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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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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05-01 18:38 조회1,45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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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로 너무도 훌륭하여 퍼왔다.

김일성이 1937년 6월 4일 직접 지휘한 역사적인 보천보 전투 때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인민의 피를 빨아먹던 일본인 상점을 습격하고 많은 물자를 노획하여 인민에게 나누어주었다. <동아일보>가 정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건을 연일 보도하면서 김일성의 이름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조선인들에게 보천 보 전투는 1936년 손기정(1912~2002)의 세계 제패에 이은 쾌보였다.

작전을 완료한 혁명군은 「한인조국광복회 10대 강령」50여장을 비롯, 「일본군대에 복무하는 조선인 병사에게 고함」·「반일 대중에게 보내는 격문」등 수백 장의 '삐라'를 살포한 뒤 밤 11시경 압록강 건너 만주 장백산의 밀영으로 철수했다.

김일성 부대를 추격하던 일본군 제74연대(함흥 주둔)는 6월30일 만주 장백현 간산봉에서 오히려 '괴멸적 타격'을 당했다. 일본군의 완전한 패배였다. 이상이 조선 천지를 뒤흔든 보천보 전투사건의 간략한 전모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작은 전투였지만 정치적 충격은 매우 컸다”고 평한다. 보천보 전투는 승승장구하던 일제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이다.

어떤 사람은 김일성이가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고 얘기하지만 오히려 소련을 결정적으로 도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1930년 후반 이후 소련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일본의 북진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소련이 항일 게릴라 단체에 대해 실질적인 원조를 제공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으나”, 게릴라 부대는 일본이 북진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선봉’에 섰다.

그래서 소련이 멸망할 수도 있었던 1941년 전투(서부로부터의 히틀러의 침공)에서 동부로 부터의 도조 히데키의 침공을 막는데 일조했다. 보고에 의하면, 게릴라들은 진압작전을 피하기 위해 소련의 국경선을 수차례 넘나들었으나, 소련은 그들에게 무기나 물질적인 원조를 제공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군으로부터 무기와 탄약 그리고 다른 군수품들을 탈취해 사용했다.

커밍스 교수는 김일성부대의 항일 게릴라 활약이 일본이 중국본토 장악을 포기하고 남진을 결심하게 된 본질적 요인이었고, 진주만 공격도 이러한 과정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게릴라식 습격으로 고민하던 미군은 일본의 “게릴라 소탕작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 중 관동군에서 대좌로 근무한 두 사람이 만주에서 김일성 부대를 추격한 적이 있어 미군들에게 브리핑했다. 그들은 김일성과 여타 조선 게릴라들은 중국의 지휘자들과 협조체계를 구축했으나, 영향력 있는 특정인의 지시에 복종하지는 않았다며 “(김일성이) 소련군 또는 중국 공산군 지휘부와의 관계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1945년 “미 국무부 최고의 한국 전문가”인 조지 매큔은 1937년 소련 저널에 실린 글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위대하고 유능한 지도자는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김-니-첸(김일성) 부대가 특히 두드러졌다. 그의 부대원들은 정말 용감하다. 가장 위험한 작전은 모두 그 부대가 도맡아 처리한다.

<우리민족은 주변국의 원조만 받는다>는 친일친미 기생세력들의 민족을 깎아내리는 모략 선전만을 듣고 우리는 자랐습니다. 하지만 하늘높이 나부끼기는 오성홍기를 바라보며 중국 인민이 《저 깃발에는 조선인민들의 피가 스며있다》고 얘기 할 때 우리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 이말은 모택동, 주은래씨들의 말씀이다. - 림씀.

미국의 더러운 침략전쟁에 총알받이 노릇을 하다 패잔병이 되어 쫓겨 온 역사만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김일성 부대가 주변 강대국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지켜주었다고 하니 뿌듯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중국뿐만 아니고 일본군의 북상으로부터 소련도 지켜 주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 자부심을 느낍니다. 일본군은 보급로가 위태로워 질까봐 중국본토나 소련으로 진군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김일성은 중국이나 소련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침략자 왜놈들에게서 노획한 무기로 싸웠습니다.

이와 같이 긍지 높은 인민군을 남쪽 인민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마침내 남쪽 인민들은 자기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충직한 아들딸들인 인민군을 만났습니다.

인민군은 항일무장투쟁시절부터 낮에는 중무장한 일본군의 눈을 피해 숲속에 은닉해있고 밤이 되면 활동을 하거나 부대이동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야간전투에 익숙하였지만 인구가 밀집된 서울 함락 때는 인민들이 방향을 잡지 못해서 인명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야간에 공격하지 않고 낮 동안에 서울을 공격하였습니다. 민간인이 피난을 깔수 있도록 보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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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목란꽃님의 댓글

목란꽃 작성일

제가 유학중에 만난 프랑스의 한 지식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과 체제이론은 나에게 큰 충격이였다. 북한을 방문했을때, 길거리에 거지하나 없고, 길거리에 쓰러져 누운 술주정뱅이 하나 없고,  나빠보이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이 예의바르고, 신념과 자신감에 차보였다. 어느곳을 가던 단 한명의 예외없이, 모든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말을 했다. 그들의 그런 자세와 행동이 어떤 이유에서 나왔건, 그들의 행동과 자세는 참으로 올바른 것이엿다"--

제 주변에 북한을 방문했던 모든 사람들은, 단 한명의 예외없이, 위와같은 말을 했습니다.
어떤 스페인인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 북한에 살고 있는데, 북한에서 평생 살고 싶고, 스페인에 다시는 절대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인민 개개인의 의식주가 보장되있는 북한은, 오로지 그 하나만으로도, 전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입니다.

그런 훌륭한 나라를 온갖 거짓말로 누명씌우고, 모함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자들과 한국의 쓰레기 집단이야 말로 전세계의 인류에게 사죄해야할 죄인들인 것입니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미국에서 유명한 목사 빌 그라엠 목사는 북조선에는 하느님(예수)이 해야 할 일이 없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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