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반미자가 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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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01-06 20:52 조회1,968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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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반미자가 되였는가!
왜놈 식민지 40년 더하기 70년째 미국의 식민지와 유엔 16개국들의 각종 만행을 제처두고
미군놈에게 발로 채인 기억이 뚜렸한 그 때는 1948년 늦가을이였다.
난 전북 김제군 죽산면 쌍봉이라는 바닷가 어촌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아버님은 논을 더 늘리기 위해서 텃논을 팔고 정읍군과 김제군의 사이 감곡면 앞 널은 김제 평야로 4살 때 이사를 가서 논. 밭두렁을 뛰여 다니며 메뚜기와 잠자리 잡으며 컸다.
끝이 감감히 보이는 이 널은 곡창 지역에 왜놈들은 쌀 생산을 모조리 군산항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길과 수리조합 시설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어지간한 가믐에도 큰 어려움 없이 농사를 잘 질 수가 있었다.
거미줄 처럼 된 물 줄기는 칠보 수력 발전소에서부터 흐르는 은한강 물 줄기라고 했다. 이 물 줄기에서 사는 많은 민물고기들을 잡아서 여름, 가을 한철 물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그 물고기들은 메기, 가물치, 붕어, 잉어, 송사리, 게, 미꾸라지, 새우, 우렁, 조개, 뱀장어 등등이었다.
1945년9월8일 즉 이 날이 상전이 바뀌는 날이다. 왜놈들로부터 한국을 식민지로 인수인계 받으려 총을 냅다 쏴 3명을 즉사시키며 공중에서는 공갈 협박 삐라를 맥아더 명의로 냅다 뿌리며 대한민국 땅에 침략으로 들어온 강도 미군(미국)들은 1947년 가을부터 쌀을 강제로 공출해 가기 위해서 미군들과 통역관들은 각 마을 집집마닥 쇠꼬쟁이를 들고 다니면서 쌀, 보리, 콩을 샅샅이 막 글거 갈 때다. 이때 우린 감자, 고구마로 겨우 겨우 배를 채웠다.
심지어는 솥뚜껑까지 열어보며 개 지랄들을 다할 때 울 어머님께서 통역관에게 냅다 항의를 하니 통역을 받은 미양키놈은 우리 어머님의 배를 냅다 차서 기절 했었다. 그때 어린 나도 울어대며 악을 쓰니 악마 양키에게 나도 냅다 채이여 쓸어졌다. 그 기억이 매우 생생하다.
이때 우리 할머니는 주야로 말씀을 하셨다. 왜놈들과 양키들은 인간들이 아니고 악마 사탄들이라고 하시며 한쉼을 푹푹 쉬쉬며 이승만은 이완용과 똑 같은 역적놈이라고 말씀을 서슴없이 하셨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님은 지혜스럽게 장둑 밑 흙을 깊게 파고 그속에 쌀 보리 콩을 숨겨놓고 큰 간장, 된장, 김치 항아리를 위에 올려 놓고 겨울이면 조금씩 꺼내 우리 3형제를 굶기지 않고 살였다. 이때 우리동내 사람들은 얼굴이 퉁퉁부어 막 굶어 죽어 갈 때다.
또 1951년 봄 바로 아래 동생과 삐삐를 뽑아 먹으며 밭에 어머님의 심부름을 가던 중 갑짜기 슁 슁 슁 우리 바로 옆에 총알들이 떨어졌다. 미양키 비행기 B-29는 우릴 죽이려 기관총을 냅다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우린 운 좋게도 총알을 맞지않고 살아 얼른 언덕 바지로 몸을 숨겨 살았다. 이 기억을 어찌 내가 잊을 것인가 말이다. 이 살인 강도 미양키의 B-29는 철길도 자르며 낮만되면 우릴 괴롭혔다.
그리고 세월은 가 내가 군대에 가 낙하산을 타며 봄, 여름, 가을이면 미군들과 같이 합동 훈련을 할 때면 미양키 새끼들은 훈련을 소흘히 하며 양칼보들과 희희낙낙하는 것이 꼴보기 싫어 가끔 미군들을 두둘겨 팼다. 그랬더니 우리를 도우려온 미군을 드둘겨 팬다고 난 중대장에게 빠타를 맞아야만 했었다.
그것이 너무도 억울하여 술을 맘것 마시고 취중에 중대장을 또 난 두둘겨 패서 엉창에 가지도 했었다.
어디 그것뿐이랴 월남에 가서도 미군들을 여러차레 두둘겨 패서 헌병대 영창에도 갔었다.
이렇게 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양키라면 이를 갈며 미워하고 있다.
이제 60년이 훌쩍 넘게 흘러간 세월이지만 울 어머니와 날 발로 찬 야만인 미국 양키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웅사 1만 년
고조선 5200년
단군사 4347년
기독교 2015년1월6일
미국사 239년
왜놈 식민지 40년 더하기 70년째 미국의 식민지와 유엔 16개국들의 각종 만행을 제처두고
미군놈에게 발로 채인 기억이 뚜렸한 그 때는 1948년 늦가을이였다.
난 전북 김제군 죽산면 쌍봉이라는 바닷가 어촌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아버님은 논을 더 늘리기 위해서 텃논을 팔고 정읍군과 김제군의 사이 감곡면 앞 널은 김제 평야로 4살 때 이사를 가서 논. 밭두렁을 뛰여 다니며 메뚜기와 잠자리 잡으며 컸다.
끝이 감감히 보이는 이 널은 곡창 지역에 왜놈들은 쌀 생산을 모조리 군산항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길과 수리조합 시설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어지간한 가믐에도 큰 어려움 없이 농사를 잘 질 수가 있었다.
거미줄 처럼 된 물 줄기는 칠보 수력 발전소에서부터 흐르는 은한강 물 줄기라고 했다. 이 물 줄기에서 사는 많은 민물고기들을 잡아서 여름, 가을 한철 물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그 물고기들은 메기, 가물치, 붕어, 잉어, 송사리, 게, 미꾸라지, 새우, 우렁, 조개, 뱀장어 등등이었다.
1945년9월8일 즉 이 날이 상전이 바뀌는 날이다. 왜놈들로부터 한국을 식민지로 인수인계 받으려 총을 냅다 쏴 3명을 즉사시키며 공중에서는 공갈 협박 삐라를 맥아더 명의로 냅다 뿌리며 대한민국 땅에 침략으로 들어온 강도 미군(미국)들은 1947년 가을부터 쌀을 강제로 공출해 가기 위해서 미군들과 통역관들은 각 마을 집집마닥 쇠꼬쟁이를 들고 다니면서 쌀, 보리, 콩을 샅샅이 막 글거 갈 때다. 이때 우린 감자, 고구마로 겨우 겨우 배를 채웠다.
심지어는 솥뚜껑까지 열어보며 개 지랄들을 다할 때 울 어머님께서 통역관에게 냅다 항의를 하니 통역을 받은 미양키놈은 우리 어머님의 배를 냅다 차서 기절 했었다. 그때 어린 나도 울어대며 악을 쓰니 악마 양키에게 나도 냅다 채이여 쓸어졌다. 그 기억이 매우 생생하다.
이때 우리 할머니는 주야로 말씀을 하셨다. 왜놈들과 양키들은 인간들이 아니고 악마 사탄들이라고 하시며 한쉼을 푹푹 쉬쉬며 이승만은 이완용과 똑 같은 역적놈이라고 말씀을 서슴없이 하셨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님은 지혜스럽게 장둑 밑 흙을 깊게 파고 그속에 쌀 보리 콩을 숨겨놓고 큰 간장, 된장, 김치 항아리를 위에 올려 놓고 겨울이면 조금씩 꺼내 우리 3형제를 굶기지 않고 살였다. 이때 우리동내 사람들은 얼굴이 퉁퉁부어 막 굶어 죽어 갈 때다.
또 1951년 봄 바로 아래 동생과 삐삐를 뽑아 먹으며 밭에 어머님의 심부름을 가던 중 갑짜기 슁 슁 슁 우리 바로 옆에 총알들이 떨어졌다. 미양키 비행기 B-29는 우릴 죽이려 기관총을 냅다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우린 운 좋게도 총알을 맞지않고 살아 얼른 언덕 바지로 몸을 숨겨 살았다. 이 기억을 어찌 내가 잊을 것인가 말이다. 이 살인 강도 미양키의 B-29는 철길도 자르며 낮만되면 우릴 괴롭혔다.
그리고 세월은 가 내가 군대에 가 낙하산을 타며 봄, 여름, 가을이면 미군들과 같이 합동 훈련을 할 때면 미양키 새끼들은 훈련을 소흘히 하며 양칼보들과 희희낙낙하는 것이 꼴보기 싫어 가끔 미군들을 두둘겨 팼다. 그랬더니 우리를 도우려온 미군을 드둘겨 팬다고 난 중대장에게 빠타를 맞아야만 했었다.
그것이 너무도 억울하여 술을 맘것 마시고 취중에 중대장을 또 난 두둘겨 패서 엉창에 가지도 했었다.
어디 그것뿐이랴 월남에 가서도 미군들을 여러차레 두둘겨 패서 헌병대 영창에도 갔었다.
이렇게 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양키라면 이를 갈며 미워하고 있다.
이제 60년이 훌쩍 넘게 흘러간 세월이지만 울 어머니와 날 발로 찬 야만인 미국 양키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웅사 1만 년
고조선 5200년
단군사 4347년
기독교 2015년1월6일
미국사 239년
댓글목록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야만인들인 왜놈 쪽발이들과 미양키들은 이 인류에 대 죄인들로서
어서 지워야할 악마들의 집단이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대한민국 땅에서 70년째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의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땅에서 - 침략 대 살인 강도 미군을 몰아내면
저 더러운 친일, 친미 사대 매국 역적들은 자동적으로 대 청소가 될 것이다.
그게 진리요, 생명이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저같으면 차라리 친북을 넘어 완벽한 종북주체사상신봉론자가 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