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6]<위대한 역사 제2부:광복의 혈전만리>(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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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3-18 10:31 조회30,07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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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위대한 역사 제2부>로서 ‘광복의 혈전만리’가 된다. 중국 땅에서 다진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되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국내로 진입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1936년 5월5일 단일민족통일전선 사업으로 <조국광복회>를 결성하여 국내침투 사업을 활성화 시켰다. 그 당시 1945년 8월9일 조선혁명군이 국내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 일제는 손을 들었고, 조선은 김일성주석의 의도대로 1948년 4월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그 결과 남한은 1948년 8월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노예정권을 수립하였고, 조선은 1948년 9월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했다.[민족통신 편집실]













[영화-6]
<위대한 역사 제2부:광복의 혈전만리>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 이번 영화는 <위대한 역사 제2부>로서 ‘광복의 혈전만리’가 된다. 중국 땅에서 다진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되어 일제를 타도하기 위해 국내로 진입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가장 치열하였던 항일투쟁은 왕청, 소왕청, 뾰족산 지역에서 일제 5천명 병력을 일망타진한 반일인민유격대의 업적이 빛났다. 그 이후 1934년 4월에 <조선혁명군이 재창건되는가 하면 그 이듬해에는 <반민생단>사건으로 조성된 위기에서 김일성주석이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이어서 1936년 5월5일에는 단일민족통일전선 사업으로 <조국광복회>가 결성되어 국내침투 사업을 활성화 시켰다.
이 과정에서 혁혁한 업적을 올렸던 것이 1937년 6월4일의 <보천보 전투> 였다.
그 이후 1938년 가을에는 일제와의 투쟁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겨울철 영하40도를 오르내리고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그 연장선장에서 백두밀림을 중심으로 조선반도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당시에는 김일성주석이 이끄는 <조국광복회>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1942년 2월16일 백두밀영에서 또 하나의 별이 떠올랐다. 조선은 그것을 가리켜 김정일 장군의 탄생을 의미했다.
1943년 봄 당건설과 전민항쟁 작전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1945년 8월9일 조선혁명군이 국내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 일제는 손을 들었고, 조선은 김일성주석의 의도대로 1948년 4월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를 주최하여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독립국가를 이룩하자고 호소했고, 이승만 세력을 제외한 백범 김구선생을 포함하여 민족주의 세력들과 사회주의 세력들이 힘을 합쳐 연합전선을 통해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미제국주의 세력은 이승만 세력을 앞장세워 허수아비 정권을 만들어 놓고 우리민족을 둘로 갈라놓았다. 그 결과 남한은 1948년8월15일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노예정권을 수립하였고, 조선은 1948년9월9일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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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저마다 뿌리가 있다. 주체시대의 여명도 20세기 일제시대의 검은 마수가 우리민족을 강점하고 무자비하게 지배하는 어두움 속에서 나타났다. 1912년 4월15일 김일성주석의 탄생은 바로 그 시대의 빛을 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하였지만 그 당시 우리민족을 이끌어 줄 위인이 없었기에 그것이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광복의 천리길을 비롯하여 ㅌㄷ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하고 그것이 <반제청년동맹>,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 그리고 무장투쟁의 봄을 맞이했던 항일투쟁 역량은 1930년대 초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것이 오늘의 주체시대의 자위력을 자랑하는 인민군대 조직의 뿌리가 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위대한 역사:제 1부 주체시대의 려명>의 줄거리가 된다.[민족통신 편집실]
[영화-5]
<위대한 역사:제1부 주체시대의 려명>







[영화-5]
<위대한 역사:제1부 주체시대의 려명>
*<위대한 역사:제1부 주체시대의 려명>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이 영화 <주체시대의 려명>은 1912년부터 1932년 4.25 반일인민유격대가 결성된 20년동안의 항일투쟁 역사시기에 김일성주석이 주체시대의 려명을 열어준 소년시대와 청년시대의 역사를 반영해 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역사적 분기점은 김일성 소년이 14살때인 1926년 6월 화전의숙에 입학하던 시기이며 동시에 김일성 소년이 1926년 10월17일 ㅌㄷ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하여 참다운 혁명조직을 통하여 조선혁명의 시원을 열어 놓은 중대한 시기로 분석된다. 또한 1927년 7월1일 길림 육문중학교로 전학하여 주변농촌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비밀독서조직에 영입시켜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면서 <조선길림소년회>, <류길학우회> 등을 묶어 오다가 1927년 8월27일에는 ㅌㄷ를 <반제청년동맹>으로 만들어 이 조직을 다시 발전시켜 <조선공산주의 청년동맹>으로 확대시켜 강철같은 혁명의 기관차로 만든 지도자가 바로 10대 후반의 김성주 소년이었다.
그는 이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길림감옥에 투옥되어 옥중에서 사색하며 생각해 낸것은 일제를 타도하는 것은 오로지 무장투쟁밖에 없다고 결정하고 청년조직들을 묶어 왔다. 이런 시기에 1930년 6월3일부터 7월2일까지 카륜회의를 개최하고 근 한달동안 청년들을 조직화하고 여기에서 역사적인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노작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주체사상과 주체 철학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김성주소년은 당시 핵심조직 성원들이었던 차광수, 김혁, 최창걸 등에 의해 우리민족의 태양으로 존경받으며 주체혁명의 빛을 한몸에 받으며 항일투쟁의 중심에 서왔다. 그는 비록 부친 김형직선생의 권총 2자루를 어머니 강반석여사로부터 물려받고 그것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주체혁명의 길을 확대하여 왔다.
그는 투쟁속에서도 음악과 연극등 예술활동도 중시했다. 유명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써서 이것을 중국 땅 어기좌 느티나무 밑에서 첫 공연(1930.11.7)을 한 기록도 보여준다. 또한 1931년 9.18 일제만주침공 이후 일제에 반격하기 위해 김일성유격대가 중심이 되어 동만 10만여명의 농민들을 동원하여 일제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일성주석은 안도지방에서 1932년 4월25일 역사적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여 일제침략자들에게 선전포고의 포성을 올린 역사기록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설적 태양으로 강철의 혁명무력을 다져온 지도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역사물로 입증해 주고 있다.
조선의 별(5)
조선의 별(8) 조선의 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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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4]<시련을 뚫고>에서 보여준 교훈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social&wr_id=8768
[영화-3]<곧은 길로 가라>
[영화-1]과 [영화-2] 보기:
http://minjok.com/bbs/board.php?bo_table=policy&wr_id=11016
댓글목록
유럽학생님의 댓글
유럽학생 작성일
북한 영화들이 참 좋네요.
그들을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