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세력... 외세 업고 언론개혁 방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1-09-09 00:00 조회1,870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조선일보 등 수구언론과 이를 옹호하고 나선 대표적 수구인물인 이회창씨와 그의 수구정당인 한나라당은 역사적인 언론개혁을 방해하며 수구언론의 탈세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탄압』이라는 미명하에 외세까지 끌어들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른바 「국제언론인협회 특별조사단」이라고 하는 한 단체(4명의 언론인들로 구성)는 6일오후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탄압을 운운하는가 하면 마치 현 야당이 재집권할 것으로 시사하는 등 상식에 어긋난 행동으로 남한 내 정치문제를 간섭하고 있어 이에 대한 항의가 점증되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이들의 방한조사활동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6일자 보도를 통해 이들은 방한하여「언론개혁을 줄곧 요구해온 시민단체를 만나지도 않고 결론을 내려도 되느냐?」며 반문하는 한편 이들의 통역관으로 조신일보 기자를 대동한 것은 객관적인 자세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 외국인 언론단체는 주로 수구언론 사주들과 한나라당의 수구인물들만 만나고 나서 조사결과라는 명목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방한일정이 수구세력 인물들에 의한 음모로 의심받고 있다.
수구세력은 한결같이 <언론탄압>을 주창하며 족벌언론들의 탈세행위를 비호하는 가 하면 족벌언론들이 그 동안 언론을 무기로 자행하여 온 폭력적 왜곡행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반성도 지적도 없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은 단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들과 이회창씨를 선두로 한 한나라당의 수구인물들은 외세의 입김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당리당략이나 기득권을 누리기 위한 일개 수단으로서 <언론탄압>을 방어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해 내외 양심인들은 <최근 우리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8.15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에 대한 과장 왜곡보도(2001년 8월 23일자)에서부터 멀게는 이승복 어린이 사건 관련 보도(68년 12월 11일자), 김일성 사망설 관련 보도(86년 11월 16일 19일자), 성혜림 망명설 관련 보도(96년 2월 13일 이후) 등 중대한 오보와 의도적 왜곡보도로 일관한 자세들에 대해 단 한번도 진지한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지 않는데 대해 놀라울 따름이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조선일보의 반민족 반통일성을 비판하고, 여기에 이회창씨를 선두로 한 한나라당내 수구인물들의 연계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족벌언론들은 일제 때에는 주로 <친일매국의 길>에서 그리고 분단이후에는 대부분 <숭미 사대주의의 길>에서 민족정기를 내세우는 민족자주세력을 빨갱이로 매도하여 애국세력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서 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들 수구언론들은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이른바 민족민주진영의 의로운 활동에 관한 보도자세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기사화하지 않은 사례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들은 심지어 애국세력들의 광고까지도 거부하며 언론구조를 기득권 유지의 유일한 수단으로 악용하여 왔다는 사실에 대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족벌언론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들은 또 해 내외 애국자들을 터무니없는 중상과 모략으로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조작하는가 하면 근거도 없는 내용을 사실처럼 보도하여 멀쩡한 사람을 이북의 노동당 간부로 둔갑시키는 등 이들 족벌언론들이 자행하여 온 반민족 행위들에 대해 수구언론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남사회에서 언론개혁이 필수적인 역사적 과제중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 거부하는 사람들은 없다. 김대중 정부가 그 동안 개혁정책에서 많은 것을 실현하지는 못했으나 분단이후 그 어느 집권세력도 손대지 못했던 족벌언론들에 대해 개혁의 칼날을 추켜든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개혁정치의 의지를 보여준 쾌거였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현정부는 또 7천만겨레 모두가 염원해 온 남북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적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아쉬운 점들이 지적되어 왔으나 역대 집권자들에 비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전개해 온 결과 <6.15남북공동선언>을 탄생시키는데 한 몫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민족민주진영에서도 현정부의 정책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불만을 가져 왔으나 초미의 민족과제인 통일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 노력하여 왔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나머지 현정부에 대해 압박하고 견인하면서 민족자주의 길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인내하여 왔다는 사실도 성숙한 일면을 보여주었다.
주지하다시피 현 정세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간의 투쟁이 아니라 민족세력과 반민족세력간의 투쟁이며 동시에 통일세력과 반통일 세력간의 투쟁국면이다. 그럼으로 해 내외 동포들은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의 핵심적인 장애물인 외세(미국 침략세력)와 이를 추종하는 사대주의민족분열주의 세력을 청산하고 온 겨레의 소원이며 염원인 자주적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본격적인 국면으로 돌입한 정세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를 맞이하여 우리 민족민주진영 세력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단결과 단합된 힘으로 외세와 이에 기생하여 기득권을 유지해 보려고 최후의 발악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수구세력을 청산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이미 통일의 문은 열렸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역사는 온 겨레가 <6.15남북공동선언>의 기치아래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대중들과 손 맞잡고 투쟁의 과녁을 외세척결에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수구세력에 타격을 가하는 애국애족의 길로 과감히 떨쳐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끝) [2001.9.7]
*아래 글들은 우측상단 에 게재.[민족통신 편집실]
[특집-1]프에블로 호 나포작전에 참가한 김중록대좌와 대담-이북은 1968년 1월23일 원산에서 나포한 미 간첩선 <프에불로 호>를 2년 전 대동강으로 옮겨 놓았다. 필자가 99년 제10차 범민족대회 평양행사를 취재하러 갔을 때 처음으로 발견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기사는 오른쪽 <민족통신특집>란에 게재...
[특집-2]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뭣이 문제인가-남한당국은 방북을 승인하되 개회식과 폐회식이 열리는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주변에는 가지 말라는 요청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않는다. 왜?[오른쪽 <민족통신특집>란 참조]
[특집-3]이북여성들은 정치의식이 대단히 높았다]-한마디로 이북여성들은 정치의식이 높았다. 우리 민족문제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하여야 그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방도들까지도 척척 설명하는 여성들..<민족통신특집>란 참조
[특집-4]세계로부터 추앙 받아 온 이북 지도자들-이북의 지도자들은 인민들로부터 뜨거운 존경과 동지적 신뢰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로부터 높이 추앙 받는 인물들이다. 그 이유들은 무엇때문일까?(우측 <민족통신특집>란 참조)
[특집-5]해외대표단 이산가족들 100% 상봉 성공-「해외동포 대표단들 이산가족 상봉 백퍼센트입니다」평양축전 행사에 참가하러 왔지만 반세기이상 만나지 못했던 인척들을 만났다고 몸둘 바를 모르며 기뻐하는 해외동포들..(우측 <민족통신 특집>란 참조)
[특집-6]민족자주의 넋이 듬X 담겨 있는 열사릉-열사들의 넋들이 한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모든 이들이 가졌던 민족철학은 <조국은 하나>였다. 북에 살았건 남에 살았건 그리고 해외에 살았건 이들이 지향했던 애국의 길은 <하나의 조국관>이었고 민족자주를 바탕으로 한 <자주적 조국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민족통신 특집란 참조]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