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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rown>[촌평]두분 어머니 별세 슬프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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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1-09-26 00:00 조회1,7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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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9월들어 지난 3일에 이소선 여사가 8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25일에 박용길 여사가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분은 훌륭한 전태일 열사(노동운동가)의 어머니로서 그 자녀의 뜻을 받들어 여생을 민주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쳤고, 또 한분은 훌륭한 통일운동의 지도자 문익환 목사의 아내로서 그리고 그의 동지로서 통일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두분 어머니의 염원이 채 이뤄지지 않은 채 이들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 슬프다.



박용길 여사는 사랑하던 남편, 문익환 목사의 뜻을 이어 받고 여생을 바쳤다.문익환 목사는 1918년 6월 1일 중국 북간도에서 태어나 1994년 1월 18일 별세했다. 문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서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이며 참여시인으로 활동했다. 호는 "늦봄"이다. 문익환 목사는 통일이 되지 않으면 민주화가 되지 않는다는 진보적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따라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한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성서학자로도 활동하였다. 그 실례로 문익환 목사는 감리교 목사인 이현주 목사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개신교측 번역자로 참여했으며, 구약성서를 다윗, 사무엘등의 영웅들에게 가려진 민중의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히브리 민중사》(삼민사 刊)를 저술하였다. 1947년에 한국신학대학교(현재 한신대학교)신학과를 졸업하였고, 1954년에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문 목사는 1989년 “통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당시 진보 기독교인들의 인식에 따라 북녘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귀국하였으나,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방북했다는 이유와 함께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한국정부를 일방적으로 비방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잠입죄’로 투옥되어 1993년 석방되었다. 그리고 1990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이 수여되었고, 200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사회, 통일 운동에 대한 업적이 인정되어 서남동, 안병무와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2007년 한신대학교에 신학과 87학번 동기회가 자체적으로 제작, 기증한 시비(詩碑)가 건립되었다.




박용길 여사는 황해도 수안군 금광에서 박두환, 현문경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그는 경기여학교와 일본 요코하마 여자 신학교를 졸업했고, 1938년 도쿄 지역 한국 신학생들의 모임인 관동조선신학생회에서 청년 문익환을 처음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1944년 6월 17일 안동교회에서 문 목사(당시 신학생)와 결혼했다. 그 후 1976년 3•1사건으로 문 목사가 투옥되자 박용길 여사는 구속자 가족이 되어 투쟁의 길을 걷는다.



1994년 1월 18일 문 목사가 세상을 떠나자, 박용길 여사는 남편의 일을 떠 맡았다. 문 목사가 우리 민족이 준비 없이 해방을 맞아 분단이 되었으니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며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 모임"을 시작한 지 열흘만이었다. 이 일을 박용길 여사가 이어 받고 문익환 목사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일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박 여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전국여신도회 총무를 맡아 일하고 그 후에도 임원과 협동총무로 활동했고, 통일맞이•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민화협, •통일연대 상임고문과 "6•15남측준비위원회" 명예대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등을 하기도 했다.



1995년 6월 김일성 주석 1주기를 맞아 평양을 방문했으며, 2000년 10월에는 노동당 창건 55돌(10.10) 초청 인사로 방북하기도 했다. 2005년 남북 화해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22일 전에 세상을 떠난 이소선 여사의 별세 소식도 너무나 슬펐다. 이소선 여사는 사랑하던 자식,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 받고 여생을 바쳤다. 전태일 열사는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22살되던 1970년 11월 13일 분신자결했다. 한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분신으로 바쳐가며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갈망했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유훈을 받들어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언제나 노동자들이 힘을 합치면 그 어떤 소망도 이룰수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단결단합을 강조해 왔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도 단합해야 노동자가 승리하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호소해 왔다. 진보진영이 승리하는 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이소선 여사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자식들한테 할 말이 없는 사람이야.내가 미쳐 돌아다녔는데,애들이 밥을 먹었는지,어찌 살았는지 모른다.해준 것이 없어.딸 〈순옥〉이 영국 유학갈때 난 그것도 몰랐어 짐싸놓고와서 간다길래 가는가 했지,학비 한번 대준 적이 없어.〈태삼〉이 그거는, 니는 쌍둥이 자식도 있으니 데모하는데 나오지 마라고 해도 알았다면서 데모가면 나와있어.엄마가 노동운동 못하게 한다고 원망해.〈순덕〉이는 우리집 사람들은 전부 가출했다고 말한 적이 있어.언니도 오빠도 모두 노동운동하러 다니고 집에 아무도 없다는거야.그런 순덕이가 시집가서 뒤늦게 집을 장만했다는데도 난 가보지 못했어 그렇게 오라고해도 갈수가 없어.지들 사는데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참 난 못난 사람이야"라고 구술했다.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회상했다. "태일이는 사람을 참 좋아했어. 같은 노동자를 너무도 사랑했다고.그러니 열사나 투사보다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와 함께하는 동지라고,제발 그렇게 불러달라고 전해줘.태일이는 날 참 좋아했어.아직도 이 옷을 못 버리고 겨울이 오면 꼭 챙겨입는데,태일이가 공장에서 남은 천으로 엄마 준다고 손수 만들어 준 내의야.누가 새옷 입으라고 사줘도 안입고 난 이것만 입어...그런 태일이 아니냐"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의 친구들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 왔다. "나 그대들 없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어.태일이가 죽고 병원에 찾아와서 이제부터 지들이 내 아들이라는거야.그리고 지금 40년 가까이 지났어. 변치않고 엄마 이상으로 잘해줘,얼마나 챙겨주는지 몰라.난 정말로 태일이 친구들을 내 아들이라 생각해.배곯아가며 두들겨 맞아가며 청계노조를 만들고 지켜냈지.이들이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태일이와의 마지막 약속도 지킬 수없었을거야.난 그냥 미쳐 죽었을테지..어머니라고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 순덕이 결혼할때도,손주들 대학들어갈때도 이들이 태일이 노릇 다했어. 열서너살 먹은 여공들, 그 어린 것들이 얼마나 고생했냐. 이들이 없었어도 청계노조 지탱해올 수도 없었을거야. 명절때마다 한복 차려입고 세배하고 그랬어. 지금 다 시집가고 애낳고 살지만 그래도 떡이랑 사들고 찾아오고 그래 이 엄마 준다고."



그렇게 말하던 이소선 여사는 지난 2011년 9월 3일 타계하셨고, 그후 3주일 정도 지난 9월25일 박용길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두분 어머니들의 염원과 소원이 이뤄지지 않은채 별세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 슬프다.



아직도 이소선 여사가 바라던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이 오지 않았고, 박용길 여사가 그렇게 바라고 소원하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날도 오지 않았다. 두 어머니들의 염원과 소망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며 소원이다. 이들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은 자주, 민주, 통일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들의 명복을 간절히 빌고 있다.(끝)




2011년 9월26일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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