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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8. 군중을 설복교양하여 - 박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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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4-29 13:04 조회1,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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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을 설복교양하여

박  성  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하시였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

이 교시는 항일유격대의 철저한 혁명적군중관점이며 행동의 지침이였다.

우리 유격대가 일제의 가혹한 파쑈테로통치의 암담한 시기에 15성상이란 기나긴 세월을 적들과 싸워 승리를 쟁취할수 있은것은 오직 인민을 믿고 그들에게 철저히 의거함으로써 그들의 열렬한 지지성원을 받았기때문이다.

유격대원들은 그 어떤 곤난과 시련속에서도  자기들을 승리에로  령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며 유격대를 적극적으로 지지성원하는 인민이 있기때문에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싸워왔다.

1935년 우리 부대가 신선동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할 때에 있은 일이다.

이해 음력 정월보름을 앞둔 어느날, 나는 로두구를 중심으로 적후공작을 할데 대한 임무를 받았다.

공작소조는 나를 책임자로 하고 3명으로 조직되였다.

우리가 가기로 한 로두구는 철도연선도시로서 거기에는 일본군, 위만군, 경찰, 《자위단》 등 적들이 둥지를 틀고있었다. 특히 이곳 적들은 보름전에 우리 부대에 의하여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한 후 겁에 질려 병력을 더 증강하고 삼엄한 경계망을 쳐놓고있었다.

이와 같은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들어가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고도로 되는 혁명적경각성과 은밀성, 적정에 대한 신속한 판단, 대담성과 용감성, 조성된 환경에 적응한 령활한 행동, 특히 철저한 위장 등이 필요하였다.

우선 우리들은 로두구지대에 탄광들이 있는것을 고려하여 탄광로동자로 가장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출발에 앞서 공작나갈 지대와 그곳에 있는 탄광형편들을 료해하고 비상용으로 미시가루를 준비해가지고 떠났다. 우리 세사람은 모두 함께 도로로 걸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세사람이 같이 걸으면 곧 우리의 군인동작으로 정체가 드러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되도록 서로 떨어져 걸었다.

떠난지 2일만에 우리는 로두구근방에 이르렀다. 도중에 우리는 자위단과 일제경찰놈들을 만났으나 놈들은 우리를 로동자로 보았던지 아무말없이 지나치군 하였다.

그러나 공작과정에 우리가 탄광구역을 벗어나게 되면서부터는 옷차림새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 지대에서는 농민으로 옷차림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러나 농민옷이 없는 조건에서 당장 옷차림을 바꾸기도 어려운 일이였다.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끝에 이렇게 결심하였다.

(우리의 주위에는 우리가 떨어져서는 살수 없는 인민들이 있지 않는가. 그들은 우리를 성심성의로 도울것이다. 인민들과 우리 일을 의논해보자.)

그리하여 우리는 인민들을 찾아 떠났다. 얼마후 산골짜기에 자리잡고있는 인가를 발견한 우리는 그곳으로 은밀히 접근하여 동정을 살펴보았다.

방안에서는 로인과 청년들의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집안식구들인지 그렇지 않으면 딴 사람들도 섞여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우선 이것을 확인해보아야 했다.

방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한참동안 엿들었으나 무슨 말인지 분간할수가 없어 나는 주인을 조심히 찾았다. 그러자 방안에서 《누구요?》 하고 로인이 문을 열었다. 순간 나는 얼핏 곁눈으로 방안을 살폈다. 방안에는 로인외에 젊은이가 셋이나 있었다.


나는 이 젊은이들이 모두 이 집 식구들인지를 알아 보기 위하여 로인에게 《아래집 주인이 여기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넘겨짚어 물었다. 로인은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더니 《야 큰 애야, 저 웃집에 가봐라. 아래집 주인이 계신지.》하면서 젊은이를 웃집에 보내려고 하였다.

방안에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그의 아들인것 같았다. 젊은이를 웃집에 보내려는것을 우리가 만류하자 로인은 《무슨 볼일인지 하여튼 들어들 오슈.》하고 우리를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딘가 우리를 수상하게 여기는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로인에게 공손한 어조로 《여기 사시는지 오래 되십니까?》하고 물어보았다.

《예, 오래지요. 그런데 당신들은 무슨 일이 있어서 오시였는지요?》 로인은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주저할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로인님과 무엇을 좀 의논하자고 찾아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을 떼자 로인은 약간 당황해하면서 젊은이를 시켜 밖에서 짖어대는 개를 불러들였다.

우리는 지방의 형편과 로인네가 살아나가는 생활처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인민이 아름다운 조국강토를 버리고 이처럼 멀리 이국땅 산골에까지 와서도 일제놈들의 등살에 헐벗고 굶주림을 면할수 없다는것과 우리 인민들이 이런 처지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강도 일제놈들을 몰아내야 한다는것 등을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말을 듣고앉았던 로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무엇인가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잠시후 그는 《나도 의병때 한바탕 해보다가 이리로 왔소만…》하고는 말을 채 맺지 않고말았다.

나는 로인에게서 민족적의분이 일어나는것을 감촉할수 있었다.

《독립운동을 해야지, 그러나 아직은 시기상조야, 젊은 혈기들은 좋지만, 헌데. …》 하고 로인은 말을 하다가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또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로인앞으로 다가앉으면서 《옳은 일은 해야지요, 저희들이 하다가 죽으면 또 저희 후손들이 해야 할것이 아닙니까?》

《글쎄, 그게 언제 성공하겠소.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요?》

《아니올시다. 저희들이 싸우는 동안에 성공하는 시기가 꼭 옵니다. 그러나 저절로 오는것은 아닙니다.》

로인은 아무 말도 없이 담배만 뻑뻑 빨고있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어떠한 감정의 파도가 이는지 심각한 표정이였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은 후 나는 로인에게 우리가 맡은 임무실행에서 부닥친 애로들을 말하면서 방조를 간곡히 요청했다. 그 로인은 마치 무엇인가 마음에 짚이는듯 우리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하는것이였다.

이때 나는 매우 섭섭한감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한편 고쳐 생각해보았다. 필시 이 로인이 옷을 거저 달라는줄로 알고있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 《댁에서는 돈을 가지면 다시 해입으실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돈을 받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고 돈 20원을 내놓았다.

그 로인은 우리들을 번갈아보더니 담배대를 고쳐 물고 《돈이 문제돼서가 아니라네.》 이렇게 말하며 로인은 돈을 도로 내미는것이였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후환이 있을가 겁내서가 아닐가?)

《후의 문제는 걱정마십시오. 저희들은 절대로 비밀을 지킵니다. 또 설사 무슨 일이 생긴다쳐도 이것은 곧 조선독립을 위한 혁명사업에 이바지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한게 아닙니까.》하고 말했다.

로인은 묵묵히 앉아서 힐끔힐끔 우리들의 안색을 살피는것이였다. 나는 그때에야 비로소 이 로인이 우리를 일제놈들의 밀정으로 의심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당시 일제놈의 밀정들이 유격대로 가장하고 싸다니면서 인민들의 집에 들어가서는 인민들을 해쳤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제와 그 주구들의 죄악에 대하여서와 조선인민의 처지를 반복해설하면서 특히 당시 여론이 자자했던 로두구전투행정과 유격대의 전과에 대한 통쾌한 이야기 등을 말해주었다.

로인의 얼굴에는 점차 희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우리에게 속심을 주지는 않았다.

나는 이때 군중에 대한 나의 설득력과 감화력이 미약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로인을 꼭 설복시키고야말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내가 총을 메고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에 참가하게 된 동기를 조선인민의 처지와 결부시켜가면서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로인은 처음보다 더욱 흥분해졌다. 잠시후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나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사실 난 왜놈들의 밀정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소. 얼마나 고생들 하오.》 그리고 그는 자기 며느리를 불러 당장 밥을 시켰다.

며느리는 바삐 서두르며 밥을 지었다. 우리를 완전히 리해하게 된 로인은 이때에야 비로소 속에 품었던 말을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전에 의병에 참가했다가 이곳으로 피해와 있으면서 독립군을 도와준 이야기와 그리고 홍범도에 대한 이야기 등을 신이 나서 말했다. 그는 며느리를 시켜 조선옷(아들의 바지저고리) 3벌을 가져다 우리에게 내여주었다.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나 친자식과 같이 이처럼 사랑하고 도와주는 인민들속에서 살며 싸우고있다는것을 생각했을 때 이들모두가 나의 친부모와 같이 여기여졌다.

나는 로인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돈을 내밀었다. 이때 로인은 《우리가 돈을 받을것이라면 애당초 당신들에게 옷을 내놓지도 않았겠네.》하며 펄쩍 뛰였다.

그 바람에 나는 또다시 그에게 한참이나 이야기해야만 하였다.

이날 우리는 이 집에서 묵으면서 앞으로 활동하게 된 지역과 그곳 적정을 좀더 자세히 파악하고 활동하기로 하였다.

로인은 우리가 어디서 쉬는것이 안전하겠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던 끝에 뒤고방을 리용하게 해주었다.

그는 며느리에게 뒤고방을 치우게 하고 우리를 안내했다. 뒤고방은 문이 셋이나 되여 유사시 행동하기에도 아주 편리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집 며느리가 정성들여 지은 조밥과 무우통김치와 그리고 구수한 된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유격대생활에서 된장을 먹어본다는것은 드문 일이였다.

식사가 끝난 후 우리들이 옷을 갈아입고 뒤문을 열어보니 그 앞에는 조짚단을 세워서 방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해놓았었다.

그리고 이 집 식구들은 우리의 신변을 념려하여 추운 겨울날에도 종일토록 마당에 나서서 마당질을 하는척 하면서 보초를 서주었다.

우리는 안심하고 뒤고방에서 앞으로의 행동을 토의했다. 우리의 계획에는 먼저 청가란 대지주놈이 살고있는 부락에 가기로 되였었다.

우리는 이 집 로인을 통하여 이 지대에 대한 형편을 더 알아보고 다음날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로인에게 우리가 가야 할 지점과 그곳 형편을 물었더니 그는 로두구전투가 있은 이후 청지주란놈이 사는 부락에도 경계가 더욱 심해져서 그대로 가기 어려울것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먼저 가서 적들의 눈을 피할수 있는 지점들을 세밀히 알아가지고 오겠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로인은 바삐 서둘러 떠났다.

로인은 밤 10시경에 돌아왔다. 그는 갔다온 경과를 말하면서 도중에 적들을 경계해야 할 곳들을 일일이 알려주었다.

우리들은 이 집에 있는 기간에 로인을 비롯한 이 집 식구들을 교양하여 반일회에 가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보름날 저녁에 그 집을 떠나게 되였다.

이 집 식구들은 우리에게 몸주의하여 하루속히 원쑤들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을 머금고 말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인민들과 긴밀한 련계를 맺고 싸우는 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굳은 신심과 용기를 더욱 얻었다.

우리는 그들의 리익을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야 한다는 결의도 드높이 공작지역을 향하여 발걸음을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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