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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눈물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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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9-10 12:30 조회2,3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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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눈물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싸우는 이야기②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임금만큼이나 나락으로 떨어져 있던 인권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가 꽤 잘 산다고 생각해왔다. 생활은 편리하고 풍족해졌다. 그러나 세련되고 성능 좋고 더 커진 텔레비전 브라운관 속에는 저임금, 일자리 부족, 비정규직이라는 문구가 맴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 옆의 누군가는 예전보다 반 값 임금을 받고, 고용의 불안에 떨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해진 고용의 불안. 우리의 삶은 진정 풍족한가? 우리 무엇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울산지역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단’은 울산에서 간접고용과 고용불안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 물음의 답을 찾으려 한다. 기획은 (2) 울산과학대, (3)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4)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5) SK브로드밴드까지 모두 5회로 진행된다.

어머니는 노점 상인이었다.
시장 길은 늘 갈치의 은빛이 번득거렸다. 길게 누운 갈치의 등위에 손끝으로 퍼올린 한 바가지의 물이 튕겨져 닿을 때마다 은빛보다 먼저 무지개가 빛났다. 한낮의 햇살에 반사된 물빛이었다.

무지개가 빛나던 그 길 위에서 어머니는 자주 울부짖었다. 생존을 짓밟던 철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노점은 자주 철거되었고 단속반의 구둣발에 짓밟힌 갈치는 더 이상 은빛을 뿜지 않았다. 거리에 서면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오랫동안 멈췄던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다시 길 위에서 들려온다. 그 옛날의 어머니만큼이나 나도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생존이 철거되는 것이 두렵다. 철거된 생존 앞에 목놓아 울부짖는 절규가 아프다.

[출처: 서분숙]

2014년 9월 1일. 울산 대학교가 2기 개학을 했다. 개학을 하면 온다고 한 울산공업학원 정정길 이사장은 개학날에도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정말 나오지 않았는지 이사장실로 확인하러 가겠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본관 입구 여러 개의 문들은 이미 단단히 잠겨져 있다. 유리문 안쪽에서는 촬영 카메라를 든 직원과 관리자들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이 문밖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정정길 이사장을 만나러 온 사람들은 울산 과학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울산과학대학교와 울산대학교는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에 속한 학교들이다. 2014년 초, 정정길 전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이 학교법인 이사장으로 선출되기 전까지는 31년동안 정몽준이 이사장이었다.

파업 78일째 되는 날이었다.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이었기에 임금 인상은 어느 정도 쉽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산을 깍아 세운 학교는 넓기도 했지만 청소하기에도 고달픈 지형이었다. 5210원이던 시급을 생활이 가능한 임금으로 인상해달라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가 아닐듯 했다. 그러나 파업 시작 후 두 달이 훨씬 넘는 날들이 흘러도 용역업체는 학교에게 책임을 넘기고, 학교는 용역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만 할 뿐이다. 울산 과학대학교의 이사장을 찾아 나선 이유는 그가 바로 울산 과학대학교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잠겨진 문밖에서도 노동자들을 향한 조롱은 계속되었다. 언제 이사장을 만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언제 올지도, 설령 온다고 해도 너희들이 이사장을 만날 수나 있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절박한 마음을 닮은 붉은 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투명한 유리문을 힘주어 다시 밀어 본다. 왜 문을 잠궜느냐고, 대학 본관의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이런 개같은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는 순간, 거세지는 항의를 막기 위해서인지 그 순간 경비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노동자가 쓰러졌다.

쓰러진 노동자의 몸 위로 또 다른 노동자의 울음소리가 이불처럼 몸을 덮는다. 그 순간 수십명의 대학생들이 본관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 순간에 ‘파업은 정당한데 학교가 왜 협상에 임하지 않느냐’는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학생이었다. 반가운 그 말보다 그래도 먼저 다가온 건 수치심이었다. 길바닥에 누운 몸을 어떻게든 일으키고 싶다. 먹고 산다는 게 이토록 비참한 일이었던가. 매순간 산봉우리를 넘어서듯 징그럽도록 끔찍한 시련이 있었다. 쓰러지고 끌려 나오고, 어린 학생들의 냉랭한 시선을 견디며 노숙 농성을 하던 날들의 기억은 문신처럼 몸속에 남아 있다.

[출처: 서분숙]

한평생 노점상인이었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기억을 풀어 버렸다. 생선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생존은 끔찍했다. 다라이를 빼앗던 단속반을 쫓아가 물건을 돌려 달라며 매달리다가 여러 번 구둣발에 몸이 채였다. 기억을 풀어 버린 엄마의 화면속엔 엄마를 쳐다보던 어린 자식들만 남아있다. 그 끔찍했던 생존을 들켜버린 죄. 죄가 아닌 죄를 지은 어머니는 기억을 무너뜨렸다. 어린 자식들에게 참혹한 생존을 들켜버린 수치심은 생존의 공포보다 크고 두려웠다.

얼마나 더 쫒기고 내몰려야 맘 편히 일하고, 먹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빗자루를 들고 밖에서 일하는 건, 그런 건 괜챦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존중은 아니더라도 대놓고 멸시하고 차별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괜챦다. 그러나 과학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는 동안 힘들었던 건 쫓겨나고 다치고 밟히고 마침내는 길바닥에 쓰려져 버렸던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지나도, 이상하다. 상처는 해마다 새로 피는 꽃과 같다. 절대로 무뎌지지 않는다. 닿을 때 마다 선명하게 피어난다.

팔년 전, 울산 과학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 당시에는 한달 임금이 오십만원 정도였다. 임금만큼이나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던 건 청소노동자들의 인권이었다. 학교 급식소에서 밥을 먹지 못했으며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회식 자리에 가서도 하청업체 관라자가 도착하기 전에는 수저를 들지 못했다. 늦게 오는 사장을 기다리며 두시간 반을 밥상 앞에 앉아 있었던 일도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는 바로 계약을 해지해 버리는 바람에, 그때도 몇 달을 길 위에 있었다. 두들겨 맞고 밥이 구둣발에 짓이겨지고 설마 맨몸으로 겨울에 내치진 않겠지 싶어서 옷을 벗고도 싸워봤다. 그러나 옷 하나 입지 않은 몸조차도 싸늘한 겨울바람 속으로 끌려 나와야 했다. 복직은 했으나 그날들의 상처는 그대로 몸에 남아있다. 폭력에 대해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평균 백팔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살아야 한다는게 가당치도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에, 그것도 혼자 벌어 가계를 꾸리는 노동자가 대부분인데, 그것도 백만원이 넘은 지가 겨우 이년 정도여서 저축한 돈이 없을 거라는 걸 다 알거라 여겼기에 이번엔 이렇게 오래 길 위에서 울고 쓰러질 줄 몰랐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니 대놓고 무시는 못했지만 곳곳에 있는 감시 카메라로 작은 움직임조차도 다 들여다봤다.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작은 실수조차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래서 임금 인상 요구도 많이 미루고 있던 터였다. 이정도면 물러설 곳이 없을 만큼 양보한 거라 여겼는데, 그나마 가진 일자리조차 빼앗아 버리려는 잔인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자신을 내던지는 싸움은 두려운 일이다. 설령 투쟁의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과정에서 당한 폭력, 기막힌 상황에서 스스로 내뱉었던 울부짖음은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을 뭉개어 버리는 일이 많은 것도 살아온 날들이 고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모들의 고통은 자식들에게도 대물림 된다. 과학대 청소 노동자들의 절규에서 자꾸만 수십년 전 내 어머니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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