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조선의 ‘병진노선’ 현주소와 그 미래를 전망한다(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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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1-10 12:37 조회55,261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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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소탄시험 성공보도이후 미국을 포함한 그 주종국들의 해괴망칙한 여론몰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과 자세는 분명하다. 유엔의 안보리 결의가 그 어떤 것이든 조선은 자기 갈길을 반드시 간다고 확신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운명을 그 어떤 강대국들이나 주변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개척하고자신이 결정하여 나간다는 정신이다. 이것은 이미 항일투쟁시기부터 지금까지 전개하여 온 발자취와 전통, 철학을 보면 어럽지 않게 전망할 수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분석]조선의 ‘병진노선’ 현주소와 그 미래를 전망한다
*글: 노길남(민족통신 편집인)
[1]
조선의 입장과 자세는 분명하다. 유엔의 안보리 결의가 그 어떤 것이든 조선은 자기 갈길을 반드시 간다고 확신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운명을 그 어떤 강대국들이나 주변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개척하고 자신이 결정하여 나간다는 정신이다. 이것은 이미 항일투쟁시기부터 지금까지 전개하여 온 발자취와 전통, 철학을 보면 어럽지 않게 전망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나 그 추종나라들, 그리고 유엔 안보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조선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들은 강대국들이 힘으로 압박하면 조선이 손들고 무릎꿇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데서 나오는 무식의 소치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이런 사상과 정신은 단순히 우쭐대기 위한 과시용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토대와 사상적 기초가 이미 항일투쟁시기에 이뤄졌다. 이것은 또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확고한 토대를 만들어 놓은 지도자가 바로 김일성 주석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이러한 사상과 정신을 일제시기를 포함하여 분단시기에도 실천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김주석의 이러한 정신과 업적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도 그대로 유훈정치로 이어져 온 것이 오늘의 조선 현주소라고 분석된다. 그래서 조선의 지도자들의 승계문제를 가리켜 ‘유훈정치’ 또는 ‘혁명의 계승자’ 등으로 불리워져 왔다.
우리 해내외 동포들은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 1994년 7월8일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여름철 세기적 대홍수(큰물난리)로 경작지 75%가 무너져 농장들이 파괴되어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조선은 쏘련을 위시한 동구권 사회주의 나라들이 줄줄이 붕괴되어 주요한 무역의 대상국들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미제국주의 세력과 그 추종국들이 벌였던 대조선고립압살 정책으로 4면초가의 환경이 조성되어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엄혹한 시대를 맞았던 역사를 보아왔다. 미제국주의 세력과 그 추종국 나라들은 ‘3개월이면 망한다’, ‘3년이면 망한다”고 노래부르며 호들갑을 떨던 야비한 모습들도 돌이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군민을 하나같이 결집시켜 그 어려웠던 고난의 시대를 극복하고 더 강한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첨단과학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는 나라로 전변시켰다.
우리해내외 동포들은 또 2011년 12월17일을 잊지 않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의 길에 올라 달리는 열차에서 겹쌓인 피로때문에 순직한 그 충격적인 소식과 그 상황을 두 눈으로 보아왔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또다시 조선이 망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김정은 시대를 폄훼하며 중상모략하여 왔지만, 오늘의 조선은 그 어느때 보다 사회주의 문명강국을 향해 도약하고 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미 2012년 4월 첫 육성연설을 통해 조선의 주체100년을 총화하며 강대국이 원자탄으로 위협하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였고, 동시에 배를 곬는 시대도 끝났다고 천명하면서 새로운 주체100년을 구상하는 청사진을 발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이후 조선은 그의 연설 그대로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명문화하였고, 그의 병진노선은 착오 없이 진행되어 왔다. 이에 따라 조선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각종 건설물들과 문화생활을 위한 대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여기저기 일떠 세워왔다.
그 결과로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눈에 띄는 그의 업적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2012년 12월12일 광명성3호2호기를 은하로케트로 그것도 극궤도에 진입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고, 2013년 3월31일 경제개발과 핵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른바 ‘병진노선’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를 통해 채택하여 세계만방에 선포했고, 이어서 탄도탄 수중발사시험(SLBM)을 성공시켰고, 그리고 2016년 1월6일 역사적인 제4차 핵시험을 단행하여 수소탄시험에 최초로 완전성공한 결과를 공식적으로 세계 만방에 알렸다.
[2]수소탄 시험성공의 의미
조선의 수소탄 시험이 성공하였다고 하는 것은 우선 미국이 더 이상 조선을 침략할 의도를 포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이로인해 조국반도에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삭감되었다는 뜻도 된다. 이것은 조국의 남단이나 북단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가는 그것도 분석하지 못하고 왈가왈부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병진노선이 선포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제4차핵시험에서 나타난 수소탄 시험의 성공이 뜻하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이며 이에 대해 미국 지배세력과 그 추종세력들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는 현상에서 조선은 어떤 입장과 자세를 견지하여 갈 것인가를 전망하는 것은 오늘의 정세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시기에 로동신문 정론(2016.1.8)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밝혔다.
《수소탄의 뢰성은 우리가 다지고다져온 거대한 자강력의 활화산같은 분출이다. ‘연길 폭탄’으로부터 수소탄에로, 조선이 걸어온 자력자강의 로정도와도 같은 이 부름과 함께 세상에 오직 하나 자력자강의 길만이 영원한 승리의 길이라는 력사의 진리가 우리의 심장에 또 한번 새겨지고있다. 자강력에 만복이 있고 미래가 있으며 참다운 영광이 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어디에 있건, 무슨 일을 하든 이 신념으로 자강력제일주의를 높이 들어야 한다. 》
정론에서 밝힌 ‘자강력 제일주의’ 입장은 그 어떤 외세에게도 의존하여 자기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동시에 조선의 장구한 전통으로 이어 온 주체적 입장의 확고한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김정은 시대의 입장과 자세도 선임 영도자들의 입장과 자세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한번 내외에 과시한 내용으로 보면 틀림이 없다. 그렇기때문에 이러한 자세는 하루 이틀에 나온 구호가 아니며 즉흥적으로 쏟아 낸 말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빈말이 아니라 진실, 혹은 진정성 그 자체이다.
조선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내용이 진실, 그 자체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김일성 주석은 이미 1920년대 후반인 1927년 10월17일《ㅌ ㄷ 제국주의 동맹》을 조직할 때도 그리고 1930년 6월30일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를 발표하던 시기에도 주체적 입장인 자주노선을 천명한바 있었다. 이 노선은 80여년전 그 당시 뿐만아니라 그 이후 해방정국을 비롯하여 1948년 4월 평양에서 소집한 남북연석회의, 이어서 미국의 반대에 저항하여 비공개 총선을 남과 북에서 실시했고, 분단이 고정화 된 이후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어떤 외세의 간섭과 영향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민족자주 노선, 평화통일 노선, 그리고 민족대단결의 통일전선 노선, 혹은 민족대연합전선 노선을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실천하여 온 데서도 조선의 입장과 자세를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
또한 1960년대 중-쏘분쟁이 있던 시기에도 조선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 왔다. 조선은 그 때에도 그 어느 강대국에 의존하거나 의탁하지 않았다. 이것은 항일유격대를 꾸리던 시대에도 그랬고, 그 이후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여 운영하여 오던 시기에도, 그리고 김정은 시대가 선포된 이후 지난 4년여 동안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조선이 수소탄시험에 완전성공하였다는 소식을 알리면서도 이러한 자위력을 갖추게 된 것이 조선 자체의 기술과 소재라는 것을 자랑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은 수소탄시험 성공을 알리는 정부의 공식성명을 통해서도 《우리의 지혜, 우리의 기술, 우리의 힘에 100% 의거한 이번 시험을 통하여 우리는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수소탄의 기술적제원들이 정확하다는것을 완전히 확증하였으며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조선중앙통신 2016년 1월6일)라고 발표했다.
그래서 조선의 수소탄시험이 완전성공하였다는 뜻은 미국을 비롯한 그 어떤 외세의 간섭과 침략에도 저지할 수 있는 자위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구위성을 비롯하여 대륙간탄도탄, 수소탄을 포함한핵폭탄 등 자위력을 다른 나라들의 도움없이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왔다. 지금은 그 어떤 나라가 침략해도그것을 타승할 수 있는 온갖 자위력을 갖춰 놓았다.
이것은 그 어떤 외세도 조국반도에 전쟁의 불질을 함부로 할 수 없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뜻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녘동포들도 손벽치며 환영할 일인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온통 반대여론몰이에 여념이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3)조선이 자체 힘으로 수소탄을 만든 배경
그 어떤 다른 나라의 도움없이 자체의 힘으로 수소탄시험에 성공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뿌리가 있다. 무기도 남의 나라것들을 무비판적으로 들여 올 것이 아니라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자체로 자위력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미 80여년의 세월이 되었다. 이 교훈을 깨닫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는 김일성주석께서 직접 집필한 8권의 도서 ‘세기와 더불어’ 3권에 나오는 내용들 가운데 하나인 ‘밀림의 병기창(P 266~291)’ 에 씌여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쏘련측에서는 그 청원에 아무런 회답도 보내주지 않았다. 청원을 해결해주겠다는 약속도 없었고 해결해주지 못하겠다거나 해결할수 없다는 통지도 없었다. 우리가 자력갱생을 해야겠다고 강하게 결심한것이 그때였다. 쏘련사람들의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는것, 혁명을 추동하는데서 결정적인것은 자기 힘을 최대한으로 발동하는것이며 남들의 원조는 부차적인것이라는 립장을 확고히 가지게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병기창사업을 특별히 중시하고 거기에 화력을 집중하였다. 》
《…병기창일군들은 그 줄칼을 가지고 별의별것을 다 수리하였다. 그들은 줄칼로 쓸고 숫돌로 갈고 망치로 두드리고 불과 물과 진흙에 담금질을 하는 방법으로 보총의 약통물개도 고치고 격침도 수리하였다. 나중에는 기관총까지도 척척 재생시키였다. 병기부문 일군들중에는 박영순, 손원금, 강위룡, 박두경, 송승필, 강해산과 같은 재간덩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바늘에 구멍을 내는 재간까지 가지고있었다.
이 모든 기적의 비결이 바로 자력갱생에 있었다. 만일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처음부터 남의 나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환상에 포로되여 자력갱생할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자력갱생만이 살길이고 조선을 구원할 길이라는 투철한 신념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유격구에는 애당초 병기창이라는것도 생기지 않았을것이고 나무포와 연길폭탄과 같은 위력한 무기들은 이 세상에 태여나지도 못하였을것이다. 우리는 독립군들처럼 인민들에게 군자금을 내라고 호소하든가 동냥자루를 메고 남의 나라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구걸도 하고 그 무슨 하소연도 하였을것이다. 구걸을 하느라면 남들에게 굽실거리게도 되고 남들이 발바닥을 핥으라면 발바닥을 핥고 눈곱자기를 뜯어달라고 하면 눈곱자기를 뜯어주는 비루한 속물이 되고만다.
우리가 항일전쟁의 초기부터 자력갱생의 구호를 내걸고 그 관철을 위해 분발한것은 당시 혁명앞에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도 부합되는것이였다. 일제의 만주침공은 조일, 중일간의 모순을 격화시켰고 이 모순은 불피코 조선공산주의자들앞에 무장투쟁이라는 높은 형태의 투쟁과제를 제기하였다.
만일 이런 때에 우리가 자력갱생에 의거하지 않고 남의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구걸외교에 매달렸더라면 우리는 일제의 만주강점직후 그처럼 빨리 항일전쟁을 시작하지도 못하였을것이고 우리의 유격대오는 불과 몇해사이에 강력한 력량으로 자라나지도 못하였을것이다.
자력갱생은 자주, 자강의 기초우에서 민족자력에 의한 나라의 독립을 갈망하는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가장 정확히 반영한 구호였다. 인민이 이 구호를 제때에 받아물고 도처에서 야장간을 병기창으로 전환시키거나 새로운 무기수리기지들을 창설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자력갱생, 간고분투는 비단 병기 생산과 수리분야뿐아니라 항일혁명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기본정신으로 되였으며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되였다. 아무리 애국심이 강하고 공산주의사상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자력갱생, 간고분투하지 않으면 실속있는 혁명가로 보지않았다. 왜냐하면 자력갱생을 하는 여기에 혁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기본고리가 달려있었기때문이였다. 》
《…자력갱생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도의 하나였으며 자력갱생을 떠나서는 주체에 대해서 생각할수도 론할수도 없었다. 도대체 조선혁명의 발전에 대하여 상상할수도 없었다. 자력갱생만이 우리 인민의 근대정신생활에서 큰 질곡으로 남아있던 사대주의를 종국적으로 추방하고 자주, 자강, 자립의 리념밑에 민족재생의 활로를 승리적으로 개척해나갈수 있게 하기때문이였다. 자력갱생은 주체가 선 인간과 주체가 서지 못한 인간을 가르는 시금석으로 되여있었다… 》
위의 내용은 조선의 자위력이 그 어떤 강대국에 의해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체의 지혜, 자체의 기술, 자체의 소재 등으로 이뤄 놓았기 때문에 그 어떤 강대국들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 조건을 갖췄다는데 큰 의의가 있고 동시에 자위력 제작 입장과 자세가 사대주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상 그 어떤 강대국들도 첨단과학화 된 무기제작 기술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들은 언제나 극비에 해당되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력으로 자위력을 마련하지 못하면 언제나 강대국들의 간섭과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인류역사의 교훈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이 자체적으로 첨단과학기술들을 제작하고 개발하여 왔다는 것은 자기 주권을 견지하고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놓았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4]조선의 과거와 오늘
조선의 영도자들은 역대로 나라의 가장 위력한 힘은 인민들에게 있다고 믿고, 어려울 때나 기쁠때나 언제나 인민들에게 의거하는정치, 인민들을 위한 정치에 온갖 정성을 다해 왔기 때문에 조선의 영도자는 인민과 언제나 일심단결을 이뤄 왔다.
그래서 조선의영도자들은 ‘이민위천’을 영도자들의 좌우명으로 삼아 왔다. 조선의 영도자들은 또한 모두가낙천적인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역경을 순경으로, 고난과 고통을 긍지와기쁨으로 받아 안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왔다.
김일성 주석은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도 불리한 것을 유리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과시했고, 김정일국방위원장 시대에도 아무리 어려움이 부닥쳐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고 강조하면서 일심단결을 이뤘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도 세계 최강을 뽐내는 미제국주의 세력을 향해 통큰 배짱과 담력으로 북미대결전이 당면할 때 마다 승리의 길로 조선을 이끌어 왔다. 이와함께 조선의 인민들은 ‘우리 영도자만 계신다면 반드시승리한다’는 신심을안고 일심단결의 구심인 자기 영도자를 생명처럼 받들어 왔다.
이러한 조선의영도자들과 인민들은 언제나하나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둘도 없는 ‘일심단결’의 나라를 건설해왔다. 이러한 전통과역사적 배경으로 북녘동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심단결은 핵무기 보다 강하다”고 자부해왔다. 이것은 1938년 항일시기인 제1차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입증되었고, 1990년대 제2차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증명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정말로 낙천적인 혁명가였다. 항일투쟁시기 그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유격대원들과 사선을 넘고 넘을 엄혹한 시대를 회상하는 집필중에도 언제나 지난 시기 혁명을 하면서 그 어느 순간도 좌절하지 않고 승리의 신심을 갖고 혁명동지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여 온 발자취를 돌아보곤 하시었다. 김주석께서는 때로는 제3세계 나라들의 혁명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 중에 1950년대~60년대의 큐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떠올린 대목이 있다. 카스트로는 국제사회에서 김일성주석을 무척 존경해 온 후배혁명가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 주석은 '세기와 더불어' 3권 324페지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메히꼬(멕시코}에서 꾸바로 돌아온 초기의 까스뜨로부대는 82명이었다. 그들 중 살아남은 12명이 7자루의 총을 가지고 씨에라 마에스뜨라산에 들어가서 대오를늘이고 힘을 키우다가 아바나에 입성하여 바띠스따 친미독재정권을 벼락같이 무너뜨리였다”고 한다.
이 일화는김일성 주석 자신이 아버지 김형직 선생이 준 두자루의 권총으로 항일투쟁사를 빛나게 장식하고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여 그 토대를 마련해준 배경과도 유사하다. 이같은 역사는 김일성시대와 김정일시대에서도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왔다.
우리 해내외동포들은 미국정부가 조그만한 나라 조선에게 최초로 사죄문을 쓴 ‘프에블로 나포사건’을 기억하고있다. 이것은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 호가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안 동해상에서 간첩행위를 벌이다가 조선의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에 의해 나포되었다. 이때 1명이 사망하고 13 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은 11개월만인 그해 12월23일 사죄문에 도장을찍고 ‘영해 침입 및 첩보 행위를 인정’하고 재발방지와 사과하는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사건 발생 후 열한 달이 지나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를 송환해간바 있다. 이 밖에도 미정찰기 격추사건,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등 여러차례 사건들이 발생하여 왔지만 그때마다 조선은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 승리의 길을 걸아왔다.
-조선은 EC-121 격추 사건(EC-121 shootdown incident)에서도 일본의 아쓰기해군 비행장을 출발한 미국 해군 소속 EC-121 워닝스타 조기경보기가 1969년 4월 15일 14시께 동해상에서 조선인민군 공군 소속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해상으로 추락한 사건으로 탑승한 승무원 31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양측이 영공 밖이다 아니다 등으로 옥신각신하였지만 조선의 승리로 귀결되고 말았다.
-조선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들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을 들어 나무가지치기작업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으나 말을 듣지 않아 도끼로던져 미군들을 즉사시킨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도 북미간에 왈가왈부 되었으나 결국에는 조선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미 제국주의세력은 그 이후에도조국반도에 1천여개의 핵무기들을 배치하는가 하면 분단지역에서 조선침략을 겨냥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면서 핵전쟁연습에 몰두해 오면서 조국반도 긴장을 부추겨왔다는 것은 만인이 주지해 온 사실이다.
코리아전쟁을 놓고도 살펴보면, 이것은 미국의 침략행위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미군은 남한을포함하여 다른 나라들 15개국을 끌어들여 전쟁(1950.6.25~1953년 7.27)을 일삼으며 동북아 패권놀음에 몰두해왔지만 조선을 제압하지못하고 정전협정에 도장을찍고 숨실 겨를도 없이 판문점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군은 전쟁시기에 불법적인 세균전까지 벌이면서 잔인무도하게 조국반도를 폐허로 만들어 놓았고, 폭탄으로 남북한 곳곳을 파괴하면서 수백만명의 동포들을 대량학살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이후에도 정전협정에서 90일내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한편 미군철수를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60여년 조국의 남단을 강점하고 남한의 군사주권에 해당하는 전시작전권까지 장악한채 한국의 안방을 차지하고 간섭해 왔다. 미국은 또 유엔 제30차총회에서 결정한 유엔사 해체 결정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유엔사의 모자를 미군모자로 바꾸어 쓰고 비법적으로 남한에 주둔해왔다.
그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른바 한미행정협정(SOFA)과 같은 노예문서를 만들어 남한내에서 효순이 미선이같은 어린소녀들을 탱크로 깔아 죽여도 무죄가 된 미군병사들이 웃으며 돌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적인 사건을 포함하여 미군들의 무법지대가 된 남한에서 저질은 미군들의 범죄는 남한 재판에서도 취급하지 못하는식민지 노예의 억울한 역사가 지난 60여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게다가 남과북정상들이 6.15남북공동선언과 10.4평화번영선언을 선포하고 양측 최고지도자들이 합의하여 실천해가는 상황에서도 미당국은 집요하게 방해책동을 벌이면서 남한의 보수세력을 충동하여 조선을 침략하기위한 각종 씨나리오들을 만들어 조국반도에서 침략전쟁놀음에 혈안이 되어 왔다.
그것도 재래식전쟁연습이 아니라 최첨단무기를 끌어들여 핵전쟁침략계획을 구체화하여 왔다. 미군의 작전계획(작계)이란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연합사의 공동 대응 전술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침략을 위한 전쟁놀음이다. 이 작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 시나리오'다. 조선중앙통신 등 조선언론은 ‘북침전쟁각본’이라고 부른다.
작계는 고유번호를 갖는데 고유번호는 지역 사령부코드와 작전 지역 코드로 구성된다. 작계 5027-98을 예로 들면, 5라는 숫자는 미국태평양사령부를, 027은 극동의한반도를 의미하며, 맨끝에붙는 98이라는 숫자는 갱신 연도를 의미한다.
미군의 북침전쟁각본들은 전쟁직후부터 시작된 5027작전계획부터 지금까지5026, 5028,5029,5030 등으로 매 2년마다갱신해 왔다. 이에 따라 거의 연중 조국반도 육지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공중에서 북을 침략하는 전쟁연습을 벌여 온 것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대조선반도 정책의 반영이었다. 여기에 조선으로서는 ‘대화에는 대화’로 답해 왔지만 미국의 대북침략정책이 구체화 되어 진행되어 온 조건에서는 ‘강경에는 강경’으로 맞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조선의 지난 시기 대응책이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핵개발이었고, 핵과 경제를 동시추진한다는 이른바 ‘병진노선’이었다. 그리하여 수소탄까지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시말하면 이것은 미국이 떠밀어 조선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일제의 우리민족 강점도 가쯔라-태프트 비밀조약에 의해 미국이 일본의 강점을 부추긴 것이고, 우리민족이 8.15해방정국을 맞았을 때 전범국인 일본의 허리를 자르지 않고 우리나라의 허리를 자른 주범도 미국이고, 분단이후 남녘땅을 타고 앉아 남북의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방해해 온 세력도 다름 아닌 미제국주의 세력이었다.
(5)조선의 미래 전망
조선의 미래를측정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전망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그 미래가 어둡다고 하는 부류도 있고, 알송달송하여 잘 모르겠다고 전망하는 부류도있고, 그리고 조선의 미래가 밝고 창창하다고 전망하는 부류도있다.
위 3가지 부류들을 분석해 보면 어둡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은 주로 미국과 그 추종나라들의 보수층 전문가들(?)이고 알송달송이라고 말하는전문가들(?)은 보수언론에 영향을 받아 자기 주견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기회주의적 전문가들로 분류될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북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조선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처음 두부류의 공통점은 조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데 기인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남녘 언론에 오르내리는 소위 '북한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단골 인사들은 입만 벌리면 거짓과 중상과 모략으로 일관해 왔다. 이들 뒤에 누가 있다는 것은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미 방북취재 65번을 마친 상태이지만 이미 60번째 방북을 마치고 탈고한 원고(지난 2014년 4월에 ‘민족통신진실을 말하다 (1)’ 발행)에서 《조선의 미래는 밝고 창창하다》고 전망한 바있다.
그렇게 전망한 까닭은 무엇보다 조선의영도자들의 국정철학과 이들 지도자들이 걸어온 길과 그 업적들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의 심장속에 불타는애국, 애족의 마음과 자기 영도자에 대한 충실성과 충직성에서 나타난 철통같은 ‘일심단결’의 위력한 힘 에서 찾아 볼 수 있었고, 셋째로 자체적으로 마련한 최첨단과학 무기들과 자체의 기술수준과 그 역량에서 찾아 볼 수 있었고, 넷째로 12년제 의무교육제도를 위시하여 노동자, 농민을포함하여 전민 인테리화 되어 가는 모습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었고, 다섯째로 나라의 청년중시정책으로 각계각층의 청년들이 사회주의문명국가 건설마당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학습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도 조선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었다.
이같은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검증하면서 조선의 병진노선은 그 누가 뭐래도 확고 부동하게 견지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인민들은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여 인류진보사회의 으뜸가는 모범국가로 만든 위대한 원동력으로 높이 평가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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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조선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감상해야 할 영화 '조선의 별'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을 갈망하시는 분은 필히 감상하시기를 권유
합니다.
조선의 별(1)
http://youtu.be/NMyifcDZTWo
조선의 별(2)
http://youtu.be/KS1ToN-rWZw
조선의 별(3)
http://youtu.be/w7wh_vqzGr8
조선의 별(4)
http://youtu.be/YTGJUNI-CiY
조선의 별(5)
http://youtu.be/XA_MTXo8sjY
조선의 별(6)
http://youtu.be/y-rGmV9vObM
조선의 별(7)
http://youtu.be/A7TgPcZwIWU
조선의 별(8)
http://youtu.be/AN_4dXCwPzg
조선의 별(9)
http://youtu.be/nToh-JkXNjE
조선의 별(10-전편)
http://youtu.be/4HE_UYwSvlk
조선의 별(10-후편)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어쩔수가 없어~!!!! ㅡㅡ;;;;; 북녘이 얼마나 센뎅~!!!!
토니님의 댓글
토니 작성일
북한 수소 폭탄 실험 데이터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nuclear-confusion-the-data-suggest-north-korea-s-h-bomb-isn-t/
달라스님의 댓글
달라스 작성일전 사실 첨에 이 사이트 들어와 삐닥하게 봤어요 근데 자꾸 보다보니 내가 이상해졌다봐요. 동창들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나도 그렇지만 친구들은 몰라도 넘 몰라요. 여기 첨 들어올때 빨갱이라 두렴까지 있었지만 지금엔 솔직히 감사드려요. 어찌보면 과거 난 죄인였어요. 모르고 북쪽을 씹었으니깐요. 오늘 노길남 편집인 읽고서도 많은 걸 배웠고 동영사 김진향교수님 강연도 깨우침줬어요. 고마운 마음 지면에서나마 전합니다./달라스 JS Choi
유학생님의 댓글
유학생 작성일
노길남 박사님께서 트위터와 페이스 북에 올려준 <<조선의 별>> 10편과 이어서 <<민족의 태양>> 8편 동영상을
감상하고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지금은 또 <<세기와 더불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몰랐던 역사를 지금에 알게되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박사님께서 소개한 <<민족의 태양>>을 보시지 않은 선생님들이나 제 친구들을 위해
소개해준 URL을 댓글로 올립니다. 새해 건강하세요./유학생 KJH
꼭 봐야 할 영화감상
민족의 태양-1: 제1부 준엄한 시련 전편
https://youtu.be/Dtz7C7lgHRo
민족의 태양-1: 제1부 준엄한 시련 후편
https://youtu.be/-BPc9w_ECfE
민족의 태양 제2부 대하와 거품 전편
https://youtu.be/uXQSjr0bGbs
민족의 태양 제3부 광복의 봄 전편
https://youtu.be/C_jlx6DmFhA
민족의 태양 제3부 광복의 봄 후편
https://youtu.be/S63zOzdEYkw
민족의 태양 제4부 백두밀영 전편
https://youtu.be/9llDzUg0qjY
민족의 태양 제4부 백두밀영 후편
https://youtu.be/UNdDouJyXt8
민족의 태양 제5부 붉은기 아래
https://youtu.be/fYYYb5Rzew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