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패권을 꺾은 북한의 선군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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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핵보유국 작성일13-08-15 07:16 조회1,7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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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핵패권을 꺾은 북한의 선군정치
전면적 군사대결로 치달은 북미대결이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총체적 대결로 지속되고 있다.
2013년 3월 11일, 미국이 키리졸브 대북전쟁훈련을 통해 핵선제타격 위협을 가하며 북한을 압박한 것에 대해, 북한은 한반도가 핵전쟁 상황임을 유엔에 통보하고 미국이 만에 하나라도 핵으로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은 제3차 세계대전, 세계핵전쟁으로 대응할 것을 천명해 미국의 핵위협을 꺾어버렸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성된 정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도발에는 즉시적인 대응타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이것이 우리의 원칙적 립장이며 확고한 의지입니다.”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용납 못할 추태의 후과로 이 땅에서 또 다시 바라지 않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에서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은 수치스러운 파멸을 맞을 것이며 위대한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3차례에 걸친 지하핵시험에 성공하고 인공위성 광명성 3호 2호기 궤도진입 성공을 통해 탄도미사일 능력을 입증해 세상에 알려진 과학기술의 범주 내에서 최고의 궁극무기인 대륙간 핵탄도미사일을 이미 실전배치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무결하게 보여주었다.
북한의 강력한 대미대결전의 비결은 바로 김 일 성 주석 시기부터 뿌리깊게 이어 온 군중시사상과,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발전시켜 1990년대 전면적으로 정식화한 북한의 독특한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국방비의 절반을 사용하는 군사대국 미국에 맞서, 북한은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우고 그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 선군정치방식을 전면화하는 것으로 초강경대응해 나가고 있다.
1. 단추누르기 직전까지 간 북의 대미 핵전쟁
2008년 경제위기에 내몰린 미국은 양적완화라는 일방적 달러방출 정책에 의존하였고 이런 약탈적 경제정책은 세계민중 앞에 규탄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미국은 급증하는 반미자주의 흐름을 말살하고 미증유의 경제위기의 출로를 찾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반도 전체점령계획을 기어이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대북핵전쟁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올해 1월 26일, 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인공위성 발사를 놓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 2087 채택을 주도하였다. 평화적 인공위성 발사를 제재하겠다는 것은,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대응조치들에도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 군사적 대결을 전면화한 외교적 선전포고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였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미국을 향해 전면대결전을 선언하였으며 핵과 장거리 로켓이 바로 미국을 겨냥한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2월 12일, 북한은 자위적 차원의 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능력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물론 미국은 3월 8일, 더 높은 수준의 제재결의안인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94를 주도하였으며 3월 11일에는 대북전쟁훈련인 키리졸브 2013을 개시하였다.
하루 하루가 전쟁의 나날이었다.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의 첫날, 인민군 공군기를 무려 700여회 출격시켜 한미연합군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미국이 B-52 핵전략폭격기를 들이밀자 북한은 무인타격기를 공개하였으며 미국의 핵동력 잠수함 샤이엔에 대해서는 토마호크 요격미사일로 대응하였다.
급기야 미국은 3월 24일, B-2 스피릿 스텔스 핵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들이밀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핵선제타격한다면 미 본토와 알래스카, 하와이와 주한미군은 물론, 괌과 주일미군을 비롯한 한미연합군에 추종하는 국가의 미군부대까지 타격대상에 망라시킨 사실상의 제3차 핵세계대전을 선언하였다. 조선인민군 전략로켓트군과 포병무력에게 “1호 전투근무태세”명령을 내리고 3월 29일 자정 무렵, 최고사령부 작전대에서 미본토타격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영상을 전격 공개하였다.
북한 외무성은 유엔에 한반도가 핵전쟁상태에 들어간다고 통고하였다. 3월 22일, 북한은 공습경보를 발령하며 모든 북한주민들을 지하대피소로 소개하는 훈련까지 진행하였다.
북한은 3월의 대격전에서 대미 핵전쟁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핵전쟁을 수행할 각오와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렸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핵전쟁을 준비하지 못했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는 소련 함정이 배를 돌렸지만, 2013년에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일정을 늦추었다. 4월 8일, 미국은 “북한의 정세오판”이 우려된다며 미국 ICBM인 미니트맨 3의 발사일정을 1달 연기시킨 것이다.
2. 대결 속에 일궈낸 북한의 핵능력, 선군정치의 정화
실지 하나의 전쟁을 치른 것과 같은 3월의 긴박한 대격전에서 북한은 핵전쟁 수행능력과 각오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북한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무력을 갖추고 있으며 ICBM을 비롯한 핵투발수단과 2400만 모든 주민이 지하로 대피할 수 있는 핵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내세웠다.
이와 같이 다지고 다져진 북한의 핵전쟁 수행능력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았다. 북한의 대미 핵전쟁 수행능력은 북한의 뿌리깊은 군중시노선과, 1990년대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이 전면적으로 정식화한 선군정치를 빼놓고 설명될 수 없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은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로 대외무역의 고리가 무너지고 연이은 자연재해를 통한 막대한 손실, 여기에 미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압박까지 겹쳐진 삼중고의 경제난을 겪었다. 사상초유의 경제난을 맞아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당시 북한은 사생결단의 투쟁을 벌였다.
국가의 안위, 존망이 걸린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지도자의 판단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름한다.
이 시기,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자주와 사회주의를 선택하였다. 이는 선군을 통해 가능하였다. 군대가 강해야 당도 정권도 지킬 수 있으며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도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이었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사회에 역사가 깊은 군사중시사상에 의거해 자주와 사회주의는 총대에서 나오고 총대에 의하여 유지된다는 혁명원리에 기초한 선군혁명사상을 정립하였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인민군대는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위업완성의 주력군이란 입장에 기초해 군사선행의 원칙을 전면화하였으며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원리를 강조하며 군사를 모든 국사에 앞세울 것을 강조하였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군의 정치사상적 준비에 깊은 관심을 돌리며 1995년 1월 1일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를 출발점으로 고난의 행군을 “선군의 기치”로 돌파해 나갔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1996년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장에서 인민군이 보여준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을 “혁명적 군인정신”이라 명명하고 이를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돌파할 사상적 핵으로 제시하였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이어 국방공업을 중심으로 농업과 경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시대 경제노선을 확립하고 국방공업 강화에 커다란 관심을 돌렸다.
바로 컴퓨터 수치제어가공방식인 CNC 공작기계가 1990년대부터 연구개발되기 시작하였다.
CNC 공작기계는 북한의 기계공업을 질적으로 한 단계 혁신시키는 사업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있는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대륙간 탄도미사일,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고 있는 핵능력들은 모두 CNC 초정밀 공작기계가 과학기술적으로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기에 북한의 핵개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은 전적으로 선군정치와 CNC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3. 선군정치는 북한발전의 원동력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강요된 사상초유의 경제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하고 북한경제를 발전시켜나가는 힘이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심화발전시켜 인민군대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이어나간다는 선군정치, 선군영도방식을 확립하고 선군정치를 통해 북한을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 핵강국으로 만들어 전반적 국력을 일신시켰다.
그리고 선군의 혁명전통을 이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북한의 지도사상으로 김 일 성-김 정 일주의를 정식화하고 자주의 길, 사회주의의 길과 더불어 선군의 길을 선언하며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방식을 계승발전해가고 있다.
선군의 방식에 기초해 천만군민을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비롯한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단결시킨 결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소련도 굴복하고 말았던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게 핵전쟁 발발의 분분초초를 다투는 생의 가장 고달픈 순간을 체험케하고 미제국주의의 핵전쟁 야망을 여지없이 꺾어버렸다.
물론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발사를 늦추었다고 해서 북-미 대결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은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전 영역에 걸친 총력대결의 형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북아 정국의 주도권은 이미 평양으로 기울었으며 앞으로도 미국을 핵으로 꺾은 북한이 어차피 향후 정국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어 있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일본의 이지마 내각관방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최룡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김계관 제1부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며 지금의 대화국면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북한의 강화된 국력은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이 갈고 닦아온 선군정치의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높은 정치군사적 안목으로 북한의 국력을 종합적으로 이끌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크기는 작지만 국제정치무대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큰 나라들을 상대로 굴함없는 자주외교, 선군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한 북한은 천하제일강국이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여러 발전상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바로 선군정치이다. 국제사회는 김 일 성 주석의 군중시사상과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올바로 연구하고 이를 구현해나가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선군영도에 주목해야 향후 북한과의 관계를 옳게 설정할 수 있다. 바야흐로 세계가 제국주의 시대에서 선군에 의한 자주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끝)
전면적 군사대결로 치달은 북미대결이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총체적 대결로 지속되고 있다.
2013년 3월 11일, 미국이 키리졸브 대북전쟁훈련을 통해 핵선제타격 위협을 가하며 북한을 압박한 것에 대해, 북한은 한반도가 핵전쟁 상황임을 유엔에 통보하고 미국이 만에 하나라도 핵으로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은 제3차 세계대전, 세계핵전쟁으로 대응할 것을 천명해 미국의 핵위협을 꺾어버렸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성된 정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도발에는 즉시적인 대응타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이것이 우리의 원칙적 립장이며 확고한 의지입니다.”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용납 못할 추태의 후과로 이 땅에서 또 다시 바라지 않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에서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은 수치스러운 파멸을 맞을 것이며 위대한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3차례에 걸친 지하핵시험에 성공하고 인공위성 광명성 3호 2호기 궤도진입 성공을 통해 탄도미사일 능력을 입증해 세상에 알려진 과학기술의 범주 내에서 최고의 궁극무기인 대륙간 핵탄도미사일을 이미 실전배치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무결하게 보여주었다.
북한의 강력한 대미대결전의 비결은 바로 김 일 성 주석 시기부터 뿌리깊게 이어 온 군중시사상과,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발전시켜 1990년대 전면적으로 정식화한 북한의 독특한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국방비의 절반을 사용하는 군사대국 미국에 맞서, 북한은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우고 그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 선군정치방식을 전면화하는 것으로 초강경대응해 나가고 있다.
1. 단추누르기 직전까지 간 북의 대미 핵전쟁
2008년 경제위기에 내몰린 미국은 양적완화라는 일방적 달러방출 정책에 의존하였고 이런 약탈적 경제정책은 세계민중 앞에 규탄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미국은 급증하는 반미자주의 흐름을 말살하고 미증유의 경제위기의 출로를 찾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반도 전체점령계획을 기어이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대북핵전쟁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올해 1월 26일, 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인공위성 발사를 놓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 2087 채택을 주도하였다. 평화적 인공위성 발사를 제재하겠다는 것은,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대응조치들에도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 군사적 대결을 전면화한 외교적 선전포고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였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미국을 향해 전면대결전을 선언하였으며 핵과 장거리 로켓이 바로 미국을 겨냥한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2월 12일, 북한은 자위적 차원의 3차 지하핵시험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능력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물론 미국은 3월 8일, 더 높은 수준의 제재결의안인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94를 주도하였으며 3월 11일에는 대북전쟁훈련인 키리졸브 2013을 개시하였다.
하루 하루가 전쟁의 나날이었다.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의 첫날, 인민군 공군기를 무려 700여회 출격시켜 한미연합군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미국이 B-52 핵전략폭격기를 들이밀자 북한은 무인타격기를 공개하였으며 미국의 핵동력 잠수함 샤이엔에 대해서는 토마호크 요격미사일로 대응하였다.
급기야 미국은 3월 24일, B-2 스피릿 스텔스 핵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들이밀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핵선제타격한다면 미 본토와 알래스카, 하와이와 주한미군은 물론, 괌과 주일미군을 비롯한 한미연합군에 추종하는 국가의 미군부대까지 타격대상에 망라시킨 사실상의 제3차 핵세계대전을 선언하였다. 조선인민군 전략로켓트군과 포병무력에게 “1호 전투근무태세”명령을 내리고 3월 29일 자정 무렵, 최고사령부 작전대에서 미본토타격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영상을 전격 공개하였다.
북한 외무성은 유엔에 한반도가 핵전쟁상태에 들어간다고 통고하였다. 3월 22일, 북한은 공습경보를 발령하며 모든 북한주민들을 지하대피소로 소개하는 훈련까지 진행하였다.
북한은 3월의 대격전에서 대미 핵전쟁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핵전쟁을 수행할 각오와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렸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핵전쟁을 준비하지 못했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는 소련 함정이 배를 돌렸지만, 2013년에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일정을 늦추었다. 4월 8일, 미국은 “북한의 정세오판”이 우려된다며 미국 ICBM인 미니트맨 3의 발사일정을 1달 연기시킨 것이다.
2. 대결 속에 일궈낸 북한의 핵능력, 선군정치의 정화
실지 하나의 전쟁을 치른 것과 같은 3월의 긴박한 대격전에서 북한은 핵전쟁 수행능력과 각오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북한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무력을 갖추고 있으며 ICBM을 비롯한 핵투발수단과 2400만 모든 주민이 지하로 대피할 수 있는 핵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내세웠다.
이와 같이 다지고 다져진 북한의 핵전쟁 수행능력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았다. 북한의 대미 핵전쟁 수행능력은 북한의 뿌리깊은 군중시노선과, 1990년대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이 전면적으로 정식화한 선군정치를 빼놓고 설명될 수 없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은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로 대외무역의 고리가 무너지고 연이은 자연재해를 통한 막대한 손실, 여기에 미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압박까지 겹쳐진 삼중고의 경제난을 겪었다. 사상초유의 경제난을 맞아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당시 북한은 사생결단의 투쟁을 벌였다.
국가의 안위, 존망이 걸린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지도자의 판단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름한다.
이 시기,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자주와 사회주의를 선택하였다. 이는 선군을 통해 가능하였다. 군대가 강해야 당도 정권도 지킬 수 있으며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도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이었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사회에 역사가 깊은 군사중시사상에 의거해 자주와 사회주의는 총대에서 나오고 총대에 의하여 유지된다는 혁명원리에 기초한 선군혁명사상을 정립하였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인민군대는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위업완성의 주력군이란 입장에 기초해 군사선행의 원칙을 전면화하였으며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원리를 강조하며 군사를 모든 국사에 앞세울 것을 강조하였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군의 정치사상적 준비에 깊은 관심을 돌리며 1995년 1월 1일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를 출발점으로 고난의 행군을 “선군의 기치”로 돌파해 나갔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1996년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장에서 인민군이 보여준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을 “혁명적 군인정신”이라 명명하고 이를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돌파할 사상적 핵으로 제시하였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이어 국방공업을 중심으로 농업과 경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시대 경제노선을 확립하고 국방공업 강화에 커다란 관심을 돌렸다.
바로 컴퓨터 수치제어가공방식인 CNC 공작기계가 1990년대부터 연구개발되기 시작하였다.
CNC 공작기계는 북한의 기계공업을 질적으로 한 단계 혁신시키는 사업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드러내고 있는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대륙간 탄도미사일,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고 있는 핵능력들은 모두 CNC 초정밀 공작기계가 과학기술적으로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기에 북한의 핵개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은 전적으로 선군정치와 CNC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3. 선군정치는 북한발전의 원동력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강요된 사상초유의 경제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하고 북한경제를 발전시켜나가는 힘이다.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심화발전시켜 인민군대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이어나간다는 선군정치, 선군영도방식을 확립하고 선군정치를 통해 북한을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 핵강국으로 만들어 전반적 국력을 일신시켰다.
그리고 선군의 혁명전통을 이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북한의 지도사상으로 김 일 성-김 정 일주의를 정식화하고 자주의 길, 사회주의의 길과 더불어 선군의 길을 선언하며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방식을 계승발전해가고 있다.
선군의 방식에 기초해 천만군민을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비롯한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단결시킨 결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소련도 굴복하고 말았던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이겨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게 핵전쟁 발발의 분분초초를 다투는 생의 가장 고달픈 순간을 체험케하고 미제국주의의 핵전쟁 야망을 여지없이 꺾어버렸다.
물론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발사를 늦추었다고 해서 북-미 대결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은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전 영역에 걸친 총력대결의 형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북아 정국의 주도권은 이미 평양으로 기울었으며 앞으로도 미국을 핵으로 꺾은 북한이 어차피 향후 정국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어 있다.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일본의 이지마 내각관방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최룡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김계관 제1부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며 지금의 대화국면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북한의 강화된 국력은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이 갈고 닦아온 선군정치의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높은 정치군사적 안목으로 북한의 국력을 종합적으로 이끌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크기는 작지만 국제정치무대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큰 나라들을 상대로 굴함없는 자주외교, 선군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한 북한은 천하제일강국이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여러 발전상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바로 선군정치이다. 국제사회는 김 일 성 주석의 군중시사상과 김 정 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올바로 연구하고 이를 구현해나가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선군영도에 주목해야 향후 북한과의 관계를 옳게 설정할 수 있다. 바야흐로 세계가 제국주의 시대에서 선군에 의한 자주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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