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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5권 22. 참된 아동단원 - 최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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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정 작성일2012-06-22 12:06 조회1,7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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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아동단원

최   광

 

내가 훈춘현 중동거우에서 아동단 분대장사업을 한것은 1933년이였다.

중동거우의 아동단원들은 모두 40명이였는데 나이들은 어렸지만 모두가 슬기롭고 용감한 동무들이였다. 혁명조직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4년제의 혁학(혁명학교)을 세우고 교과서, 학습장 등 학용품까지 마련해주었다. 우리는 저마다 글 한자라도 더 빨리 배우고 훌륭히 자라서 꼭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의 참된 전사가 되리라는 마음을 안고 학습에 온갖 열성을 다하였다.

그때 학교에서는 오전에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주로 음악과 무용, 체조를 배웠으며 집단적으로 부모들의 일손을 돕기도 하였는데 우리들은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학습하였다. 언제나 책을 끼고다니면서 짬만 있으면 읽고 또 읽었다.

밤에도 늦게까지 복습에 열중하였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날 숙제는 다 해놓고야 잠자리에 들었으며 잠자리에 든 다음에는 머리에서 그날 배운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시 풀어보고야 눈을 붙였다. 혹 학습에 뒤떨어진 동무가 있으면 성의껏 도와주었다. 그래서 시험때면 누구나 우등, 최우등의 성적을 쟁취하였다.

우리들의 학습과 생활은 언제나 규률있고 전투적이였다. 당시 마을에는 시계를 가지고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해를 보고 이른 아침, 푸른 아침, 늦은 점심, 보리저녁때, 이런 식으로 시간을 측정하면서 생활하였는데 언제나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오는 동무는 있었어도 늦어오는 동무는 없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마다 뒤동산에 모여서 아침체조를 한 다음에는 그 전날사업을 총화하고 그날 할 일을 분공하였다. 붉은 넥타이, 곤봉, 배낭에 대한 검열도 이때에 하였는데 넥타이는 언제나 구김살없이 깨끗하였고 배낭에는 책, 연필, 미시가루, 소금 등이 빠짐없이 차곡차곡 들어있어 누구한테서도 흠잡을데가 없었다. 우리는 길가에서 작은 물건을 얻어도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안타까이 노력하였다. 주인을 찾지 못하면 사람들이 잘 볼수 있는 길가에다 광고를 내붙이고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10일이건, 20일이건 잘 간수해두었었다.

아동단원들은 원쑤놈들에 대한 경각성이 높았다. 밀정들은 쌀장사, 거지, 종이장사 등 여러가지 형태로 변장해가지고 유격근거지에 기여들려고 하였지만 우리들한테는 영낙없이 붙들리우군 하였다.

이렇듯 중동거우에서의 아동단생활의 나날은 참으로 보람차고 즐거웠다.

그때의 생활을 회고할 때마다 가장 인상깊이 떠오르는 한가지 이야기가 있다.

우리들가운데 김봉률이란 동무가 있었다. 그는 12살이였는데 혁명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발벗고 나서는 불덩이같은 마음을 지닌 아동단원이였다.

그 언젠가 우리 아동단에서는 규률을 위반한 마동무라는 단원을 출단시킨 일이 있었다.

그는 공부를 게을리할뿐만아니라 힘이 약한 아이들을 때려서 울리는 그런 불량한 아이였다. 동무들은 그의 그릇된 행동을 랭혹히 비판하고 용서없이 출단시켰지만 그를 버리지 않고 다시금 교양주기 시작하였는데 이 일에도 제일 앞장에 나선것이 바로 김봉률이였다.

자진하여 마동무를 맡아나선 봉률이는 날마다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처음에 마동무는 나어린 봉률이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찾아오는것조차 시끄럽게 여기면서 도리여 덤벼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봉률이는 오직 동무를 참되게 도와주려는 뜨거운 마음으로 이 모든것을 참고 이겨가며 계속 찾아갔다. 때로는 동무가 되여 같이 놀기도 하고 숙제를 못해서 안타까와할 때면 밤늦도록 도와주었다.

봉률이가 자기를 진정으로 돕고있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마동무는 차츰 봉률이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였다. 이때부터 봉률이는 마동무를 설복하기에 더욱더 노력하였다.

《마동무, 유격대아저씨들은 지금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 위해 원쑤놈들과 피를 흘려가며 싸우고있지 않니. 이런 때 우리는 누구나 아동단에 굳게 뭉쳐 혁명사업을 힘껏 도와야 해.

그리고 지금부터 공부잘하고 규률을 잘 지켜야 김일성장군님유격대의 참된 전사가 될수 있어. 지금은 많은 아동단원들이 실지 그렇게 하고들 있단다.》

이러면서 봉률이는 유격대아저씨를 돕다가 경찰놈들에게 붙들리여 모진 고문끝에 죽어가면서도 끝끝내 유격대의 비밀을 지켜낸 슬기롭고 용감한 아동단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봉률이의 꾸준한 노력은 마침내 마동무의 가슴에 불을 붙여주고야말았다. 마동무는 자기의 지난날 행동들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였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그후 마동무는 다시금 아동단원이 되였으며 후에는 분조장까지 되였다.

나어린 봉률이의 이와 같은 열성과 모범에 우리들은 언제나 감탄하고있었으며 은근히 그의 모범을 따르기에 노력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모임 때 있은 일이다. 그날은 공청구위가 오기로 되여있어 우리들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뒤산으로 달음박질해 올라갔다. 이윽고 동무들은 나의 구령에 따라 차렷자세로 정돈하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여느때없이 대렬끝에 봉률이가 붉은 넥타이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채 서있지 않는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찬찬히 보아도 역시 봉률이였다. 나는 울컥 밸이 치밀어 봉률이를 대렬앞으로 불러내였다. 어깨를 푹 떨군채 맥없이 걸어나온 봉률이는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간신히 《분대장동무, 저는 …저는 아동단원이 될수 없습니다. 이것을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꾸레미를 꺼내여 내미는것이였다. 붉은 넥타이였다. 너무나 갑자기 생긴 일이여서 나는 그저 봉률이의 얼굴과 대렬에 선 동무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볼뿐이였다. 대렬에는 《쉬엿》구령을 내렸다. 동무들은 봉률이를 둘러쌌다.

봉률이는 띠염띠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바로 그 전날 저녁이였다. 그날도 봉률이는 동무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식량절약에 대한 선전을 하고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우리 중동거우유격근거지는 금방 조직된 곳이였다. 내가 살던 농막골을 비롯한 여러곳이 《토벌》을 맞고 불타게 되자 혁명조직에서는 군중들을 더 깊은 산골인 이곳에다 조직적으로 이주시켰던것이다. 그때 이주해온 몇집을 내놓고는 대개가 본래부터 이 고장에서 살아오던 집들로서 얼마간의 식량을 가지고있었다. 혁명조직에서는 앞으로 적 《토벌대》놈들의 준동이 있을것을 미리 짐작하고 식량을 극도로 절약할것을 중요한 투쟁과업으로 내세웠다. 그리하여 아동단에서는 매개 동무들이 자기네 집에서 식량절약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 서게 할뿐만아니라 온 마을에 돌아다니며 선전할것을 위임하였던것이다.

봉률이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모두 곤히 자고있었다. 아래목에 차려놓은 밥상에 다가앉아 씌워놓은 종이를 벗겨보니 뜻밖에도 떡 한사발이 놓여있지 않는가.

깜짝 놀란 봉률이는 어머니를 흔들어깨웠다.

《어머니, 이 떡이 어디서 났어요? 예.》하고 다우쳐물었다. 본래부터 이 고장에서 살아온 봉률이네 집에는 그때 얼마간의 식량이 있었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어머니는 외아들인 봉률이에게 오래동안 떡 한번 해먹이지 못하는것이 애처로와 가끔 떡을 하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봉률이가 펄쩍 뛰며 만류하는 바람에 그럴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날 저녁은 봉률이가 없는 틈을 타서 남몰래 떡을 해놓고 기다렸던것이다.

어머니는 이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나서 《봉률아, 어서 그 떡을 먹어라, 어서. 그리고 밖에 나가서는 아예 아무 말도 입밖에 내지 말아라.》하고 신신당부하는것이였다.

마침내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구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가? 봉률이는 아뜩하였다. 떡사발을 힘없이 밀어놓은 봉률이는 책상우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얼마나 나를 사랑해주시면 이렇게까지 하였으랴, 그러나 나는 아동단원으로서 이 좋은 어머니를 옳게 일깨워드리지 못하였구나. 뉘우침이 봉률이의 어린 가슴을 옥죄이며 파고들었다.

봉률이는 방금전까지 집집으로 돌아다니며 식량을 절약하자고 선전하던 자기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자기 집하나 똑바로 교양하지 못하여 떡을 하게 하면서 남한테는 식량을 절약하라고 선전하였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봉률이의 눈앞에는 자기를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동리사람들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어머니말씀대로 밖에 나가 누구에게도 이야기만 안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봉률이는 이 일을 숨기고는 단 한시간도 참아낼수 없을것만 같았다.

(조직에서 준 위임을 나는 집에서조차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였다. 과연 내가 참된 아동단원의 자격이 있는가.)

봉률이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어놓은 붉은 넥타이를 바라보았다.

입단할 때 공청에서 나오신 아저씨가 언제나 혁명과 조직의 위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며 매여주던 붉은 넥타이였다. 봉률이의 가슴은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그렇다. 나는 혁명과 조직의 위임에 충실하지 못했고 아동단원의 영예를 더럽히였다. 나는 붉은 넥타이를 떳떳이 매고다닐 자격이 없다.…)

봉률이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는 마침내 붉은 넥타이를 흰 종이에 차곡차곡 포개여쌌다.

숨을 죽여가며 봉률이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우리들은 모두가 감동되였다. 나는 가슴에 뜨거운 그 무엇이 북받쳐올라 무엇이라 말할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언제 왔던지 공청구위가 와락 달려들어 어린 봉률이를 힘껏 그러안았다.

《봉률아, 너는 참된 아동단원이다. 너야말로 붉은 넥타이를 떳떳이 매고다닐수 있는 훌륭한 아동단원이다.》

이렇게 말하며 그때까지도 내가 쥐고섰던 붉은넥타이를 봉률이에게 매여주었다. 우리들은 앞뒤산에 메아리치도록 요란한 박수를 쳤다.

이상의 이야기는 아동단원들이 낳은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운데서 아주 적은 한토막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 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따뜻한 품속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씩씩하게 자라나는 소년단원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낳고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이 일을 회상하군 한다.

지난날 아동단원들이 지니였던 혁명에 대한 충직성, 티없이 맑고 깨끗한 혁명적량심, 그것은 오늘 조국의 앞날을 걸머질 우리 소년단원들의 가슴에 맥맥히 흐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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