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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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흙 작성일2015-08-12 18:40 조회1,938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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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70.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쳐 지는 대전교도소
너는 무서운
야수의 아가리
자주와 통일을 위한
이 땅의 양심들을
무차별로 삼켜
몇 십 년이더냐
199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의 그날로부터 반세기 되는 날이었다.
통일을 위해 심장을 불태우던 사람들을 수없이 빨아 들여 청춘을 빼앗고 목숨을 삼켜 버린 대전교도소의 뻘겋게 녹 쓴 철문이 무겁게 열리며 나는 《세계최장기수》라는 옥살이기록을 안고 감옥 밖으로 나왔다 . 스 여섯 살 홍안의 청춘을 45년간 철창 속에 가두고 짓 조기고 얼쿠고 굶기다가 끝내 토해 버리고야 마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45년 세계최장기 옥살이, 그것은 한마디로 죽음과의 결사대결에서 사회주의 신념이 승리한 45년,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절대불변의 신념이 나의 운명을 구원해 준 45년이었다.
조선인민군 정찰부대에서 복무하던 나는 1951년 10월 15일 철원근방에서 정찰임무 수행 중 불행하게도 미국 놈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미군정보기관에 끌려갔다가 남조선육군특무대에 넘겨 진 나는 1952년 2월경 서대문육군형무소를 거쳐 마포형무소로, 1953년 4월경에는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었다. 나는 터무니없는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군법회의라는 데서는 정확한 심리도 없이 《앞줄 누구누구이하 사형, 뒤줄 누구누구이하 무기》하는 식의 날치기 단심재판을 하는 판국이었다. 이렇게 되어 대구형무소에서 근 1년간 사형수생활을 하던 나는 1954년 2월 27일 서류심사에서 무기형을 확정 받았다. 기아와 혹한, 고독의 지옥에서 참기 어려운 전향고문을 당해야 하는 무기수옥살이가 시작되었다.
전향강요의 첫 시련은 1957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형무소 작업과장이란 자가 나타나서 《전향자술서》를 안 쓰면 모두 《불취업》처분을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불취업》이란 형무소 안에 설치한 공장에서 하던 일을 못하게 하는 일종의 벌이었다.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다소나마 주림을 달랠 수 있고 고독감도 덜 수 있었던 재소자들에게 있어서 《불취업》은 사형선고 다음 가는 중벌이 아닐 수 없었다. 그자는 자술서를 안 쓰고 《불취업》처벌을 받을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놈들이 요구하는 어떤 형태의 문서장이든 전향강요의 한 형태이므로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기로 했다. 나는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뒤따라 모두가 손을 들었다.
《불취업》에 들어가면서부터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죄수옷섶에 꽁보리밥 한 덩이를 받아 안고 양말 빨고 난 물 같은 소금국 반 국자를 고무신짝에 받아먹는 살인적인 급식조건에다 10명도 빠듯이 들어 갈 방에 20여 명씩 번호순서로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감방 안은 찌물쿠는 더위와 악취로 질식할 지경이었다. 전향강요와 그에 따르는 살인고문은 중요 정치적 사변들이 있을 때마다 더욱 살기를 띠군 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후 군사파쇼도당은 《사상범》들을 한데 모아 놓고 《특별관리》를 한다면서 여러 지방 교도소들에 분산 수감되어 있던 비전향장기수들을 대전형무소 특별사로 집결시켰다가 7.4남북공동성명발표 이후에는 다시 대전, 대구, 광주, 전주 등지의 교도소로 분산 배치하였으며 교도소 별로 《전향공작반》을 조직했다. 인류형법사에 《한국의 사상전향테러》로 악명을 떨친 1972년부터의 전향공작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공작반놈들은 《한국》의 교도소들에는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빨갱이》가 한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빨갱이》들을 돌려 세우라, 전향공작과정에 생기는 인명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안는다는 것이 《청와대》의 《특별지령》이라고 하면서 죽던가, 전향하여 살든가 두 길 중 하나를 택하라고 공공연히 위협하였다.
낮에는 복도를 돌아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밤에는 한명씩 불러내다 잔인무도한 고문을 들이댔다. 감방바닥과 복도가 온통 피로 칠갑을 했고 처절한 비명소리에 육중한 감옥건물마저 몸부림치는 듯 했다. 고문으로 숨지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등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70.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쳐 지는 대전교도소
너는 무서운
야수의 아가리
자주와 통일을 위한
이 땅의 양심들을
무차별로 삼켜
몇 십 년이더냐
199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의 그날로부터 반세기 되는 날이었다.
통일을 위해 심장을 불태우던 사람들을 수없이 빨아 들여 청춘을 빼앗고 목숨을 삼켜 버린 대전교도소의 뻘겋게 녹 쓴 철문이 무겁게 열리며 나는 《세계최장기수》라는 옥살이기록을 안고 감옥 밖으로 나왔다 . 스 여섯 살 홍안의 청춘을 45년간 철창 속에 가두고 짓 조기고 얼쿠고 굶기다가 끝내 토해 버리고야 마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45년 세계최장기 옥살이, 그것은 한마디로 죽음과의 결사대결에서 사회주의 신념이 승리한 45년,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절대불변의 신념이 나의 운명을 구원해 준 45년이었다.
조선인민군 정찰부대에서 복무하던 나는 1951년 10월 15일 철원근방에서 정찰임무 수행 중 불행하게도 미국 놈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미군정보기관에 끌려갔다가 남조선육군특무대에 넘겨 진 나는 1952년 2월경 서대문육군형무소를 거쳐 마포형무소로, 1953년 4월경에는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었다. 나는 터무니없는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군법회의라는 데서는 정확한 심리도 없이 《앞줄 누구누구이하 사형, 뒤줄 누구누구이하 무기》하는 식의 날치기 단심재판을 하는 판국이었다. 이렇게 되어 대구형무소에서 근 1년간 사형수생활을 하던 나는 1954년 2월 27일 서류심사에서 무기형을 확정 받았다. 기아와 혹한, 고독의 지옥에서 참기 어려운 전향고문을 당해야 하는 무기수옥살이가 시작되었다.
전향강요의 첫 시련은 1957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형무소 작업과장이란 자가 나타나서 《전향자술서》를 안 쓰면 모두 《불취업》처분을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불취업》이란 형무소 안에 설치한 공장에서 하던 일을 못하게 하는 일종의 벌이었다.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다소나마 주림을 달랠 수 있고 고독감도 덜 수 있었던 재소자들에게 있어서 《불취업》은 사형선고 다음 가는 중벌이 아닐 수 없었다. 그자는 자술서를 안 쓰고 《불취업》처벌을 받을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놈들이 요구하는 어떤 형태의 문서장이든 전향강요의 한 형태이므로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기로 했다. 나는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뒤따라 모두가 손을 들었다.
《불취업》에 들어가면서부터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죄수옷섶에 꽁보리밥 한 덩이를 받아 안고 양말 빨고 난 물 같은 소금국 반 국자를 고무신짝에 받아먹는 살인적인 급식조건에다 10명도 빠듯이 들어 갈 방에 20여 명씩 번호순서로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감방 안은 찌물쿠는 더위와 악취로 질식할 지경이었다. 전향강요와 그에 따르는 살인고문은 중요 정치적 사변들이 있을 때마다 더욱 살기를 띠군 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후 군사파쇼도당은 《사상범》들을 한데 모아 놓고 《특별관리》를 한다면서 여러 지방 교도소들에 분산 수감되어 있던 비전향장기수들을 대전형무소 특별사로 집결시켰다가 7.4남북공동성명발표 이후에는 다시 대전, 대구, 광주, 전주 등지의 교도소로 분산 배치하였으며 교도소 별로 《전향공작반》을 조직했다. 인류형법사에 《한국의 사상전향테러》로 악명을 떨친 1972년부터의 전향공작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공작반놈들은 《한국》의 교도소들에는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빨갱이》가 한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빨갱이》들을 돌려 세우라, 전향공작과정에 생기는 인명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안는다는 것이 《청와대》의 《특별지령》이라고 하면서 죽던가, 전향하여 살든가 두 길 중 하나를 택하라고 공공연히 위협하였다.
낮에는 복도를 돌아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밤에는 한명씩 불러내다 잔인무도한 고문을 들이댔다. 감방바닥과 복도가 온통 피로 칠갑을 했고 처절한 비명소리에 육중한 감옥건물마저 몸부림치는 듯 했다. 고문으로 숨지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등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다물흙선생님의 글 잘보겠습니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멋진인생님,
이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란 글을 처음부터 보시면 우리 현대사가 훤이 보이지요.
꼭 읽어보시라고 권고합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네, 잘 알겠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