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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이소선 여사(전태일열사 어머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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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1-09-03 00:23 조회1,9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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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11시45분께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에서 타계했다. 이소선 여사 측 관계자들은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예약해 놓고 장례준비를 하고 있으며, 곧 한일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와 페이스 북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민중의 소리 3일자 보도자료를
여기에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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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이소선 여사(전태일 열사 어머니),

3일 오전 11시45분 향년 81세로 운명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서울대병원에 빈소 마련,
4시부터 일반시민들에게 빈소 공개


[4신]‘전태일의 삶’ 살아온 노동자 민중의 ‘대모’

이소선 여사 영면...평생 노동해방과 민주·통일 운동에 헌신


<##IMAGE##>

독립운동가이던 아버지 아래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일제 정신대에 끌려갔다. 정신대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힘이 들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그곳을 탈출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투쟁이 시작된 건 어쩌면 그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내가 이걸 보고 못 견뎌서 해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죽는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전태일 열사의 유언에 이소선 여사는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라고 약속했다. 전태일 분신 이후 이소선 여사의 삶은 투쟁의 삶 그 자체였다. 이 여사는 아들 전태일의 유언을 몇배로 지켰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40여년 간 이소선 열사는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렸다.

70년대에서 80년대, 9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정권과 보수정권의 핍박 속에서 이 여사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수없이 죽어갔던 또다른 아들, 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IMAGE##> 외부에 알려진 이 여사의 투쟁은 1970년 전태일 분신 이후부터 시작됐다. 전태일 분신 2주 만에 설립된 청계피복노동조합과 1985년 구로동맹파업,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활동 현장에서 굳건히 연대했다.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했을 당시 이 여사는 노조 고문으로 추대됐다. 그해 12월 청계피복노조에 대한 당국의 강한 탄압에 항의하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집단자살을 기도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청계피복노조를 지켜내고자 하는 이 여사의 의지는 굳건했다. 결국 1984년 청계피복노조를 다시 복구시켜 고문으로 추대됐다.

1973년에는 노동교실을 개관해 함석헌 선생을 초청했다는 이유로 그해 내내 당국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수배중이었던 장기표 씨를 숨겨줬다. 잡혀간 장기표가 재판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자 이 여사가 검사를 나무라며 "나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아가라"고 외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여사는 장기표 재판정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81년에는 두 번째 감옥살이를 했다. 그해 서울시는 청계피복노조 해산명령을 내렸고, 이에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과 함께 해산명령에 항의해 아프리에서 농성을 벌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아들 전태삼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다.

전태일 정신을 받든 이 여사의 투쟁적 삶은 노동운동가들 뿐 아니라 모든 재야운동가들의 귀감이 됐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에게도 이 여사는 어머니였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인연은 전태일이 사망하자 김 전 대통령이 병원에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이 여사는 목숨을 건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1978년 동일방직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투쟁을 하다 심한 구타를 당했었고,1987년 청계노조 사무실을 탈환하고자 진입하다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실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또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하다 안타깝게 죽어간 젊은이들의 유가족들을 한데 모아 1986년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만들었다. 이 여사는 유가협 초대 회장을 지냈다. 회원들과 함께 1988년~89년 135일 동안 의문사 진상 규명 농성을 벌였고, 1989년에는 범민족대회 판문점 예비회담 남측 대표로 참가하려다 불구속 입건됐다.

노동자와 학생운동가들을 위한 이 여사의 투쟁은 1990년대에도 계속됐다.

1990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지시 무죄선고 항의 치안본부에서 시위를, 1991년 백골단으로부터 폭행당해 숨진 강경대 열사의 타살 등과 관련된 항의 투쟁들을 전개했다.

1998년에는 의문사진상규명및명예회복법 제정을 위한 422일 천막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노동자.농민.학생 등 민중들에 대한 탄압이 또다시 활개를 치면서 이 소선 여사는 편안한 말년을 보내지 못했다. 이 여사는 쓰러져 병상에 눕기 전까지도 각종 정권 규탄 집회에 참석,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볻돋워주며, "이 시대 어머니"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타는 일을 상의했고, 200일이 넘게 크레인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만나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태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왔던 이소선 여사. 사람들은 전태일을 기억하면서 그의 어머니 이소선을 기억한다.


<민중의소리=강경훈 기자>


[3신:오후 2시]이소선 여사, 서울대 빈소마련... 4시부터 일반에 공개


[서울=민중의 소리 고희철, 정혜규 기자]3일 전태일 열사 어머니 故 이소선(81) 여사의 빈소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빈소는 잠시 뒤인 오후 4시께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전태삼(62)씨, 전순옥(57)씨 등 유족과 전태일 재단 측은 3일 오후 1시께 이 여사의 운구를 한일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빈소를 차렸다.

현재 병원에는 유족들과 전태일 재단 박계현 사무총장과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70년대 청계노조 운동을 벌여온 박재익씨, 민주노동당 이종문 노동국장 등이 모여 장례를 준비하고 있다.

박계현 사무총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30분께 이소선 여사의 증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호흡기를 제외하고 모든 장기는 멈췄으며 혈압도 정지된 상태였다. 유족들은 가족들이 온 무렵에 숨을 거둘 수 있도록 호흡기 유지를 병원측에 요청했으며 병원측은 임종예배를 마친 오전 11시45분께 호흡기를 제거했다.

당시 임종예배에는 유족과 재단측 관계자 외에도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현재 전태일 재단,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계자 6명이 장례 실무진을 구성, 장례위원회 선정을 논의하는 중이다. 재단측은 장례위원회가 꾸려지는 대로 장례일정, 절차 등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임종 예배를 집도한 조헌정 목사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동안 사회 문제를 위해 애써온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노동자 문제 등이 미완으로 남아있고, 강정마을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권력이 민중의 목소리를 막으려고 하는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어머니가 아들의 삶을 이어오셨듯이 이제 어머니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2신:오후 1시]‘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향년 82세로 3일 별세했다.

이 여사는 지난 7월18일 서울 창신동 자택에서 심장 박동이 멎으며 쓰러져 48일 간 의식을 찾지 못하다 이날 오전 11시 45분 영면했다.

전태일재단 측은 3일 낮 이 여사의 운구를 별세한 한일병원에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로 이송하고 빈소를 차렸다.

이 여사는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은 이후 계속 의식을 찾지 못했고, 지난달 24일에는 집에서 가까운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다.

서울대병원에는 벌써부터 이 여사의 삶을 기리고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1신:오전 11시 45분] 이소선 여사 위독, 심장 외 장기 모두 멈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위독한 상태이며 관계자들이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오전 8시50분께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에서 타계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소선 여사는 11시 45분 현재, 내부 장기의 활동은 완전히 멈춰있는 상태이며, 아직 사망 선고는 받지 않았다. 이소선 여사는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소선 여사 측 관계자들은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예약해 놓고 장례준비를 하고 있으며, 곧 한일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길 것으로 전해졌다.

11시 40분께 한일병원 관계자는 "아직 사망하신 것은 아니고, 곧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영안실을 예약해 놓았지만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지난 7월 18일 자택에서 상태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이 여사는 그동안 집과 가까운 한일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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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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