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구 선생님이 가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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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수해 작성일13-08-16 02:06 조회2,241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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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통일을 사랑하시고, 음악을 사랑하시고, 가족을 사랑하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카나다
김수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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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재미동포전국연합회와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고문이신
안용구 선생님께서 2013년 8월 14일 오후 3시 소천하셨다는 비보를 알려드립니다.
어제께 저녁 6시경 2층으로 올라가시던 중넘어지셨는데 머리에 큰 충격으로 심한 뇌출혈을 하셨다고 합니다.
민족이 일제의 강점 하에서 탄생하시고 해방후의 어지러운 시기에 서울대학교 음대를 다니셨으며, 독일유학 후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하시다가
볼티모어 소재 피바디 음악대학의 초청으로 교수로 초빙되시어 후진들을 양성하셨습니다.
재미동포사회와 해외에서 음악교류를 통하여 민족화해를 도모하시며 통일성취를 위하여 헌신하신 선생님의 서거는 우리 재미동포연합회 뿐 아니라
전 민족진영, 그리고 바이올린 교육과 민족음악계에 커다란 손실입니다.
장례절차가 결정되는 대로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현재 뉴욕에서 이준무선생이 내려와 계십니다.
이재수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안용구 박사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준무 선생님 디시로 내려가며 급한 전화 주셔서 소식 들었었습니다.
항상 인자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며 사모님 농담에도 빙긋이 웃음으로 동감을 표해주시던 큰 어른 안박사님 그리움이 문득 솟구칩니다. 뉴욕에
오시면 항상 늦은 시간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같이 웃음 장단 맟추어 주셔서 우리 후학들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조용히 삶의 자세를 보여주신 어른이십니다.
좀더 여기 계시며 저희들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욕심입니다만, 이제 편안한 곳으로 가셔서 계속 저희들 통일운동 격려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가시는 길 편안한 여행길 되시길 빌며 또한 통일사업 진전되어 환하게 웃으시며 다시 뵈올 날 기다리며 머리 숙여 하직 인사드립니다.
사모님께는 가뵙지도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주십시요.
뉴저지에서
김수복 드림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안용구 선생님이 가시다니 이게 웬일 입니가.
사모님과 더불어 언제나 저희들을 자상하게 살펴주시고
무엇이던 나서서 도와 주시던 어른께서 가시다니요.
그 푸근하고 인자한 미소에 잔잔한 말씨로 반겨 주시던 예술가,
우러러 보며 따르고 선생님이 계셔서 든든한 마음으로
일 하면 잘 했다는 격려로 더 힘을 실어 주시던 안 선생님.
그 옛날 말로는 제금 독주가 안용구의 70여 년 음악일기 책,
<한 마리 새가 되어> 미국에서 남과 북을 넘나들며 친지와
옛 음악인들을 만나는 얘기를 읽으며 가슴 메이던 일이 생각 납니다.
어느 해 봄날 저녁, 사모님을 처음 만나 들려드렸다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자택 거실에서 켜주시던 그 노래가 지금 다시 들려 옵니다.
그 밤 2층에 마련해 놓으셨다는 나의 침실을 향해 걸어 올라갔던 바로
그 층계에서 넘어지셨다는 얘기가 제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또 저의<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책 출판기념 파티를 해 주신다고
50명 부부를 자택에 초대했다가 당일 갑작스런 폭설로 길이 막혀
취소해야 했던 2011년의 1월의 그 뜨거운 사랑의 생각도 납니다.
선생님, 안 선생님, 아직도 이루지 못한 조국의 통일을 놔둔 채 어찌
이리 먼저 떠나십니가. 저희들이 이제 누구를 보며 누구에 기대어
이 일을 해 나가야 합니가. 지금은 그저 먹먹하기만 합니다.
네, 그래도 이 슬픔 달래고 나면 다시 계속 해야지요.
어디에 계셔도 저희들 내려다 보시며 격려해 주실 줄 압니다.
고난과 설음, 애타던 그 고통 다 멀리하시고 편히 쉬십시오.
저희는 저희 몫을 해 나가겠습니다.
안용구 선생님 영전에 삼가 절 합니다.
오 인동 , 2013년 8월14일,
로스앤젤레스 근교 파싸데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