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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행운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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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12 18:06 조회1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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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영 웅

1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이천땅이다. 김화와 평강에서 련속 녹아난 적들은 후퇴하는 인민군부대들을 어떻게 하나 포위해보려고 악에 받쳐 날뛰였다. 제임스와 배달환의 명령에 따라 마을마다에 괴뢰군놈들이 쓸어들고 《치안대》놈들도 각처에서 준동했다. 이천땅에도 미군과 함께 괴뢰군부대들이 집결되여 태백산줄기를 타고 북으로 들어가는 인민군부대들을 요격하려고 각처에 함정을 파고있었다. 사단에서는 이천을 에돌아 문암리쪽으로 빠져나갈 작전을 세우고 적정확인을 위해 정찰대를 파견하였다.

지금 정찰대는 문암리방향으로의 전진로를 개척하려고 행군을 다그치고있었다.

해가 지는무렵이였다. 마가을에 접어든 때여서 이런 저녁이면 힘겨운 행군길에 돋쳤던 땀발이 식어들면서 뒤등이 써늘해진다.

상두리를 지나 실히 한시간쯤 더 가니 양지쪽산기슭에 자리잡은 서너채의 동기와집이 나졌다. 지붕우에 삐죽 솟아오른 굴뚝들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느물느물 피여오르는데 산기슭 가래나무아래에서 돌우에 남비를 걸어놓고 싸리불을 피워가며 밥을 짓고있던 여러명의 피난민들이 갑자기 나타난 헌병들을 두려움에 질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엉거주춤하여 안절부절하던 그들은 헌병들이 자기들의 곁을 거침없이 지나치자 안도의 숨을 쉬는듯 했다.

정찰병들이 첫번째 집옆으로 뻗어오른 비탈길에 들어설 때였다.

그 집마당에서 장작을 패고있던 사나이가 도끼를 모태우에 놓아둔채로 서둘러 달려나왔다. 뻘건 천을 대고 누빈 털조끼를 걸치고 퉁투무레한 얼굴에 살가운 미소를 지어낸 그 작자는 마흔다섯쯤 되여보였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마가 훌렁 벗어졌다. 정찰병들을 유심히 훑어보던 사나이는 굽석굽석 인사를 하며 괜히 두손을 석석 비볐다.

(괴뢰군 헌병을 반갑게 마중하는 이자는 어떤자일가?! 우리를 알아본것일가 아니면 정말 적들의 편일가?!)

《국군》행세를 그냥 하면서 두고보아야 했다.

《임마! 문암리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리학문이 호통치자 사나이는 집앞으로 뻗어오른 고개길을 가리켰다.

《예, 예, 요길로 쭉 가면 곡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나이는 제잡담으로 앞장에 서서 소로길로 접어드는것이였다.

괴이쩍은 거동이였다.

(이자가 왜 우릴 부디 곡산쪽으로 끌고가려는것일가?!)

의심이 앞선 학문은 버럭 화를 내였다.

《이 자식이 머리가 돌지 않았어? 곡산은 무슨 곡산이야, 문암리로 가자는데.》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며 헌병증명서를 내보였다. 증명서를 두손으로 받아들고 들여다본 그자는 흠칠 놀라더니만 태도를 일변하는것이였다.

《예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내가 문암리로 안내해주겠습니다.》

《?!》

정찰병들을 자신만만하게 둘러보던 그자는 털조끼안섶에서 증명서를 꺼내보였다. 리학문은 깜짝 놀랐다. 증명서에는 《국군》 2군단 3사단 특무과 요원이라는것과 대위라는것이 밝혀져있었다.

《좋다, 헌데 너는 장교라는게 왜 이런 구접스러운 노릇을 하고있어?》

《같은 장교로서 존엄있게 대해주기 바랍니다. 소령님, 비록 나는 대위이지만 사단장에게만 종속되는 특수인물입니다.》

《그래? 알겠소. 그럼 존대를 해주지.》

리학문이 아량을 보이자 번대머리는 대뜸 수다스러웠다. 학문의 앞에서 걸어가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횡설수설하다가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본색이 드러난것이다.

《소령님, 난 처음에 당신들이 〈국군〉헌병으로 가장한 인민군대인줄 알았습니다. 내 눈이 원래 올빼미눈 한가진데 깜틀 실수할번 했군요. 내가 여기서 이 노릇을 하는건 우리 형님이 바로 여기 〈치안대〉대장이기때문이지요. 난 아까 그 집에 잠복하고있다가 후퇴해오는 인민군대를 곡산쪽고개길로 안내하게 돼있습니다. 인민군대이면 곡산쪽으루 끌고가고 〈국군〉이면 문암리로 안내해주게 되여있답니다. 그러면 고개길목에 숨어있던 우리 형님네 〈치안대〉들이 제꺽 달라붙어 요정내버리게 돼있구요. 나와 우리 형님은 배달환사단장님한테서 특별임무를 받았습니다. 인민군대를 함정에 유인해다가 소멸하라는건데 제임스미군고문관이 제안한겁니다. 내 덕에 우리 형님 몸값이 대단히 올랐지요. 산골 〈치안대〉대장이지만 〈국군〉사단장이나 미군고문관도 무시하지 않게쯤 되였으니깐요. 하마트면 소령님네가 애매하게 걸려들번 했습니다, 원.》

학문은 당장 놈의 모가지를 비틀고싶었으나 꾹 눌러참았다. 이놈의 진속을 깡그리 뽑아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가. 그럼 대위네 형님은 지금두 길목을 지키고있겠구만?》

《웬걸요. 내가 저―어기 첫번째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문암리에서 곧추 바라뵈는데 그때 출동해도 늦지 않지요. 따로 신호할것도 없답니다. 내가 입은 이 뻘건 털조끼가 신호인걸요. 지금 우리 형님네는 마을에 그냥 있을겁니다, 예.》

(음, 교활한 놈들! 이놈들을 그저…)

치밀어오르는 증오심을 겨우 누르며 또다시 넌지시 물었다.

《문암리〈치안대〉는 얼마나 되오?》

《예, 한 오십명정도 되는데 내가 이번에 와보니까 글쎄 틀스럽게두 공화국내무원들이 새로 지은 분주소자리에다 본부를 두었더군요. 우리 형님은 전쟁전에 화투를 좀 놀았다구 내무원들한테 붙잡혀가서 욕을 봤다는데 이젠 거기가 형님의 본부입디다. 제길할것! 공산당세상은 뭘 그리 못하게 하는게 많은지… 나두 아버지가 토지개혁때 땅을 뺏기는걸 보구 제꺽 월남했기에 망정이지 형님과 같이 닥달질을 받을번 했지요. 소령님, 이젠 다 왔습니다. 저기, 저기가 문암리입니다.》

《알겠소. 그런데 배달환이란 당신네 사단장이름이요?》

《예. 아버지가 대단한 갑부라는데 제임스고문관이 꽤나 신임하는분이지요.》

《혹시 그 사람의 고향이 경상남도에 있는 어느 섬이 아닙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한껏 긴장되였던 학문은 마음의 탕개가 풀리였다.

(세상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아마 그 배달환이 아닐게야. 우연이라고 해도 그렇게 신통히 맞다들수가 있겠는가.)

동구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물푸레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들을 뻗치고 서있는 산기슭을 지날 때 학문이 눈짓신호를 하자 안창항과 김동호가 대위놈의 멱살을 움켜쥐고 숲속으로 끌고들어갔다.

《아, 아니, 왜 그래? 아군끼리?!》

격술에 솜씨있는 안창항의 한주먹에 그놈의 숨통은 단박 끊어져버렸다. 그놈을 처리하지 않고 마을에 들어가면 차후에 어떤 사달이 생길지 모를 일이였다.

정찰대는 마을길로 버젓이 행진해들어갔다.

마을앞에는 솔문이 세워져있는데 솔가지우에는 《국군대환영》이라고 먹으로 내리쓴 흰 광목천이 산마루에서 내리부는 바람결에 너풀거렸다.

분주소자리라는 《치안대》본부앞에 이르자 《치안대》완장을 두른 놈들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나왔다.

《오실내기 수고가 많았습니다.》

《나리님들, 기다렸습니다.》

제법 한줄로 늘어서서 경례를 하는 떨거지들을 흘겨보던 리학문은 생트집을 걸었다.

《야, 이놈들아! 〈국군〉이 이곳을 통과한지가 언젠데 인제야 저따위 구호쪽을 내걸어? 엉? 지금까지 밥처먹고 뭘했어? 느렁뱅이자식들! 〈치안대〉대장이 뉘기야?》

뚱뚱보가 어중이떠중이들속에서 튀여나오며 깍듯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유들유들한 상판에는 개기름이 흘렀다.

《제가 〈치안대〉대장이올시다. 벌써 환영했어야 하는걸… 잘못했으니 용서하십시오.》

《덜된 자식같으니, 잘못은 잘못이구 빨갱이옷이 그리도 좋은가? 당장 벗지 못하겠어? 이 죽일 놈의 새끼야! 네놈의 모가지를 당장 뎅겅해버리고말테다!》

분이 한껏 치밀어오른 리학문은 《치안대》대장의 정갱이를 있는 힘껏 구두발로 걷어찼다.

《아야야! 나리님, 잘못했습니다.》 놈은 정갱이를 싸쥐고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계속 씨벌였다. 《그래두 난 이 옷을 입고 후퇴해오는 인민군대렬속에 끼여들어 비밀을 알아냈구 또 인민군대를 끌고와서 미군에 바친 공로루 상금도 많이 탔습니다요. 배사단장님과 제임스고문관님의 특수임무를 수행하자니 어쩔수 없었습니다. 이 옷두 전리품이나 같습니다요.》

《개수작 말아. 그걸 누가 믿어. 전탕 거짓말만 하는 놈의 종자들아!》

증오심의 도수가 넘은 학문은 그놈을 따라가며 마구 짓밟아댔다. 너무도 급해맞은 그놈은 아부재기를 치며 네발걸음으로 《치안대》본부안에 달려들어가더니 인츰 두툼한 증거문서묶음을 들고나왔다. 애국자들과 인민군대를 학살한 내용을 증명하는 확인서들이였다. 괴뢰군장교의 수표도 있고 학살된 애국자에게서 빼앗은 표창장 같은것도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고싶었으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 종이뭉테기를 받아들고 대충 훑어보았다.

《음, 이걸 보니 인제야 믿음이 가는구나. 수골 했다. 진작 이것부터 내놓을 노릇이지. 내 너를 높이 표창하도록 힘써주겠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놈은 징징 울면서 팔소매로 눈굽을 훔쳤다. 《장교님, 그리구 이건 우리 〈치안대〉명단입니다. 이렇게 끌끌한 〈치안대〉를 다른데 가선 찾아보지 못하실겁니다. 정복을 못 입혀서 그렇지 〈국군〉부대들 못지 않게 전투력이 있습니더. 게다가 여기 마을 유지들까지 다 한몫씩 하두룩 제가 좀 노력했습니다.》

《치안대》놈들의 뒤쪽에 늘어서있던 늙다리들이 허리를 굽석하며 합창을 했다.

《그렇소이다.》

《그렇단 말이지? 좋아, 아주 좋아! 우리 헌병대는 빨갱이들과의 싸움에서 공로가 있는 사람들을 죄다 장악하구 잘 평가해주라는 헌병사령부의 특별지시를 받고왔다. 공로는 공로대로 후하게 평정해줄터이니 우선 〈치안대〉원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모이게 하라. 에― 그리구 이 마을 유지들도 자기들의 공로를 다 제기해서 응당한 표창을 받도록 하자. 자, 유지령감들도 어서 차례로 말씀들을 하시오.》

갑자기 살가와진 헌병장교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바재이는 놈들속에서 그중 약삭발라보이는 늙다리 하나가 연신채머리를 떨며 제꺽 한발작 나섰다. 선코를 차지해야 남보다 큰 표창을 받을수 있겠다고 생각한것 같았다. 사팔눈에 볼따귀가 훌쭉해서 볼꼴이 영 없는 작자였는데 제 자랑 늘어놓는것을 보면 어디에 그런 흉심이 숨겨있었는지 놀라울 지경이였다.

《장교님, 이 늙은이는 토지개혁때 열정보나 되는 땅을 몽땅 빨갱이들한테 떼우고 이 산골로 쫓겨와 사는 박민식이란 지주인데 이번에 후퇴하는 인민군대를 여러명이나 죽였소이다. 빨갱이가족까지 치면 스물이 넘는데요.》

《그런가. 아주 좋소. 헌데 어떻게 죽였소?》

《애햄, 후퇴하는 인민군대를 집에 끌어들여 밥을 해먹이면서 우리 마누라가 독약을 쳤습니다. 중독돼서 죽어가는 놈들을 몽둥이로…》

《음, 공로를 세운 사람들한테는 헌병사령부의 명의로 큰 표창을 주겠소. 〈치안대〉원들과 공로자들은 따로따로 빨리빨리 모이시오. 자, 이렇게 두줄로 서시오.》

《알겠소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구 믿었습니다, 애햄.》

《치안대》놈들과 악질반동놈들이 줄레줄레 늘어섰다. 서로 제가 앞자리에 서겠다고 싱갱이질을 하며 몸싸움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학문은 이발이 갈렸다.

《자, 다들 잘 보라!》

놈들앞에 나선 그는 헌병옷 앞섶을 헤쳐보이며 권총을 꺼내들었다. 단정한 인민군군관복과 빛나는 오각별이 보였다.

《받아라! 민족반역자놈들아!》

그의 권총이 불을 뿜는것과 함께 정찰병들이 날리는 총탄이 사방에서 비발쳤다.

뚜루룩! 뚜루룩! 탕! 탕! 탕!

저주받을 원쑤놈들이 아우성치며 무리로 쓰러졌다. 이 세상에 없어야 할 오물들이 깨끗이 제거되여버리는것이였다.

창고에 갇혀있던 인민들이 석방되여 만세를 부르며 달려나왔다.

학문은 그들앞에 나섰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인민군대는 꼭 다시 돌아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군은 반드시 미제와 그 주구들을 우리 조국강토에서 완전히 섬멸하고 최후의 승리를 꼭 안아올것입니다. 인민군대를 믿으십시오. 김일성장군님을 받들어 신심을 잃지 말고 용감히 싸워주십시오!》

그사이에 김덕천은 복남이와 함께 큼직한 글씨로 구호를 써서 마을앞에 내다붙였다.

《반역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인민군대는 곧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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