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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에게 쌀은 예나 지금이나 목숨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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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꽹과리 작성일12-01-08 21:01 조회2,8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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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남원에서 소학교 교원을 했던 소중한 시절이 있다. 그 시절 내가 맡은 반에 형효순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지금도 이 분은<한국 농어촌여성문학>으로 많은 활동을하고 있다.

다음은 그녀가 <전북일보>에 투고했던 기사이다. FTA노래를 부르는 위정자들은 꼭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본문-

농민에게 쌀은 예나 지금이나 목숨줄입니다.
그런 쌀이 자꾸만 위협을 받는 정책때문에 속이 많이 상해서 썼던 글입니다.


통일댁

하얀 튀밥이 쏟아졌다. 튀밥을 한줌 입에 넣던 그녀의 목이 멘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돌뱅이였다. 그날 팔리는 것에 따라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굶을 수도 있었다. 일곱이나 되는 그녀의 동생들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눈이 쏟아지던 어느 날 새벽, 그녀는 측간에 가다가 부엌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꽁꽁 언 고무신을 품에 안고 아궁이 앞에서 녹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신발을 받아 신고 맹물 한 사발 마신 뒤 눈보라 치는 길로 아버지가 사라지자 어머니는 싸리문 옆에서 눈사람이 되어 흐느껴 울었다. 그런 모습을 본 그녀는 한마을에 사는, 자식이 둘이나 딸린 홀아비에게 열일곱 살에 시집 갈 생각을 했단다. 내 한 입 덜기 위해서라는 이유보다 전실 자식들과 같은 또래인 동생들에게 밥이라도 가끔 먹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몰래 부엌에서 동생들에게 밥 한 그릇 허겁지겁 먹여 뒷문 울타리 사이로 내보내고 많이도 울었다.

동생들이 식모살이 가고 머슴살이나 공장에도 가서, 피 같은 돈을 모아 서마지기 다랑 논을 사던 날,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밤새 논문서를 들여다보고 꺼억꺼억 울었다. 날마다 논에 나가 이 땅은 내 땅, 쌀이 나오는 땅, 자식들이 굶지 않을 땅이라고 여러 번 외쳤다. 밤에 몰래 나가 논바닥에 입을 맞추었다는 아버지, 그러던 쌀이 지금 내가 죽기 전에 이렇게 흔전만전 천해질 줄 몰랐다고 그녀는 튀밥 튀어 나오듯 줄줄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내가 시집 올 때 쌀 한가마가 3,000원쯤 했다. 시동생 전세방 얻어 줄때 십만 원에서 십오만 원 정도였으니 자그마치 쌀 사오십 가마가 필요했고, 해마다 쌀계를 부어야 했다. 그렇게 넷이나 되는 시동생들 장가보내느라고 하얀 쌀밥을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다. 설사 부자라고 해도 당시 농촌에서 하얀 쌀밥만 먹는다는 것은 굶은 사람들이 많은 터라 죄짓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뒤 1970년대 통일벼가 나오면서부터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쌀은 귀하지 않다. 농부인 우리도 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몸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논에 대한 애착도 없다. 이곳저곳 논이 묵혀져 잡초만 무성하고, 기회가 있으면 돈이 될 수 있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이 남아 푸근한 겨울을 나야 하는데 거침없이 짚을 축산농가에 팔아버리고 논바닥에는 공룡알 같은 볏짚 더미만 뒹군다. 짚이 사라진 황량한 논바닥을 보면 꼭 자식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노인처럼 해 적막해 보인다.

지난 추석에 배추 한 포기가 만원을 웃돌자 매스컴에서는 난리가 난듯한 보도를 연일 내보냈다. 마치 커다란 이변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난무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배추 3만원어치를 담그면 다섯 식구 보름은 먹을 수 있다.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커피 한잔에 5,000원 하는 값보다는 낫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싼 배추를 사기위해 끝없이 줄을 섰는데 만일 쌀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 날것이 분명하다.

지금 쌀값은 25%나 하락했다. 농부의 어깨도 그만큼 처졌다.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쌀값이 어느 날 폭등한다면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쌀값 안정은 도시와 농촌이 다함께 사는 길이다.

언젠가 쌀을 사료화라도 시켜야 한다고 보도했다. 농부의 가슴은 난도질당한 기분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가뭄과 장마, 병충해에 몸살하면서 긴 시간 농부와 함께 자란 쌀이 갈 곳이 없다니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형제가 굶어 죽는다는데 도와주지 않고 개밥을 먹인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사람도 아니다. 일 년 농사지어 볏짚은 소가 먹고 쌀도 짐승이 먹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농사를 짓겠는가? 지키고 싶은 농심을 무참하게 밟아 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런 무책임한 발언은 농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대체 작목이나 특수 작목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농토를 가진 사람들은 어느샌가 무능한 사람이 되어 의기소침해 있는데다, 아직은 자식에게 의존할 형편도 아니어서 초라하게 서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궁여지책으로 휴농을 신청하여 받은 약간의 보상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거기다가 요즈음은 귀농을 하는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근사하게 짓고 그림 같은 생활을 한다. 적막하던 농촌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귀농이 아닌 화려한 귀농이어서 희망을 잃은 농부는 더욱 의욕이 꺾이기도 한다.

나는 통일벼가 쏟아질 무렵 시집을 왔다고 택호를 통일 댁이라고 부르기를 자처했었다. 쌀이 남아돌자 내 택호와 통일쌀도 흐지부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문에 통일댁이라는 명패라도 달아볼까. 혹시 모를 일이다. 온전하게 사람들이 나를 통일댁으로 부르다 보면 통일이 될는지, 그리하여 북한과 쌀을 나누어 먹는다면 농촌이 살고 나라도 부강해 지는 그런 날들이 쉬 올 수 있을 텐데, 생명을 이어주는 쌀을 천대하다가는 어느 날 우리는 혹독한 대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연평도 사격훈련 포 소리에 통일댁은 오늘도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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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통일댁님의 댓글

통일댁 작성일

  통일댁도 아는 일이다. 쌀을 나눠먹는 남북은 넉넉해지고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코 앞에서 섣불질을 하면 북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해답은 대화와 교류이고 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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