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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2차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생각해본다 [200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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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1-07-30 00:00 조회2,04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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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러에 즈음하여 2차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생각해본다

강 진욱(언론인)

미국의 "무조건 대화 재개 요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러의 함수 관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정객들이 "무조건 대북 협상 재개"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고 있는 와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홀연히 러시아 방문 길에 올랐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러 일정은 자그마치 23박 24일. 7월27일부터 8월18일까지다. 이는 곧 남북이 함께 기념할 조국의 명절 8·15에 즈음해서도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아쉽다. 그러나 찬찬히 돌아보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지연시키고 역사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에 장애를 조성하는 무리들은 따로 있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약속"이라며 "답방"을 "촉구"하면서 의도적으로 "약속 위반하는 북한"을 되뇌던 무리들과 우리 두 지도자의 2차 회담에 장애를 조성하면서 말로만 회담을 바라는 척 하는 큰바다 저편 깡패들이 그들이다.

김 위원장의 "방러"를 생각해본다

2차 정상회담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6·15선언에 대한 남북 양측의 실천 의지로 볼 때 틀림없이 이뤄질 것이다. 또 이북의 통일전략과 북-미 관계 개선 속도에 비춰봐도 조만간 이뤄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예정된 것도 아니었고 어떤 일정에 구속될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기념일인 8·15에 즈음해서까지 남북정상회담이 북-러 정상회담의 후순위로 밀려나고 자칫 남북 당국간 대화까지 소강국면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가 방한 대신 방러를 택한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설사 김 위원장의 방러 일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해도 그의 출국 직전 일시에 터져 나온 미국의 잇단 대북 협상 재개 및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국(미국과 이남)의 주장을 보란 듯 내친 듯한 느낌이다. 분명 내친 것이다.

신출귀몰의 경지에 다다른 이북의 외교술을 온전히 해독하기는 어렵지만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이남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던 시각 김 위원장 출국 소식이 전해진 것으로 미뤄볼 때 김 위원장의 방러는 분명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에 대한 일격이었다.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까지 합친 소위 "G8" 외무장관회담과 하노이 아시아지역안보포럼이 잇따라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을 종용한데 대한 대응이었다.

돌아보면 ARF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촉구하는 성명이 채택된 것이 미국과 이남의 "대북 공세"였다면 바로 같은 장소에서 이북과 유럽연합(EU)이 수교에 정식 합의한 것은 미국(또는 미국과 이남)을 향한 맞불이었다.

왜 김 위원장의 방러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반격인가?

러시아를 합친 서방국과 아시아 각국들까지 나서 2차 남북정상회담의 조기 성사를 촉구한 것이나 미국 정부가 잇따라 김정일 위원장 서울 방문을 종용했던 것은 미국이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채(못한 척 하면서) 이남 정부에 대한 간섭과 감시의 줄을 놓지 않는 가운데 2차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를 바란 것이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미국을 따르거나 미국의 음흉한 대한반도 정책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유럽 및 아시아 각국들이 미국의 선창에 화답하며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서울 답방 압력"을 높이는데 대한 거부의 표시였다.

거의 한 달에 이르는 러시아 방문 일정은 이북이 당분간 미국 및 이남과의 대화를 후순위로 미루겠다는 의사를 간접 천명한 것으로 미국과 서방 각국의 대북 압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며 미국의 선창에 덩달아 "답방 약속" 운운하던 무리들 역시 같은 신세이리라.

한국행 비행기 속에서 김 위원장의 출국 소식을 접했다는 파월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협상 조기 재개" 요청에 "우리는 무조건 대화할 뜻이 있다"며 "공은 이북에 넘어갔다"고 말했지만 김 위원장의 돌연 출국은 "공 아직 미국 코트에 있음" 바로 그것이었다. 북-미 대화 지연이 "북한 때문"임을 강변하려던 그의 목소리가 사뭇 잦아드는 느낌이다.

6월6일 대북 협상 재개를 선언하면서 예정에도 없던 "조건"을 내걸었던 미국이 한 달 여만에 다시 "무조건 대화 재개"를 간청하고 있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는 시점이 빠를수록 또 타협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할수록 미국으로서는 그만큼 손해를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최소한 한 달 동안 이북은 탄도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계속하면서 미국의 "대량살상무기통제체제"를 압박할 것이다. 추후 재개될 북-미 회담은 이북 미사일 수출 및 생산을 중지시킬 수 있을지언정 이미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이나 그 기술은 통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달 간 북-미 대화가 지연되는 것은 미국에게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북-미 미사일 협상의 실체와 전말에 관해서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논문 참조 : <북조선이 보유한 익명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조-미-일 삼각전략균형의 형성> www.onekorea.org)

미국이 솔직한 태도로 대북 대화 재개에 나섰더라면 북-미 협상은 물론 남북대화 역시 순탄했을 것이고 미국이 이남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고 이남이 이북과의 적극적인 화해와 협력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러시아 방문 길에 앞서 서울을 방문했을 것이다.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방해하면서 또 역사적인 10·12 조-미 공동코뮈니케의 이행 의무를 저버린 "수퍼 불량국가" 미국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서울에서 열릴 2차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생각해본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정부와 여야는 물론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촉구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북-미 관계를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김정일 위원장인 하루속히 "서울 답방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북측이 주장하는 자주의 원칙"이나 이를 명시한 6·15선언에도 부합한다는 자못 그럴듯한 논리를 제시한다.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자는 목소리도 흘러 나온다.

그러나 이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상회담 개최와 회담의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이 조성되어야만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2차 남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론"은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 분단을 통일로,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하루빨리 변화시켜야 할 시점을 망각한 채 분단체제의 두 지도자의 만남을 정례화해 분단상태를 오래 지속시키자는 주장은 차라리 악담이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주장은 어차피 통일이 안될 것이므로 두 정상이 수시로 만나 정담이나 나누면 남북 갈등을 다소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이 경우는 "악담"은 아니지만 지극히 패배주의적인 인식으로 역시 "덕담"은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 촉구"나 "정례화" 주장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이 북-미 적대 관계에 있으며 이 문제를 풀어야만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거나 아니면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미국의 간섭 하에서 남북대화를 재개시켜 미국이 원하는 "분단관리에 적합한 남북관계"를 유도하겠다는 저의를 내포한 것이다.

미국이(미국과 이남이) 대북 대화의 기본 "자세"와 "여건"도 갖추지 못한 채 "답방 촉구" 또는 "정상회담 정례화"를 운운하는 것은 통일과 평화를 지향하는 한반도 정세를 미국의 분단관리 저의에 맞게 뒤틀어보려는 욕구의 반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대화의 기본 "자세"란 곧 미국이 이북과의 평화공존에 대한 이전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상호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고 "여건"이란 곧 이남이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통일을 향한 남북대화에 주동적으로 나서는 것을 말한다.

분단국 지도자 사이의 만남은 마땅히 "통일"이라는 대의를 확인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하는데 그 뜻이 있다. 이에 비춰 볼 때, 회담 개최 및 그 결과가 불투명한 상황임에도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반통일적인 수사이다.

미국이 대북적대감을 부추기고 이남 정부가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가운데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여건은 대단히 미진하다.

이북이 남북당국간 회담 개최를 미루는 것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이남 정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킨 뒤에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는 뜻이다. 이북은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런 의사를 남측 정부에 전달해 왔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기회가 닿는 대로 미국 정부에 대해 "대북 협상 재개"를 당부해 왔다.

남북관계는 현재 정전협정 체제에 의한 분단 구조하에 있으며 이를 개선해 평화협정 체제에 의한 통일국면으로 바꿔 나가려는 것이 남북대화의 목적이다. 북-미 대화 또한 이 목적에 합당한 것이기에 하루속히 재개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작년 6·15남북공동선언과 10·12 조-미 공동코뮈니케는 바로 이런 새로운 정세를 구현하기 위한 이정표였으나 두 역사적인 합의의 실천 정도는 대단히 미진하다. 특히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평화 프로세스"를 중지시키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통일 프로세스"를 가로막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계 또는 현상이 정착 또는 고정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정례화" 개념을 남북정상회담에 투사하는 것은 곧 정전협정 체제에 의한 분단구조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발상일 수 있다.

"정례화"의 대표적인 예는 지금까지 35차례나 지속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비춰볼 때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한다는 의미는 곧 남북관계를 현재 상태 그대로 두고 정상회담을 상설기구화함으로써 분단체제하에서 수시로 회담을 개최하자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입시"와 "합격"을 예로 든다면 2차 정상회담은 "입시"이고 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구체적 합의가 도출되는 것이 곧 "합격"이다. "합격"을 바란다면 입시공부에 충실해야 하듯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한다면 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합의점이 도출되도록 힘쓰는 것이 급선무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돼 6·15남북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통일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 놓지도 않고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하는 것은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서둘러 "입시"에 응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부 않고 치른 입시에 "낙방"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여건 조성 없이 선행돼야 하는 것도 바로 회담의 성공을 위함이다.

"입시"와 "합격"에 비춰볼 때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는 곧 재수와 삼수, 사수, 오수, 육수, 칠수, 팔수, 구수...........를 거듭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까지 분단구조를 끌고 가겠다고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가? 분단체제가 무슨 산천경계 좋은 놀이터인가? 하루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자칫 민족의 운명이 나락에 떨어질 판에 분단체제의 두 지도자들이 만나 뭘 하라는 것인가?

분단국 지도자 두 사람이 만나 통일 이외에 다른 할말이 더 있을까? 두 사람이 "정례적으로" "수시로" 만나 회포를 푸는 일은 통일을 이룩한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분단 한반도의 지도자 두 사람은 하루 속히 통일을 이룩할 방도를 마련해야 할 책무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또한 그것이다. 두 정상은 빨리 만날 생각보다는 머리를 짜내고 날밤을 새서라도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통일에 합의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작년 평양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올해 서울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잘 하면 내년 한 차례 더 정상회담을 기대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분단국 지도자 두 사람이 4차 5차 ... 계속 만나는 것은 자칫 분단체제 자체를 용인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바로 분단체제 영구화 이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이 이북과의 협상을 앞두고 시간에 쫓기고 있다. 한반도 분단체제 영구화를 획책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2001년 북-미 관계 변화 전망

출범 초기 영변 폭격을 계획했던 클린턴 정부가 8년간의 대북 협상 끝에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수순에 돌입한데 이어 출범과 동시에 사뭇 강경한 자세를 과시하던 부시 정부가 6개월만에 대화 재개를 선언하고 다시 한 달 여 만에 무조건 대화 재개를 희망하고 나선 것은 20세기 한반도를 구속했던 북-미 대결구도가 곧 평화공존 구도로 변환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약 5개월간의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고 6월6일 이북과의 대화 재개를 선언했다. 대화 재개 조건은 핵과 미사일 및 재래식전력 감축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2일 뒤인 18일 이북은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문제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며 미국의 "조건부 대화재개"를 사실상 거부했다. 특히 재래식 전력 감축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철수가 우선이라며 일축했다.

하루가 지난 19일 미 국무부 대변인이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제의를 "공개적으로"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공개적으로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시 하루 뒤인 20일 파월 미 국무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재래무기 감축 거부 등 북조선의 역제의가 북-미 대화를 이탈(derail)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이북의 "조건부 대화 거부" 입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대화에 나서겠다는 강한 욕구를 반영했다.

이북은 21일 평양방송 대담 형식을 빌어 "불공정한 협상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며 "미국과 대화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한다. 대화의 조건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7월21일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회의에 이북 백남순 외상이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고위급회담(외무장관회담)을 재개하겠다고 별렀다.(이남 역시 이 회의를 계기로 2000년 12월 부시 정부 출범 직전 중지된 남북 당국간 대화를 복원시키려 했다. 이남과 미국 언론들은 남-북-미 3국 외무장관 사이의 "연쇄접촉"에 대한 기대감을 연일 보도했고 세계 각국의 관심도 대단했다.)

이북은 ARF 회의 개막 직전 백남순 외상 불참을 통보했고 이남과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북-미/남-북 회담 재개 기대 무산"을 타전하며 실망감을 표시했지만 파월 국무장관은 7월 24일 하노이에서 이북과의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한반도 평화 무드 조성을 기대하며 하노이에 대기중이던 각국 기자들의 실망도 대단히 컸다. - 연합뉴스 권태현특파원 하노이발 기사. 7월19일자)

하노이에서의 북-미 대좌는 결국 무산됐지만 이북 대표의 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대북 대화를 재개해야겠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이북과의 대화 재개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노이에서의 북-미 대화가 불발된 직후부터 미국 정부에서는 대북협상 무조건 재개를 희망하는 "간청"이 잇따랐다.

파월은 27일 이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북한과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우리의 입장을 세 차례의 실무 접촉 등을 통해 북쪽에 전달했다"며 "미국은 북-미 대화 재개와 관계 없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겨레신문 2001년 7월28일자 1면 머릿기사)

같은 날(미국 시간 26일) 잭 프리처드 미 국무부 한반도담당특사는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증언에서 "북-미 대화와 관련해 미국은 아무런 전제조건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지난달 리형철 유엔주재 이북대표부 대사와 만나 북-미회담 장소와 시기를 북한이 정하도록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하루 앞서 토마스 허바드 주한미국대사 지명자는 25일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이 재래식무기를 감축하고 후방으로 후퇴하면 미국의 후방이동 문제도 논의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과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문화일보 7월26일자 3면 박스기사)

파월과 프리처드, 허바드의 "무조건 대북 대화 재개 희망"과 함께 주목을 끄는 것은 대화 재개와 무관하게 인도적 대북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과 북-미 회담 시기 등을 이북이 정하기로 했다는 점,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또한 주목할 것은 프리처드 특사는 26일 아태소위에서 "예단할 수는 없지만 한반도는 통일될 것"이라며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며 지난 몇 년 동안 비무장지대 지뢰제거.. 등 각 분야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졌다"고 말했다.(7월27일 연합뉴스 워싱턴 김성수특파원발 기사.)

이들의 말은 그네들 대통령의 말을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불과 한 달 여 만에 미국은 지극히 오만불손한 자세를 버리고 대단히 예의바른 자세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의가 바를 뿐 아니라 이북이 요구하는 모든 전제조건들을 적극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유는 파월이 언급했듯이 세 차례 진행된 북-미 실무 접촉에서 이북의 대미 대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추론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사흘 전인 23일 이북 외부성 대변인이 조선중앙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자위적 조치로 인해 그동안 미국과 합의됐던 모든 사항들이 파괴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불량국가들이 미국의 이웃나라에 침공할 수 있다"고 발언한데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었다. 대변인은 "자위적 대응책을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에 대한 초강경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비즈니스위크지는 이북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앞서 미국이 이북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고 이는 ARF회의에 참석한 허 종 이북 대리대사의 입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됐다.

프리처드가 대화시기를 이북이 정하도록 요구했다는 말은 사실상 대화를 애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한반도담당특사와 국무장관이 무조건 대북 대화 재계 희망을 간청하던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방문 길에 오른 것 또한 우연의 일치일망정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가 자못 크다.

이북은 더 이상 미국과 전제조건을 논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까지의 북-미 대결사의 종지부를 찍을 용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있다. 파월은 김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북-미 대화 재개의 책임을 모두 이북에 모두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사실상 대화 재개 여부는 미국의 "이북적대포기"에 달려 있다. 시간 또한 명백히 이북 편이다.

이북의 요구대로 미국은 움직일 것
2001년 7월 현재 미국의 숱한 "러브 콜"에도 불구하고 이북이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대화의 전제로 내세우며 미국을 압박하는 것은 이 대단원의 막을 올리기 위한 마지막 숨고르기다. 미국은 곧 이북의 요구대로 대북적대정책 포기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거나 은밀히 내락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포기를 선언 또는 내락하는 것은 한반도 분단체제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한반도평화와 남북통일을 용인하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북-미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관계에 들어서는 것은 곧 친미국가 이남을 지렛대 삼아 이북을 경제봉쇄 또는 군사작전을 통해 붕괴시키거나(하드랜딩) 또는 자본주의체제로의 변질을 통해 소멸시킨 뒤(소프트랜딩) 한반도 이북 땅에 또 하나의 친미국가를 세우려는 미국의 남북분단관리정책이 무효화됨을 뜻한다.

미국은 곧 이북을 적대시하는 한-미-일 대북공조체제를 서서히 변경하면서 이북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이남은 분단 반세기의 굴욕적인 대미 종속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북을 주적으로 하는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와해되면서 미국이 남북간 화해와 협력 및 "낮은 단계의 연방제"(연합제) 통일을 지지하게 되고 남과 북은 한반도 비극의 주범이었던 미국의 불유쾌한 축복 속에 통일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남북이 통일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 미국은 곧 탄생할 통일된 코리아연방(연합)과 우호(친선)조약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낙관적 전망은 남북이 2차 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의 통일 대강(1항과 2항)을 심화시킨 "낮은 단계의 통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더 이상 2차 정상회담 "촉구"나 "답방 약속" 운운하지 말고 두 정상이 가능한 빨리 만나 분단된 남과 북이 하나로 합쳐 함께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자주민보 인터넷 www.minbo.com에서 200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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