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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섬 투쟁에서 얻어진 교훈 (김영승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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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9-27 10:01 조회1,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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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빨찌산 생존자 김영승 선생이 20년 전에 쓴 글이다.  새로 그의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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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거 추억을 회고한다

똥섬 투쟁에서 얻어진 교훈

부대는 출발했다. 때는 1953년 8월14일 저녁이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서산에 걸터 있었다.

드디어 백동산(백운산)옥룡골 기슭에 다달았다. 골짝에 타버린 마을은 쑥대밭만 무성했다. 다락층계 논에 심어진 벼는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숲속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 보이는 시야에는 적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있었다.

적은 똥섬(마을 뒤의 똥무덤 뫼처럼 생긴 곳을 말함) 에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당시 지형지세가 똥섬을 통과하지 않고는 빠저나갈 수 없고 오는 길에도 똥섬에 다다르면 날이 새어 은폐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똥섬은 루트차단의 요충지었다. 적은 기어올라 왔다하면 이곳에 진을 치고 루트를 차단했었다.

부대는 대규모 투쟁계획은 다음으로 미루고 본부대는 보급부대와 함께 진지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부대장 동지를 비롯한 무장소조는 남았다.

그것은 똠섬에 주둔한 적의 진지를 기습작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작전계획을 세웠다.

소조는 사기충천했다. 그 첫걸음으로 나는 정찰임무를 맡았다. 사전의 충분한 정찰을 통해서만이 기습작전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출발했다 정찰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의무와 투지는 남달랐다.

푸른 나뭇가지와 이파리로 완전히 위장했다.

적의 진지를 환히 볼 수 있는데 까지 포복 전진했다. 물론 노출되지 않고 정확한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정찰조는 적의 진지와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논두렁 길에 무언가 파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틀림없이 지뢰매설로 추정했다. 아니 단정까지 했다. 이윽고 골짝과 논두렁의 어둠이 깔리자 정찰임무를 마치고 우리 소조 본대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오늘밤 기습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생각했다.

나는 정찰결과를 상세하게 보고 했다. 정찰결과를 놓고 열틴 토론을 전개했다.

부대장 동지는 지뢰매설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기습전을 다그치었다. 그러면서 논두렁에 파고 묻는 것이 무엇이겠는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했다.

나는 역시 지뢰 매설로 단정하고 기습작전 불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대장 동지는 함구무언이었다. 대원동지들도 말이 없었다. 부대장동지의 다그치는 위압에 모두 할 말은 잊었다. 그동안의 적의 지뢰에 걸려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는가를 압박하고 있었다.

정찰결과를 무시하고 기습전을 감행하려는 부대장동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1여 년 동안 부대장 동지 밑에서 싸워왔지만 오늘밤처럼 완강하게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위험지에 다다를 때는 선봉에서 부대를 이끌어 적의 매복 한번 당한 일이 없고 이중삼중의 적의 포위망 속에서 전멸의 위기에서도 부대를 구출했을 때 그렇게도 칭찬하고 그렇게도 나의 의견을 믿어주었던 부대장동지인데 오늘밤만은 이렇게도 묵살하고 강행하려는가 별의별 생각이 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왜 중대장 동지는 말 한마디 없고 대원동지들도 말이 없는가 실망도 했다. 아니 원망도 했다.

그동안 작전도 말할 것 없지만 선봉에서 작전을 승리로 장식했기에 오늘 밤도 내가 선봉에서 소조를 이끌지 않고는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사 누가 앞장선다해도 불을 보듯 뻔한 희생만이 있을 뿐임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부대장 동지의 완강한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습작전 하기 싫으면 본대로 귀환하자는 일그러진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결심했다.

나는 기습작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대장동지! 기습 작전 하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부대장동지의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긴장했던 중대장 동지 이하 대원동지들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부대장동지의 작전명령지시에 따라 기습작전 승리를 다짐했다.

이윽고 적의 진지를 향해 출발했다. 물 논에 다다라 앞에 총하고 격발기를 풀고 둘째손가락을 격발기에 대고서 야음을 타고 물 논 벼포기를 가르며 한발짝 한발짝 적의 진지를 향해 전진했다.

산골짝은 고요하고 소쩍새 울음소리와 별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와 부대원 동지와는 약 3m 거리를 보장했다. 나의 조가 적의 진지 앞을 지나 쑥대밭된 마을 뒤 대나무 숲을 지나 원 골짝으로 내려가서 오르면서 (진지뒤쪽) 치는 기습전이었다.

부대장동지 이하 소조는 적의 진지 조금 앞 위쪽에서 엄호 사격하다가 진지점령에ㅡ 합류하도록 작전을 짰다.

나는 먼저 적의 진지 앞을 지나가기 위해서 도랑길을 횡단해야 했다.

도랑물은 적의 진지 앞을 통과해 물 논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의 진지 어딘가에 지뢰가 매설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지뢰를 밟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적에게 적발되지 않고 적의 진지앞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새우고 전진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조심조심 도랑길 도랑물을 건너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도랑물을 건너려고 조심스런 한발을 내딛자 그 순간 번쩍하는 불기둥이 나를 때리는 것만 의식했을 뿐 그 다음은 어떻게 된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적의 진지에서는 전 화력을 다 동원했을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의식이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과연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숨을 한번 들어마시고 내품어 보았다. “옳지 죽지 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과연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이는 가를 시험해 보았다. 팔을 폈다 오그려 보고 다리도 오그려 보고 뻗어보았다. 이상은 없으나 가슴이 꽉 막히고 팔이 무거우며 목과 가슴 팔에서는 피가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과 움직임에는 큰 이상이 없다는 데에는 안도했다.

그러나 손에 들었던 총이 생각났다. 총이 없어 당황하며 어쩔줄을 몰랐다. 나의 총은 생명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걱정은 과연 총이 어디 있을 가이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어느 곳에 처박혀 있는가를 알기 위해 지형지세를 살폈다.

마을 뒤 대나무숲속에 처박혀 있었다. 지뢰 맞은 곳에서 5-6m의 거리었다. 그러니까 그 불기둥이 나를 덮치면서 나를 날라다 대나무 숲에 던진 것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후 총을 찾기 위해 어둠을 해치며 주위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그러나 없었다.

적의 진지에서는 이따금 몇 발씩 난사할 뿐이었다.

골짝은 총소리 외는 쥐죽은 듯 고요할 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초긴장 속에 무거운 팔다리를 움직여 주위를 기어 다니면서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드디어 총은 지뢰가 터젔던 도랑길 언덕 나뭇가지에 총 끈이 걸려 있었다.

이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쁨은 순간이고 과연 손에 들었던 총이 제대로 나갈지의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후에 확인하니 총개머리판도 지뢰파편을 맞아 곰보 같았다. 나중에 동지들이 새어보니 지뢰파편이 몸둥이에 50여군나 맞았었다

더욱 걱정된 것은 뒤따라오던 동지들이 다 희생되었는지 아니면 무사히 살아 본부로 돌아갔는지었다. 이때에 찾은 총이 제대로 나가는지 시험 발사해 남은 동지들이 살아 있다면 동지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발사와 함께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도 그냥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본부대진지로 찾아갈까 아니면 여기서 확인 할까로 순간적으로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습전을 하지 못하고 그냥 본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안했다 더더욱 싸움도 못하고 부상을 당한데 대한 죄책감과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하여 총을 찾았던 언덕을 가슴에 않고 적의 진지를 향해 m원 팔발을 퍼부으면서 동시에 나의 이름으로 **부대는 좌로 **부대는 서편에서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적의 진지에서는 중화기를 비롯하여 있는 화력을 총동원하여 불을 품기시작했다

무사히 후퇴하여 본부대 진지로 되돌아가던 무장소조는 중능선에서 칼빈 2발을 발사하면서 응원부대가 돌진하고 있으니 계속공격을 가하라는 부대장동지의 목소리가 야음을 타고 적의 퍼붓는 총소리 새로 들려왔다. 이 때 부대위치를 확인한 후 있는 사력을 다하여 적의 총소리를 뒤로 하면서 물논을 짓밟고 골짝어구 숲 속에서 합류하게 되었다.

동지들은 지뢰가 터지자 그 곳에서 희생된 줄 알고 본대 진지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고 아 살았구나 하고 다시 골짝으로 내려오면 만날 것을 알고 내려왔다고 했다. 지금껏 지뢰를 밟아 산 동지들은 하나도 없었다.

터젔다 하면 몸은 산산조각이나 시신조차 찾을 길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나는 지뢰줄을 건들어 원거리에서 터젔기 때문에 무사히 산 것으로 생각했다.

어두운 골짝 숲 속에서 전등을 비춰 응급치료(당시 소독약은 마크름 뿐이었음)를 받고 가지고 있는 명주수건을 찢어 머리 목 팔을 동여맺다.

치료를 받은 후 한번 걸어보려고 하니 몸과 팔다리는 천근이되고 가슴이 절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아마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두 동지가 옆에서 부축하고 한 동지는 뒤에서 밀며 가파른 능선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다 쉬고 걷다 쉬고 반복하면서 중허리를 올라와서는 기습전실패의 죄책감에다 이정도의 부상에 동지들의 부축을 더 이상 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끝에 단호히 동지들의 부축을 뿌리치고 혼자서 왼손으로 풀포기와 나뭇가지를 잡고 의지하면서 기어오르다 시피하여 원능선을 오르니 동은 트고 빨간 노을이 일기 시작했다 (동지들은 뒤따르고 있었다)

본대 근처에 오자 먼저간 동지들의 보고를 받은 김선우 도당위원장 동지가 뛰어 나와 반갑게 맞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지금도 이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없다.

본대로 돌아온 우리 부대원동지들은 심경이 착잡했다. 8.15보고 대회는 예정대로 했다.

(진상골 잣나무트에서) 부대장과 정치의원 동지는 의무과 트에 가서 편안히 치료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부대와 같이 이동하면서 치료를 받겠다고 고집했다. 부상상처를 동여맨채 기념대회 주석단에 동지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 투쟁총화를 했다. 정치위원 동지의 총화보고에서 부대장동지는 소영웅주의와 공명심에 사로잡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사업작품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 정찰결과를 무시하고 기습전을 강행하여 금싸라기 같은 핵심전투원을 희생시킴으로서

투쟁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부ㅡ대장동지 자신도 보고에서 지적된 내용을 전폭접수하고 앞으로 부대원동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휘책임자로서 올바른 자세를 확립하기 위하여 자기 학습에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다지었다.

중대장동지도, 대원 동지들도 부대장동지의 위압에 눌려 기습전이 불가하다는 것을 느꼈어도 한마디도 토로하지 못한데 대하여 자기비판도 했다.

나 자신도 기습전 진격로를 다른 방면에서 들어갈 데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한데 대하여 비판했다. 우리 모두는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여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평소의 연구와 노력이 부족했음을 통감하고 앞으로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부단한 자기학습과 투쟁을 통해 얻어진 산 경험을 항상 되새기고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는 것은 학습을 통해서만이 투쟁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는 산 교훈을 얻게 되었다.

총화 후 부대의 사기는 회복되었다. 부대장 동지는 희생되는 그날 까지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아니 부대원 전체 동지들의 의견도 존중해 주었다. 그리하여 투쟁했다하면 승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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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6.15공동선언 실현이란 변화된 정세의 요구와 대중의 정서에 알맞게 부응하는 것도 각 단체 책임자나 지도간부들이 자기 학습에 노력하지 않고 어떤 권위의식이나 공명심에 사로잡혀 관료주의적으로 하부의 실정이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무리수를 조금이라도 쓰고 있는가를 한 번쯤 자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나의 단상을 쓰게 되었다. 부족한 점 가르쳐 주기바라면서****.

참고@ 이기사는 20년전에 썼던 것을 참고 될가 해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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