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미국 대학생들 친구되기교육프로그램> 동경 조선대학 - 인디애나 드퍼대학 2차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 > 추천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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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미국 대학생들 친구되기교육프로그램> 동경 조선대학 - 인디애나 드퍼대학 2차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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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20-03-08 21:09 조회1,0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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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한 역대일본정부의 ‘조선민족차별정책’은 아베 때 더욱 극심해졌다.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지위 변화는 재일조선인민족교육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미국대학생들은 평생 ‘악마’라 듣고 자란 ‘조선사람(학생)’들을 만나 단숨에 하나가 됐다. 동경조선대학교는 《데포대학》과의 국제교류프로그램을 앞으로도 계속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동경 조선대 초빙교수이고 <21세기 연구원> 원장이며  <21세기> 발행인/편집인)인 정기열 박사의 글을 게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재일조선인들”(Koreans in Japan):

<(재일)조선-미국 대학생들 친구되기교육프로그램>

동경 조선대학 - 인디애나 드퍼대학

2차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

2020년 2월

 


정기열 교수.jpg

정기열 박사

(동경 조선대 초빙교수, <21세기 연구원> 원장, <21세기> 발행인/편집인)

 



정기열 교수 국제학생교류 사진2.jpg

동경 조선대학 - 인디애나 드퍼대학 2차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 참석한 학생들


들어가는 말: 일본의 ‘조선민족차별정책’은 자가당착(自家挡着)이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다=

 

‘재일동포민족교육’(이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한 역대일본정부의 ‘조선민족차별정책’은 아베 때 더욱 극심해졌다. 2012년 12월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생들만을 제외시킨” 아베권력의 반인륜적, 반인권적 민족차별행위는 마치 ‘식민지시대’를 방불케 한다. 고교무상화제외는 ‘패망’ 뒤에도 식민지시대와 다름없이 ‘해방된 재일조선사람들’을 계속해서 차별해온 역대일본당국의 부당한 정책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조선민족차별정책은 한마디로 자가당착이다. 이율배반이다. 19세기 말 갑오농민전쟁부터 20세기 중엽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그들이 우리민족에게 가한 온갖 형태의 제국주의범죄는 역대일본당국이 남북해외 우리민족 특히 “‘식민지백성으로 일본에 끌려간 수백만 조선인’의 후예들인 ‘재일조선인들’”(Koreans in Japan)에게 백년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역대일본당국의 조선민족차별정책은 나치시대 모든 제국주의범죄를 역대독일정부가 70년 지난 오늘도 진솔한 사죄를 거듭하는 것은 물론 피해국가들과 개인들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배상금을 성실하게 갚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극명하게 다르다. 식민지시대 반세기에 걸친 일제의 조선사람들에 대한 온갖 제국주의범죄[대량학살을 비롯 8백만에 달하는 강제징병, 강제징용, 일본군성노예(군대위안부), 온갖 인적, 물적 약탈, 수탈, 착취, 인권침해, 역사기록파괴 등]는 이루 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19세기 말 망국노로 전락한 조선사람들이 겪은 숱한 고난과 시련은 글과 말로 이루 다 형언키 어렵다. 고교무상화문제로 대표되는 역대일본정부의 조선민족차별정책이 자가당착이고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일본의 ’과거사 부정’이 70년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역대일본당국의 처사는 극단적 형태의 자기부정이다.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극단적 형태의 역사부정이다.

 

70년 넘게 계속되는 일본의 자기(과거사)부정

 

2019년 10월 부산을 방문한 민주당 소속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는 “일본이 과거 식민지 시대 강제동원을 비롯한 여러가지 많은 잘못을 저지른데 대해 사죄한다”며 “[조선인구가] 당시 2000만명이었던 [시절] 800만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군인과 군속, 혹은 노동자로 강제동원되고 목숨까지 잃게 만든 사실에 대해서도 사죄[한다]”(연합통신 2019년 10월 12일자). 해방 뒤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땅 방방곡곡에 버려진 ‘조선인 유골’(Korean Remains) 또한 그 수가 ‘백만에 달한다’. 식민지시대 일제는 그러나 ‘사람’만 끌어간 것이 아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조선의 국보급문화재를 숱하게 도굴하고 약탈, 파괴했다. 조선사람의 혼과 맥, 정기(正気)를 끊고 파괴하기 위해 백두대간, 태백산맥 등 우리민족의 혼백이 살아 숨쉬는 곳곳에 정(징)을 박았다. 고조선사부터 조선사에 이르는 거의 모든 역사를 왜곡, 수정, 삭제, 변형시키는 ‘역사범죄’도 저질렀다.

 

그 모든 제국주의범죄가 오늘도 객관적 사실로 시퍼렇게 살아 증언하는데 그들은 어찌 그토록 뻔뻔할 수 있을까? 역대일본당국은 기본 진솔하게 사죄하지 않았다. 무라야마, 하토야마 같은 사회당, 민주당 소속 전직 총리들의 진솔한 사죄는 예외다. ‘가뭄에 단비’ 같은 역을 한 그들의 ‘진솔한 사죄’는 그러나 아베시대 물거품이 됐다. 아베는 사죄는커녕 식민지배상금도 이런저런 이유 들어 책임회피하고 있다. 한편 그는 ‘보통국가’로 포장된 ‘군국주의부활’을 꿈꾸고 있다. 소위 ‘최장수 총리’ 수행 기간 발생한 안팎의 잘못(부정부패범죄 포함)들은 온통 괴변으로 때우고 있다. 과거(제국주의침략)사를 끝없이 부정하며 다른 한편으론 ‘재일조선인’(총련) 동포들을 끝없이 탄압한다. 일본사회, 언론에 ‘총련(조선)악마화’가 멈추지 않는 배경이다. ‘총련조직와해’를 공언하며 재일동포들을 끝없이 핍박하는 그의 정신심리상태를 의심치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재일동포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오늘도 의연히 제 길을 가고 있다.

 

75년 온갖 도전, 시련에도 ‘재일조선인들’은 이미 오래 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반열에 오르고도 남았을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을 오늘도 혼신을 다해 지켜가고 있다. 민족교육을 이어가기 위해 재일동포들이 겪는 온갖 아픔과 어려움, 외로움은 그러나 이루 다 말로 형언키 어렵다. 어제오늘 재일동포들의 숨통을 끝없이 죄는 생활 속의 가장 큰 어려움은 오늘도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이다. 재일동포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러나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밤낮으로 가해지는 일본당국과 언론의 ‘재일조선인(곧 조선)악마화’도 있다. ‘누군가에게 끝없이 고통을 가(악마화)함으로 안위/자위를 찾는 행위’는 ‘가학성 정신병’이라 일컫는 ‘새디즘’(Sadism) 행위다. 일종의 정신병이다. 남을 해함으로 희열을 얻는 변태행위다. 진정한 희열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가짜, 허상, 허망, 환상에 빠져 사는 자들이다. 일종의 정신적 자위행위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일본당국과 언론, 극우정치세력의 70년 넘게 계속된 온갖 형태의 정신적 가해 행위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뒤부터 ‘정신외상스트레스’를 끝없이 받으며 사는 셈이다. 일본당국과 사회, 언론의 끝없는 반인륜적, 반인권적 조선민족차별행위는 그러나 세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니 감춰져 있다. 당국에 의해 철두철미 감춰져 있다. 자신들 행동이 떳떳치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조선민족차별이 떳떳하지 못함을 아는 것이다. 역대일본정부의 처사를 무슨 말로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세상의 숱한 양심들은 일본당국의 처사를 어떻게 이해할까? 위선, 비열, 치졸, 교활 등의 표현으로 지적하지 않을까? 일본정부가 자유, 민주, 인권, 평화, 정의를 주장할 때 그런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까?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일이다.

 

2020년 1월 조선대학(동경), 드퍼대학(미국) 사이 진행된 <2차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

 

민족교육을 지켜가기 위한 노력은 재일동포들만의 몫이 아니다. 더는 아니다. 남북해외 우리민족 모두의 몫이다. 북녘은 해방 직후부터 재일동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 민족교육운동을 그 첫 걸음부터 지원했다. 민족교육장학금을 시작으로 북녘동포들은 재일동포들과 기본 모든 것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교육재정을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거의 모든 면에서 북녘동포들은 정녕 재일동포들과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렇게 북녘과 재일동포들은 하나가 됐다. 심장에서부터 하나가 됐다. 혹은 재일동포들 표현처럼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게 됐다.” 혹은 “조국과 호흡, 숨결을 함께 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민족교육운동이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그 전 과정에 북녘이 국가차원에서 함께 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전쟁 뒤 나라가 잿더미 됐던 때나 90년대 후반 “제2 고난의 행군” 시기 때도 북녘은 자신들이 처한 극한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교육장학금 지원은 계속했다. 재일동포지원은 그 어떤 경우에도 멈춤을 몰랐다. 참고로 지난 시기 북녘이 재일동포들에게 보낸 교육지원금은 오늘까지 약 500억엔에 달한다. 70년의 인플레를 감안할 때 그 돈이 오늘 얼마나 큰 금액일지 대강 짐작이 된다.

 

‘재일조선인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역사적 이해를 돕기 위해 재외동포신문 2003년 2월 22일자에 게재된 <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 집행위원 배덕호 씨의 <기민(棄民)정책 속에 잊혀진 이름 '재일조선인', 그리고 정책 제언>이란 제목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17년 전 쓰여진 글이지만 재일조선인문제를 조명하는데 오늘도 여전히 참고가 될만한 글이라 판단되어 소개한다. 저자의 글을 그대로 소개한다:

 

“… 이승만 정권은 1957년 '재일동포에 대한 교육지원금' 명목으로 보조금 2만 2천불을 지원한 것 이외에 기본정책 혹은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같은 시기 북한은 한국정부의 지원금의 30배에 가까운 61만 5천불을 민족학교에 지원했다. 상대적으로 북한은 최고인민대표자회의(한국의 국회에 해당)에 7명의 총련 대표를 참여시키고 있을 정도이며, 1963년 10월에 개정한 국적법 제2조에도 "그 거주지에 관계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적 및 법적 보호를 받는다"라고 선언적 의미나마 일찌감치 명기했으며, 헌법 15조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해외의 조선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와 국제법에서의 공인된 합법적 권리를 옹호한다"고 하여 일관되게 일본 전역의 민족학교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재외동포정책을 펼쳐온 셈이다.

 

박정희 정권의 정책은 어떠했는가? 1965년 한일법적지위협정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정의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역사적 청산을 강제해내야 하는 것임에도,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는 공식문서로 단 한 줄 남겨놓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당시 한국국적 보유자만을 직접적인 법의 적용대상으로 명시하고, 분단된 어느 특정 국가의 국적 취득을 거부한 다수 재일조선인을 제외시켰으며, 식민지 지배와 역사적 정주의 경험을 함께 한 재일조선인 사회에 또 다른 분단을 야기시켰다는 점에서 씻을 수 없는 반민족적 과오로 남는다. 또한 당시 외국인의 처우에 관한 국가간 실정과 국제법, 나아가 인권보장에 관한 국제적 기준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군사정부의 무지 자체만이 돋보일 뿐이다.

 

1998년 10월,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과거사 청산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90년 넘는 세월, 일본의 차별·배제 정책의 산증인이며, 과거사 청산의 주역으로 참여해야할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는 98년 한일정상회담 합의 내용 중 어느 곳에도 투영되지 못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미래에도 두고두고 커다란 문제로 남을 전망이다. 결국 재일조선인에 대한 정책다운 정책은 추스려보자면 '기민정책' 밖에는 남을 게 없을 정도다. 식민지역사 팔고 재일조선인 팔아 그 댓가로 한국고속도로 만들고, 공장 만들었다는 얘기는 알 만한 사람 다 아는 얘기다.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 아닌가? …”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

 

북녘이 없었다면 “인류교육사에 전무한 위대한 재일동포민족교육운동”은 오늘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녘은 반면 북녘과 정반대 길을 걸었다. 해방 뒤 ‘점령군’(미군정) 지배 하에서 시작된 남녘의 역사 곧 김구, 여운형, 김규식 같은 민족자주통일세력은 제거되고 리승만, 백선엽, 박정희, 노덕술 같은 친미사대(친일반민족)세력이 권력 중심에 세워진 ‘대한민국탄생사’를 감안할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워싱턴의 서울허수아비(리승만, 박정희 등)권력들은 위 인용에서 간단히 소개한 것처럼 재일동포들을 품어 안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들을 나 몰라라 버린 곧 그 악명 높은 기민(棄民)정책을 펼쳤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그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에 대해 지난 70년 세상이 무지(無知)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세상의 무지’에 그러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미국 인디애나 드퍼대학이 ‘재일조선인’(Koreans in Japan)이란 제목의 새로운 겨울강좌를 2019년 개설한 것이 하나의 좋은 예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는 난데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 변화는 2017년 11월 29일 선포된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 뒤 조미관계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2017년 7월 4일 화성14호 시험발사 직후 “70년 조미(핵)대결이 공식으로 완결된” 위대한 역사를 제프리 루이스(Jeffrey Lewis) 박사가 “The Game is Over”(게임은 끝났다), “North Korea Has Won”(조선이 승리했다)고 명쾌하게 일갈한 위대한 시대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2018-2019년 내내 ‘조미정상회담’ 같은 선뜻 믿기 어려운 인류사적 사건들이 거듭되며 현실화된 “국제사회에서의 조선의 급격한 지위 상승”과도 무관치 않다. 그렇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는 위에 언급한 그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들과 연동되어 발생한 위대한 시대 변화와 무관치 않다. 그리 보아야 옳다.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지위 변화는 재일조선인(민족교육)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재일동포민족교육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세계최대핵무장국가(미국)와 70년 ‘핵대결(Game)에서 승리한’(Over) 조선의 국제적 지위가 급상승한 때와 궤를 같이 한다. 조선이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 핵전략국가’로 새롭게 인식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다.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위상이 빠르게 그리고 새롭게 형성되어간 것과 정반대로 기존의 미국/서구 중심 일극지배질서가 급속히 재편되기(혹은 무너지기) 시작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그 시기는 한편 반세기 넘게 국제사회에 먹힌 ‘조선(총련)악마화’ 약효가 급격히 떨어지게 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남녘은 물론 국제사회가 최근 민족교육운동에 보다 더 깊은 관심을 돌리게 된 핵심적 배경이라 믿는다. 조미핵대결이 끝난 시점에 시도한 조대와 드퍼대 사이의 1차, 2차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은 위에서 짧게 논한 오늘의 바로 그 위대한 시대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조그마한 첫 사건이다. 귀중한 첫 걸음이다. 첫 역사다.

 

ISEP는 그러나 드퍼대에만 국한된 사업은 아니다. 조대는 “Koreans in Japan”(재일조선인들)과 교류를 원하는 세상 여러 나라(대학)들과도 향후 교류.연대.협력의 폭을 점차 넓혀가게 될 것으로 사료된다.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다시 시도한 조대-드퍼대 ISEP는 무엇보다 먼저 국제사회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이 차단되어 있는 일본사회가 바깥세상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더 감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일본사회가 국제사회의 변화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일본에 대한 일종의 간접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70년 고립된 채 온갖 차별, 억압과 외롭게 싸우고 있는 재일조선인들과 함께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의로운 투쟁에 국제적으로 연대하기 위함이다. 셋째 그들의 위대한 역사로부터 배우기 위함이다. 1, 2차 다 짧은 1주일 드퍼대생들의 배움(충격, 슬픔, 기쁨, 배움, 보람)은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다. 그들이 대학에 제출한 공식평가서에 담긴 짧은 글들을 영문이지만 참고가 될 것 같아 글 맨 뒤에 부록으로 소개한다.

 

ISEP 같은 민족교육과 연대하려는 국제사회 움직임은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남녘동포들이 그 선두에 있다. 각계각층의 남녘동포들이 재일동포민족교육현장(초.중.고.대)을 찾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아마도 김대중정부가 들어섰던 1990년대 말 시작된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녘동포들이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혁명적 변화였다. ‘반국가단체’로 낙인 찍혀 반세기 가까이 고향방문길이 막혔던 (재일)한통련 포함 총련동포들의 고국방문이 실현됐던 것도 김대중정부 때 발생한 변화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절 상상치 못한 일이다. 김기춘, 황교안 같은 반북공안세력에 의한 ‘재일동포간첩조작사건’이 계속됐던 시절 상상치 못한 일이다. ‘총련(조선)악마화’와 별개로 재일동포를 상대로 한 간첩조작사건은 반세기 넘게 재일(총련)동포사회를 “절대 가서 안될 곳처럼” 만들었다. 세상과 시대가 바뀌면서 그러나 남녘동포들의 “재일동포 민족교육현장”을 찾는 발걸음은 오늘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 변화다. 위대한 변화다. 최근엔 KBS TV를 비롯 YTN(연합뉴스) 등 남녘의 주요매체들이 민족교육운동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 다큐들이 제작되어 방영되곤 한다. 작년 KBS TV다큐는 2019년 첫 조대-드퍼대 교류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조선해외공민’(조선대학)-미국(드퍼대학) 국제교류프로그램 궁극적으로 ‘조미관계정상화’ 목적

 

올해도 드퍼대 교육철학과 학생 15명이 담당교수와 함께 조선대를 다시 찾았다. 드퍼대 교수와 가까운 친구인 펜실바니아 소재 대학 교육철학과 교수는 올해도 합류했다. 참고로 ISEP는 워싱턴 소재 비영리교육기관인 <21세기 연구원>이 기획, 제안한 사업을 드퍼대학과 조선대학이 받아들여 3자가 공동으로 함께 주최한 국제교육프로그램이다. 미국대학생들이 드퍼대에서 배운 ‘재일조선인역사’를 현장(일본)에 가서 몸으로 직접 체험(학습)할 수 있도록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드퍼대 교수는 작년처럼 올해도 강의와 독서를 통해 학생들을 준비시켰다. 그들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제의 조선침략사, 20세기 초엽 시작된 항일무장투쟁사, 20세기 중반 이후 해방과 분단, 전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코리아근현대사 전반 특히 ‘재일본조선인역사’에 대한 개괄적 학습을 마친 뒤 조선대를 찾은 것이다.

 

재일본조선인들과 그들의 민족교육운동을 탄압하고 말살하기 위한 역대일본당국의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정책은 궁극적으로 ‘총련와해’를 목적하고 있다. 총련와해는 물론 ‘조선고립압살전략’의 일환이다. 그 목적은 아베시대 더욱 노골화 됐다. 70년 ‘조선(총련)악마화’는 궁극적인 목적들을 달성키 위해 조선과 재일(총련)동포들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제일 중요한 공정들 중 하나다. 아베시대는 물론 역대일본당국의 조선민족차별정책은 국가권력이 재일동포들을 세상 눈이 쉽게 가 닿지 않는 뒷골목에서 집단으로 폭행을 가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정부조직이 야쿠자(깡패)조직처럼 행한 것이다. 어두운 곳에 숨어 온갖 불법/비법/탈법행위를 벌인 것이다. 일본의 70년 재일동포민족차별행위를 발가벗기면 온전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망상에 불과하나 세기를 넘기도록 실패를 거듭하는 조선(총련조직)에 대한 고립압살와해전략은 그러나 미일제국주의국제연합세력이 와해되기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제국주의국제연합세력이 와해되기까지 세상은 그러면 목놓고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세상 모든 ‘만악’(萬惡)의 근원인 제국주의문제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류의 자유, 정의, 평등, 독립, 해방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은 무엇을 할 것인가? ISEP는 그런 의미에서 체험학습을 통해 온갖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다. 대결에서 화해로, 적이 친구로, 부정을 넘어 긍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조선-미국의 ‘대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만나 교육(체험학습)을 통해 하나(친구)가 되어가는 훈련프로그램’이다. 언젠가 현실화될 조미관계정상화로 나아가기 위한 민간차원의 노력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ISEP는 궁극적으로 세가지를 목적, 희망, 지향한다. 첫째, 재일조선인, 특히 민족교육운동에 대한 역대일본당국의 민족차별문제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교육한다. 둘째,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의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사법적 지위, 권리 획득, 보장 등의 제반 문제를 풀어가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셋째, 조미, 조일관계가 국가차원에서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에 민간(대학생교류)차원에서 참여한다. ISEP는 화해, 평화, 상생, 번영을 목적하는 미래지향교육프로젝트다. 미국(대학생)이 “조선해외공민”인 조선대생들(‘총련동포’)과 교류하는 것은 곧 ‘조선’과 교류하는 것이 된다. 참고로 소개한다. <21세기 연구원>은 머지 않아 여건과 환경이 허락될 때 미국대학생들이 조선에 수학여행가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우며 하나가 곧 친구가 되어가는 새로운 교육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2차프로그램은 1차프로그램 덕인지 미국대학생들 준비 정도가 작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거의 모두 작년에 비해 좀 더 준비된 모습을 보였다. 프로그램에 임하는 자세부터 보고 듣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도, 집중도, 참여도 등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작년에 없던 모습이다. 올해는 체류 기간 내내 질문이 이어졌다. 6박7일의 ISEP는 일정에서 작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차이라면 작년 것에서 한두 개 빼고 대신 올해 새롭게 한두 개를 더한 것 외에 내용상 크게 차이가 없었다. 올해 성과는 여러 면에서 작년에 비해 크다. 첫날 민족교육현장(초중급학교, 조고) 견학을 시작으로 야스쿠니신사 참관, 둘째 날 조선인강제징용현장[지하(비밀)군사기지건설장] 견학, 강제징용 조선인희생자추도비 참관, 요코스카미해군기지 탐방, 금요투쟁참가, ‘민족교육을 지원하는 어머니회’ 어머님들과의 만남과 대화, 셋째 날 조선대학교(강의, 대학참관, 역사박물관, 도서관 등), 조선대학교 경음악실습공연장 방문과 즉석에서 마련된 조미합동공연, 대학소조활동참가[민족무용소조, 민족악기(세마치)소조(꽹과리, 북, 장구, 징)], 조선불교사찰인 국평사(国平寺) 방문, 조선대학교(영어웅변대회 참가) 등이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새로운 미래: 1주일의 뜨거운 하나됨: 조미가 단숨에 하나되다

 

작년처럼 떠나기 전 날 20일 저녁 조선불고기집에서 뜨거운 송별만찬모임이 열렸다. 송별모임 소개 전 짧게 체류 기간의 몇가지 일상을 소개한다. 작년처럼 조대/드퍼대 학생들은 체류 기간 함께 서너 차례 사우나목욕을 즐겼다. 교수, 학생 너나할 것없이 모두 즐겼다. 드퍼대 담임교수의 사우나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우나공동목욕은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새로운 문화체험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두 너무 좋아했다. 도쿄의 스카이트리(Skytree)에도 데리고 갔다. 작년에 재미 보지 못한 일본음식(문화체험)은 올해 삼가했다. 대신 그들의 열화같은 요구대로 재일조선인불고기식당을 기본 데리고 갔다. 일본에서도 성업 중인 맥도날드에도 굳이 데리고 갔다. 민족교육현장학습은 작년과 달리 먼저 초중고에 갔다. 조대에서의 프로그램은 일정 후반부로 미뤘다. 그 전 과정에 미국과 조선대생들은 하나가 됐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나 할 것없이 모두 ‘단숨에’ 친구가 됐다.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연스레 하나가 됐다. 도쿄조고에서는 조고학생대표와 드퍼대 학생대표가 팔씨름도 벌였다. 어깨가 넓은 조고생이 키와 코가 큰 미국대학생 형을 이겼다. 실은 누가 이기고 진 것이 없다. 그냥 모두 함께 웃고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동무’가 됐다. “조미가 단숨에 친구가 된 것은” 작년도 같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숨에 하나가 됐다. 만나면 마치 오래된 친구/동무들처럼 순간에 하나가 됐다.

 

그들 모습은 1주일 내내 거의 동행하다시피 한 조선신보, 잡지 <이어> 기자들 카메라에 수없이 담겼다. 대화 속에 터져 나오는 쾌활한 웃음소리 또한 멈추지 않았다. 작년처럼 조대외국어학부 3, 4학년 학생들이 3명이 한조가 되어 드퍼대생들과 어울렸다. 그들을 안내도 하고 ‘가까운 동무’도 되었다. 그 때문일까? 드퍼대생들은 올해는 첫날부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과 달랐다. 작년은 처음이었기에 첫 몇일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하루하루지나면서 그러나 그들은 곧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이틀을 남겨두고부터 그들은 모두 점점 더 심각해진 얼굴을 하고 다녔다. 떠나기 이틀 전 가진 송별모임이 작년처럼 눈물바다였던 이유다. 대학에 제출한 학생들의 평가서에 그들 진심이 모두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선신보를 통해 소개하려는 미국대학생들의 평가서에는 그들의 놀람과 충격과 배움과 기쁨과 이별의 섭섭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대학생들은 평생 ‘악마’라 듣고 자란 ‘조선사람(학생)’들을 만나 단숨에 하나가 됐다. 친구가 됐다. ‘동무’가 됐다. 헤어지기 섭섭해 부둥켜 안고 공항 가는 차안에서 눈물까지 흘렸다. 다시 만나자 약속하고 또 약속했다. 그들은 오늘도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언젠가 조미관계가 정상화될 때 조대학생들도 미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제일 먼저 드퍼대를 방문할 것이다. 그 꿈을 조대학생들은 이미 꾸기 시작했다.

 

나가는 말

 

국가도 아니다. 민족도 아니다. 인종도 아니다. 피부도 아니다. 종교도 아니다. 문화도 아니다. 남녀차이도 아니다. 사람을 가둬둔 생각(이념, 편견, 선입견 등)의 감옥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그가 누구건 거의 모든 경우 국가, 민족, 인종, 피부, 문화, 종교, 남녀 등등을 떠나 쉽게 하나될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불의한 극소수 지배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하나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제국주의가 그렇다.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단결이다. 하나됨이다. 반제자주운동의 시작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면서 시작될 수 있다. 반제자주운동은 불의한 소수(제국주의)지배자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이념, 경계, 구도를 넘어 진심에서부터 하나가 되어가면서 시작될 수 있다. ‘가짜(망상.허상.허구)는 사람을 생각이라는 감옥에 가둬 두지만 진실(참된 깨달음에서 얻는 자유)은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진리를 새삼 거듭 경험한 1, 2차 ISEP였다. 드퍼대학은 올해도 떠나면서 또 다시 조선대학을 찾겠다 약속했다. ‘재일조선인들’ 강의를 개설한 드퍼대 교수는 “대학생들만 아니라 언젠가 미국의 평화운동가들도 묶어 일본을 다시 찾고 싶다” 했다. 조대는 “데포대학”(‘드퍼대학’의 재일동포식 발음)과의 국제교류프로그램을 앞으로도 계속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양쪽 모두 벌써부터 서로를 “그립다!” 고백하기 시작했다. 만남을 다시 기약하며 그리움과 섭섭함을 달랠 것이다. 조대-드퍼대 1, 2차 ISEP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궁극적으로 조일관계정상화, 조미관계정상화를 목적한 미래지향적 교육프로그램이다. 환경과 여건이 마련될 경우 드퍼대 외에 미국 다른 대학으로도 조선대학과의 교류프로그램을 확장해가려고 한다. (3월 3일 탈고)

 

 

 

[부록] 드퍼대학에 제출한 학생들의 수강과목(재일조선인들) 평가

 

Student Opinion Report, Surveys:

UNIV 183IJ: (North) Koreans in Tokyo (#124960) Ford/Malott

Winter 2019-20

 

(드퍼대 재일조선인 겨울학기 수강생들이 아래 10개의 질문에 평가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다)

 

Student Response:

 

Item 1: Organized

Item 2: Guidance

Item 3: Development

Item 4: Effort

Item 5: Learning

Item 6: Response

Item 7: Accessibility

Item 8: Responsibilities

Item 9: Success

Item 10: Comments

 

(참고: 짧게 쓴 학생부터 길게 쓴 학생들도 있다)

 

학생 1

-Extremely well, zero time of confusion.

-100%

-Fantastically, multiple moments of public speaking, and opportunities to have your own -positionality challenged.

 

학생 2

-very well

-very clear

-very effectively

-a great deal of effort

-more than I’ve learned from any winter term or even any semester long class

-well

-very

-my faculty member did a great job of helping us have a safe time while learning a lot incredibly successful, absolutely nothing to change except maybe staying longer

-THIS IS THE BEST WINTER TERM DEPAUW OFFERS. seriously.

 

학생3

-very well

-above and beyond!

-amazing

-I had to put a lot of effort into this class, it challenged my perceptions and current knowledge on the topics

-A TON, unforgettable knowledge, I am already wanting to learn even more despite the fact that we learned new things every hour of the day

-good, receptive feedback

-very accessible

-open minded and supporting

-couldn't have gone better I don't think a longer trip would've been awesome! even just two -more days would've been lovely, I wanted to keep learning in Tokyo

-life changing

 

학생 4

-It was very well organized. Korean University administration was amazing with planning it all and even having food for those with dietary restrictions. This is uncommon for most winter terms.

-I was not very pleased with the beginning of the trip preparation because we rarely received information. It then got better once we met with the professor two days before departing.

-They truly gave voice and leadership opportunities to all students including minorities and introverts.

-A lot of time

-I learned information that I would have never been able to receive staying at DePauw,

-They were always willing to accommodate and answer questions with details. Dr. Ford, Malott, and Kiyul were all amazing

-They were organized open-minded willing to be flexible with students accommodating constructive This course should always be offered

-This course should always be offered

 

학생 5

-The activity was structured incredibly well.

-The guidance and direction I received was entirely appropriate, and incredibly helpful.

-Days were long but worthwhile, and the effort was entirely appropriate for the criterion of the activity.

-This course has changed my life for the better. I have learned so much about myself, the struggles of others, and my place in the world. It would be a crime if this course was not offered in the future.

-Derek was considerate, kind, and took student input into account. The same can be said for Curry Mallott. Derek was considerate, kind, and took student input into account. The same can be said for Curry Mallott.

-This has singlehandedly been the most impactful course I've taken at DePauw. It has renewed my sense of purpose in life, and I'm eternally grateful I was able to experience this journey. -Literally nothing could be improved.

 

학생 6

-I believe that this course was very well structured. Students were always aware of what was going on in the course. There was good communication among students and faculty.

-They were very appropriate. Everything was well structured and if there was ever any confusion, faculty were quick to answer and clarify.

-This course required a lot of time and effort. However, I believe that it was extremely rewarding and for a course that talks about such important history, there needs to be a lot of effort and time into it.

-I learned a lot from this course. This is something that I probably would have never learned about if I wasn’t enrolled.

-I believe that this course was very much student driven and I believe that speaks to how well the faculty responded to us and our concerns. They were very accessible and easy to talk to.

 

학생 7

-It was very well structured and organized. There was always an agenda given out with an idea of what was going to happen for that day.

-Very appropriate

-Those who were good at photography took photos of all activities and everyone else was present and ready to learn. I think it was effective.

-We did many different activities like hiking up to climb the entrance of the tunnels and that took some effort. That activity took about an hour and a half to an hour.

-I learned so much. I learned about something that isn’t typically taught about in US schools and I got to see history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than the mainstream one.

-I believe that they were very receptive to the needs and concerns within reason

-Readily available and accessible because we had their numbers and were with them 24/7

-I thought this activity was very successful because everyone on the trip seemed to enjoy it and learned a lot and formed lifelong friendships

 

학생 8

-It was very structured and organized. We knew exactly what we were going to do way before we had to.

-Very appropriate. Everything was kindly said and well directed.

-Very effectively.

-It required a decent amount of time and effort. We as students had to be very educated and prepared to walk into the sensitive environment I learned more than words could even try to explain. This trip has widened my eyes and taught me of things I never knew existed.

Very. Ford and Mallot listened to everything we had to say

-Very. They were always there and we could easily connect with them via GroupMe

-This experience was very successful. I don't think anything needs to be changed honestly. -Success

 

학생 9

-Extremely well

-extremely appropriate and concise

-They did a great job

-Quite a bit, every single day was packed, yet it was extremely valuable and educational. This trip changed my life.

-They responded incredibly well to our questions.

-Extremely so.

-Derek and Curry had to be extremely conscious of the situation we were walking into and they were both extremely educated and set an incredible example for all students.

-Extremely successful. I don't have any critiques.

 

학생 10

-The program was very organized which I really appreciated. It was structured in a matter where we knew what was to come of the day. It made the days little to no stressful!

-It was very appropriate and the guidance was great. I appreciated having the Korean students being so willing to help us navigate! Kiyul was also sooo helpful with our entire trip!!

-The faculty members such as Ford and Malott were so impactful. I appreciated them so much for being such powerful leaders on this trip.

-It was an activity that definitely took a lot of energy. One has to be mentally, physically, and emotionally prepared for this trip.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e trip was bad it was actually amazing because it required so much energy. It made every day unique and incredible in its own way.

-I learned so much from this trip!!!! History, culture, traditions, language, etc. it was also beautiful!!!

-Our faculty members would check in with us and ask our opinions which was so nice because it gave us options.

-They were with us on any tour, trip, area, etc. it was so great to have such easy access to them in case there was anything we need help on!

-Ford and other members need to be willing to be patient. They were patient with any changes or new suggestions, etc. they had to be well informed in the topic at hand. Each faculty member such as Ford are all so knowledgeable and just intelligent in the Korean history, international politics, and current events. This made the trip so impactful.

-VERY SUCCESSFUL!! 11/10. All I would suggest is to add more days to the trip!

-Grateful that Ford has created such powerful and beautiful relationships with impactful people such as Kiyul because without that I would not have been able to experience this trip and unforgettable opportunity.

 

학생 11

-The activities we did were very much organized and we successfully went to all our destinations. There was structure and in a good way, there was also leeway.

-Professor Ford and Professor Malott did a job well done preparing us about the oppression and discrimination the Koreans faced in Japan by reading articles and historical books. They also gave us the opportunity to meet other student leaders from the university and Professor Chung.

-They did a job well done by giving us the opportunity to sit in with students and eat with them, dance with them, and play percussion with them.

-Students have to read a book detailing the historical presence of Koreans in Japan and complete a study guide. But aside from that, even though it is a lot of time, emotional and physical energy to be present, and have presence while listening to the students’ testimonies, this was all worth it. And the time we put was well memorable.

-Koreans in Japan were exploited and were forced to work in harsh condition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U.S. has in many ways directly impacted to the cultural genocide of Koreans. We must end U.S imperialism.

-The faculty members listened to requests such as bathroom breaks, needing rest, and answering questions about the experiences of Koreans living in Japan through thoughtful meaningfulness and historical context.

-The professors gave us ways in which we could contact them in case if there was an emergency. They were very accessible.

-This trip was successful and has opened my mind and heart to learn and stand in solidarity with the Korean struggle. I've learned so much from the Koreans here and I am thankful for this experience. Please make this trip more longer.

 

학생 12

-The trip was organized quite well.

-A great mix of structure and supervised freedom. All the direction was quite conscientious of the well-being of all students.

-At various times, people had to step up and some were called upon by our professors to lead and play a role for the group.

-The activity was jam-packed but I wouldn't have it any other way. It changed my life, for real.

-At every gathering we were asked how we felt and they listened to me.

-Very readily accessible.

-Faculty needed to be super chill and caring while pushing us to learn out of our comfort zone.

-The winter term forged relationships and impacted lives beyond my class and with real people around the world in the fight for freedom.

-This trip needs to happen every year. It has more meaning than any other winter term opportunity.

-To learn about oppression and meet those effected is very impactful.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20-03-08 21:11:26 국제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20-03-21 08:48:06 사회, 문화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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