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7. 조국광복의 홰불 - 황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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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4-27 10:04 조회1,8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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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광복의 홰불
황 금 옥
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무송방향으로 떠난것은 1936년초였다. 무송이나 장백이 서간도땅이라는것만 알고있던 내가 산발을 타고 행군하는 도중에 겪은 고난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를 만나뵙는다는 기쁨과 조국의 국경지대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흥분으로 하여 나는 밤낮을 이어가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무송현 다진창부근의 어느 마을에서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것은 그해 음력 6월 초순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때 부대를 인솔하시고 서강방면으로 떠나시는 바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초행에 먼길을 찾아오기에 수고를 했소.》라고 하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앞으로 중요한 사업을 담당하게 되니 다시 련락이 있을 때까지 다진창에서 후방병원사업을 협조하면서 장백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장복동무와 나는 다음날 병원으로 찾아갔다. 6개월간 줄곧 지고다니던 배낭을 벗어놓으니 한결 몸도 가벼웠고 친정집에나 온것처럼 반가왔다.
다음날 아침식사때 나는 새로운 기쁜 소식에 접하였다.
그것은 이해 5월 5일에 있은 동강회의에서 조국광복회를 창립하는 선언과 10대강령이 발표되였으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회장으로 추대되시였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동무들로부터 벌써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회의가 끝나자 각 부대들과 각처에 발송되였다는것까지 알게 되였다.
나는 아침식사를 끝낸 즉시로 동무들에게서 10대강령을 빌려가지고 그것을 썼다.
(생소한 지대에 진출하여 사업할 준비를 하라는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이 바로 이 10대강령에 대한것이였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날부터 10대강령의 한조항한조항의 뜻을 새겨가며 통달하기 시작했다. 열번, 스무번, 어떤 때는 환자들의 옷을 빨아 풀밭에 널어놓고는 그 옷을 농민으로 대상하고 선전도 해보았으며 산나물을 캐러가 쉬는 참에는 아름드리 이깔나무나 바위를 부녀들로 가정하고 혼자서 말을 주고받으며 강령을 조항마다 해설침투하는 련습도 해보았다.
나는 짬만 있으면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학습했다. 그리고 병원일을 돕는 한편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농민들에게 강령을 침투시키면서 사령부의 련락병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았던 장질부사에 걸려 한동안 고생하다나니 그해말에야 장백으로 떠나게 되였다.
나는 10여명의 동무들과 함께 다진창을 떠나 12월 그믐날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장백현 곰의골밀영지에 도착하였다.
사령부에 도착한 다음날은 음력으로 정월초하루날이였다. 아침해가 뜰 무렵에 김일성동지께서 부르신다는 련락을 받고 나는 그이께서 계시는 귀틀집으로 갔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의 조직망을 장백지구는 물론 국내깊이까지 확대강화할데 대하여서와 백두산근거지창설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에게 우선 장백지구의 지리와 주민들의 사상동태를 잘 료해한 후에 권영벽동지의 지도를 받으며 사업하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이 영예로운 임무를 받은 나는 권영벽동지와 함께 20도구에 있는 리제순동지의 집에 머물렀다가 17도구(왕가골)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는 새 생활이 시작된것이였다. 총대신에 호미를 손에 들었고 조선사람들이 나아갈 길을 등대처럼 환히 밝혀주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가지고 군중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우며 적의 심장부를 뚫고 전진하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였다.
《사령관동지는 무장대오를 조직하시던 첫날부터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잊으신적이 없었소. 어떤 회의에서나 또는 군중들과의 담화에서도 오늘 우리가 사업하여야 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위대한 정신을 항상 말씀하셨소. 바로 이 사상이 사령관동지의 뜻이며 10대강령은 곧 인민들의 마음이며 그들의 앞길을 밝혀주고 투쟁에로 나가게 하는 둘도 없는 무기요. 앞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알수 있지만 지금 이미 조직에 망라된 군중들은 그 열의가 대단하오.》
권영벽동지는 일단 말을 끊고는 일어나서 불빛이 밖으로 새여나가지 못하도록 문에다 가림막을 쳤다.
그는 이때 이미 조직된 조국광복회조직망과 앞으로 부녀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먼저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를 경계하고 누구와 련계를 가져야 한다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책까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특히 주의할것은 조국을 눈앞에 바라보는 국경지대에서 원쑤들의 발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므로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는것을 두세번 반복하여 말하였다.
나는 다음날부터 장백현일대의 정형을 료해하기 시작하였다.
장백현에 거주하는 주민의 90%이상이 화전민이며 소작농이였다.
《서간도땅은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은 먹는데 물고기는 바가지로 퍼서 잡고 노루나 사슴 같은 산짐승도 사람을 보고 뛰지 않는대.》
누가 펼쳐놓은 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제주도에서까지 이 소문을 듣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일제의 검은 마수가 뻗쳐 가난은 그들의 뒤를 그림자처림 따라다녔다.
그러므로 장백지대는 주민들의 계급적구성이 좋았으며 대하는 사람마다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고향을 그리워 했고 일제를 반대하는 사상이 강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작성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여있는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투쟁의 불길을 지펴주었던것이다.
나는 지방정형을 어느정도 료해하고는 우리가 자리잡은 왕가골에서부터 부녀사업을 시작했다.
왕가골에도 촌장과 구장이 있었으나 50이 훨씬 넘는 리로인이 동리에서는 제일 권위가 있었다. 마을에서는 무슨 대사가 있어도 그를 상좌에 모시고 또 사소한 일이라도 그와 토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집에는 동리 부녀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데 경찰놈들도 이 집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리로인이 예수를 믿었기때문이였다.
나는 어느날 로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여서 예수를 믿는 아낙네들과 2~3명의 남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있었다. 내가 자진하여 례배에 참가했다고 그들은 모두 반가와했다. 례배모임이 끝난 후 리로인은 《세상에서 우리가 산다는것은 나그네와 같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가 흘린 피로 죄를 씻으면 후세 령혼은 천당에 가서 영생할수 있으니 같이 예수를 믿자.》는것이였다.
나는 이날 로인의 말을 도중에서 막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이날 밤 집으로 돌아오니 권영벽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장백현에는 종교인들도 적지 않소. 그런데 그들중 많은 사람은 일제놈들의 기만선전에 넘어가 동요하고있소. 그러니 우리는 10대강령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쳐주고 쟁취해야 하오. 우리가 10대강령을 두번세번이 아니라 백번천번이라도 해설하고 또 해설하면 군중이 반드시 우리를 따라오게 될것이요.》
나는 다음날 점심때가 지나서 다시 로인의 집으로 갔다. 마침 리명수전투가 있은 며칠후이라 로인의 눈치를 보다가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님, 리명수가 어딘지 그곳에서 일제놈들이 김일성장군님부대한테 몽땅 녹아났다는 소문이 자자하군요. 리명수라는데가 어딘가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리로인은 미투리를 삼던 일손을 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들도 참 입이 빠르군. 내가 오늘 아침에야 소식을 들었는데.》하며 리명수의 방향을 가리켜주고는 《왜놈들이야 하루에 몇천몇만씩 녹아난대두 우리에게 손해날것은 없지. 그러나 입을 잘못 놀리다가는 이 동리가 뿌리빠지오.》하면서 그런 말을 함부로 돌리지 말라는 주의를 주는것이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다시 물었다.
《성경책에는 원쑤도 사랑하라고 했다지요, 아버님.》
《그랬지.》
《그럼 조선사람의 원쑤는 강도일제놈들인데 그놈들을 사랑해야 하나요? 그놈들의 총에 맞아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어머니도 잃고 고향에서 쫓겨나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놈들에게 복종해야 하나요?》
이렇게 내가 묻자 로인은 금방 자기가 한 말도 있고 하여 아무 대답을 못하고 한숨을 쉬며 묵묵히 천정만 쳐다보고있었다.
나는 로인의 기분을 더 깊이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이날은 그냥 집으로 왔다가 다음날 저녁에 다시 갔다. 마침 놀러온 동리사람도 없고 하여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적힌 쪽지를 로인에게 내놓았다.
《무슨 편진가?》 리로인은 내가 어디서 온 편지를 보아달라고 가져온줄만 알고 돋보기를 끼고 큰소리로 내리읽었다. 그러던중에 얼굴색이 갑자기 달라지였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 이번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한조항한조항 내리보았다.
밖에서 개가 짖자 로인은 쪽지를 얼른 허리춤에 감추고는 큰 기침을 하고 문밖에 나갔다. 밖으로 나갔던 로인은 잠시후에 다시 들어왔다.
《어디서 이런것이 나왔소?》 로인은 자기 집 가족들에게도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아버님에게 드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뭐,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를 어떻게 아시게.》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이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는것도 다 알고계십니다.》
로인의 긴장된 얼굴에는 불그스레한 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 젊은이두 산에서 왔소? 장군님한테서.》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내가 몰랐군.》
그리고 로인은 10대강령 첫 조항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두번이나 읽는것이였다.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나는 다음날부터 리로인의 가족들에게 유격대의 투쟁목적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소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예수를 믿게 함으로써 피착취계급의 해방투쟁을 말살하려는 침략자들의 죄상을 실례를 들어가며 말하였다. 나는 리로인과 더욱 자주 접촉하였다. 그후 로인은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되였으며 로인을 통해 나는 그 집 어머니, 딸, 며느리를 17도구 부녀회에 망라시켰다.
부녀회를 조직한 후에 나는 부녀회원들속에서 10대강령을 한개 조항씩 완전히 료해하도록 구체적으로 침투시키는 교양사업을 진행하였다.
마을에는 조국광복회 회원들로 생산유격대가 조직되였다. 부녀들은 생산유격대에도 자발적으로 참가하였고 유격대에 보낼 위문품을 조직에서 지시하기전에 미리 준비했다가는 극비밀리에 가져갈 장소까지 운반해갔다.
이와 같은 사업을 통하여 그들 호상간의 단결이 한층 강화되고 유격대에 대한 신뢰의 정이 더욱 두터워졌다. 이것은 오로지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그들의 현실적요구를 옳게 반영한 위대한 사상이 깃들어있었기때문이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베개골에 두 늙은 내외가 있었는데 그들은 몹시 완고하여 좀처럼 마을사람들의 말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우리는 밀영에서 임무를 받고 신흥촌으로 내려올 때 그들을 교양하기 위하여 베개골로 찾아갔다.
두 내외는 상상외로 완고했다.
일제놈들의 죄악상을 이야기해도 《일본은 강하고 조선은 약하니까 어떻게 하겠는가.》고 하면서 착취당하는것이 응당한것처럼 생각하는것이였다.
《어머니, 나무 한가치는 꺾을수 있어도 여러개를 한데 묶으면 꺾을수 없습니다. 이것을 누가 묶는가 하면 김일성장군님께서 묶습니다. 어머니, 저 수레바퀴를 보세요. 수레바퀴는 살이 서로 힘을 합쳐서 받치고있기때문에 그 무거운 짐을 싣고도 굴러가는것입니다.
우리 조선사람들의 원쑤는 일제놈들입니다. 우리가 제 고장을 떠나서 이렇게 고생하는것도 일제놈들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일제놈들을 미워할 대신에 일제놈들을 무서워합니까.
김일성장군님을 받들고 싸워야 합니다. 서로 돕고 뭉치기만 하면 일제놈들을 이길수 있고 나라를 찾을수 있어요. 어머니는 이렇게 집에 계셔도 우리들과 마음만 같다면 그것이 다른게 아니라 한데 뭉치는것입니다.》
권영벽동지가 이렇게 말해도 로인들에게는 잘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로인은 덤덤히 앉아 담배만 피우고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가지고 한조항씩 알기 쉽게 로인들에게 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럼 농사도 제 땅에서 지을수 있단 말이요? 수세도 물지 않고.》
《그러문요, 땅의 주인은 밭갈이하는 농민이 되여야지요. 지주와 자본가가 없는 나라를 세우자는것입니다.》
《그렇게 되문야 무슨 걱정이 있겠소. 꿈같은 소리요.》
10대강령에 대한 해설이 거듭될수록 로인들은 점점 달라졌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였다.
《힘을 합치면야 안되는 일이 없지. 우리같은 늙은것들이야 뭘 하겠소만은 옛날 임진왜란때 행주산성싸움에서 녀자들이 치마에다 돌을 담아 싸운걸 생각하면 늙기는 했지만 아직도 왜놈들과 싸울수 있지. 우린 그저 장군님만 믿고 살지오다.》
나는 이날로 집으로 돌아와서 김일성동지께서 사업용으로 보내주신 돋보기와 바늘 한쌈을 두 로인에게 기념품으로 주었다. 이후부터 이 두 로인은 조국광복회의 회원으로 열성적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적들의 삼엄한 경비와 박해속에서 오늘은 고생스러워도 10대강령의 위대한 힘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의 승리에 고무된 인민들은 휘황찬란한 래일을 위하여 모든 곤난을 뚫고나가며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나섰다.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장백현 평강덕에서는 보천보전투가 있은지 한달후 김세옥청년을 위시하여 12명이 단번에 입대한 사실도 있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적통치기관은 물론 적들의 부대안에까지 침투되였다.
권영벽동지는 장백현 반절구경찰서 사법계장을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키웠으며 도천리에 주둔한 위만군 조패장과 13도구주둔 정안군 왕부대장도 10대강령의 사상으로 감화시켜 반일회 회원으로 되게 하였다.
내가 함흥감옥에 수감되여있을 때였다. 잡범으로 들어온 한 녀성동무는 손끝에서 피가 흐르는것을 씻어가며 벽에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새기였다. 그리고 흥분한 어조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뵈옵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싸우고계신다는것을 나는 10대강령을 공부하면서 잘 알았어요. 일제놈들의 고문이나 형벌을 받으면서 내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것이 아니라 조국광복회10대강령앞에 나는 지나온 생활을 총화하며 앞으로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것을 맹세해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위대한 사상은 당시 유격대가 활동하던 지역의 군중들은 물론 국내깊이까지 침투되였을뿐만아니라 적들의 감옥속에 갇히운 사람들에게까지도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던것이다.
내가 장백에 나와 사업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기간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얼마나 위대한 생활력을 가지고있는가를 심장깊이 느끼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신음하던 조선인민들에게 새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며 앞길을 휘황히 밝혀준 등대로 되였다. 실로 조국광복회의 빛나는 업적은 조선혁명에서 통일전선운동의 빛나는 전통을 이룩하였으며 혁명적당창건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축성하여놓은데 있다.
조국광복회산하에 집결된 각계각층의 애국적인민들은 10대강령을 받들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강대한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오늘 우리 인민은 바로 이 빛나는 혁명전통을 계승한 영광스러운 우리 당과 수령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조국의 통일을 눈앞에 바라보며 승리의 신심드높이 전진을 계속하고있다.
당과 수령의 두리에 강철같이 뭉친 이 위대한 힘을 가로막을자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혁명의 위업을 끝까지 달성하고야말것이다.
황 금 옥
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무송방향으로 떠난것은 1936년초였다. 무송이나 장백이 서간도땅이라는것만 알고있던 내가 산발을 타고 행군하는 도중에 겪은 고난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를 만나뵙는다는 기쁨과 조국의 국경지대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흥분으로 하여 나는 밤낮을 이어가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무송현 다진창부근의 어느 마을에서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것은 그해 음력 6월 초순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때 부대를 인솔하시고 서강방면으로 떠나시는 바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초행에 먼길을 찾아오기에 수고를 했소.》라고 하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앞으로 중요한 사업을 담당하게 되니 다시 련락이 있을 때까지 다진창에서 후방병원사업을 협조하면서 장백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장복동무와 나는 다음날 병원으로 찾아갔다. 6개월간 줄곧 지고다니던 배낭을 벗어놓으니 한결 몸도 가벼웠고 친정집에나 온것처럼 반가왔다.
다음날 아침식사때 나는 새로운 기쁜 소식에 접하였다.
그것은 이해 5월 5일에 있은 동강회의에서 조국광복회를 창립하는 선언과 10대강령이 발표되였으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회장으로 추대되시였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동무들로부터 벌써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회의가 끝나자 각 부대들과 각처에 발송되였다는것까지 알게 되였다.
나는 아침식사를 끝낸 즉시로 동무들에게서 10대강령을 빌려가지고 그것을 썼다.
(생소한 지대에 진출하여 사업할 준비를 하라는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이 바로 이 10대강령에 대한것이였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날부터 10대강령의 한조항한조항의 뜻을 새겨가며 통달하기 시작했다. 열번, 스무번, 어떤 때는 환자들의 옷을 빨아 풀밭에 널어놓고는 그 옷을 농민으로 대상하고 선전도 해보았으며 산나물을 캐러가 쉬는 참에는 아름드리 이깔나무나 바위를 부녀들로 가정하고 혼자서 말을 주고받으며 강령을 조항마다 해설침투하는 련습도 해보았다.
나는 짬만 있으면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학습했다. 그리고 병원일을 돕는 한편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농민들에게 강령을 침투시키면서 사령부의 련락병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았던 장질부사에 걸려 한동안 고생하다나니 그해말에야 장백으로 떠나게 되였다.
나는 10여명의 동무들과 함께 다진창을 떠나 12월 그믐날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장백현 곰의골밀영지에 도착하였다.
사령부에 도착한 다음날은 음력으로 정월초하루날이였다. 아침해가 뜰 무렵에 김일성동지께서 부르신다는 련락을 받고 나는 그이께서 계시는 귀틀집으로 갔다.
이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의 조직망을 장백지구는 물론 국내깊이까지 확대강화할데 대하여서와 백두산근거지창설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에게 우선 장백지구의 지리와 주민들의 사상동태를 잘 료해한 후에 권영벽동지의 지도를 받으며 사업하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이 영예로운 임무를 받은 나는 권영벽동지와 함께 20도구에 있는 리제순동지의 집에 머물렀다가 17도구(왕가골)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는 새 생활이 시작된것이였다. 총대신에 호미를 손에 들었고 조선사람들이 나아갈 길을 등대처럼 환히 밝혀주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가지고 군중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우며 적의 심장부를 뚫고 전진하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였다.
《사령관동지는 무장대오를 조직하시던 첫날부터 국내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잊으신적이 없었소. 어떤 회의에서나 또는 군중들과의 담화에서도 오늘 우리가 사업하여야 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위대한 정신을 항상 말씀하셨소. 바로 이 사상이 사령관동지의 뜻이며 10대강령은 곧 인민들의 마음이며 그들의 앞길을 밝혀주고 투쟁에로 나가게 하는 둘도 없는 무기요. 앞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알수 있지만 지금 이미 조직에 망라된 군중들은 그 열의가 대단하오.》
권영벽동지는 일단 말을 끊고는 일어나서 불빛이 밖으로 새여나가지 못하도록 문에다 가림막을 쳤다.
그는 이때 이미 조직된 조국광복회조직망과 앞으로 부녀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먼저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를 경계하고 누구와 련계를 가져야 한다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책까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특히 주의할것은 조국을 눈앞에 바라보는 국경지대에서 원쑤들의 발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므로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는것을 두세번 반복하여 말하였다.
나는 다음날부터 장백현일대의 정형을 료해하기 시작하였다.
장백현에 거주하는 주민의 90%이상이 화전민이며 소작농이였다.
《서간도땅은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은 먹는데 물고기는 바가지로 퍼서 잡고 노루나 사슴 같은 산짐승도 사람을 보고 뛰지 않는대.》
누가 펼쳐놓은 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제주도에서까지 이 소문을 듣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일제의 검은 마수가 뻗쳐 가난은 그들의 뒤를 그림자처림 따라다녔다.
그러므로 장백지대는 주민들의 계급적구성이 좋았으며 대하는 사람마다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고향을 그리워 했고 일제를 반대하는 사상이 강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작성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여있는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투쟁의 불길을 지펴주었던것이다.
나는 지방정형을 어느정도 료해하고는 우리가 자리잡은 왕가골에서부터 부녀사업을 시작했다.
왕가골에도 촌장과 구장이 있었으나 50이 훨씬 넘는 리로인이 동리에서는 제일 권위가 있었다. 마을에서는 무슨 대사가 있어도 그를 상좌에 모시고 또 사소한 일이라도 그와 토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집에는 동리 부녀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데 경찰놈들도 이 집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리로인이 예수를 믿었기때문이였다.
나는 어느날 로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여서 예수를 믿는 아낙네들과 2~3명의 남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고있었다. 내가 자진하여 례배에 참가했다고 그들은 모두 반가와했다. 례배모임이 끝난 후 리로인은 《세상에서 우리가 산다는것은 나그네와 같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가 흘린 피로 죄를 씻으면 후세 령혼은 천당에 가서 영생할수 있으니 같이 예수를 믿자.》는것이였다.
나는 이날 로인의 말을 도중에서 막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이날 밤 집으로 돌아오니 권영벽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장백현에는 종교인들도 적지 않소. 그런데 그들중 많은 사람은 일제놈들의 기만선전에 넘어가 동요하고있소. 그러니 우리는 10대강령을 가지고 그들을 깨우쳐주고 쟁취해야 하오. 우리가 10대강령을 두번세번이 아니라 백번천번이라도 해설하고 또 해설하면 군중이 반드시 우리를 따라오게 될것이요.》
나는 다음날 점심때가 지나서 다시 로인의 집으로 갔다. 마침 리명수전투가 있은 며칠후이라 로인의 눈치를 보다가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님, 리명수가 어딘지 그곳에서 일제놈들이 김일성장군님부대한테 몽땅 녹아났다는 소문이 자자하군요. 리명수라는데가 어딘가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리로인은 미투리를 삼던 일손을 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사람들도 참 입이 빠르군. 내가 오늘 아침에야 소식을 들었는데.》하며 리명수의 방향을 가리켜주고는 《왜놈들이야 하루에 몇천몇만씩 녹아난대두 우리에게 손해날것은 없지. 그러나 입을 잘못 놀리다가는 이 동리가 뿌리빠지오.》하면서 그런 말을 함부로 돌리지 말라는 주의를 주는것이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다시 물었다.
《성경책에는 원쑤도 사랑하라고 했다지요, 아버님.》
《그랬지.》
《그럼 조선사람의 원쑤는 강도일제놈들인데 그놈들을 사랑해야 하나요? 그놈들의 총에 맞아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어머니도 잃고 고향에서 쫓겨나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놈들에게 복종해야 하나요?》
이렇게 내가 묻자 로인은 금방 자기가 한 말도 있고 하여 아무 대답을 못하고 한숨을 쉬며 묵묵히 천정만 쳐다보고있었다.
나는 로인의 기분을 더 깊이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이날은 그냥 집으로 왔다가 다음날 저녁에 다시 갔다. 마침 놀러온 동리사람도 없고 하여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적힌 쪽지를 로인에게 내놓았다.
《무슨 편진가?》 리로인은 내가 어디서 온 편지를 보아달라고 가져온줄만 알고 돋보기를 끼고 큰소리로 내리읽었다. 그러던중에 얼굴색이 갑자기 달라지였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 이번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한조항한조항 내리보았다.
밖에서 개가 짖자 로인은 쪽지를 얼른 허리춤에 감추고는 큰 기침을 하고 문밖에 나갔다. 밖으로 나갔던 로인은 잠시후에 다시 들어왔다.
《어디서 이런것이 나왔소?》 로인은 자기 집 가족들에게도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직접 아버님에게 드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뭐,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를 어떻게 아시게.》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이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는것도 다 알고계십니다.》
로인의 긴장된 얼굴에는 불그스레한 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 젊은이두 산에서 왔소? 장군님한테서.》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내가 몰랐군.》
그리고 로인은 10대강령 첫 조항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두번이나 읽는것이였다.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나는 다음날부터 리로인의 가족들에게 유격대의 투쟁목적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소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예수를 믿게 함으로써 피착취계급의 해방투쟁을 말살하려는 침략자들의 죄상을 실례를 들어가며 말하였다. 나는 리로인과 더욱 자주 접촉하였다. 그후 로인은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되였으며 로인을 통해 나는 그 집 어머니, 딸, 며느리를 17도구 부녀회에 망라시켰다.
부녀회를 조직한 후에 나는 부녀회원들속에서 10대강령을 한개 조항씩 완전히 료해하도록 구체적으로 침투시키는 교양사업을 진행하였다.
마을에는 조국광복회 회원들로 생산유격대가 조직되였다. 부녀들은 생산유격대에도 자발적으로 참가하였고 유격대에 보낼 위문품을 조직에서 지시하기전에 미리 준비했다가는 극비밀리에 가져갈 장소까지 운반해갔다.
이와 같은 사업을 통하여 그들 호상간의 단결이 한층 강화되고 유격대에 대한 신뢰의 정이 더욱 두터워졌다. 이것은 오로지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그들의 현실적요구를 옳게 반영한 위대한 사상이 깃들어있었기때문이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베개골에 두 늙은 내외가 있었는데 그들은 몹시 완고하여 좀처럼 마을사람들의 말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우리는 밀영에서 임무를 받고 신흥촌으로 내려올 때 그들을 교양하기 위하여 베개골로 찾아갔다.
두 내외는 상상외로 완고했다.
일제놈들의 죄악상을 이야기해도 《일본은 강하고 조선은 약하니까 어떻게 하겠는가.》고 하면서 착취당하는것이 응당한것처럼 생각하는것이였다.
《어머니, 나무 한가치는 꺾을수 있어도 여러개를 한데 묶으면 꺾을수 없습니다. 이것을 누가 묶는가 하면 김일성장군님께서 묶습니다. 어머니, 저 수레바퀴를 보세요. 수레바퀴는 살이 서로 힘을 합쳐서 받치고있기때문에 그 무거운 짐을 싣고도 굴러가는것입니다.
우리 조선사람들의 원쑤는 일제놈들입니다. 우리가 제 고장을 떠나서 이렇게 고생하는것도 일제놈들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일제놈들을 미워할 대신에 일제놈들을 무서워합니까.
김일성장군님을 받들고 싸워야 합니다. 서로 돕고 뭉치기만 하면 일제놈들을 이길수 있고 나라를 찾을수 있어요. 어머니는 이렇게 집에 계셔도 우리들과 마음만 같다면 그것이 다른게 아니라 한데 뭉치는것입니다.》
권영벽동지가 이렇게 말해도 로인들에게는 잘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로인은 덤덤히 앉아 담배만 피우고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가지고 한조항씩 알기 쉽게 로인들에게 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럼 농사도 제 땅에서 지을수 있단 말이요? 수세도 물지 않고.》
《그러문요, 땅의 주인은 밭갈이하는 농민이 되여야지요. 지주와 자본가가 없는 나라를 세우자는것입니다.》
《그렇게 되문야 무슨 걱정이 있겠소. 꿈같은 소리요.》
10대강령에 대한 해설이 거듭될수록 로인들은 점점 달라졌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였다.
《힘을 합치면야 안되는 일이 없지. 우리같은 늙은것들이야 뭘 하겠소만은 옛날 임진왜란때 행주산성싸움에서 녀자들이 치마에다 돌을 담아 싸운걸 생각하면 늙기는 했지만 아직도 왜놈들과 싸울수 있지. 우린 그저 장군님만 믿고 살지오다.》
나는 이날로 집으로 돌아와서 김일성동지께서 사업용으로 보내주신 돋보기와 바늘 한쌈을 두 로인에게 기념품으로 주었다. 이후부터 이 두 로인은 조국광복회의 회원으로 열성적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적들의 삼엄한 경비와 박해속에서 오늘은 고생스러워도 10대강령의 위대한 힘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의 승리에 고무된 인민들은 휘황찬란한 래일을 위하여 모든 곤난을 뚫고나가며 우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나섰다.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장백현 평강덕에서는 보천보전투가 있은지 한달후 김세옥청년을 위시하여 12명이 단번에 입대한 사실도 있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적통치기관은 물론 적들의 부대안에까지 침투되였다.
권영벽동지는 장백현 반절구경찰서 사법계장을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키웠으며 도천리에 주둔한 위만군 조패장과 13도구주둔 정안군 왕부대장도 10대강령의 사상으로 감화시켜 반일회 회원으로 되게 하였다.
내가 함흥감옥에 수감되여있을 때였다. 잡범으로 들어온 한 녀성동무는 손끝에서 피가 흐르는것을 씻어가며 벽에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새기였다. 그리고 흥분한 어조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뵈옵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싸우고계신다는것을 나는 10대강령을 공부하면서 잘 알았어요. 일제놈들의 고문이나 형벌을 받으면서 내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것이 아니라 조국광복회10대강령앞에 나는 지나온 생활을 총화하며 앞으로 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것을 맹세해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위대한 사상은 당시 유격대가 활동하던 지역의 군중들은 물론 국내깊이까지 침투되였을뿐만아니라 적들의 감옥속에 갇히운 사람들에게까지도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던것이다.
내가 장백에 나와 사업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기간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얼마나 위대한 생활력을 가지고있는가를 심장깊이 느끼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신음하던 조선인민들에게 새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며 앞길을 휘황히 밝혀준 등대로 되였다. 실로 조국광복회의 빛나는 업적은 조선혁명에서 통일전선운동의 빛나는 전통을 이룩하였으며 혁명적당창건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축성하여놓은데 있다.
조국광복회산하에 집결된 각계각층의 애국적인민들은 10대강령을 받들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강대한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오늘 우리 인민은 바로 이 빛나는 혁명전통을 계승한 영광스러운 우리 당과 수령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조국의 통일을 눈앞에 바라보며 승리의 신심드높이 전진을 계속하고있다.
당과 수령의 두리에 강철같이 뭉친 이 위대한 힘을 가로막을자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혁명의 위업을 끝까지 달성하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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