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70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기차로 떠나오며
*글:강산(시애틀 동포)
평양역은 평양호텔에서 자동차로 몇 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김미향 안내원과 함께 역으로 들어가 이미 대기중인 북경행 열차의 우리가 머물 침대칸에 짐을 풀고는 다시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는 중이다. 보통 열차와 달리 국경을 넘어 대륙으로 연결되는 열차이기에 환송나온 사람들이 많다. 이제 지난 9일 동안 우리와 함께 하면서 여러 곳들을 안내하며 도움을 주고 편의를 제공했던 김미향 안내원과 리영호 운전기사와 우리도 이별을 할 시간이다. 그동안의 수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는 머지 않아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헤어져 열차에 올랐다.
평양역 플랫폼까지 환송해준 김미향 안내원과 리영호 운전기사와 함께
내가 25년 전 평양축전 참관으로 처음 북부조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일정을 잘 조절하면 기차로 평양에서 북경까지 갈 수 있다고 하였고, 나도 그렇게 기차로 출국하고 싶었지만 그땐 빠듯한 일정 관계로 이루지 못했었다. 이번에 편안하게 비행기로 떠나지 않고 일부러 기차 여행을 하기로 처음부터 정한 것은 평양에서 신의주까지의 북부조국 산천을 기차를 타고 지나오면서 살펴보며 조국을 좀 더 느끼기 위해서였다. 내가 평양에서 동서로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북쪽으로는 가보지 못하였기에 기찻길 주변의 산천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귀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데 우리가 평양 도착 후 며칠만에 선양까지의 표를 구입하려 하였을 때 거기까지 가는 표는 이미 모두 매진이 되어 우리는 압록강 바로 너머의 단동까지 밖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동까지 가면 거기서는 버스로도 4-5시간 여 달리면 선양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짐을 들고 역사 밖으로 나와서 버스를 갈아타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단동까지 가서 선양으로 가는 방법은 결정하기로 하였다.
달리는 열차에서 찍은 평양시내의 육교 모습
열차가 평양역을 출발하자 나는 침대칸을 나와서 복도 창가의 간이의자에 카메라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평양 시내를 북으로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류경호텔 건물도 보이고 기찻길 옆의 여러 건물들과 육교 등 내가 처음 보는 풍경들을 선물해준다. 평양 시가지를 벗어나 농촌풍경이 계속되자 다시 침대칸으로 돌아가 이제야 함께 단동까지 여행하게 된 맞은편 침대의 재일동포와 인사를 나눈다.
열차에서 만난 재일동포 성광순 선생과 대화하는 노길남 박사
우리와 함께 단동까지 가게 된 그분의 성함은 성광순 선생이었다. 재일동포로 북을 200번 이상 방문하였는데 지난 3년 동안은 조일관계의 악화로 입국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선박사업을 하는데 그밖에도 여러가지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으로 북부조국과 사업을 하면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고려호텔 부근에서 몇 년 전에 현대식 식당 공사를 진행해오던 가운데 일본에서 출국을 막는 바람에 지난 3년 동안 조국에 입국을 할 수 없어 크게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다시 출국이 가능해져서 이번에 입국하였는데 김정은 원수님 시대에 2개 식당을 특별히 외화식당으로 하도록 허락받아 앞으로 2년에 걸쳐 개건하고 현대화해서 아주 멋진 식당으로 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재일동포들 가운데는 성광순 선생처럼 자신이 지닌 재력을 통하여 북부조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나도 그렇게 돈이 많다면 진실로 사랑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보람있게 돈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재산으로 조국에 기여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조국의 통일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리라. 김 주석이 해방후 첫 연설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새 나라를 세워나가자고 하였듯이 지금 우리들은 통일을 위해 그렇게 자신의 가진 것을 다하여 참여해야 할 때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열고 통일을 꿈꾸는 것이 먼저이며, 통일의 꿈을 갖고 나면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각자가 할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힘차게 내딛는 것이 우리 시대에 우뚝 선 참 사람이고 참 민중이 아니겠는가? 70년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으로 민족의 통일을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더 영광스런 길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또한 그 길을 함께 걷는 동지보다 더 귀한 동지가 어디 또 있겠는가? 같은 길을 걷는 동지들과 굳게 손을 잡고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이 길을 가리라.
벼가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을 가로질러 열차는 계속 달린다. 높은 언덕엔 빼곡하게 옥수수들이 여물어가고 논밭의 가장자리마다 빈틈없이 콩밭을 잘 가꾸어 놓았다. 여기저기 하얀 염소들이 몰려다니는가하면 누런 황소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북부조국에서도 비교적 평야가 많은 서북부인 이곳 농촌풍경은 내가 나서 자라난 남부조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어려서부터 늘 보던 푸른산 맑은물의 산천이 이어지고 잘 정리된 기름진 논밭이 이어져 바라보는 나그네의 마음 또한 고향에 온 듯 편안해진다.
저 강산은 그러나 겉보기로는 남부조국이나 비슷한 경치로 보이지만 한 뼘의 땅, 한 치의 땅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천지차이로 다르다는 것을 되새겨본다. 이곳 북부조국은 이미 해방과 함께 토지개혁으로 저 땅은 공평하게 인민들 모두의 땅으로 되었다. 저 산천은 더 이상 지주나 권력자의 착취가 없는 평등한 곳이다. 말로만 금수강산이 아니라 온 인민이 함께 일하고 함께 가꾸고 함께 누리는 아름다운 곳이고 복된 곳이다. 저 산과 들과 건물들과 주택들 모두가 바로 인민의 소유다. 지금 북부조국에 단 한 사람의 악질 지주도 없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질 기업인도 없다. 내가 바라보는 저 강산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한 것이다. 겉으로 번쩍번쩍 빛나면서 그 속은 극도의 불평등으로 무수한 민중의 한과 원망을 품고 있는 곳과는 비교할 수 없다. 북부조국 인민들의 주체적인 의식혁명은 그 사회제도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국산천 모든 곳들을 근본적으로 그 밑바탕부터 바꿔놓은 것이다. 조국의 모든 강토가 인민 공동의 재산이다. 이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미국에서 사는 동안 전라남도 출신의 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거긴 평야가 넓은 곡창지대이니 자라는 동안 먹고 살기에 넉넉하였을 것 같다고 하였더니 나 보다 열 살은 더 젊었던 그가 하는 말이 남도가 땅은 넓은 곳이지만 민중이 그 땅에서 살아남기는 너무도 가혹한 곳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토지는 지주들의 소유로 일반 민중은 손바닥만한 땅을 부치면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식들 교육도 시킬 수가 없어 모두들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그것은 내가 살던 경상남도 지역도 마찬가지였고 남부조국 어느 지역이나 똑같은 현실이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고,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신세를 우리들은 그것이 당연히 부모나 자신의 탓으로 여겼다. 남부조국이 일제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면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친일 친미 부역배들이 다시금 세상의 모든 이권을 독차지하고 권력을 휘두른 결과로 인한 사회적인 불평등으로 인한 것임을 우리들에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한 해방을 이루지 못한 곳에서 우리들은 나고 자라면서 거기 순응하며 살아가도록 배웠고,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도록 하는 제도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떠올려본다.
열차 복도에서 나처럼 창밖을 바라보는 어떤 외국인 여성
그런데 이곳 북부조국의 창밖으로 비쳐지는 저 산하는 해방과 함께 그런 제도 자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소작농과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땅의 주인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는 북부조국 강산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런 강토다. 경제적인 평등이 실현된 이곳 북부조국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지켜내기 위하여 그 어려운 제2의 고난의 행군도 이겨내었으니 내가 바라보는 이 땅은 평범한땅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땅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열차가 신안주를 지나니 철교 아래로 푸른 강물이 펼쳐진다. 성광순 선생이 이 강물이 청천강이라면서 6.25 전쟁때 이곳 청천강 전투에서 패한 수많은 미군들이 여기서 전투로 죽고 또 얼어 죽었다고 말해준다. 나는 여태 청천강 전투를 알지 못했었다. 미군이 패한 전투를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내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방문 후에야 찾아보니 이곳 청천강 전투에서 미군이 얼마나 크게 패하였으면 기세등등하게 북진하여 나가다가 이곳에서 패전 후 죽을 힘을 다해 급격하게 37선 이남까지 후퇴하였고 평양과 서울을 모두 다 내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청천강 전투는 6.25 전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청천강을 지나며. 전쟁 때 미군이 청천강전투에서크게 패하였고 많이 동사했다고 한다.
평양 단동행 기차표
정주 시내로 들어오면서
정주에서 일부 승객들이 내리고 탔다.
청천강을 지나 조금 후 정주에서 열차가 서고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평양에서 오전 10시 40분에 출발하였는데 신의주엔 3시 반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는 그 중간쯤 되는 곳이다. 성광순 선생이 준비해온 도시락 음식이 넉넉하다면서 함께 나누자고 하였지만 우리는 기차에서 도시락을 미리 주문하였고 여러가지 맛난 음식이 담긴 큼직한 도시락과 물병이 곧 도착하여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였다.
기차표를 검사하는 승무원에게 우리가 단동까지 가서 내려야 하는데 기차로 선양까지 갈 수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승무원은 우리가 탔던 열차는 국제선 차량 몇 대만 북경까지 가게 되고 나머지 차량은 잘라져서 단동에서 내일 다시 평양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한다. 기차표를 이 열차에서 구입할 수 있느냐고 하니 그 승무원은 단동에서 선양까지 다른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차표를 구입하는 일을 도와주었고 잘 안내해주었다. (우리는 단동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을 한참 걸어 지정된 좌석도 없는 보통급행 정도 되는 기차로 갈아타고 무사히 선양으로 갈 수 있었는데 덕분에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아주 친절하였던 중국의 인민들과 어울려서 여행을 하게 된 기회였다.)
우리가 평양에서 타고 온 침대칸은 네 사람이 타게 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짐만 두고 다른 칸에 가서 지인과 만나 대화하다가 돌아왔다면서 어떤 승객이 정주에서 정차한 동안 돌아왔다. 그분은 북부조국에서 단동으로 무역관계 일로 파견되어서 근무하는 분이라고 하였다. 정주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동안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성광순 선생이 무역일도 하며 일본과 북부조국을 오가는 분이라 서로 대화가 잘 통하였다.
신의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난 넓은 강물
신의주 시내가 보인다
그분은 지금 국교관계가 없어 미국이나 일본에서 북부조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거쳐서 투자하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 북부조국과 교류가 많은 중국에 회사를 설립하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부조국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섬세하고 완벽한 작업을 하기로 유명하며, 북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들과 송이버섯, 자연산 생선 등 여러가지 수출품들이 일본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막혀 있어 그렇게 중국을 통해서 돌아서 간다면서 조일관계가 풀어지면 그런 부분도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해외 동포들이 무역관계 일을 할 수 있으면 북부조국에도 좋고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해준다. 경제봉쇄를 이겨내고 해외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기를 원하는 북부조국과 해외동포들이 서로에게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 무역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소중한 일이리라.
신의주를 지나면서
압록강을 지나며
북부조국 국경을 넘으며 단동쪽에서 뒤돌아보다
신의주에 도착하여 한참 동안 출국을 위하여 기다리던 기차가 이제 움직인다. 차창으로 보이는 건물들과 인민들, 그리고 깔끔하게 잘 지어진 아파트 건물들을 바라보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압록강 푸른 강물이 펼쳐지고 기차는 철교 위를 달린다. 이제 나의 북쪽 조국을 떠나는구나. 이번엔 25년만에야 다시 찾은 조국이지만 앞으로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자주 찾으리라.
이렇게 산도 강도 들판도 모두 새롭게 된 조국이다. 그 가운데 가장 새롭게 된 것은 바로 사람이다. 해방과 함께 낡은 구습을 벗고 주체사상으로 전혀 새로워진 인민들이 새로운 사회제도를 이뤄내고 그 안에서 모두가 주인이 되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이렇게 귀한 우리민족이 참사람으로 살아가는 이 조국땅을 이제 올 수만 있으면 자주 찾으리라. 알면 알수록 더욱 감탄하게 되는 사회주의 제도의 내 사랑하는 북부조국이여, 이 세상 제일가는 강성대국으로 더욱 빛나라.(방북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