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용운선생 운명/장례식은 2월16일(일요일) 오후5시 로스힐 채플에서 진행 > 추천논평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0년 7월 7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추천논평

왕용운선생 운명/장례식은 2월16일(일요일) 오후5시 로스힐 채플에서 진행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20-02-08 10:11 조회2,565회 댓글11건

본문

왕용운(미주양심수후원회 고문) 선생이 그동안 지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오늘 병원에서 향년 80세로 운명했다. 별세한 시간은 2020년 2월7일 오후 12:35분이다.  고인의 추모 및 장례식은 유가족과 미주양심수후원회 임원들이 오는 2월10일 장례일정을 결정할 것이라고 김시환 미주양심수 후원회 회장이 오늘 밝혔다. 

[부고] 왕용운( 미주양심수후원회 고문)선생 운명


[로스엔젤레스=김백호기자]왕용운(미주양심수후원회 고문) 선생께서 지병으로  그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2020년 2월7일 오후 12:35분 애석하게 운명했다. 향년 80세. 고인의 추모 및 장례식은 유가족과 미주양심수후원회 임원들이 오는 2월10일 장례일정을 결정할 것이라고 김시환 미주양심수 후원회 회장이 밝혔다.  *고인관계 연락문의 전화: (626)818-8247(김시환 미주양심수후원회 회장)


왕용운.jpg
생전의 왕용운 선생


 
통일 애국 인사 고 왕용운 선생님 장례일정 

때: 2월 16일 일요일 오후 5시 
곳: Rose Hills Memorial Park - Memorial Chapel 
3888 Workman Mill Rd
Whittier, CA 90601 

Memorial Chapel 은 바닥에 그려져 있는 Blue Line 을 따라가면 됩니다.
 
조화를 올릴 단체나 개인은 213-615-9760 으로 연락하십시오.

 


왕용운 선생님의 양력

1940.3.17 개성에서 출생. 
1950.6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란.
1952.     종로 고려당 입사. 
1970.     서울역 앞에서 코스모스 제과점 운영. 
1983.     미국으로 이민 코스모스 제과 운영. 
1992.     가족 상봉을 위해 북부조국 방문후 조국 통일운동 투신. 
이후 20차례이상 북부조국 방문. 

북으로부터 통일운동에 기여한 감사장과 최고 인민회의 일일 대의원을했음. 
동포연합, 범민련, 나성포럼등에서 감사, 재무국장, 후원회장등을했음. 
2015. 거주하시는 애나하임 노인아파트 렌트비 인상을 반대하여 거주하는 노인들 전원에게 아파트 보조금인 섹션 8 을 받게함. 
2015-2017 미주 6.15 산악회 고문.
2014,12월부터  별세당시 까지. 미주 양심수 후원회의 고문으로 활약했음.

[미주]원로들, 왕용운선생 병문안하며 위로/현준기선생과 양은식박사 등 위로심방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editorial&wr_id=5096





[이 게시물은 편집실님에 의해 2020-02-15 14:43:56 통일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손세영님의 댓글

손세영 작성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손세영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왕용운 선생님, 편히 쉬십시요.
선생님께서 행동하며 간절히 바라시던 조국통일을 우리 남은 자들이
꼭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강산

이태선님의 댓글

이태선 작성일

왕용운 선생님,
가시밭길같은 인생길에서 애국활동을 해 오시며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근래에 투병생활까지 하시며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더욱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제 편히 쉬시길 바라며 삼가 명복을 빌겠습니다.
이태선

현준기님의 댓글

현준기 작성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로스엔젤레스 현준기

김시환님의 댓글

김시환 작성일

우리들이 사랑하는 왕 용운 원로 선생님께서 2020년 2월7일 오후 12:35에 영면하셨습니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절차가 확정되는대로 연락을 올리겠습니다.

미주양심수후원회

이인숙님의 댓글

이인숙 작성일

이인숙 선생님이 사회네트워크에 올린 왕용운선생님의 애도의 글을 소개합니다./강산올림

Insook Lee
2시간 ·
존경하는 왕용운 선생님이 거의 3개월 동안 숨쉬기가 어려워 고생하셨지만 오늘(02 07 2020) 영원한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지금도 옆에 계시는 것만 같아 아쉬움이 크지만 육체적 고통을 더 이상 당하시지 않고 편안하게 보내드린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홀홀단신으로 이남에 내려와 온갖 고생하시다 남은 인생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해 열심을 다 하셨으며 , 온마음과 영혼을 다해 정의를 실천하시다 통일을 못 보고 눈을 감으셨지만 휼륭한 발자취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실로 값지고 휼륭한 삶을 살다 우리들의 곁을 훨훨 떠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 투석한후 제 2차 인공호흡기를 끼셨는데 이번에는 첫번째와는 달리 6일이 지났어도 인공호흡기를 빼는 시도에서 매번 불합격이었고 갈수록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폐암 4기였습니다.

첫번째 인공호흡은 그다음날 제거 할 수 있었는데 , 호흡기 빼시고 하시는 말씀이 “ 나는 죽는줄 알았어, 유언을 남겨야 하는데 막상 말할려니 할말이 없더라. 그래서 ‘잘 살어’ 라고 했어” 라고 해서 제가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었지요.

소생술포기결정후 오늘 호흡기를 제거하기 전에 제가 ‘선생님, 많이 힘들지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지요? 그러나 지금 호흡기가 있으니 말씀 못하시고 조금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말씀하세요’ 했더니 고개를 끄떡이셨습니다. 제가 사기쳤지만 선생님이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2월 6일 어제 여려명의 의사들, 사회복지사, 호스피스 등과 함게 미팅이 있었는데 의사들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상태가 더욱더 나빠진다고 해서 , 저희들은 호전될 가망성이 0% 라면 고통없이 보내드리자고 결정했고, 가시기 전에 선생님의 손목이라도 한번 더 잡아 보고 편안히 가시게 하지는데 의견이 맞춰져 2월7 일 1200경에 저희 동지들 몇분이 모여 선생님의 손목을 꼭 잡아 드렸습니다.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딸과 사위, 양심수 후원회 회장김시환동지, 김인숙동지와 아들 지수, 저희내외가 지켜 보는 가운데 눈을 영원히 감으시고 펜타닐과 미다조람 약을 투입한후 의식이 거의 다 사라져 갈때 인공호흡기를 제거한후 몇분 못 버티시다가 평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슬픔에 잠긴 딸과 사위에게 죽는 것도 5대복중에 하나인데 아버님이 더이상 고통 받지 않으시고 편안히 가게 하신것은 자식된 도리이기도 하다. 나도 내 시어머니 , 친정엄마 그렇게 편안히 잠드시게 했다고 말하면서 위로했습니다.
장례식과 추모식등은 로스힐에서 알려줄 것이고 김시환 회장님과 따님이 지속 서로 연락하여 저희들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꾸고 , 우리민족의 평화를 위해 정말 많은 땀을 흘리신 선생님, 선생님은 모범적인 생을 사셨고, 후회없는 휼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깨끗한 양심과 민족을 향한 그 열정과 사랑을 배우며 남은 생애를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선생님 모든 아픔과 고통내려 놓으시고 편히 잠 드십시요.

황규식님의 댓글

황규식 작성일

고 왕용운 선생님의 비보를 듣고 슬픈마음 금할수 없읍니다.  왕용운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앞서 가신 열사님들 의사님들 보신다면 필히 미주땅의 통일운동 현황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하시게 될텐데 불미스로운 보고내용도 많이 하시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상황이긴하나  남북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을 확신한다는 말씀도 하실것으로 믿습니다.  살아 있는 우리, 산자여 따르라 ! ! !

필라델피아 황규식

이민수님의 댓글

이민수 작성일

왕용운 선생님과 10일 전에 통화하였는데, 선생님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이제 영면에 드시었으니 편히 쉬십시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

시카고 이민수

오영칠님의 댓글

오영칠 작성일

왕용운 선생님이 먼저 가시다니 말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생을 열심히 잘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왕선생님과 같이 지냈던 여러 날을 기억합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요.

시카고 오영칠

유태영님의 댓글

유태영 작성일

왕용운 동지를 추모하며
 
홀홀단신의 왕용운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하여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꿈꾸는 이웃이 되고
우리 모두 함께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인정이 가슴으로 철철흐르는
고독한 민족의 눈물이였슴니다.
 
왕용운 동지는
그렇게도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으며
주고 또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달하고 고민하는
풍요한
동지애와 민족애의
싸앗을 뿌렸습니다.
 
왕용운이 즐겨부른 적기가
<비겁한놈은 갈테면 가라>에 대하여
우리는 압도당하고
민족통일의 기상을 굳게 맹서 했읍니다.
 
왕용운은
끝 없는 고독의 날들 
몰아치는 눈보라 견디기 힘든 날들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길을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길을
마구 달려온 
평화의 교사이며 평화의 사신이며
평화의 우리 모두 입니다.
 
왕용운의 생애를 통하여
고난과 인내는 한 뿌리인것을
사랑과 정의는 한 목적인것을
보았습니다.
 
고왕용운님을 추모하며   
뉴욕에서 유태영 드림 (2/9/20)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0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