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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이민 교회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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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0-12-27 00:00 조회3,1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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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이민 교회의 사명

-자연 속의 한 인간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상을 위하여-
백승배(글렌데일웨슬리교회 담임목사)

새천년 무엇이 달라지는가?
1900년대를 마감하고 2000년을 맞았다. 세계가 떠들썩하게 맞은 2000년! 과연 세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해는 여전히 동쪽에서 뜨고, 가난하고 힘없고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은 계속 고달프고, 정치가들은 여전히 자기 배를 채우려 한 표에 관심들이 많고, 사람들의 마음엔 냉소주의가 더욱 팽배해져 가고 교회마저 이기주의가 판친다. 21세기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경제전쟁의 시대, 정보화의 시대, 환경오염의 시대, 인구팽창의 시대,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을 이루어야 할 시대이다. 과연 21세기 이민교회의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교회가 달라져야 한다

먼저 교회가 달라져야 한다. 기독교 2000년은 영욕의 역사다. 귀한 구원의 역사와 역사의 축이었지만 많은 잘못도 저질렀다. 달라지기 위해 먼저 우리는 예수와 교회, 예수와 기독교를 동격시하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물론 "성서가 예수의 요람"인 것 같이 교회는 예수를 담고 있는 울타리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긴 하지만 때로 예수 정신에서 먼 행동을 서슴치 않았음을 기독교역사가 증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교회 안에 참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존재하며 예수정신이 존재하기에 교회는 귀하다. 그래도 교회를 예수정신과 동격시하는 오만은 버려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겸손할 수 있고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우릴 수 있으며 보다 예수정신을 탐구하고 따르려는 노력도 늘어날 수 있다.

교회가 달라져야 할 것 중 첫째는 "믿음으로만"의 구원론이다. 기독교 500년만에 루터교와 천주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으로"로 합의하였지만 이 구원론은 역시 반쪽 구원론이다. 반쪽믿음으로 도피하는 구실을 여전히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행위 강조는 인간의 오만을 부채질 할 수 있지만, 행위, 성화를 동반하지 않은 믿음은 여전히 입술의 그리스도인으로, 냄새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인도한다.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했다. 여기서 몸은 전인적인 것이다. 믿음, 행위, 헌신, 사랑, 봉사, 일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는 뼈아픈 물음을 물어야 한다. 왜 한국의 감옥에는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가? 교인은 신구교를 합해 1/3이 안되는데 왜 감옥에는 50%이상이 교인이라는 통계가 나오는가? 반쪽짜리 믿음 때문이 아닌가? 또 하나의 물음, 교회는 피난처인가? 그렇다. 그렇지만 교회는 포로 수용소도 교도소도 아니다. 교회는 병원이다. 건강한 인간상을 다시 빚는 곳이다. 도피해 온 사람들도 새로운 인간성, 예수 안의 건강한 삶을 찾아야 하는 곳이다.

21세기 한국 이민교회의 과제

신학적 과제: 이상현 교수는 이민신학을 제창하여 각광을 받았지만 21세기는 이민자들 곧 변두리의 인간들이 중심축으로 더 많이 진출하는 때다. 그들에게 예수께선 언제나 주변적 인간, 소외자들의 친구이셨음을 일깨우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많은 소수민족들과 연대하여 주류사회속에 십자가의 삶을 보이는 것, 사랑과 정의의 소리를 발하는 것이 변함없는 교회의 과제다. 이를 위해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을 종합한 전인적인 신앙과 신학을 가진 교인들로 훈련하여야 하며, 주류 사회 속에 들어가도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말도록 가르쳐야 한다.

선교적 과제: 앞으로의 선교는 제국주의적 선교가 아니라 박애주의적 선교여야 한다. 제국주의적 선교는 교세확장에 열심이고 팽창을 자랑한다. 그러나 박애주의적 선교는 사랑에 열심이고 희생하며 나눔을 사랑한다. 테리사수녀, 슈바이처등은 21세기 선교의 모델이 아닐까? 기독교의 우월은 사랑의 우월이야 한다. 나눔의 우월이어야 한다.

더불어 숲: 21세기는 인종간, 종교간의 싸움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럴 때 기독교는 더불어 사는 삶의 모범이어야 한다. 사랑의 모태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며 존귀하다. 신영복 교수의 말대로 "더불어 숲"이다. 각기 다른 인종들이 함께 모여 숲을 이루는 것이다. 거기 사랑의 샘이 흐르게 하고, 정의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어야 한다. 바울의 말대로 예수의 대사이며 그리스도의 향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직, 근면, 검소, 헌신, 봉사, 겸손등 실천적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한다.

환경: 21세기는 환경 오염으로 인한 인재가 더 많아질 시기다. 홍수도, 지진도, 태풍도, 기근도 더 많아질 것이다. 물전쟁의 시기도 올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기독교는 성장의 철학, 발전의 철학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자연 즉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조화되지 않은 삶은 비기독교적이라는 것을 과감히 설교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지나친 소비는 결코 미덕이 아니라 죄악이다. 자연의 질서를 깨치는 것은 악마적인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가 돼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세계를 부정해 왔다.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교는 자연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둬야 한다. 자연세계와 영적인 부분의 통합이야말로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야말로 이런 내 생각과 부합한다고 본다.”싫어도 교회는 겸손히 이 말을 곰씹어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피조물인 인간은 자연 속의 한 부분임을 깨우쳐야 하며 자연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구폭발: 이미 세계 인구는 60억을 넘어섰다. 빈곤의 격차로 인한 신음소리가 들린지 오래다. 이민 교회는 이들의 소리에 경청하고 사회의 등불과 양심의 소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통일: 21세기 한국교회에 주어진 지상의 사명은 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북은 자립과 자주를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고, 남은 경제를 되찾기 위해 땀흘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민교회는 제삼의 길을 제시하여 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을 돕고, 남한이 노예경제가 되지 않도록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이념전쟁은 끝났으나, 교회까지 이념의 포로였던 것을 회개하고 동족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구제, 미국정치에의 참여, 시민운동을 통해 통일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통일후 떳떳한 선교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맺는 말: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신 주님이시다. 참다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조화하며 사랑과 화해와 치유의 삶에 헌신하며, 기독자의 윤리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지구와 함게 온 인류가 살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앞당기며, 부활하신 주님의 삶을 사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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