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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남북근본문제를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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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7-05-07 00:00 조회1,4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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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 당국이 북과의 관계에서 민족공조를 외면하고 미국과 발걸음을 같이 하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은 없고 그 관계는 하루아침에 파탄날 수 있다. 이것은 남북관계 발자취에서 얻은 구체적 교훈이다.



이남 당국은 남북교류에만 의욕적이지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의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비정치적 교류에만 매 달릴 뿐 남북의 정치문제, 군사문제를 풀려는 의도는 거의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남 측은 이산가족 재회, 경협을 비롯한 교류 협력문제를 강조하였고 그 후에 이러한 비정치적 교류문제에 역점을 두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모두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풀고 남북화합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년을 따져 보면, 남북관계에서 이남 당국자들은 북과의 관계에서 그 어떤 정책공조나 평화공조를 이루어 놓지 못했다. 그 원인은 언제나 미국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적극 추종하는 한나라당의 자세도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기승을 부릴 때 여기에 이남 당국이 주체적인 입장과 자세를 갖지 못하고 그저 눈치보며 미국의 정책에 쫓아가는 바람에 번번이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면치 못했던 것도 지난날들의 발자취였다.




이남 당국은 최근에 와서도 남북경협 회의를 하면서 2.13합의와 연계시키려고 했다. 이남 당국은 남북 화해와 협력을 말하면서도 이북을 겨냥한 한미합동군사훈련에 응했다. 이남 당국은 6.15시대에 들어와서도 이북을 적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방치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통일을 갈망하는 해외인터네트 사이트들을 비롯하여 이북 인터네트 사이트들 30여 개를 차단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위도 자행했다.




이남의 공안당국은 또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사업이 전개되고 남북 당국자들과 민간들이 남북을 오고 가는 와중에도 국가보안법에 걸어 애국 청년들을 연행하고 구속하였고, 진보정치인들과 진보지식인들, 진보경제인들이 이북과 교류하였다고 하여 이들을 국가보안법에 걸어 마치도 간첩행위를 한 것처럼 문제시했고, 사진작가이며 언론인이 공개된 미군부대 시설을 찍어 인터네트에 올렸다고 하여 체포하는 등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여 왔다.




따라서 비정치적인 교류만으로는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확인되어 왔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20여 차례의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역사상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었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의 72년 10월 유신정변과 73년 6.23특별선언으로 남북관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후 10년이 지난 1980년대 중반에는 또다시 남북교류국면이 열렸다. 84년 가을 이북의 구제물자 제공으로 남북 간에는 화해의 봄이 오는가 싶었다. 국회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적십자 회담, 경제회담, 체육회담, 작가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분단 사상 처음으로 남북예술인들의 교환공연도 열려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것도 미국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미국이 주도한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인 이른바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하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가담함으로써 남북교류 움직임은 또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90년대 초 노태우 군사정권 시기에도 남북교류 국면이 있었다. 남북 간 총리회담이 열려 양측 대표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8차례나 회담이 계속되어 여기서 "남북사이의 화해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고, 그 여파로 남북영화제, 남북미술 전시회, 체육교류 등이 활발했었다. 이때 남북이 처음으로 41회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와 제2회 세계 청년축구대회에 단일 팀으로 출전한바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이 당시에 "북핵 문제"를 터트려 놓고 국제화하려는 공작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 후 미국의 공작에 의해 3당 합당이 이뤄졌고 이 때문에 대통령으로 부상한 김영삼 집권자에 의해 남북교류시대는 끝나고 말았다. 그는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핵을 가진 미국과는 밀착관계를 가지면서도 이북과의 관계 발전은 차단시켰다. 그는 나아가서 94년 7월 김일성 주석 조문파동을 일으켜 남북관계 사태를 극한 점으로 몰아갔었다.




그렇다면 6.15자주통일시대를 맞아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전개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 남북관계가 지속되고 통일을 성취시키려면 우리들은 무엇보다 남북 간에 정치관계, 군사관계를 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인 판단으로 보나 정치 군사적 대결관계의 청산을 우선으로 하고 여기에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을 병행시켜 나가는 것이 남북관계를 푸는 고리로 될 것이다. 이것이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실천하는 올바른 방도이기도 하다.




2007년 5월 8일


민족통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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