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15. 혁명적동지애로 - 박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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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12-05-28 17:05 조회1,8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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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동지애로
박 영 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내가 속한 소부대가 처창즈유격근거지에로 행군해가던 때의 일이다.
1933년 가을.
어느날밤, 우리 부대는 험산속에서 고된 행군을 하다가 적의 포위속에 들었다. 사방에서 쏘아대는 적들의 총탄이 일시에 우리에게로 쏠렸다.
위급한 순간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어둠속에서 신속히 지형지물들을 리용하면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였다.
부대는 안전한 곳에서 대오를 정돈하였다.
이때에 우리는 2명의 전우들이 대오를 찾아오지 못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다음날 몇명의 대원들이 돌아오지 못한 두 동무의 소식을 알려고 떠났다. 그들은 부대가 포위되였던 산지대를 낱낱이 뒤지였다. 바위틈, 덤불속, 골짜기를 죄다 찾았으나 두 동무의 행방은 알길이 없었다. 이리하여 부대는 2명의 전우를 잃은채 행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6일이 지난 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
두 전우는 부대가 적들에게 포위된 그날밤에 중상을 입었었다.
한 대원인 장원동무는 왼팔에 상처를 입었고 또 한 대원인 리동무는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부상당한 순간 그들은 골짜기로 굴러떨어졌다. 이리하여 그들은 대오를 잃게 되였다.
얼마후 장원동무는 의식을 차렸다.
(나 혼자일가? )하고 그는 귀를 도사리였다.
그런데 멀어져가는 총소리가 멈춰질 때마다 가까이에서 모진 고통에 가늘게 신음하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장원동무는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기여갔다. 그는 엎드려서 나무뿌리를 거머쥐고 힘겹게 몸을 뒤적이는 리동무를 알아보았다.
장원동무는 얼른 자기의 속내의를 찢어서 피흐르는 리동무의 다리를 동여매주었다. 손이 아니라 이발로써… 의식이 회복된 리동무 역시 내의를 찢어 관통상을 입은 장원동무의 팔을 동여주었다.
《리동무, 나에게 업히우오.》장원동무는 전우를 부축이면서 타일렀다.
그 동무는 고통어린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띠고 말했다.
《나는 못 가오. 갈수가 없소. 동무도 상한 몸이니 나를 업고 가려다간 둘 다 못 가고 마오.》
리동무는 숨을 몰아쉬고 장원동무의 손을 꽉 그러쥐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아무래도 못 갈 몸이니 나를 제발 죽여주오. 원쑤의 손에 잡히기보다는 혁명동지앞에서 숨지는것이 행복이요. 빨리.》
그러나 장원동무는 거의 강다짐으로 리동무를 업고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내디디였다.
가고 또 갔다. 돌에 채워 어푸러지기도 하고 기진하여 쓰러지기도 하면서 걸어갔다.
그들에게 원쑤 일제를 족치는 투사라는 자각이 없었던들, 강요된 죽음을 물리치고 살아서 원쑤와 싸위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없었던들 그들은 한걸음도 옮길수 없었을것이다.
그들은 오직 일제를 타도하려는 하나의 투쟁목적으로 하여 한심장으로 숨쉬였다.
그들은 점점 힘이 진하였다. 이제는 걷는다기보다도 땅을 아득바득 톺아나가게 되였다. 게다가 굶주려서 허기증까지 났다.
그들은 지어 산짐승이 먹다버린 썩은 노루고기를 만났을 때 그것이 별식만 같아서 서로 권하였다.
때로는 산돼지들이 뚜져먹은 벌둥지의 꿀송이들을 주어먹기도 하였고 그 꿀을 서로 상처에 발라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그들은 6일간이나 유격근거지를 향해서 헤매였다.
어느날 처창즈유격근거지의 보초가 그들을 발견하였다.
동무들이 그들을 밀영으로 업어왔다.
그러나 리동무는 간신히 《장동무, 살아있소?》하고 한마디 물은 다음 《살아있다.》는 대답을 듣자 얼굴에 안도의 미소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장원동무도 의식을 잃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전우들은 숭고한 동지애, 불굴의 투지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렇듯 항일유격대내에서 대원들은 한형제와도 같이 살았다. 우리는 한알의 감자를 열로 쪼개였으며 한줌의 담배도 나누어피웠다.
어찌다 받게 되는 군복도 내의도 서로 동지에게 양보하였고 전우를 위해 도움을 주는것을 누구나없이 기뻐하였다.
전투에서 한 동무가 중상이라도 당하면 다른 동무가 우박치듯 퍼붓는 총탄속을 뚫고들어가 그를 희생적으로 구원해내였다.
무송현 만강으로 가는 초처정자라는곳에 우리의 림시병원이 있었다. 거기서는 리오남동무가 의사로서 여러명의 환자들을 치료하고있었다.
1937년 봄, 어느날 나는 련락병 복남동무와 함께 환자들의 병세를 알아보려고 험준한 산속에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병원은 간데없고 집터전엔 숯과 재만 있었다. 《토벌대》놈들이 불태운것이 분명하였다.
나와 복남동무는 알길이 없는 병원환자동무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강가에 다달았다. 무심히 숲속을 헤치고 강가를 내다보았을 때 수척한 두사람이 겨우 몸을 움직이면서 가재잡이를 하고있었다.
그들은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였다.
우리가 그들에게로 갔을 때 그들은 너무나도 반가와하며 우리 목에 매여달렸다.
병원이 원쑤들의 습격을 받은 이후 그들은 며칠씩이나 가재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다는것이였다.
《조반장》은 원쑤들이 병원을 습격하는 순간에 한 동무가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를 업어나르지 않았던들 자기는 영낙없이 죽었을것이라고 감격에 싸여 말하였다.
나는 《조반장》의 상처를 보고 놀랐다. 허벅다리의 상처가 심하게 곪고있었다. 출혈과 상처의 아픔, 가슴을 허비는 허기증을 참는 그의 이마의 주름살에는 땀이 송글송글 나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고 동무들을 위안하려고 쳐다볼 때마다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띠였다. 이것이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들의 곤경을 보고 더 지체할수 없었던 나는 머나먼 길을 달려가서 부대에서 식량을 가지고 그길로 다시 환자들에게로 뛰여왔다.
그때 《조반장》이 말하였다.
《난 정말 살고싶소. 싸우고싶소. 일제놈들이 없는 우리 세상을 보고싶소.》
《조반장》의 눈에 열기가 올랐었다.
입술은 푸들푸들 떨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난 살지 못하오. 그러나 난 헛되이 살지 않았소. 나라를 되찾을 때 내가 흘린 피도 추억해주오.》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를 부여안고 울었다. 우리는 그를 업고 30리가 넘는 길아닌 길을 헤치고 만강무기수리소가 있는 곳에 다달았다.
《조반장》은 거기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일제놈들은 심산속에 있는 이 만강무기수리소를 알아내고 불의에 습격해왔다.
모두들 무기와 기타 설비들을 걷어가지고 신속히 피신하였다. 그러나 병실에 누워있던 《조반장》은 미처 피할 기회를 놓쳐버리고말았다.
모두들 높은 산마루에 올라가서 협곡에 자리잡은 무기수리소를 내려다보았다. 일제놈들은 닥치는대로 불지르고 총을 쏘며 날뛰고있었다.
2~3명의 대원들이 《조반장》을 구원하려고 협곡으로 내리뛰였다.
그 순간 무기수리소에서 무서운 폭음이 울렸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만든 폭탄소리였다.
우리는 급히 무기수리소로 달려내려갔다. 《조반장》이 들어있던 병실은 무너지고 사처에 흙무더기만이 널려있었다.
무너져내린 흙과 나무들을 헤쳤을 때 거기에는 전사한 《조반장》이 있었고 그의 주위에 적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모든것을 알수 있었다. 《조반장》을 생포하려고 적들이 무리를 지어 병실에 몰려든 순간 《조반장》은 품고있던 폭탄을 터친것이였다.
환자로서 죽음의 순간까지 원쑤를 쳐부신 《조반장》, 그는 자신이 말한대로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둘도 없는 생명을 서슴없이 바친것이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유격대내에서 우리의 굳은 단결과 혁명적동지애는 불보다 뜨거웠고 강철보다 억세였다.
박 영 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내가 속한 소부대가 처창즈유격근거지에로 행군해가던 때의 일이다.
1933년 가을.
어느날밤, 우리 부대는 험산속에서 고된 행군을 하다가 적의 포위속에 들었다. 사방에서 쏘아대는 적들의 총탄이 일시에 우리에게로 쏠렸다.
위급한 순간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어둠속에서 신속히 지형지물들을 리용하면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였다.
부대는 안전한 곳에서 대오를 정돈하였다.
이때에 우리는 2명의 전우들이 대오를 찾아오지 못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다음날 몇명의 대원들이 돌아오지 못한 두 동무의 소식을 알려고 떠났다. 그들은 부대가 포위되였던 산지대를 낱낱이 뒤지였다. 바위틈, 덤불속, 골짜기를 죄다 찾았으나 두 동무의 행방은 알길이 없었다. 이리하여 부대는 2명의 전우를 잃은채 행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6일이 지난 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
두 전우는 부대가 적들에게 포위된 그날밤에 중상을 입었었다.
한 대원인 장원동무는 왼팔에 상처를 입었고 또 한 대원인 리동무는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부상당한 순간 그들은 골짜기로 굴러떨어졌다. 이리하여 그들은 대오를 잃게 되였다.
얼마후 장원동무는 의식을 차렸다.
(나 혼자일가? )하고 그는 귀를 도사리였다.
그런데 멀어져가는 총소리가 멈춰질 때마다 가까이에서 모진 고통에 가늘게 신음하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장원동무는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기여갔다. 그는 엎드려서 나무뿌리를 거머쥐고 힘겹게 몸을 뒤적이는 리동무를 알아보았다.
장원동무는 얼른 자기의 속내의를 찢어서 피흐르는 리동무의 다리를 동여매주었다. 손이 아니라 이발로써… 의식이 회복된 리동무 역시 내의를 찢어 관통상을 입은 장원동무의 팔을 동여주었다.
《리동무, 나에게 업히우오.》장원동무는 전우를 부축이면서 타일렀다.
그 동무는 고통어린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띠고 말했다.
《나는 못 가오. 갈수가 없소. 동무도 상한 몸이니 나를 업고 가려다간 둘 다 못 가고 마오.》
리동무는 숨을 몰아쉬고 장원동무의 손을 꽉 그러쥐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아무래도 못 갈 몸이니 나를 제발 죽여주오. 원쑤의 손에 잡히기보다는 혁명동지앞에서 숨지는것이 행복이요. 빨리.》
그러나 장원동무는 거의 강다짐으로 리동무를 업고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내디디였다.
가고 또 갔다. 돌에 채워 어푸러지기도 하고 기진하여 쓰러지기도 하면서 걸어갔다.
그들에게 원쑤 일제를 족치는 투사라는 자각이 없었던들, 강요된 죽음을 물리치고 살아서 원쑤와 싸위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없었던들 그들은 한걸음도 옮길수 없었을것이다.
그들은 오직 일제를 타도하려는 하나의 투쟁목적으로 하여 한심장으로 숨쉬였다.
그들은 점점 힘이 진하였다. 이제는 걷는다기보다도 땅을 아득바득 톺아나가게 되였다. 게다가 굶주려서 허기증까지 났다.
그들은 지어 산짐승이 먹다버린 썩은 노루고기를 만났을 때 그것이 별식만 같아서 서로 권하였다.
때로는 산돼지들이 뚜져먹은 벌둥지의 꿀송이들을 주어먹기도 하였고 그 꿀을 서로 상처에 발라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그들은 6일간이나 유격근거지를 향해서 헤매였다.
어느날 처창즈유격근거지의 보초가 그들을 발견하였다.
동무들이 그들을 밀영으로 업어왔다.
그러나 리동무는 간신히 《장동무, 살아있소?》하고 한마디 물은 다음 《살아있다.》는 대답을 듣자 얼굴에 안도의 미소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장원동무도 의식을 잃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전우들은 숭고한 동지애, 불굴의 투지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렇듯 항일유격대내에서 대원들은 한형제와도 같이 살았다. 우리는 한알의 감자를 열로 쪼개였으며 한줌의 담배도 나누어피웠다.
어찌다 받게 되는 군복도 내의도 서로 동지에게 양보하였고 전우를 위해 도움을 주는것을 누구나없이 기뻐하였다.
전투에서 한 동무가 중상이라도 당하면 다른 동무가 우박치듯 퍼붓는 총탄속을 뚫고들어가 그를 희생적으로 구원해내였다.
무송현 만강으로 가는 초처정자라는곳에 우리의 림시병원이 있었다. 거기서는 리오남동무가 의사로서 여러명의 환자들을 치료하고있었다.
1937년 봄, 어느날 나는 련락병 복남동무와 함께 환자들의 병세를 알아보려고 험준한 산속에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병원은 간데없고 집터전엔 숯과 재만 있었다. 《토벌대》놈들이 불태운것이 분명하였다.
나와 복남동무는 알길이 없는 병원환자동무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강가에 다달았다. 무심히 숲속을 헤치고 강가를 내다보았을 때 수척한 두사람이 겨우 몸을 움직이면서 가재잡이를 하고있었다.
그들은 병원에 있던 환자들이였다.
우리가 그들에게로 갔을 때 그들은 너무나도 반가와하며 우리 목에 매여달렸다.
병원이 원쑤들의 습격을 받은 이후 그들은 며칠씩이나 가재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다는것이였다.
《조반장》은 원쑤들이 병원을 습격하는 순간에 한 동무가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를 업어나르지 않았던들 자기는 영낙없이 죽었을것이라고 감격에 싸여 말하였다.
나는 《조반장》의 상처를 보고 놀랐다. 허벅다리의 상처가 심하게 곪고있었다. 출혈과 상처의 아픔, 가슴을 허비는 허기증을 참는 그의 이마의 주름살에는 땀이 송글송글 나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고 동무들을 위안하려고 쳐다볼 때마다 얼굴에 어설픈 웃음을 띠였다. 이것이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들의 곤경을 보고 더 지체할수 없었던 나는 머나먼 길을 달려가서 부대에서 식량을 가지고 그길로 다시 환자들에게로 뛰여왔다.
그때 《조반장》이 말하였다.
《난 정말 살고싶소. 싸우고싶소. 일제놈들이 없는 우리 세상을 보고싶소.》
《조반장》의 눈에 열기가 올랐었다.
입술은 푸들푸들 떨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난 살지 못하오. 그러나 난 헛되이 살지 않았소. 나라를 되찾을 때 내가 흘린 피도 추억해주오.》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를 부여안고 울었다. 우리는 그를 업고 30리가 넘는 길아닌 길을 헤치고 만강무기수리소가 있는 곳에 다달았다.
《조반장》은 거기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일제놈들은 심산속에 있는 이 만강무기수리소를 알아내고 불의에 습격해왔다.
모두들 무기와 기타 설비들을 걷어가지고 신속히 피신하였다. 그러나 병실에 누워있던 《조반장》은 미처 피할 기회를 놓쳐버리고말았다.
모두들 높은 산마루에 올라가서 협곡에 자리잡은 무기수리소를 내려다보았다. 일제놈들은 닥치는대로 불지르고 총을 쏘며 날뛰고있었다.
2~3명의 대원들이 《조반장》을 구원하려고 협곡으로 내리뛰였다.
그 순간 무기수리소에서 무서운 폭음이 울렸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만든 폭탄소리였다.
우리는 급히 무기수리소로 달려내려갔다. 《조반장》이 들어있던 병실은 무너지고 사처에 흙무더기만이 널려있었다.
무너져내린 흙과 나무들을 헤쳤을 때 거기에는 전사한 《조반장》이 있었고 그의 주위에 적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모든것을 알수 있었다. 《조반장》을 생포하려고 적들이 무리를 지어 병실에 몰려든 순간 《조반장》은 품고있던 폭탄을 터친것이였다.
환자로서 죽음의 순간까지 원쑤를 쳐부신 《조반장》, 그는 자신이 말한대로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둘도 없는 생명을 서슴없이 바친것이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유격대내에서 우리의 굳은 단결과 혁명적동지애는 불보다 뜨거웠고 강철보다 억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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