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로부터 들은 얘기다. 이혼 위기에 처했던 후배 부부의 파경을 극적으로 막았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남자 후배는 통일운동을 하는 활동가였는데 동학이나 민족 전통사상 등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부인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신앙의 차이 때문에 둘은 자주 마찰을 빚었다. 특히 남자는 기성 종교에 매우 부정적이어서 심지어 집안에 있는 십자가조차 없애버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남자쪽은 맹목적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부인의 신앙생활이 영 못마땅했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엉뚱한 소리나 해대는 남편이 탐탁스러울리 없었다. 서로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으니 살얼음판을 걷듯 관계가 위태위태했다. 작은 일로 마찰을 빚어도 억하심정이 솟아 갈등의 골이 커졌다.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고 있을 즈음 선배가 후배로부터 그 사연을 듣게 된다.
후배의 푸념을 들은 선배가 말한다. "자네 통일운동 한다는 사람 아닌가. 연방제든, 연합제든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통일하자는 거잖아. 나라 통일은 그렇게 하자면서 왜 가정에선 그게 안되나." 이 한마디로 그 집 가정을 구했다는 요지다.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자면 영영 해결이 안 될 것도 '다름'의 차원으로 이해하면 금세 풀리는 게 세상의 이치다. 연애학 기초에도 나오는 얘기다.
사실은 나도 불과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내와 언쟁을 한 뒤 이메일로 내 생각을 분풀이하듯 퍼부었다. 뒤틀린 심사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메일 답신이 왔다. 첫 문장이 "우리 중간에서 좀 만나보자…"였다. 어디서 만나 한바탕 '맞짱'을 뜨자는 얘긴가 싶어 속으로 뜨끔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서로 자기 생각을 반씩 비우고 반은 상대방 생각을 품어주자는 얘기였다.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금언이었지만 잊고 있었다. '중간에서 만나자'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풀리니 신기할 노릇이다. 그렇지, 사람 생각이 서로 다른 게 당연하지, 꽁한 마음을 품었던 스스로가 계면쩍다.
'약방에 감초'라고 한다. 감초는 쓴 약을 달게 하고 약의 독성을 없애는 기능이 있어 약제의 필수 성분이다. 약초가 제각각 튀는 약성을 나타내면 좋은 처방이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감초로 약성을 중화시킴으로써 약효를 높이는 것이다. 부드러움이 독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선조들은 이미 경험으로 알았던 것이다.
남과 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실무회담을 일곱번 가진 끝에 거둔 성과다. 그동안 회담이 풀리지 않았던 것은 존엄·책임·원칙 이런 것들을 내세우며 서로 양보를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성공단 합의 과정을 놓고 북한이 백기를 들었네, 우리가 후퇴를 많이 했네 하는 식의 평가도 있지만 합의와 타협을 승패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양쪽 다 양보한 것이고, 양쪽 다 승리한 것이다.
개성공단 타협 과정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면서 타협이나 통합이란 결국 '다름'의 인정과 양보의 산물임을 깨닫는다. 남북이 70년이 다 되어가도록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본질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문제 특별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예외없이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만이 통일의 첫걸음임을 강조했다.(8월 14일자)
남북이 서로 합의하고 악수를 교환하는 반가운 모습을 실로 오랜만에 본다. 이번의 경험이 통일로 가는 신작로에 작은 밑돌이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