들은 모두 전투에 진입했다.

…벌써 두번째로 되는 공격을 물리쳤다. 전쟁이 시작된 첫날부터 지금까지 허찬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들과의 직접적인 전투를 무수히 벌려왔어도 오늘처럼 가렬한 전투를 해보기는 처음이였다. 력량상 대비도 되지 않게 많은 적들과 맞서 오래동안 방어전을 벌리려니 너무도 힘에 부쳤다.

그런데다가 예상외의 일이 또 벌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고지들의 후면에 있던 적들이 산을 넘어와 공격해오기 시작했던것이다. 한개 대대는 잘될것 같았다. 력량대비는 상상도 못할만큼 엄청났다.

정찰병들은 적들의 포진지에로 달려가 포신을 돌려놓고 포격을 들이대였다. 포탄은 개미떼처럼 널린 적들속에서 연방 터졌다. 무리로 쓰러지면서도 놈들은 악착스럽게 고지턱밑까지 달라붙었다.

《포만으로는 안되겠소. 기관총!》

중기관총과 경기관총들이 울부짖었다.

정황을 보고받은 사단에서는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견제할것을 명령했다. 물러설 곳도 없었다. 치렬한 전투는 온종일 계속되였다. 전투가 얼마나 가렬했던지 적중화력중대가 가지고있던 기관총탄알을 거의다 쏘아버렸다. 부대가 도착하려면 아직도 두시간은 실히 걸려야 하였다.

《탄알을 아끼라! 부대가 올 때까지 견제하자!》

몇차례나 공격을 물리쳤는지 이제는 정확히 기억할수 없었다.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날아드는 총탄들, 휘뿌려지는 흙부스레기들, 매캐한 초연에 숨이 컥 막힌다.

《부과장동지! 동호동무가…》

작렬하는 수류탄의 폭음이 말허리를 툭 끊어삼켰다. 머리를 들고 그쪽을 살피려는 찰나 피융― 적의 기관총탄이 허리를 굽히게 했다. 교통호에 쓰러진 김동호를 안아일으키는 덕천이의 모습이 얼핏 눈에 띄였다. 치렬한 접근전, 육박전에서 벌써 네명의 정찰병들이 쓰러졌다. 안창항은 빈총을 던져버리고 맨손으로 스무나문이나 되는 적병들을 때려눕히고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정찰병들의 앞장에서 비호처럼 싸우던 김윤도, 정영모 두 조장도 전사했다.

저 멀리 남해안까지 함께 나갔던 전우들, 수백수천리의 싸움길을 걸어오면서도 잃지 않았던 범같은 그들을 이 산고지에서 잃다니… 억울했다. 분했다.

비장한 생각이 심신을 휩쌌다.

(우리모두가 목숨을 바칠수도 있다. 그러나 쓰러질지언정 부대의 진군로를 지켜내야 한다.)

이제는 자동총탄알도 떨어졌고 수류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신관을 꽂은 포탄을 내리굴렸다. 그것마저 떨어지면 최후의 육박전을 할수밖에 없었다.

드디여 때가 왔다.

《육박전 준―비―잇!》

적들이 다가들 때를 기다려 학문은 구령쳤다. 혼신의 힘을 다 모아서야 그 소리를 톺아낼수 있었다.

번들거리는 철갑모를 쓴 적병의 찡그린 상통이 다가왔다. 전호턱에서 불쑥 몸을 솟군 그는 산아래쪽으로 쏠리는 몸의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발을 내여짚었다. 손에 들었던 빈 카빈총을 내던지면서 땅바닥에 뒹구는 장총을 집어들었다. 육박전에는 장총이상 없다. 총에 탄환이 재워져있는것을 의식한것은 잠시후였다. 먼저 다가드는 놈의 배허벅을 쿡 찔러 머리뒤로 들어던졌다. 《어윽―》하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그놈은 허궁 날아넘어갔다.

그 다음! 그 다음놈에게는 총탄을 안겼다. 꺼꺼부정한 그놈은 기다리기나 했던듯 총을 내던지면서 허궁 뒤로 나가떨어졌다.

《덤벼라! 얏!》

《만세―에!》

눈에서 불이 일었다. 정찰병들의 육탄공격에 혼맹이가 훌 날아난 적병들은 와야― 산아래로 사태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더 추격할 필요는 없었다.

《추격 그만! 철수!》

정찰병들은 재빨리 되돌아섰다. 출발선으로 되짚어돌아오면서 놈들의 무기를 주섬주섬 걷어모았다.

《됐어, 이거면 한바탕 또 해볼수 있지.》

전호턱에 앉아 쫓겨가는 놈들을 흡족해서 바라보던 학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교통호에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룡조의 다급한 웨침소리를 들었다.

《부과장동지! 위험합니다!》

동시에 총소리가 울렸다.

탕! 탕!

다음순간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지는 룡조와 스무나문걸음앞에 엎드려 권총을 겨눠든채 머리를 떨구는 적장교놈을 보았다.

너부러졌던 놈이 권총으로 겨누는것을 본 룡조가 몸을 날려 학문을 밀쳐버리는 찰나 장교놈이 발사한 총알이 그의 가슴을 꿰뚫은것이였다. 룡조의 가슴은 피가 랑자하고 얼굴에는 벌써 피기가 없었다.

《룡조! 룡조! 정신차리라!》

치명상이였다. 그래도 룡조는 억지로 웃음을 떠올렸다.

《무사했군요, 부과장동지.》

《죽어선 안돼!》

구급처치를 했지만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꺼져갔다. 그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입술을 감빨고나서 겨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했지요. 난 행운을 타고났다구. 부과장동지, 고맙습니더. 한데… 미안한 부탁을… 해야겠군요. 전승의 날에 날 대신해서… 우리 집에 가주십시오. 함흥 동흥산밑에 있는 우리 집에 가면… 이름도 못 지어준 아들이… 있습니더. 집주소…는 내 주머니에…》

말도 채 끝맺지 못했는데 머리가 떨어졌다. 남진의 길에서 만나 도무지 석달남짓한 기간 운명을 함께 한 전우였다. 그런데 이렇게 헤여져야 한다니… 분했다. 원통했다.

《안돼. 죽어서는 절대 안돼! 룡조야!―》

그때 신호나팔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전투에 진입하는 아군주력부대의 신호나팔소리였다.

《만세!―》

《만세에!―》

우렁찬 함성이 산발을 뒤흔들자 적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저들이 고른 지형이 아주 신통한것이여서 도망칠 구멍이 없었다. 저들이 만든 함정에 저들이 빠진셈이였다.

고지들에 공화국기발이 휘날렸다.

전투가 끝난 후 나란히 누워있는 정찰병들의 시신들앞에 전우들이 모자를 벗고 늘어섰다.

김동호, 김룡조, 정영모, 김윤도, 안창항… 학문은 부근부근한 흙을 손으로 긁어모아 그들의 가슴우에 얹고 또 얹었다.

덕천이가 흐느끼며 동호의 배낭을 찾아안고 일어섰다.

《최고사령관동지께 드리겠다던 이 능이버섯은 어떡하자구 이렇게… 흐흑…》

학문은 배낭속에서 무명천으로 싸고 삼베끈으로 칭칭 동여맨 꾸레미를 꺼내들었다. 굶고 허기지면서도 김동호가 그리도 소중히 간수해오던 능이버섯꾸레미였다.

《동무들! 전사한 전우들을 부디 잊지 맙시다. 그들의 몫까지 합쳐 원쑤들을 더욱 용감하게, 무자비하게 족칩시다. 이들은 비록 쓰러졌어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최고사령관동지의 고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싸웠기에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며 승리한 그날도 우리와 함께 맞이할것입니다.》

모두들 묵묵히 돌들을 모아왔다. 림진강기슭에서 그랬던것처럼 전우들의 무덤앞에 오각별표식을 해놓았다. 오각별의 가운데 놓인 큰 돌에 귀중한 전우들의 이름들을 새겼다.

한사람, 한사람 이름들을 새겨가던 학문의 손길이 김룡조의 이름을 외우며 멎었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아들을 둔 그, 그러면서도 조국을 위한 싸움에 헌헌히 한목숨 바친 그였다. 그가 정찰병들의 대오에서 싸운것은 불과 석달남짓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공훈을 세웠던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위험한 일이 생겨도 늘 먼저 맡아나서던 그였다. 언제인가 인민군대가 된것이 특출한 행운이라던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려오는듯싶었다.

(그래, 김일성장군님의 정찰병인 까닭에 우린 죽어도 영생하는 사람들이야. 룡조야, 너는 죽지 않았어! 죽을수 없단 말이야!)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것은 비분과 눈물을 딛고 일어나 힘과 용기를 가다듬는 사나이의 통절한 부르짖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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