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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20.《온서장》이 택한 길 - 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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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6-13 08:06 조회1,5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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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서장》이 택한 길

최  현                    


1937년 봄이였다.

당시 우리 부대는 소탕하에서 적들을 무찌른 후 무송현 두도화원부근에서 활동하고있었다.

두도화원은 당시 몽강현에서 무송쪽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 약 30리가량 나오다가 서남으로 뻗은 험악한 골짜기를 반나절이나 걸어가야 있는 자그마한 산간부락이였다.

마을에는 위만경찰분서가 있었다. 내가 말하려는 온서장이란 바로 이 경찰분서의 온가라는 분서장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의 적극적인 활동에 겁을 집어먹은 일제놈들은 1936년에 이 깊은 두메산골에까지도 집단부락을 만들었다.

이곳저곳에서 부대를 일구고 짐승잡이, 약초캐기 등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가던 부근인민들은 일제의 총검에 눌리여 부득불 집단부락의 울타리안에 갇히였다.

어마어마하게 쌓아올린 토성 그리고 네 귀에 불뚝 솟은 포대는 이곳 인민들을 옴짝 못하게 노려보는듯 삼엄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정찰해본바에 의하면 온서장 이하 10여명의 위만경찰들은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그 일대에서 매일과 같이 일제와 그 주구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있었기때문이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공산군이 위만경찰서를 불의에 습격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온서장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 땀을 흘리군 하였다.

그럴 때마다 의례히 그는 이마를 찡그리고 불안에 싸여 자기에게 닥쳐올 위험에 대하여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집단부락이니 《십가련좌법》이니 뭐니해도 《신출귀몰》하는 《공산군》을 당해내는 재간이야 있나.)

이렇게 생각한 그는 큰 성시같은것도 하루밤사이에 감쪽같이 녹아나는 판인데 하물며 심심산골짜기에 있는 경찰분서 같은것이야 지나가는 바람에 다쳐만 놓아도 날아나고 말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온서장은 한편으로 갑자기 출세한 자기 처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였다.

그는 겨우 얻은 자리가 분서장이였다. 그러나 정작 그 자리에 올라 앉아봐도 일제놈들에게 수모를 당하기는 한가지였다.

이러한데로부터 차츰 불만이 생긴 그는 또 같은 민족끼리 물고 뜯고 하거나 남의 등을 쳐먹는것은 원래 자기 성미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심정을 모르는데 《공산군》이 어떻게 알아줄리 있는가고 혼자 고민하였다.

더우기 소탕하에서와 두도화원의 코앞인 쟈피거우에서 일제의 《토벌대》가 몽땅 녹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송곳방석에 앉은듯 안절부절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는 당장 경찰분서장의 벼슬을 그만두거나 스스로 유격대를 도울 사람은 못되였다. 집단부락내에서는 그래도 자기 말이면 통하지 않는것이 없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그는 간이 콩알만해서 그날그날을 보내고있었다.

우리는 그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연구해보았다. 물론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경찰분서쯤을 치는것은 문제도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유격대를 도와나서게끔 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것은 그가 처한 처지로 보아서도 가능한 일이였고 더우기는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당겨야만 두도화원에서 군중공작을 자유롭게 전개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마을에는 200여호가량의 주민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오자 인차 마을에 반일회를 조직하였었다.

그런데 하루는 반일회장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그가 식량을 지고 부락을 빠져 산모퉁이에 다달았을 때였다. 원쑤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산굽이를 돌아서자 경찰분서장과 마주쳤다. 당황한 그는 그냥 앞으로 갈수도 뒤로 물러날수도 없어 그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런데 분서장은 그를 만나자 《거, 밭이 멀어 수고를 하는군.》하고는 그의 아래우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반일회장은 분서장이 자기의 등짐을 보자고 우락부락 덤벼들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모른다는것이였다.

이러한 사유를 들은 우리는 반일회장에게 아무 념려말고 계속 공작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이것은 벌써 우리 공작원들에게 경찰분서를 장악하라고 과업을 준 후였기때문이다.

두도화원의 위만경찰들이 유격대의 적극적인 활동에 매우 겁나하는 기미를 안 우리는 이미 온서장에게 마을사람들의 행동을 구속하지 말것을 엄격히 명령하는 쪽지를 보냈던것이다.

온서장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땅이 꺼지게 한숨만 짓고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마을사람들을 될수록 좋게 대해주며 그들의 외부출입도 눈을 감아줘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만약 상부에서 요구하는대로 백성들을 대했다가 그들이 유격대에 알리기만 하면 모든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반일회장이 식량을 지고 가는것을 보고 말을 못한것도 바로 그때문이였다.

그의 이와 같은 립장은 점차 부하들에게도 미치지 않을수 없었다. 겁에 질린 경찰들은 분서장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은근히 기뻐했다.

우리는 사업을 한계단 더 전진시키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의 민족적량심을 계발시켜 우리를 의식적으로 돕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지휘부의 간부들과 토의한 후 어느날 그에게 두번째의 편지를 보내게 하였다.

점심을 먹고난 온서장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자기 방에 돌아왔다.

그는 무심히 책상우에 놓인 편지겉봉을 째고 속지를 펼쳐들었다.

편지를 보던 그의 안색은 갑자기 파랗게 죽어가며 두손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젠 볼장을 다 봤구나.》

그의 머리에는 어디선가 유격대가 경찰서를 치기전에 사전통지를 하고 그날에 쳤다더니 이제 틀림없이 자기들을 칠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혹시 잘못본것이나 아닌가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두눈을 크게 뜨고 편지를 계속 내리읽기 시작했다.

그때 편지에 쓴 내용인즉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이 편지를 받고 절대 놀랄 필요는 없다고 보오. 우리는 당신이 비록 경찰분서장이기는 하나 민족적량심은 잃지 않고있다는것을 알고있소.

나라의 한 부분을 왜놈들에게 빼앗긴 중국사람으로서 당신은 자신이 영원히 반역의 길을 걷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민의 편에 서느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야 할 엄숙한 순간에 처하였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이제라도 늦지 않소. 하루속히 자기의 죄과를 뉘우치고 인민의 편에 서야 하오. 우리는 당신의 과거에 대하여 추궁하려고는 하지 않소.

당신이 만약 자기 나라의 운명과 자기 인민에 대하여 잊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을 걸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당신도 아다싶이 항일유격대는 중국사람을 치지 않소. 우리의 적은 남의 땅을 강점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요.

우리는 당신이 앞으로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민의 편에 튼튼히 서있기를 바라오.

그리고 한가지 전할것은 오는 일요일 낮에 ○○지점에서 만날수 없겠는지.

이것만은 당신의 결심에 맡겨두오.

당신의 신변을 위하여 편지는 본 뒤에 곧 소각하는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되오.》

편지를 보고난 온서장은 유격대에서 자기와 만나자는것으로 하여 다시 깊은 사색에 잠겼다.

그는 생각하기를 (혹시 이것은 나를 외딴 곳에 불러다가 일제놈들에게 충실한 경찰분서장이라고 감쪽같이 해치우자는것이 아닌가.)하고 고민을 하였다. 오래동안 일제놈들의 악선전에 물젖은 그로서는 이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그는 약속한 장소에 찾아가기도 겁나고 그렇다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로 인하여 이후에 미칠 일이 또 걱정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 결심을 내리지 못한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게로 그날부터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이 내막을 모르는 의사의 진찰이며 안해의 간호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마침내 때식도 잠자는것도 잊고말았다. 오직 한가지 생각만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약속한 날자가 박두했다.

온밤을 뜬눈으로 새운 온서장은 앉았다누웠다 하며 식은땀만 줄줄 흘렸다. 그는 편지를 10번도 더 읽어보았다.

드디여 날이 밝았다.

생각에 골몰하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이 순간 그의 머리에는 편지에 담긴 몇구절의 글발이 번개같이 스쳤던것이다.

《항일유격대는 중국사람을 치지 않소.》

그는 몇번이고 이 말을 곱씹어외웠다. 마침내 결심을 내린 그는 마음을 든든히 먹고 안해더러 노루잡이를 갈테니 사냥총을 꺼내놓으라고 했다.

며칠동안 낟알을 입에 대지 않고 앓던 남편이 갑자기 아침일찍부터 사냥을 간다니 안해는 몹시 놀라며 한사코 만류하였다.

그는 안해의 말은 듣는둥마는둥 끝내 자기 고집대로 렵총을 가지고 문밖에 나섰다. 그러나 약속한 지점이 점점 가까와지자 발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그는 길섶에 우뚝 멈춰선채 다시 생각에 잠기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게 정신이 있나. 거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덤벙덤벙 찾아간담.》

그는 오던 길을 도로 돌아섰다. 그러나 착잡한 생각에 엉켜 걸음을 옮겨놓을수 없었다.

(내려가야 별수 있나. 그렇게 우쭐대던 일제놈들도 꿈쩍 못하는 판인데 기왕 일이 이렇게 된바에야 죽든지 살든지 만나야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돌아서 약속한 장소로 향하였다.

이날 우리는 온서장을 만났다. 우리를 처음 만난 그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어려있었다.

우리는 곧 그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대하며 그가 마음을 놓도록 하였다. 우리 동무들로부터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들은 후 비로소 모든것을 깨달은 온서장은 그제야 자기의 그릇된 생각을 뉘우치게 되였다.

《참, 내가 어리석기루 짝이 없는 놈이지요.》하고 그는 그때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였다.

《나는 방금전까지도 당신들이 나를 붙잡으면 죽이는줄만 알았소다. 글쎄 거저 백성이라면 몰라도 나같이 경찰분서장노릇까지 하면서 죄를 진 놈을 그냥 놔둘리 있겠는가고 생각했소다.

그러니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다 마지못해 왔습지요. 나는 이제야 당신들에 대해 똑똑히 리해했습니다. 왜놈들이 새빨간 거짓말을 했지요. 참, 내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덤볐지요.》

그리고 자기를 허물없이 대해준 우리에게 그동안 밥도 안먹고 고민하던 이야기를 했다. 이때 우리 공작원들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당신의 과거를 따지려고는 하지 않소.

당신이 과거에 인민을 배반하고 놈들을 방조했다 하더라도 오늘에 와서 그것이 잘못되였다는것을 뉘우친것만 하여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오.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소. 놈들의 학정밑에서 고통받는 인민들을 보살펴주어야 하오. 당신이 자기 인민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있다는것을 알고 그를 돕기 위해 지성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이상 훌륭한것이 없소.》

그러자 그는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나는 이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똑똑히 알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요. 허나 너무 덤벼서는 안되오.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오늘부터 당장 경찰분서장자리를 집어치우고 혁명군에 참가하라는것은 아니요. 당신에게는 또 당신으로서 할일이 있소.》하고 우리는 공작상 그가 현재의 그 위치에 형식적으로 이름을 걸어놓고 내막으로는 우리를 적극 도와나서야 한다는것을 말하였다.

온서장은 우리의 의견에 전적인 지지를 표하였다. 우리는 그와 앞으로 왜놈들 몰래 자주 만날것을 약속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 대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온서장은 자기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유격대를 도왔다. 그는 경찰들을 데리고 낮이면 산에 《유격대의 행처를 알아보러 간다.》고 소문을 퍼쳐놓고 우리에게 찾아와서는 지고온 탄알을 두고 돌아갈 때에는 꿰진 배낭과 모자를 몇개 가지고 갔다. 그리고는 상급에 《오늘 아무 지점에 유격대 몇명이 돌연히 나타났는데 몇시간에 걸친 전투결과 아군의 손실은 없음. 소비한 탄알은 얼마.》하고 그럴듯이 가짜보고를 하였다.

온서장이 두도화원인민들의 외부출입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눈을 감아주게 되자 그곳 농민들과 유격대와의 련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그들은 수차에 걸쳐 소금과 식량 등의 물자를 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온서장을 만날 때마다 유격대의 투쟁업적과 혁명의 전망에 대하여 그가 알아듣기 쉽게 계속 이야기해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처음에는 자기의 목숨이 두려워서 그러던 그가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옳은 길을 걸으며 단 하루를 살아도 깨끗이 살아보려고 결심하게 되였다.

가슴에서 우울증이 가셔진 온서장의 생활은 달라졌다. 그는 유격대와 련계를 맺고 혁명의 편에 섰다는데서 큰 보람을 느끼였다.

자기의 정체가 일제놈들에게 발각되면 엄벌을 받는다는것도 그는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편에 선 그는 그에 대해서는 겁내지 않았다.

그후 인차 장백에 나온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어디에 가나 다시는 일제놈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으리라는것을 믿었다.

그때로부터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두도화원에서 있은 일을 생각할 때면 의례히 온서장의 그후 소식을 몰라 몹시 궁금하였다.

그러던중 얼마전에 온서장이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우리와 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은데 대하여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일제놈들은 온서장을 경찰분서장의 자리에서 철직시키고 어딘가 멀리로 강제로동에 끌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역경속에서도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 자신의 행복과 자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정력을 다하여 일하고있으며 생활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있는것이다.

온서장이 걸어온 길을 생각할 때 나는 자연히 오늘 미제의 강점밑에 있는 남조선의 경찰에서 복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지 않을수 없다. 아마 모름지기 그들중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사람들은 지난날 온서장이 그런것처럼 먹고 살기 위해 그런 일을 하리라고 본다.

오늘 남반부에 조성된 정세는 그들에게 자기의 운명과 전도에 대하여 결정하여야 할 엄숙한 순간이 닥쳐왔음을 말해주고있다.

아직도 늦지 않다. 만약 그들에게 사소한 민족적량심이라도 있다면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한시바삐 인민의 편으로 넘어와서 미국놈들을 내몰며 파쑈분자들을 타도하는 투쟁에 용감히 나서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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